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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정환번역동화 - 사랑의 선물 상세페이지

방정환번역동화 - 사랑의 선물작품 소개

<방정환번역동화 - 사랑의 선물> 1919년 말, 일본 도쿄의 도요(東洋)대학 철학과에 입학하여 아동 문학과 아동 심리학을 공부했다. 계몽사에서 출판한 방정환전기에 따르면, 당시 일본경찰은 독립운동경력이 있는 유학생 방정환을 형사를 보내 감시하였다. 1920년~1923년 사이 유학 기간에 천도교 잡지인 개벽에 계급투쟁을 주장하는 사회주의 성격의 우화들을 연재하였다. 1920년 개벽 3호에 번역 동시 ‘어린이 노래 : 불 켜는 이’ 를 발표하였는데 이 글에서 ‘어린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하였으며, 사회주의자가 쓴 글을 소개하기도 하였다. 1921년에는 일본 유학 기간 동안 외국동화를 번역한 사랑의 선물을 출판하였다. 사랑의 선물은 방정환 선생이 살아있을 때 만든 유일한 단행본이며, 번안 동화 10편이 실렸다. 이 책은 방정환이 발행한 사랑의 선물에 수록된 작품 외에 방정환이 번안한 외국단편 몇 편을 더 수록한 책이다.

출판사 서평

"방정환은 1899년 서울 종로구 당주동에서 어물전과 미곡상을 경영하던 방경수의 장남으로 출생하였으며, 할아버지에게 한문을 배웠다. 어려서 어머니와 누나를 잃고 새어머니가 들어왔으나 정을 못 붙이고, 그 대신 그림그리기와 글짓기에 재미를 얻었다.

7살때인 1905년 삼촌을 따라갔다가 우연히 만난 김중환 교장의 설득으로 보성소학교 유치반에 입학하였다. 보성소학교에서는 입학하는 학생은 댕기를 자르고, 머리를 깎아야 하였는데, 이를 본 할아버지는 전통을 단절해야 할 구습으로 보는 진보 지식인들의 급진성에 대한 거부감으로 매우 화를 내었다. 하지만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 손주의 뜻을 존중하여 학교에 다니는 것을 묵인하였다고 한다.

1908년에는 ‘소년입지회’를 조직하여 동화구연, 토론회, 연설회 등의 활동을 하였다. 방정환의 집안은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방정환의 집은 마음씨 좋은 고모에게서 식량을 꾸러 갈 정도로 가난하였다. 그래서 방정환은 1913년 서울미동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아들이 상업을 전문적으로 배워서 가업을 이을 것을 바란 아버지의 뜻에 따라 선린상업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1913년 이광수가 펴내던 잡지 청춘에 보낸 글이 게재되었다. 어머니의 병환으로 2년 만에 선린상업고등학교를 중퇴하였다. 당시 담임교사와 부친은 아들이 공부를 계속하기 바랐으나, 집안이 어려웠기 때문에 스스로 학교를 그만두었다.

1916년 생활비 조달을 위해 조선총독부 토지조사국에서 취직하여 서류필사 업무를 하였는데, 조선총독부 토지조사국은 토지조사사업 즉, 조선인의 토지수탈작업을 담당하여 지탄을 받는 기관이었기 때문에 곧 사직하고 천도교 청년회, 개벽사, 천도교 소년회 등의 천도교 기관들과 관계를 맺었다. 그가 천도교 기관에서 일한 이유는 부친이 성실한 천도교 신자였고, 방정환 자신도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천도교의 인내천 사상에 공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918년에는 천도교 3대 교주였던 의암 손병희의 셋째 딸인 손용화 여사와 중매결혼 하였다. 결혼하던 해에 청년문학단체인 청년구락부를 조직하여 5년간 활동하면서 어린이 운동에 열성을 보였으며, 당시 손병희선생이 지도하던 보성전문학교에 입학하였다.

1919년 3월 1일 기미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직접 등사기로 찍은 독립신문을 발행하여 중학생들의 도움으로 돌리다 일본경찰에 체포되었으나, 일경이 들이닥치기 전에 등사기를 우물에 버렸기 때문에, 일주일 만에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나왔다. 하지만 같이 독립신문 발행에 동참한 청년구락부 동료들은 일경의 고문으로 옥사하였으며 방정환도 고문을 당했다.

