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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시

반복

문학동네 시인선 051
소장종이책 정가10,000
전자책 정가30%7,000
판매가7,000

반복작품 소개

<반복> ‘시’로부터 가장 멀어짐으로써 ‘시’에 가장 가까워지는 ‘시’
반복으로 새롭게 그려지는 기이한 시의 문법


생각하고, 말로 적시하고, 적기 전에 잠시 머뭇거리고, 다시 적고, 적는 것을 잠시 지연시키고, 다시 생각하고, 말로 또 그걸 적어보고, 적어놓은 글과 그 행동을 다시 말로 되받아내면서, 이준규는 자신이 써놓은 모든 것을 결국 시로 만들어버리는 기이한 문법을 선보인다. _조재룡(문학평론가)

기존 ‘시’의 모습에서 철저하게 벗어나 전혀 새로운 시의 문법을 보여주는 시인 이준규의 다섯번째 시집 『반복』이 출간되었다. 네번째 시집 『네모』와 한 주 상간으로 연이어 출간된 이번 시집은, 정직하고 그래서 강렬한 제목 아래 55편의 시를 담고 있다. 각 시편의 제목만 훑어보아도, 이번 시집의 성격을 짐작해볼 수 있다. 동일하거나 조금 변주된 비슷한 제목의 시들이 번호의 구분 없이 놓여 있는데, 하나의 단어가 어떤 실체를 온전히 담아낼 수 없음을 보여주었던 이준규의 시를 줄곧 따라 읽어온 독자들이라면 이러한 구성이 그리 낯설지 않을 것이다. 시인은 어쩌면 이번 시집에서 역시, 하나의 제목 아래 한 편의 시만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상적이고 어렵지 않은 단어와 그것으로 이루어져 있는 문장이 이준규를 통해 시라는 옷을 입고 태어나면, 지금까지 만나본 적 없는 생경한 ‘시’로 다가온다. 그래서 그의 시는 소통을 거부한 난해한 것으로 오해를 받기도 한다. 그것은 그의 시가 맥락이 있는 이야기 혹은 정보 전달의 기능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문학평론가 송종원이 유아기 때 처음 모국어를 접하는 방식에 대한 설명으로 이번 시집의 해설을 시작하고 있거니와, 이준규가 언어를 대하는 방식을 살펴보면 익숙한 단어를 학습된 의미 안에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의 감각적 울림, 혹은 그것을 둘러싼 다른 상황이나 감각을 통해 대상을 새로이 인식하는데, 그것은 마치 말과 글을 모르는 시기의 언어감각을 다시 되살리고 있는 듯이 보인다.
이를테면 이준규가 그리는 '딸기'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과일이 아니다.

딸기가 그릇에 담겨 있다. 딸기는 하얀 바탕에 노란 꽃무늬가 있는 손바닥 크기의 그릇에 담겨 있다. 딸기는 별로 크지 않은데, 반으로 잘려 있다. 절단된 딸기 무더기. 딸기는 작은 꽃무늬가 있는 하얀 그릇에 담겨 있다. 나는 그것을 하나 둘 먹기 시작한다. 딸기를 먹으니 기분이 좋고 딸기를 먹으니 가슴의 통증이 있고 그렇게 딸기를 계속 먹으니 가슴의 통증은 사라진다. 나는 홍차를 마셔도 가슴의 통증을 느끼는데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아무튼 나는 딸기를 다 먹고 노란 꽃무늬가 있는 하얀 그릇을 본다. 전등 불빛에 반짝이는. 딸기가 사라진. 딸기가 있었다. _ 「딸기」 전문

