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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와 철학 상세페이지

물리와 철학작품 소개

<물리와 철학> 불확정성 원리로 양자역학의 창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하이젠베르크가 1955~56년에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루스 대학의 기퍼드 강연에서 발표한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 현대 과학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책이다. 하이젠베르크는 양자역학을 주제로 한 이 강연에서 양자역학의 발전 과정을 비롯해 양자역학이 가지는 철학적 함의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와 과학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과학과 철학을 종횡무진 오가며 자신이 만든 새로운 학문을 대중들에게 소개한다.

하이젠베르크는 우선 플랑크, 아인슈타인, 보어 등의 활약으로 뉴턴 역학이 자연을 설명해 온 방식에 문제가 제기되는 과정을 거쳐 양자역학이 성립되기까지의 경과를 설명한다. 이들 과학자들의 새로운 발견은 뉴턴 역학의 일관성에 손상을 가할 수밖에 없었는데 뉴턴의 고전 역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사실들은 너무도 혁명적이어서 과학자들을 환희보다는 오히려 당혹감에 빠지게 한 것으로 보인다. 하이젠베르크 또한 불확정성 원리를 발견했을 때의 당혹감을 자연에는 수학으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진실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으로 조심스레 표명한다.


저자 소개

베르너 카를 하이젠베르크(Werner Karl Heisenberg, 1901~1976)
독일의 이론물리학자로 미시적인 세계를 지배하는 근본 법칙인 양자역학의 개척자 중 한 명이다. 괴팅겐 대학 시절 닐스 보어의 강의를 듣다가 사제 관계를 맺었고 이후 평생의 학문적 동지로서 깊은 친교를 맺었다. 1927년 라이프치히 대학의 이론 물리학 교수가 되었고 이후 라이프리치 대학을 독일 물리학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불확정성 원리를 제창해 양자역학에 대한 해석을 확립했고 1932년 양자역학을 창시한 공로 등을 인정받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1933년 독일 최고의 물리학적 명예인 막스 플랑크 메달을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독일 우라늄 계획의 실질적인 지도자가 되었는데 나치 지도자들에게 인적, 경제적 자원의 부족으로 1945년 이전에는 원자폭탄 생산이 어렵다는 견해를 밝혀 결과적으로 나치는 원자폭탄 개발을 포기했다. 전후 독일 과학의 재건에 힘을 기울여 1946년부터 1970년까지 막스 플랑크 천체물리학 연구소 소장을 역임했고 1953년부터 사망 직전까지 훔볼트 재단의 총재로 있었다. 1957년 저명한 독일의 17명의 핵물리학자와 함께 독일의 핵무장을 반대하는 <괴팅겐 선언>을 주도했다. 등산과 하이킹, 클래식 음악을 즐겼으며 뛰어난 피아니스트이기도 했던 하이젠베르크는 1976년 신장과 방광의 암으로 자택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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