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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안에 담은 것들 상세페이지

에세이/시 에세이

산책 안에 담은 것들

걷다 떠오르다 새기다
소장종이책 정가13,800
전자책 정가28%9,960
판매가9,960

산책 안에 담은 것들작품 소개

<산책 안에 담은 것들> 2000년대 한국 시의 혁신을 일으킨 젊은 시인들의 대표 주자!
온기와 서늘함을 넘나드는 자기 화법을 지닌 스타일리스트!
시인 이원의 첫 산문집!

평생 ‘산책’에 매혹되어온 시인 이원의 비밀스런 내면의 풍경들!
산책이 가지고 있는 이상한 힘과 신비로운 자장에 대해 말하다!
“산책은 한가로운 시간인 동시에 뜨겁고 깊은 시간이다”

차갑고 이지적인 시어로 한국의 모더니즘 시의 계보를 이어온 시인 이원의 첫 산문집이 출간되었다. 1992년 『세계의 문학』으로 데뷔 후 총 4권의 시집을 내며 한국 시단에서 가장 성실하게 그리고 날을 세운 채 작품 활동을 하는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는 그는 한국 현대시의 풍요를 몸소 증명하며 꾸준히 근원적인 차원에서의 존재론적 질문을 던져왔다. 그는 2001년 「나는 클릭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깜짝 놀랄 만한 작품을 내놓아 문학평론가 이광호로부터 ‘우리 시대 문학의 주목할 만한 현대성-현재성의 일부’라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문학평론가 유성호, 홍용희, 함돈균으로부터 ‘일관된 모더니스트이자 자기 화법을 지닌 스타일리스트’로 꾸준히 자기 세계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원 시인은 데뷔 후 지금까지 꾸준한 작품 활동을 통해 자신만의 디지털적 감수성과 미적 감각을 드러내며 한국 문단의 단단한 줄기가 되어가고 있다.
이 책은 데뷔 후 25년간 시 쓰기에만 전념했던 이원 시인의 첫 번째 산문집으로, 문학 계간지 『한국문학』에 2년간 연재한 글들과 새로 쓴 글들을 모은 것이다. 그동안 시인 이원의 문장에 매료되었던 팬들에게는 의미 있는 선물이 될 것이다. 단연코 이 책은 그간의 창작 활동을 통해 더욱 세밀하게 다듬어진 ‘아름다운 문장’들의 향연이라고 할 만하다. 어느 쪽을 펼쳐보아도 한두 줄쯤은 밑줄을 긋고 가슴에 새기고 싶은 문장들이 있어 일반 독자들은 물론이거니와 전문 작가들에게도 풍부한 상상력을 제공해줄 글감으로 가득하다.
그런데, 시인 이원은 하필이면 왜 ‘산책’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을까? 그는 인간이라는 생물로 지상에 와서, 내내 매혹되어 있는 것이 ‘산책’이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산책하지 않았다면 더 훼손되었을 것이라고 말하며, 엉킬 때, 가벼워지고 싶을 때, 최종의 결심은 ‘산책하자’였다고 말한다. 그에게 산책은 자신을 간명하게 만들어주고 삶 속에 빛이 사라지지 않게 해주는 의식이다. 일상에서 일상 너머로 걸어봤다가 다시 일상으로 되돌아오는 산책은 매일 떠나는 여행이자 인간에게 내려진 축복이다. 그리고 산책은 어느 순간에도 나를 돌보는 손길을 거두지 않는 엄마처럼, 아픈 희망이다. 시인 이원은 누군가가 산책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무조건 걷기 시작하라는 싱거운 대답을 내놓을 것이라고 말하며, 산책은 지도를 들고 길을 잃어버리는 재미가 있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삶과 산책은 닮은꼴이라고도 한다. 한마디로 이 책은 ‘한 시인의 산책의 역사’로, 독자들은 우리 시대 가장 주목할 만한 시인의 마음속 풍경과 눈 속 풍경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끝내 없어지지 않을 내 안의 원형을 만나는 시간, 산책!
“산책은 마음속 풍경을 불러오는 주문과 같은 것”
산책은 우리를 느리게도 빠르게도 걷게 하며, 보이지 않던 것을 골똘히 들여다보게도 만들며, 느닷없는 곳에서 아무런 이유도 없이 한동안 머무르게도 만든다. 한순간에 오래된 시간을 불러오기도 하고, 끝내 오지 않을 시간과도 만나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산책은 한가로운 시간인 동시에 뜨겁고 깊은 시간이다. 이런 이유로 시인 이원은 산책을 좋아하고 산책을 하면 용기가 난다고 말한다. 그리고 산책을 통해 모든 것을 제거해도 끝내 없어지지 않는 ‘훼손되지 않은 원형’을 만나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다가갈수록 생각할수록 점점 더 모르게 된다. 그렇기에 시인 이원은 길을, 기억을, 당신을, 몸을, 언어를 걷고 또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또한 시인 이원은 산책을 통해 기억을 걷는다. 열두 살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모셔져 있는 상여 옆에서 소복을 입고 통곡하던 때를, 스무 살 무렵 명동의 이른 아침과 늦은 밤을 걸었던 때를, 끝나지 않을 긴 생처럼 병원의 복도에 발을 질질 끌던 때를, 반야심경을 외웠던 때를, 울어도 울어도 눈물이 계속 나오던 때를…….
