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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2 상세페이지



책 소개

<논어 2> 공자 사상의 집약이라고 할 수 있는 『논어』를 쉽고 자연스러운 한글로 풀어 옮기면서, 각 편, 장, 절을 숫자 기호로 표시하고, 각 절에 해당하는 주자의 『논어집주』를 함께 실어 그 의미를 깊고 풍부히 하였다.

유교의 이론을 집대성한 공자는 세계 4대 성인의 한 사람으로, 그의 어록이 담긴 『논어』는 동아시아 사회에서 가장 널리 읽힌 책이다. 『논어』가 동양 문화와 사상에 끼친 영향력은 매우 지대하여, 동아시아 사회의 최고의 고전이라 할 만하다. 『논어』는 공자가 세상을 떠난 후 제자들이 공자의 말씀을 기록한 책으로 알려져 있다. 형식상 전 20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주로 공자의 말과 제자들과의 문답, 공자와 당시 사람들과의 대화, 제자들의 말, 제자들끼리의 대화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논어』는 한 사람이 기술한 책이 아니라 여러 명이 토론하고 대화한 것을 기록한 책이지만 공자 사상이 가장 잘 집약되어 있는 글이다.


출판사 서평

인(仁)이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요,
지혜란 사람을 아는 것이다.
어진 사람은 인(仁)을 편안하게 여기고,
지혜로운 사람은 인을 이롭게 여긴다.

펭귄클래식 판 『논어』

각 편-장-절을 숫자 기호로 표시하여, 독자의 접근성을 용이하게 하였다.
새롭고 쉬운 한글 번역을 통해 누구나 쉽게 원문을 이해할 수 있게 했다.
각 절마다 주자의 『논어집주』를 붙여 함께 해석해 줌으로써, 자세한 풀이가 가능하게 했다.
소장 철학자의 상세한 『작품해설』을 통해, 공자의 생애와 사상을 일목요연하게 짚어볼 수 있게 했다.

펭귄클래식에서 출간된 『논어』(전 2권)는 공자 사상의 집약이라고 할 수 있는 『논어』를 쉽고 자연스러운 한글로 풀어 옮기면서, 각 편, 장, 절을 숫자 기호로 표시하고, 각 절에 해당하는 주자의 『논어집주』를 함께 실어 그 의미를 깊고 풍부히 하였다. 1권의 「논어서설」은 주자의 해설이다.
또한, 2권에 실린 옮긴이의 「작품해설」을 통해 공자의 생애를 자세히 되짚어주고, 공자 사상의 전반적인 개괄을 통해 공자의 도덕철학자적?교육자적 면모를 이해할 수 있게 했다.
세계 4대 성인 ‘공자’의 말씀이 담긴 『논어』

유교의 이론을 집대성한 공자는 세계 4대 성인의 한 사람으로, 그의 어록이 담긴 『논어』는 동아시아 사회에서 가장 널리 읽힌 책이다. 『논어』가 동양 문화와 사상에 끼친 영향력은 매우 지대하여, 동아시아 사회의 최고의 고전이라 할 만하다.
『논어』는 공자가 세상을 떠난 후 제자들이 공자의 말씀을 기록한 책으로 알려져 있다. 형식상 전 20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주로 공자의 말과 제자들과의 문답, 공자와 당시 사람들과의 대화, 제자들의 말, 제자들끼리의 대화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논어』는 한 사람이 기술한 책이 아니라 여러 명이 토론하고 대화한 것을 기록한 책이지만 공자 사상이 가장 잘 집약되어 있는 글이다.

『논어』에 담긴 공자 사상

실천적 도덕철학과 인(仁)

공자는 인간의 도덕적 행위의 실천 원리를 「인(仁)」이라고 했다. 「인」은 어짊이나 덕, 사랑, 배려 등의 말로 해석될 수 있으나 그 포괄적 의미를 명시하기는 어렵다. 윤리적 측면에서 보자면 「인」이란 「타인을 배려하는 덕」이며, 모든 덕목을 포괄하는 보편적이고 목적적인 개념이다. 『논어』에 표현된 군자·인자·성인과 같은 표현은 실천을 통해서 도덕적으로 완성된 사람을 나타낸다. 따라서 공자 사상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실천적 도덕철학이라 할 수 있다.

