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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즐거운 사라 상세페이지

소설 한국소설

2013 즐거운 사라

  • 도서정보
  • 출간정보

      2016년 03월 04일 전자책 출간

      2013년 06월 30일 종이책 출간

구매종이책 정가11,000
전자책 정가7,700(30%)
판매가7,700
2013 즐거운 사라

책소개

<2013 즐거운 사라> 2013년 대한민국, 문학적 표현의 자유는 어디에 있는가
-‘창조 경제’에 앞서 예술에도 창조성을 되돌려 주는 선언이 필요,
그 선언의 시작은 바로 『즐거운 사라』의 판금 해제!!



◎이제 마광수에게 ‘즐거운 사라’를 돌려 주라!


‘사라’는 마광수의 영원한 ‘뮤즈’였다. 『2013 즐거운 사라』는 이 책의 서(序)에 밝힌 대로 저자가 그동안 발표했던 소설들 중의 인물, 이미지, 페티시, 상황 묘사 등을 ‘재현․ 변주(變奏)하여 탄생시킨 새로운 작품이다.
마광수는 여전히 21년 전의 ‘『즐거운 사라』외설 사건’에 갇혀 있다. 문화적 후진국인 한국 사회는 한 천재의 문학적 상상력을 실정법의 창살로 감금해왔다. 마광수 교수는 외설 사건의 감옥살이 후유증뿐만 아니라, 『즐거운 사라』필화 사건이 난 지 6년 후에 어렵게 복권이 되어(하지만 『즐거운 사라』는 여전히 판금 상태였고, 복권은 되었지만 아직도 전과자 신세이다) 연세대 교수로 복직한 뒤 2년 후의 재임용 심사에서 탈락시키기 위한 동료 교수들의 배신으로 깊은 심리적 상처를 입었고 우울증에 빠졌다.
이제 사라는 2013년 다시 돌아왔다. 하지만 ‘자체 검열’을 거쳐 19금이 아니다. 역설적으로 2013년 스스로 무장해제한 사라는 현재 21년 동안이나 판금 상태로 있는 『즐거운 사라』의 판매금지에 대한 강한 ‘저항의 의사표시’로 문학적 상상력을 구속했다.


출판사 서평

◎2013 대한민국은 ‘창조 경제’에 앞서
예술에도 창조성을 되돌려 주라!

2013년 대한민국의 헌법에 보장된 문학적 표현의 자유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무엇이 구속하고 있는가. ‘창조 경제’라며 경제에게까지 ‘창조성’의 옷을 입혀 놓은 이 시대에 문학은 왜 아직도 여전히 창조성을 구속당해야 하는가.
이제 다시 『즐거운 사라』가 세상으로 나올 수 있어야 한다. 『2013 즐거운 사라』가 스스로 상상력을 구속하며 구차하게 이 세상에 나온 이유는 『즐거운 사라』를 세상 속으로 다시 끌어내기 위한 강렬한 손짓 때문이다. 『즐거운 사라』는 이제는 판금 해제되어야 한다. 2013년 아직도 갇혀 있는 ‘즐거운 사라’는 대한민국의 문화적 후진성의 일그러진 상징이다. 이제는 그 오명을 깨뜨려야 할 때가 왔다.
‘19금 표시’로 충분한 『즐거운 사라』가 왜 아직도 ‘판금’의 상태로 있어야 하는가. 지금『즐거운 사라』보다 더한 성적(性的) 상상력도 찬란한 햇빛 속에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다. 그런데 왜 사라는 아직도 우리 곁으로 돌아올 수 없는가. 2013 대한민국은 ‘창조 경제’에 앞서 예술에도 창조성을 되돌려 주어야 한다. 이젠 그 선언을 해야 한다. 그 선언의 시작은 바로 『즐거운 사라』의 판금 해제이다.


저자 프로필

마광수

  • 국적 대한민국
  • 출생-사망 1951년 - 2017년 9월
  • 학력 1983년 연세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 박사
    1975년 연세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 석사
    1973년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 학사
    1969년 대광고등학교 졸업
  • 경력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 교수
    1983년 홍익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학과 조교수
  • 데뷔 1989년 장편소설 '권태'
  • 링크 공식사이트

2017.11.20 업데이트 정보 수정 요청


저자 소개

저자 - 마광수

마광수를 비난하는 자,
그의 작품 전체를 보고 돌을 던져라!