조금도 어렵지 않은 언어들로 이루어진 이 시가 생경하게 느껴진다면, 그간 우리는, ‘딸기’ 자체에 집중하기보다는 ‘딸기’에 얽힌 이야기나 '딸기'를 매개로 해서 얻어진 감정, 그것을 써내려간 것이 '시'의 익숙한 모습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이준규는 ‘딸기’ 자체에 집중한다. 주변의 다른 대상들을 끌어들이는 것도 결국은 ‘딸기’를 말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묘한 것은 ‘딸기’가 반복될 때마다 그것이 읽는 이의 내부에서 다른 감각들을 불러온다는 것이다. “꽃무늬가 있는 하얀 그릇에 담겨 있”는 딸기, “절단된 딸기 무더기”, 딸기를 먹을 때 느껴지는 가슴의 통증, 딸기가 사라진 그릇…… 저마다 다른 상황에 놓인 ‘딸기’는 눈앞에 보이는 선명한 이미지였다가 가슴의 통증을 주는 대상이었다가 결국은 눈앞에서 사라져 없는 것이 된다. 이처럼 이준규의 시에서 보여지는 반복은 언어 자체가 가진 다양한 감각의 울림을 확인하게 하는 실험인 동시에, 의미의 부재를 확인하는 ‘포르트-다’ 놀이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준규의 시에서 부재하는 것은 의미만이 아니다. 그의 시에 특히 많이 등장하는 말은 ‘그것’이다. 언어의 불확정성과 가변성만큼이나 규정하기 어려운, 따라서 말의 움직임과 그 관계 속에서 매번 다르게 그 존재와 가치를 따져 물어야 하는 미지의 대상은 가령 이런 식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비스듬히 추락한다. 모든 것처럼. 그것은 비스듬히 추락하는 희망이자 환멸이다. 그것은 손가락을 들어 그것을 긁는다. 그것은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다. 그것은 앉았다 일어나고 일어났다 앉는다. 그것이 그것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것은 그렇게 반복한다. 그것은 참을 수 없는 성실함을 보여주며 그것을 반복하고 있다. 그것의 생은 단순하며 그것의 일생은 비극적이다. 그리하여 그것의 실천은 놀라운 집중이다. 그것은 기울어져 있다가 꼿꼿이 서고 그것은 꼿꼿이 섰다가 다시 고개를 숙인다. 그것은 기울어져 있다가 갑자기 고개를 들고 그것은 하루의 일과를 끝없이 반복하지만 결국 별일 없이 그의 생을 끝낼 것이다. 어디선가 개가 짖고 달은 누렇게 환하다. 그것은 책상 앞에 있다. 그것은 반복하고 그것은 조금 옆으로 벗어난다. 그것은 그것의 그것을 한다. 그것처럼. -「그것」 전문

의미의 부재를 확인하게 하는 시, 구체적 대상을 지워버린 시. 이런 시의 마지막에서 결국 의미도 실체도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이 드러나면, 그곳에서 마주하게 되는 것은 허무와 우울이다. 문학평론가 송종원이 시집의 해설에서, 이준규의 시에서 “자신의 욕망을 마음껏 펼치기도 전에 그것의 불가능성을 먼저 의식하는 사람이 떠오른다”고 언급한 것도 이러한 연유에서가 아닐까. 그러면서 그는 덧붙인다. “이준규에게 우울은 절대 극복의 대상이 아니다. 그는 극복의 허위를 아는 자이고, 감각과 균열을 일으키면서까지 의미를 부여하는 언어의 기능이 문제적임을 아는 자이다”라고.

구체적 대상은 없지만, 그렇기에 ‘그것’이라는 묘한 거리감과 애매모호함, 시공을 넘나드는 탄력성은 우울의 자장 안에 놓인 시인의 감각을 자극한다. 그리고 이러한 화학작용은 언어와 세계에 내재한 ‘그것’들의 감각과 사유로 확장된다. 바로 여기에 이준규 시를 읽는 즐거움이 있다. 어떤 공백처럼 모든 존재에 내재한 공간이 되는 ‘그것’에 기대어 단어와 사물 속에 우울하게 흩어져 있는 시인의 감각을 그러모아내는 과정에서 어떤 아름다운 이미지들이 반짝이기 때문이다.

“이준규의 시는 말을 늘어놓고 계속 덧붙여가며, 명명과 확정, 의미 부여의 가능성을 한없이 지연시키는, 덧셈의 시”라고 역설한 이는 문학평론가 조재룡이다. 부재를 증명하기 위해 덧붙여지는 시. 비어 있음을 말하기 위해 채워지는 시. 하여 우울을 담고 있을 수밖에 없지만, 감각과 사유의 확장 속에서 반짝이는 아름다운 이미지들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그의 시이다. 기이한 문법으로 낯선 시세계를 담아내고 있는 그의 시가 진정한 시의 모습이 아닌가, 느끼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자 소개

저자 - 이준규

1970년 경기도 수원에서 태어나 2000년 『문학과사회』 여름호에 「자폐」 외 3편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시집으로 『흑백』 『토마토가 익어가는 계절』 『삼척』 『네모』가 있다. 제6회 동료들이 뽑은 올해의 젊은 시인상, 제12회 박인환문학상을 수상했다.

목차

시인의 말

너무
관념
나는
나는
겨울

나는 너의 일곱 시다
나는
나는 언덕을 오르는 나였다
그것
너는 나다
너는 조금 읽는다
너는 비스듬하다
겨울

모자
그는
그는
같다
있다

그것
그것
붉다
둥글다
그것을
바깥
관념
같다

생일
한 여자
어떤

바나나
딸기
하얀
스칸디나비아
보았다
허기
우울
우울
은행나무 잎은 흔들리고
오류
오늘
없다
겨울
흐릿하다
비 오는 날
무극
2013

아이
아이
단순

해설 언어의 운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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