그리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나게 한 사람. 자신의 근원으로서의 엄마를 떠올린다. 세상에 와서 제일 많이 발음한 단어, 엄마. 부르면 즉각적으로 나타나는 사람, “오늘도 힘들어서 어쩌니” 하시며 나보다 먼저 나의 하루를 살아보는 사람, 엄마라고 불리는 사람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종로구 통인동 154-10번지에 살았던 시인 이상, 좌탈입망(坐脫立亡)으로 열반에 드신 한암스님, 재작년에 우리나라를 방문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을 떠올린다. 이렇듯 시인 이원은 산책을 하면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그리고 그렇게 사람 속을 걸으며 그 사람을 이해한다. 그는 이렇게 함으로써 ‘사랑’의 다른 말인 ‘사람’을 비로소 이해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홍대, 한강, 명동, 시장과 묘지, 골목, 동네, 갤러리…….
수많은 사람들의 숨결과 문화가 켜켜이 쌓인 길과의 교감!
그렇다면 시인 이원은 어떤 길을 걸으며 이 책을 완성했을까? 그의 첫 번째 길은 자신의 ‘나와바리’라고 말하는 홍대다. 이 선언처럼 그는 집에서 걸어서 홍대까지 가는 길을 열 가지 정도 알고 있다고 말한다. 천천히 가고 싶을 때 걷는 길, 가벼워지고 싶을 때 걷는 길 등 기분에 따라 여러 가지 길로 걸어갈 수 있다고 말이다. 홍대의 장점은 어느 시간에 가도 즉각 ‘해방!’된다는 것이다. 홍대 앞 골목들은 골목마다 걷는 속도를 다 다르게 하는 이상한 힘을 가지고 있다. 현실을 비현실로, 비현실을 현실로 만들어주는 이상한 중력을 가지고 있다. 정형화된 틀 속에 갇히지 않은,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것들이 뒤섞인, ‘삐급’들의 거리, 그곳엔 새로운 문화가 창조되는 용광로가 있다.
두 번째로 시인 이원은 골목을 걷는다. 숨어들기 좋고 숨어 있기 좋은 곳, 최소한의 통로이자 숨통이 되는 골목의 중요성을 말한다. 그리고 재개발이라는 명분과 함께 골목이 사라졌을 때를 슬퍼하고 요즘에 싹트고 있는 골목의 부활을 기뻐한다. 골목이 생겼다는 것은 작은 것들이 생겨났다는 뜻, 다시 말해 독특한 단 하나의 것들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독립 책방, 피규어 가게, 집밥 식당 등이 속속 생겨나는 골목에서 진정한 문화를 만난다.
세 번째로 시인 이원은 한강변을 걷는다. 그는 한강변을 걸으면서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유연한 힘이 생겼다고 고백한다. 나에게서 쓸 데 없는 자존심을 걷어내주고, 초라하다는 자의식도 걷어내주고, 부풀려진 욕망도 걷어내주고, 그냥 ‘있다’는 뜨거운 자존감만의 몸이 생겨나게 해주었다고 말한다. 네 번째로 시인 이원은 동네를 걷는다. 그리고 슬리퍼를 신고 트레이닝복을 입고 헝클어진 머리로 어슬렁거리는 동선이 생긴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말한다. 그렇게 동네를 거닐면서 나만의 지도를 만들어가는 재미를 공개한다.
그다음 시인 이원의 산책은 자신의 대학 시절의 추억이 가득 담긴 명동으로 이어지고, 슬프고 힘들 때 찾는다는 시장과 묘지로 이어진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산책하고, 엄마를 산책하고, 시인 이상을 산책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떤 의미에서 자신을 자주 울게 만드는’ 갤러리를 산책한다.
시인 이원은 이 책을 통해 우리들의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공간들을 산책하며 철학적 인문학적 사유를 펼친다. 독자들은 시인 이원의 발걸음을 따라, 시인의 손끝에서 선택된 한 글자 한 글자를 따라, 그와 함께 산책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시인 이원의 말처럼 나를 찾아 떠나는 가장 쉽고도 깊은 여행이 된다. 그렇게 시인 이원은 자신만의 호흡과 숨결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특별한 산책길로 독자들을 초대하고 있다.