정치철학 : 정명론과 덕치주의

공자가 주장하는 정명론은 ‘명분을 바로잡는다’라는 뜻으로,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우며, 부모는 부모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고 했다. 즉, 각자의 직분에 맞는 덕을 실현함으로써 질서가 바로잡힌다는 것이다. 또한, 공자는 근본적으로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덕으로 백성을 다스리고 교화해야 한다(덕치주의)고 주장했다. 그러나, 공자의 덕치주의는 당시 군주들에게 환영받지 못했다. 전쟁을 통해서 부국강병을 추구하는 군주들에게 공자의 덕치주의는 이상주의로 보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공자는 결국 그의 꿈을 실현하지 못하고 훗날을 기약하게 되었다.

학문관 및 교육사상: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않겠는가?”

공자는 학문에 대학 열망이 강렬하였고, 만세사표(萬世師表)라고 칭할 만큼 탁월한 교육자였다. 공자는 자신의 학문 목표를 인의 완성, 인의 실현에 두었다. 그에게는 일정한 스승이 없었지만 누구에게나 배움의 자세를 잃지 않았고, 심지어 제자들에게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허물을 고치는 불치하문(不恥下問)의 정신을 가진 인물이었다. 공자의 학문에 대한 열정은 제자 교육으로 연결되어, 그의 제자가 삼천 명이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이다. 이 가운데서도 육예(六藝)에 정통한 제자가 일흔 명이었다는 기록을 보아 제자 교육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것 같다.
공자는 탁월한 교육자로서 몇 가지의 교육 방법을 사용하여 제자들을 교육했다. 제자들을 각자의 특징에 알맞게 가르쳤고, 배우기를 원하는 제자에게는 신분의 귀천을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배움의 기회를 베풀었다.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교육을 중시했으며, 교육자의 모범을 통한 교육을 했다. 특히 ??논어?? 전 편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공자가 매우 인간적인 교육을 실시했다는 점이다. 인간적 교육의 초점은 교육자와 피교육자 사이에 발생하는 교감을 통해서 인격적 감화를 준다는 데 있다.


저자 프로필


저자 소개

공자(孔子)는 춘추시대 말기인 B.C.551년, 현재 산동성(山東省) 곡부(曲阜) 지방인 노(魯)나라의 작은 마을인 추읍( 邑)에서 태어났다. 이 때는 인도의 석가모니가 태어난지 10여년 뒤이고, 소크라테스가 태어나기 얼마 전 시기에 해당한다. 공자는 은(殷)나라 왕족의 몰락한 후예의 집안에서 출생했다고 전해지는데, 그의 아버지는 급무사였던 숙량흘(叔梁紇)이었고,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훨씬 나이가 어린 안징재(顔徵在)였다. 아버지는 제(齊)나라와의 싸움에서 군공(軍功)을 세운 부장(部將)이었다. 공자의 어머니 안징재는 이구산(尼丘山)에 남몰래 치성을 드려 공자를 낳았고 공자의 머리가 움푹 들어갔기 때문에 공자의 이름을 구(丘), 자를 중니()라고 하였다고 한다. 공자가 태어날 때 그의 집안은 불우하였고 세 살 때에 아버지를 여의었기 때문에 매우 가난하고 외롭게 자랐다. 아버지가 돌아갔을 때 장례식마저 제대로 치르지 못할 정도였던 모양이다. 당시 공자의 집안은 몰락하여 겨우 벼슬을 할 수 있는 계급인 사(士)에 속해 있었다. 사계급은 위로는 귀족과 대부, 아래로는 서민의 중간에 있어서 벼슬살이를 하지 않으면 매우 가난한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는... 공자(孔子)는 춘추시대 말기인 B.C.551년, 현재 산동성(山東省) 곡부(曲阜) 지방인 노(魯)나라의 작은 마을인 추읍( 邑)에서 태어났다. 이 때는 인도의 석가모니가 태어난지 10여년 뒤이고, 소크라테스가 태어나기 얼마 전 시기에 해당한다. 공자는 은(殷)나라 왕족의 몰락한 후예의 집안에서 출생했다고 전해지는데, 그의 아버지는 급무사였던 숙량흘(叔梁紇)이었고,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훨씬 나이가 어린 안징재(顔徵在)였다. 아버지는 제(齊)나라와의 싸움에서 군공(軍功)을 세운 부장(部將)이었다. 공자의 어머니 안징재는 이구산(尼丘山)에 남몰래 치성을 드려 공자를 낳았고 공자의 머리가 움푹 들어갔기 때문에 공자의 이름을 구(丘), 자를 중니()라고 하였다고 한다. 공자가 태어날 때 그의 집안은 불우하였고 세 살 때에 아버지를 여의었기 때문에 매우 가난하고 외롭게 자랐다. 아버지가 돌아갔을 때 장례식마저 제대로 치르지 못할 정도였던 모양이다. 당시 공자의 집안은 몰락하여 겨우 벼슬을 할 수 있는 계급인 사(士)에 속해 있었다. 사계급은 위로는 귀족과 대부, 아래로는 서민의 중간에 있어서 벼슬살이를 하지 않으면 매우 가난한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는 존재였다.

