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리디 접속이 원활하지 않습니다.
강제 새로 고침(Ctrl + F5)이나 브라우저 캐시 삭제를 진행해주세요.
계속해서 문제가 발생한다면 리디 접속 테스트를 통해 원인을 파악하고 대응 방법을 안내드리겠습니다.
테스트 페이지로 이동하기

도산 안창호 상세페이지

소설 한국소설 ,   소설 국내 역사소설

도산 안창호

흥사단 창립 100주년 기념
소장종이책 정가12,000
전자책 정가40%7,200
판매가7,200
도산 안창호 표지 이미지

도산 안창호작품 소개

<도산 안창호> 민족의 자존심을 일깨운 지도자 ‘도산 안창호’의 진면목을 발견할 수 있는 작품!
당대 최고의 문인 이광수가 가장 심혈을 기울여 쓴 <도산 안창호>

흥사단 창립 100주년을 맞아 새롭게 출간된 <도산 안창호>는 해방 직후 ‘안도산선생기념사업회’가 당대 최고의 문인 춘원 이광수에게 집필을 의뢰하여 씌어진 작품이다.
이광수와 안창호의 첫만남은 1905년 일본 동경에서였다. 이광수는 일진회의 유학생으로 뽑혀 동경에서 수학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동경의 한 연설회장에서 안창호의 연설을 듣게 된다. 그리고 안창호의 확고한 민족관과 늠름한 모습에 매료되고 만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이광수는 조선 청년독립단에 가입하게 되고 독립선언서를 기초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그 일로 일본 경찰의 감시를 받게 되어 중국 상해로 탈출하는데 그곳에서 다시 안창호를 만나 안창호를 보좌하며 임시정부 일에 참가하게 되고 안창호가 만든 <독립신문>의 사장 겸 주필이 되어 애국적, 계몽적 이념을 담은 많은 글들을 쓰게 된다. 그리고 1937년 안창호와 이광수는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일본 경찰에 잡히게 된다. 그 일로 안창호는 감옥에서 병을 얻어 결국 독립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만다.
광복 후 이광수는 친일단체인 조선문인협회 회장직을 맡았던 일로 반민법에 의거 수감되었다가 병보석으로 풀려나게 된다. 그리고 ‘안도산선생기념사업회’의 제안을 받아 <도산 안창호>를 집필하게 된다.
안창호를 가장 가까이서 보좌했으며 지도자와 동지로서, 존경하는 스승과 제자로서 많은 활동을 같이 했기에 그의 사상과 철학에 대하여 가장 잘 알고 있었던 이광수는 심혈을 기울여 <도산 안창호>를 집필하게 된다.

이 책은 1부와 2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1부 ‘투쟁 생애’편에서는 안창호의 소년 시대부터 미주 유학시대, 신민회 시대, 망명, 미주 활동시대, 상해시대, 피수(被囚) 순국시대까지 그의 발자취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2부 ‘국민 훈련’편에서는 도산의 뛰어난 인간성과 깊은 사상을 자아 혁신, 송태 산장, 홍사단, 동지애, 이상촌 계획, 상애(相愛)의 세계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성실과 수양과 사랑으로 일관한 국민교육자이며 민족의 독립을 위해 생애를 바친 안창호의 삶은 우리 민족의 진로를 밝혀준 뛰어난 사상가로서 평가받고 있다.
<도산 안창호>는 읽는 이로 하여금 인격수양은 물론 생활지도서로서 깊은 감동과 고품격의 교훈을 안겨 줄 것이다.

책속으로

1937년 그가 동우회 사건으로 잡혀서 검사정에 섰을 때에 검사가,
“너는 민족운동을 그만둘 생각은 없는가?”
하는 질문에 대하여 도산은,
“그만둘 수 없다. 나는 평생에 밥을 먹는 것도 민족을 위하여서요, 잠을 자는 것도 민족을 위하여서다. 내가 숨을 쉬는 동안 나는 민족운동을 하는 사람이다.”
라고 답변하였다. 도산의 이 답변은 결코 꾸민 것도 아니요, 뽐낸 것도 아니다. 도산은 적 앞에서라도 침묵은 할지언정 거짓말은 말라는 주의자요, 과장도 거짓이라는 주의자다. 도산은 이른바 임기응변의 권모술수를 미워하고 능히 행치 못하는 사람이다.