추천사
우리는 누구나 아프지만 그 아픔을 표시내지 않을 권리가 있고, 그로 인해 성숙한 자격을 가질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산책은 압도적이면서 창조적인 생활방식이다. 스스로를 타이르고 덜 이기적인 곳으로 이끌기에는 그만한 것이 없다. 이 책은 이원 시인의 세련된 산책의 역사로 빈곤한 도시를 어루만지고 막막한 시대의 장막들을 위무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느린 보폭을 통해 산책은 들뜬 몸을 말리고 푸석해진 마음을 적시는 간절한 의식이 된다.
-이병률(시인)


출판사 서평

본문 발췌
사이는 사랑이다. 채워도 채워도 비어 있는 것, 주어도 주어도 모자라는 것이 사랑이다. 채우지 않으면 비어 있는 곳도 없으니, 주지 않으면 모자라는 것도 없으니 채우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탄생하는 공간. 주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결핍되기 시작하는 시간, 사랑. 사랑은 나를 사라지게 한다. 사랑은 내가 사라질 때만 지속된다. 당신의 손이 먼저이고 당신의 안색이 먼저이고 나는 점점 사라진다. 내가 사라질 때만 나타나는, 내가 부재할 때만 계속되는 순간. 당신을 통해서만 내가 사는 것. 사랑의 방향, 그리고 시간의 방향.
-1.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를 ‘산책’

문화가 있는 거리는 은폐된다. 은폐된 곳에서 은폐의 힘으로 개방된다. 이 역설의 논리가 문화의 힘이다. 숨어 빵을 굽고 있는 작은 공간으로 사람들이 찾아온다. 서로 어깨가 닿을 듯한 거리에서 그러나 어깨가 닿지 않고 소곤거린다. 문화에 대한 또는 문화라는 최소한의 예의.
‘문화 게릴라’라는 표현이 가능한 것은, 숨어 있는 동시에 언제든 뒤집을 수 있는 전복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이 문화이기 때문.
-2. 장난감의 시간, 보물의 시간

골목이 다시 생겨나고 있다. 내가 사랑하는 골목의 목록을 다시 만들어갈 수 있다.
골목은 사이에 난 길이다. 마주 보는 이쪽과 저쪽이 있다. 가게끼리 마주 보며 있기도 하고 벽과 집이 마주 보고 있기도 하다. 벽과 벽이 마주 보고 있기도 하다.
골목에서는 멈춘다. 당기는 안쪽이 있기 때문이다. 골목에는 냄새가 배어 있다. 빠져나갈 것은 다 빠져나가도 남는 최종의 것들. 그것들이 섞이며 만드는 것을 문화라고 부른다.
골목. 숨어들기 좋은 곳. 숨어 있기 좋은 곳. 최소한의 통로. 숨통.
-3. 골목의 부활-대강(大綱)에서 상세(詳細)로

내가 걷는 한강에는 다 있다. 강의 물, 물의 결, 물의 결 속, 물의 결 위 공기와 햇빛과 어둠, 다리들, 나팔꽃들, 붉고 찢어진 발가락을 가진 비둘기들. 찢어진 발가락을 신발 속에 감춘 사람들, 걷고 달리고 자전거를 타고 롤러블레이드를 타고, 애완견을 끌고, 운동을 하고, 낚시를 하고, 졸고, 눕고, 앉아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 아이, 엄마, 여자, 연인, 친구, 남자, 수녀, 벤치, 운동기구, 절두산, 강 건너편으로 국회의사당, 순복음교회, 방송국, 자전거, 풀밭, 바람의 방향에서 바람의 방향으로 휘어지는 나무들, 내 안으로 흘러드는 가장 먼 강물.
-4. 고요한, 더 고요한, 가장 고요한