마광수 전 연세대 교수는 우리나라 역사 중에서 거의 나오지 않는 지식인 중 한 종류인 ‘이단아’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오랫동안 농경문화를 주축으로 역사를 형성해왔기에 고정된 틀과 집단주의 체제에 익숙해 있었다. 그래서 ‘지식인은 반드시 체면을 지켜야 한다’라는 고정된 시선에 갇혀 있었기에 ‘삐딱하게 보기’를 외치는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았다.
마광수 전 교수는 2017년 9월 5일, 자택에서 스스로 세상을 떠나는 선택을 했다. 마광수에 대한 평가는 결국 후세의 몫으로 남겨졌지만, 그를 논할 때에는 단지 ‘야한 소설’을 썼다는 한 가지 잣대로 봐선 안 된다. 대부분의 인간이 그렇듯, 그리고 대다수의 작가가 그렇듯 마광수 역시 평면체가 아니라 다면체였기 때문이다. 세상 속에 드러난 가장 큰 부분은 소설집 『즐거운 사라』(1992)로 인해 필화사건을 입은 마광수다. 그러나 그 부분만이 마광수의 전부가 아니다.
마광수는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철학적인 시도 많이 썼다. 물론 이 시집의 제목만 보고, 그를 ‘야한 글’이나 쓰는 변태 지식인쯤으로 오해한다면 그것은 마광수의 작품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사실 『가자, 장미여관으로』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본 사람은 독일의 에리히 케스트너의 시집 『마주보기』가 부럽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마광수의 시는 철학적인 메시지도 많다. 독일에 에리히 케스트너가 있다면 한국에는 마광수가 있는 것이다. 마광수를 평가할 때는 시와 소설, 평론 이 세 가지 관점에서 다양하게 바라보아야 한다.
마광수를 무조건 ‘변태’라고 비판하는 사람 치고, 그의 작품을 한 권이라도 제대로 읽어본 사람은 드물다. 심지어 마광수를 비판하는 많은 사람들 중에서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가 소설인 줄 아는 경우가 많다. 즉, 그의 대표적인 작품조차 읽어보지 않은 채, 무조건 비판만 하는 부류들이다. 또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 역시 소설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즉, 마광수라는 작가와 작품에 대해 성의 있는 단 한순간의 관심 없이 무조건 변태 작가, 내지는 변태 교수로 주홍글씨를 붙이는 격이다. 『행복 철학』, 『마광수의 인문학 비틀기』나 『마광수의 유쾌한 소설 읽기』, 『생각』, 『육체의 민주화 선언』 등에서 보면, 마광수의 입체적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 마광수

사실 마광수는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수석으로 입학하고 졸업했던 수재였다. 게다가 윤동주 시인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면서 우리나라 최초로 제대로 된 윤동주 연구물을 내놓았다. 또한 1977년 청록파 박두진 시인의 추천으로 등단했으며, 28세라는 젊은 나이에 홍익대학교 교수가 되어 국내 최연소 교수로 기록되기도 했던 명민한 인재였다.
하지만 『즐거운 사라』의 외설 논란으로 1992년 강의 도중 구속되는 걸 기점으로 ‘천재 마광수’는 대한민국의 넘지 못할 고정관념이라는 법의 잣대 속에 갇혀버리고 말았다. 물론 그는 1995년 대법원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되어 연세대학교 교수직에서도 해직됐다. 그러다가 1998년 특별사면을 받았다. 또 2002년 복직하여 2007년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전공 정교수가 됐고, 2016년 정년퇴임했다.
하지만 사회 속으로 다시 나왔지만, 그는 즐거운 사라 필화사건으로 구속된 1992년부터 계속 사회가 만들어 놓은 감옥 속에 갇혀 지냈다. 그래서 마광수를 평가할 때에는 1992년 이전과 이후로 나눠 보아야 할 것이다. 즐거운 사라 필화사건은 명민한 마광수를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로 만들었다고 봐도 될 것이다. 감옥에 갇힌 세월은 길지 않지만, 『즐거운 사라』는 다시 그의 곁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리고 마광수의 명예 역시 회복되지 못했다. 그의 표현대로 하자면, 동료 교수들에게 ‘왕따’였고, 즐거운 사라 필화사건으로 전과가 있어서 퇴직 후 명예 교수도 되지 못했다. 단지 소설을 썼다는 이유로 마광수의 모든 것이 날아가 버렸던 것이다.
우리 사회는 마광수 교수가 평소 늘 말했던 대로 ‘이중적 잣대’를 들이댄다. 실제로 한국 문단 내에서 성추행을 일삼는 작가에 대한 단죄보다 앞서, 단지 ‘야한(그 당시의 잣대로)’ 소설을 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명민한 한 인재를 잔인하고 야만적으로 사회 속에 매장시켜버렸다. 그런 그가 평생 우울증을 안고 살았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우수한 학생이었으며, 명민한 젊은 교수였으며, 화려했던 베스트셀러 작가였던 그가 후진적 법의 잣대로 매장된 것은 그가 늘 하소연한 대로 몹시도 ‘억울’한 일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생전에는 그의 그 억울함을 함께 외쳐주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 그가 홀로 세상을 떠났다. 더 이상 이 한국 사회에는 기댈 희망이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마광수를 문학적으로 논하기 이전에 그의 존재 자체만으로 한국 사회에는 반드시 필요했다. 결이 다른 그 한 명의 존재를 용인할 수 없었던 그 높디높은 집단주의와 고정관념의 장벽 안에 사는 우리에게 마광수의 존재는 그야말로 ‘축복’이었다. 그러므로 단지 ‘야한 소설’을 썼다는 한 가지 사실만으로 그를 평가하는 오류를 저지르지는 말기를.
그는 모두가 한 방향으로 사고가 흘러갈 때, 다른 ‘생각’을 말했다. 그 한 가지 이유만으로 그의 1992년 이후의 삶은 대한민국의 후진성에 감금당했다. 그 트라우마는 평생 갔으며, 그의 작품 활동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 우리 사회는 ‘천재’를 생기 있게 보존할 수 없는 죽은 사회다. 그의 시집과 평론을 읽어 보면, 그의 사상이 폐쇄적인 우리 정서에 반드시 필요한 명약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나의 이력서』, 마광수의 자서전에 갈음하면서