도산의 민족운동은 민족에 대한 연애요, 국토에 대한 연애였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개인적인 우정이 그러하였던 것처럼 결코 맹목적인 열정은 아니었다.
그는 우리 민족의 장처를 잘 아는 동시에 단처도 잘 알았다.
그가 민족의 장처를 말할 때에는 제 자랑과 같이 기뻐하였고,
단처를 말할 때에는 제 살을 깎는 듯이 슬퍼하였다.
그러나 그는 단처를 숨겨서 민중에게 영합하려 아니하였다.
개인에게 아첨하는 것이 개인을 해하는 것인 이상으로
민중에게 아첨하는 것은 더 무서운 해독을 주는 것이니,
진실로 민족을 사랑하는 애국자라면
차라리 그들의 단처를 철결하여 분노의 돌팔매를 맞을 것이다.


저자 프로필

이광수

  • 국적 대한민국
  • 출생-사망 1892년 3월 4일 - 1950년 10월 25일
  • 학력 1919년 와세다대학교 철학
    1910년 메이지가쿠인대학교 중학
  • 경력 1939년 조선문인협회 회장
    1933년 조선일보 부사장
    동아일보 편집국 국장
  • 데뷔 1917년 매일신보 소설 '무정'

2017.05.24.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소개

저자 - 이광수
1892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났다. 1905년 천도교와 관련된 일진회의 유학생으로 도일하여 신학문을 접하고 1907년 메이지 학원 중학 3학년에 편입하여 톨스토이의 작품에 심취하였다.
1910년 메이지 학원을 졸업한 뒤 귀국하여 오산학교 교원으로 일했다. 1914년에 러시아로 가서 <대한인정교보> 주필로 일하다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자 귀국하였다.
1915년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 대학 예가에 편입한 뒤 철학과에 재학중이던 1917년 <무정>을 발표하고 이어 <소년의 비애>, <어린 벗에게> 등을 발표하여 근대 소설을 개척하였다.
1919년 ‘조선청년독립선언서’를 기초하고 상해로 탈출하여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의 주간으로 활동하였다. 1921년 귀국하여 체포되었다가 불기소 석방된 후 1924년 <영대> 동인이 되었다. 1926년 수양동우회를 발족하고 기관지 <동광>을 창간하였으며 동아일보 편집국장에 취임했다가 다음 해에 사임하였다.
1932년 장편 <흙>을 발표했고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수감되었다가 병보석으로 풀려났다.
8.15해방 이후 반민족행위처벌법으로 수감되었다가 병보석으로 출감한 후, 한국전쟁 중 납북되어 1950년 폐결핵으로 사망했다.
작품으로 <이순신>, <흙>, <단종애사>, <마의태자>, <유정>, <사랑> 등이 있다.

목차

제1부 투쟁. 생애
제1장 소년시대-쾌재정의 웅변
제2장 미주 유학시대-교포의 조직과 훈련
제3장 신민회 시대-한말 풍운과 민족운동
제4장 망명-실국 전후의 극적 사안
제5장 미주 활동시대-살아 있는 태극기와 애국가
제6장 상해시대-임시정부에서 대독립당까지
제7장 피수순국 시대-민족정신의 수호자

제2부 국민훈련
제1장 자아 혁신
제2장 송태 산장
제3장 흥사단
제4장 동지애
제5장 이상촌 계획
제6장 상애의 세계

부록
안창호의 글과 명연설문
안창호의 생애와 연보


리뷰

구매자 별점

1.0

점수비율
  • 5
  • 4
  • 3
  • 2
  • 1

1명이 평가함

리뷰 작성 영역

이 책을 평가해주세요!

내가 남긴 별점 0.0

별로예요

그저 그래요

보통이에요

좋아요

최고예요

별점 취소

구매자 표시 기준은 무엇인가요?

'구매자' 표시는 리디에서 유료도서 결제 후 다운로드 하시거나 리디셀렉트 도서를 다운로드하신 경우에만 표시됩니다.

무료 도서 (프로모션 등으로 무료로 전환된 도서 포함)
'구매자'로 표시되지 않습니다.
시리즈 도서 내 무료 도서
'구매자’로 표시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같은 시리즈의 유료 도서를 결제한 뒤 리뷰를 수정하거나 재등록하면 '구매자'로 표시됩니다.
영구 삭제
도서를 영구 삭제해도 ‘구매자’ 표시는 남아있습니다.
결제 취소
‘구매자’ 표시가 자동으로 사라집니다.

다른 출판사의 같은 작품












이 책과 함께 구매한 책


이 책과 함께 둘러본 책



본문 끝 최상단으로 돌아가기

spinner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