우리 동네가 된다는 것. 슬리퍼를 신고 트레이닝복을 입고 헝클어진 머리로 어슬렁거리는 동선이 생긴다는 것. 잘 모르는 가게 주인과도 “안녕하세요” 인사를 나눌 수 있다는 것. 뒷골목에 있는 오래된 빵집과 오래된 떡집을 비교할 수 있다는 것. 가장 맛있는 떡과 빵을 고를 수 있다는 것. 나만의 지도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 지도에 생겨나고 사라지는 곳을 표시할 수 있다는 것. 길을 자꾸자꾸 발견하게 된다는 것. 알게 되는 골목만큼 잠시 멈춤, 즉 간단(間斷)의 시간도 늘어간다는 것.
-5. 나만의 지도를 만들어가는 곳, 우리 동네

그러나 내가 명동을 자주 걷는 것은 ‘풍성한 시간’이어서만이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내게 명동은 서울예전(물론 지금은 서울예대라고 부르지만)과 동의어이기 때문이다. 학교에 다니면서 시라는 것을 쓰게 됐는데, 시를 쓰는 순간에만 시간을 만나는, 그러니까 나에게 시간이 생기기 시작했다. 뜨거운, 숨 막히는 것이 시간이라는 것을, 슬프거나 고통스러워서가 아니라, 충만해서 뜨겁고 숨 막히는 시간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6. 기억, 고도 삼천 피트의 얼굴

소란스러운 시장의 한 구석에서 고요를 만나게 될 때, 고요한 묘지의 한구석에서 고요 안의 고요를 만나게 될 때, 그 고요는 둘 다 잘 스며 있다. 묘지에서 만나는 고요, 시장에서 만나는 시장의 고요. 둘 다 잘 삭아 있다. 시장에 스미는 고요와 묘지에 스미는 고요는 닮아 있다.
묘지에서, 시장에서, 고요를 만날 때, 그것이 고요의 맨 얼굴 같다고 생각된다.
-7. 시장과 묘지, 거대한 심연

사람은 사람을 벗어날 수 없다. 그 스스로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 사이를 산책할 수 없다면 나 스스로를 산책할 수 없다. 그 스스로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사람을 초월하여, 사람이 된다. 사람은 사람을 초월할 때만이 사람을 이해하게 된다. 사람을 통해서만 사람 너머로 갈 수 있다. 그러므로 니체의 문장대로,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무엇”이다. 언제나, 어느 순간에나, 극복되어야 할 무엇이 사람이다.
우리는 무엇이기 때문에 지상의 시간인 사람이 된 것이 아니라 무엇도 아니기 때문에 시간이 된 것이다.
우리는 한없이 주저앉아서, 때로는 한없이 울면서 사람을 배워간다.
오늘도 사람 속을 걸으며 사람과 이별한다. 이별하며 사람을 이해한다.
-8. 사람 속은 내내 일렁이는 숲이에요
세상에 와서 제일 많이 발음한 단어. 나를 세상에 나타나게 한 장본인. 엄마와 나는 하나에서 분리된 둘. 하나가 품었던 하나. 큰 하나가 품었던 아주 작은 하나.
부르면 즉각적으로 나타나는 사람. 내 몸이 커진 만큼 자신은 쪼그라들어가는 사람. 오늘도 힘들어서 어쩌니, 나보다 먼저 나의 하루를 살아보는 사람. 내가 걸을 밤길에 마음이 늘 마중 나와 있는 사람. 엄마라고 불리는 사람.
세상에 나와 첫 산책은 엄마와 했을 것이다. 나보다 몇 배는 키가 큰 엄마의 손을 잡고 아장아장 걸었을 것이다.
-9. 세상의 첫 산책은 엄마와 했을 것이다