공자 나이 24살 되던 기원전 528년에 공자의 어머니는 40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를 방(防) 땅에 아버지와 합장하여 묻고 삼년상을 지낸 뒤 또 2, 3년 지나서야 다시 배우고 가르치는 일을 계속했다. 공자가 꿈꾸던 세상은 예(禮)와 덕(德)과 문(文)이 지배하는 사회였다. 그래서 공자는 그러한 이상을 실현한 주(周)나라를 동경하였고, 그 반대로 당시의 권세 있는 대부(大夫)들이 제후(諸侯)들을 무시하고 권력을 농단하던 사태를 못마땅하게 생각하였다. 노나라의 창시자로 주왕조(周王朝) 건국의 공신이기도 했던 주공(周公)을 흠모하여 그 전통적 문화습득에 노력하게 된 공자가 정치에 관여하게 된 것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공자가 살던 당시 춘추시대에는 국가간이나 나라안이나 간에 약육강식의 힘의 논리가 횡행하여 온갖 명목의 전쟁과 난리가 연이어 일어나 민중들은 피폐할 대로 피폐해지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인(仁)의 실천, 곧 백성을 사랑하는 것을 자기의 임무로 생각했던 공자로서는 그러한 현실을 목도하고서도 책이나 읽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만매달려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정치에 관여하게 되었다. 당시의 정치가들에게 자기의 덕치주의(德治主義)를 설파하기 위해 수레를 타고 여러 나라를 주유하기도 하였고, 직접 벼슬을 맡아서 자기의 이상을 실현하려고 노력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현실정치의 벽은 그의 꿈을 실현하기엔 너무나 두터웠고, 많은 좌절과 오해를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의 합리적인 도덕정치철학은 시대를 넘어 후대에 계승되어 한(漢)나라에서 국정이념으로 채택된 이래 동양의 역사상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이렇게 위대한 교육자와 뛰어난 정치철학자로서의 일생을 보낸 공자도 인간적으로는 매우 불행하였다. 앞에서 언급한 것 같이 어려서 어버이를 여의었을 뿐만 아니라 자기의 아들 리(鯉)와 가장 아끼던 제자 안연(顔淵)을 먼저 보내는 슬픔을 겪었으며, 여러 나라를 떠도는 가운데 양식이 떨어지기도 하고 테러의 위협을 받기도 하였다. 그래서 노년에는 이런 모든 것을 잊고 『시경(詩經)』, 『서경(書經)』 , 『춘추(春秋)』같은 책을 엮고 『역경(易經)』에 재미를 붙여 책을 묶은 끈이 세 번이나 떨어질 정도로 공부하는 한편, 고향의 이상이 큰 젊은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다가 기원전 479년 7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공자는 위정자는 덕이 있어야 하며 도덕과 예의에 의한 교화가 가장 이상적인 지배방법이라고 생각하였고, 그 사상의 중심을 인(仁)에 두었다. 최고의 덕을 인으로 본 공자는, 인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정의하였다. 그의 대표작품인 『논어』는 유가(儒家)의 성전(聖典)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공자의 사상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책이다. 사서(四書)의 하나로, 중국 최초의 어록(語錄)이기도 하다. 공자의 혼잣말을 기록해 놓은 것과 제자의 물음에 공자가 대답한 것, 제자들끼리 나눈 이야기, 당대의 정치가들이나 평범한 마을사람들과 나눈 이야기 등 다양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 책의 제목이 『논어』가 되었다고 한다.

목차

제11편 선진
제12편 안연
제13편 자로
제14편 헌문
제15편 위령공
제16편 계씨
제17편 양화
제18편 미자
제19편 자장
제20편 요왈

『논어집주』에 나오는 주석가
작품해설 / 논어와 공자의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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