1919년 말, 일본 도쿄의 도요(東洋)대학 철학과에 입학하여 아동 문학과 아동 심리학을 공부했다. 계몽사에서 출판한 방정환전기에 따르면, 당시 일본경찰은 독립운동경력이 있는 유학생 방정환을 형사를 보내 감시하였다. 1920년~1923년 사이 유학 기간에 천도교 잡지인 개벽에 계급투쟁을 주장하는 사회주의 성격의 우화들을 연재하였다. 1920년 개벽 3호에 번역 동시 ‘어린이 노래 : 불 켜는 이’ 를 발표하였는데 이 글에서 ‘어린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하였으며, 사회주의자가 쓴 글을 소개하기도 하였다. 1921년에는 일본 유학 기간 동안 외국동화를 번역한 사랑의 선물을 출판하였다. 사랑의 선물은 방정환 선생이 살아있을 때 만든 유일한 단행본이며, 번안 동화 10편이 실렸다. 방정환이 사랑의 선물을 만든 이유는 당시 조선의 어린이들이 누릴만한 문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일본에서는 메이지 유신의 영향으로 어린이 문학이 발전하여 어린이책들이 서점에 깔렸는데, 조선의 어린이들은 그러한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1921년 서울에서 “천도교 소년회”를 만들었다. 한편 방정환은 전국 순회강연을 통해 뛰어난 이야기꾼으로 활약했는데, 강연내용은 어린이들을 위해 그들의 인격을 존중하자는 것이었다. 1923년에는 한국 최초의 순수아동잡지인 월간 어린이(1923, 창간-1934, 폐간)를 창간하였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다른 법. 처음에는 엽서에 이름과 주소를 적어서 보내주면 돈을 받지 않고 보내준다고 선전해도 불과 8명이 신청할 만큼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이는 일제의 식민지 수탈로 대다수의 민중들이 먹고 살기조차 힘들었던, 그래서 민중들에게는 독서가 사치로 여겨지던 조선의 현실 때문이었다. 하지만 방정환은 자신의 특기인 재미있는 구연동화로 현실의 장벽을 극복하였다. 어린이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잡지를 선전하였던 것이다. 어린이는 이원수, 마해송 선생 같은 아동 문학가들이 이름을 알리는 기회가 되어, 한국 아동문학계의 발전에 공헌하였다.

5월 1일에는 일본 도쿄에서 어린이 문제를 연구하는 단체인 색동회를 창설하였는데, 색동회라는 이름은 후에 동요작가로 활약하게 되는 윤극영 선생이 예쁜 색동저고리를 떠올리며 제안한 이름이다. 1927년 어린이 단체를 통합한 ‘조선소년연합회’ 위원장 역임하며 아기별 삼 형제 등의 동요·동화·추리소설인 칠칠단의 비밀 등의 소년 소설·동극 창작과 외국 동화 번역에 힘썼으며, 세계어린이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전시회를 열기도 하였다. 당시 그가 기획한 전시회는 지방에서 수학여행을 올 만큼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방정환은 아동잡지에 기고 활동을 하면서 소설가 현진건(玄鎭健), 소설가 심훈(沈熏) 등과 문우(文友) 관계를 맺기도 하였다.

1931년 7월 23일 동화집필, 구연동화, 어린이대상 출판활동 등으로 인한 과로와 비만으로 건강이 나빠진 방정환은 구연동화 활동 중에 쓰러져 경성제국대학병원(현 서울대학교병원)으로 옮겼으나, 고혈압으로 32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병원에 입원해서도 간호사들에게 동화를 들려줄 만큼 성격이 밝았던 그는 ‘문간에 검은말이 끄는 검은 마차가 날 데리러왔으니 떠나야겠소. 어린이를 두고 떠나니 잘 부탁하시오’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그의 사후에는 1957년 방정환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소파상’이 제정되었다. 1978년 금관문화훈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80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1971년에는 색동회가 주관하고 전국 어린이들의 성금을 기금으로 하여 2년간 제작한 동상이 남산 어린이회관 옆에 세워졌다. 1983년 어린이날 망우리 묘소에 소파방정환 선생의 비(碑)가 세워졌으며, 1987년에는 독립기념관에 그가 쓴 “어른들에게 드리는 글”을 새긴 어록비가 건립되었다.

서문을 대신하여 방정환의 짧지만 불꽃 같았던 일대기를 소개하였다. 이 글은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에서 발췌하여 수록하였다.


저자 프로필

방정환

  • 국적 대한민국
  • 출생-사망 1899년 11월 9일 - 1931년 7월 23일
  • 학력 도요대학교 철학과
  • 경력 월간 '혜성' 편집장
    소년운동협회 회장
    잡지 '신청년', '신여자' 편집장
  • 수상 1980년 건국포장
    1978년 금관문화훈장

2017.05.24.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소개

저자 - 방정환
방정환(方定煥, 1899년 11월 9일 ~ 1931년 7월 23일)은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 아동문화운동가, 어린이 교육인, 사회운동가이다. 호는 소파(小波)로 일본 유학시절 그에게 영향을 끼친 일본의 아동 문학가인 이와야 사자나미(岩谷小波)의 이름과 같다. 이외에도 잔물, 몽견초, 몽견인, 삼산인, 북극성, 쌍S, 서삼득, 목성, 은파리, CWP, 길동무, 운정, 김파영, 파영, ㅈㅎ생라는 이름을 필명으로 사용하였는데, 이는 일본의 언론검열을 피하기 위한 것이었다. 보성전문을 거쳐 일본 도요대학 철학과에서 아동문학과 아동심리학을 공부했다. 최초로 본격적인 아동문학 연구단체인 ‘색동회’를 조직하고 순수아동잡지 어린이를 창간했다. 계속해서 신청년(新靑年)·신여성(新女性)·학생(學生) 등의 잡지를 편집·발간했으며, 동화대회·소년문제 강연회·아동예술 강습회·소년 지도자 대회 등을 주재하며 계몽운동과 아동문학운동에 앞장섰다.

목차

개구리 왕자
산드룡의 유리구두
왕자와 제비
잠자는 왕녀
한네레의 죽음
마음의 꽃
꽃 속의 작은이
천당 가는 길
호수의 여왕
털보 장사
천사
황금 거위
눈 어두운 포수
작은이의 이름
금도끼
하메른의 쥐 난리
천공의 용소년
4월에 피는 꽃 물망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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