앞으로도 문득문득 월정사 천년의 숲길을 걸을 것이다. 전나무 숲길로부터 한암스님의 좌탈입망 모습까지 걸을 것이다. 막막할 때, 나 또한 자연이라는 것을 잊어버렸을 때, 묵언에 가까워지고 싶을 때 이 길에 올 것이다. 모성이 깃든 전나무 숲길을 걸어볼 것이다. 걸으면서 달의 근원, 월정(月精), 그 빛의 근원을 가늠해보도록 애쓸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고요와 부딪친 내 내부의 소리를 들어볼 수 있으면 좋겠다. 느닷없이 몸속에서 절 한 채가 떠오르는 순간을 만나게도 되면 좋겠다.
-10. 스스로 사랑을 도둑맞지 말라

한 편의 시 안에서 같은 단어를 전혀 다르게 써서 언어의 ‘안과 겉’을 보여주는 힘. 유사한 문장만을 가지고 세계의 역전을 보여주는 힘. 모든 움직임은 ‘도저히’라는 정지 상태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언어로 증명하는 힘. 모든 것을 다 뚫고 들어가 끝내 남은 원형까지를 확인시키는 힘. 조사 하나로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론을 전복시키며 세계의 본질을 꿰뚫는 이 놀라운 아이러니라니!
-11. 상자, 거울, 골목, 건축무한육면각체

방을 쓰는 것이 아니라 방의 침묵을 쓰는 것.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쓰는 것, 그림이 내게 알려준 것. 갤러리에 가는 것. 그리지 않은 것을 보러 가는 것.
어느 그림 앞에 멈춰 섰던 순간, 가슴이 뛰었던 순간, 빛이 촤르르 내려오던 순간.
식목. 좋은 작품을 볼 때마다 문득문득 몸 안으로 이 말이 떠오른다.
-12. 침묵 속에서 한 시간이 지나갔다


저자 프로필

이원

  • 국적 대한민국
  • 출생 1968년
  • 학력 동국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 석사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학
  • 데뷔 1992년 세계의 문학 가을호 '시간과 비닐봉지'

2021.12.03.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소개

지은이
이원
이번 생(生)은 어린 시절 반복한 두 가지의 행위에서 비롯됐다고 믿고 있다. 하나. 집 근처 돌산에 가서 색색의 돌가루를 칸칸의 곤충채집상자에 넣고 들여다보던 시간. 둘. 노을을 잡아보자 친구들에게 신호를 보내며 산 너머로 뛰어가던 장면.
외따로 골똘하게. 신기하게. 함께 신나게. 무모하게. 내내 이런 감각을 좋아하고 이런 힘을 믿으며 몇 가지의 동선으로 살아간다. 시를 쓰고 서울예술대학교 문예학부, 문지문화원 사이 등에서 시창작 수업과 글쓰기 수업을 한다. 서로 곁의 기척이 되는 소중함을 알게 되어 <실천적 생각발명그룹 시민행성>에서 살 만한 세상을 향한 움직임을 만들어보려 애쓰고 있다.
1992년 『세계의 문학』으로 데뷔, 시인이 되었고, 시집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1996), 『야후!의 강물에 천 개의 달이 뜬다』(2001),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2007), 『불가능한 종이의 역사』(2012)를 출간했다. 현대시학 작품상(2002), 현대시 작품상(2005), 시작 작품상(2014), 작가가 뽑은 올해의 시(2014), 시로 여는 세상 작품상(2014)을 수상했다.
‘이번 생’이라는 표현을 떠올릴 때 한쪽은 밀물 같고 한쪽은 썰물 같다. 한쪽에는 눈물, 한쪽에는 환희다. 다른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다른 것이 들어 있어 다행이다. 겁먹지 말자. 다시 또 골똘하게, 신기하게, 신나게, 무모하게 걷자.

목차

차례

추천의 말
작가의 말
1.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를 ‘산책’
2. 장난감의 시간, 보물의 시간
3. 골목의 부활-대강(大綱)에서 상세(詳細)로
4. 고요한, 더 고요한, 가장 고요한
5. 나만의 지도를 만들어가는 곳, 우리 동네
6. 기억, 고도 삼천 피트의 얼굴
7. 시장과 묘지, 거대한 심연
8. 사람 속은 내내 일렁이는 숲이에요
9. 세상의 첫 산책은 엄마와 했을 것이다
10. 스스로 사랑을 도둑맞지 말라
11. 상자, 거울, 골목, 건축무한육면각체
12. 침묵 속에서 한 시간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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