마광수는 자서전을 따로 남기진 않았지만, 『나의 이력서』가 대신한다. 이 책을 만들 때 그는 자서전을 대신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직 박제가 되어버리기 전, 그의 싱싱한 젊음이 꽃필 시기를 담은 『청춘』 역시 그의 가장 명민한 시절에 무엇을 하고, 누구를 사랑하고, 무슨 생각을 하며 지냈는지 가늠해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이다. 물론 소설 형식이지만, 자전적 소설이기 때문이다.
마광수는 갔다. 그러나 마광수의 정신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의 수많은 작품들 속에 그의 생각이 숨 쉬고 있다. 그가 우리 사회에서 고정관념이라는 단두대의 희생양으로 ‘변태’라고 난도질 당하면서까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사실 그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그가 얼마나 권위의식이 없는 지식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에 존경을 표할 것이다. 마광수는 항상 나이가 어린 사람이나, 어떤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라도 깍듯하게 예의를 갖추었다. 한국 사회가 소설 하나 때문에 그에게 쏟아놓았던 ‘변태’라는 야만적인 돌팔매질과는 달리 그는 매우 정중한 사람이었다. 또한 성실한 사람이었다. 종일 책과 원고를 끼고 사는 천생 ‘선비’였고 학자였다.
그런 그가 단지 소설 하나 때문에 존중받아야 할 강의실에서 소위 ‘끌려갔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후진적이고 야만적이고, 고정관념이라는 거대한 괴물에 끌려 다니는지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지금 이 순간에도 ‘즐거운 사라’는 여전히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사실 『2013 즐거운 사라』는 그가 ‘즐거운 사라’를 다시 돌아오게 하려고 세상에 대고 외친 마지막 ‘소리 없는 아우성’이었다. 하지만 2013년에도, 지금도 ‘즐거운 사라’는 법에 갇혀 판금당해 있다. 굳이 ‘표현의 자유’를 논하지 않더라도 ‘즐거운 사라’보다 속칭 더 야한 책과 영상이 돌아다니는 이 시점에도 왜 사라는 마광수와 함께이지 못했던 걸까. 그건 우리가 그에게 저지른 죄이다.
마광수는 투사가 아니었다. 그는 섬세한 예술가였고, 선비였다. 그래서 그는 마지막 저항으로 조용히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을까. 이제라도 ‘즐거운 사라’는 그의 곁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가 떠난 빈자리이지만, 이제라도 그의 명예를 복원해주는 의미로 ‘즐거운 사라’는 판금 해제되어야 한다. 2013년에 이루지 못했던 사라의 복귀를 이제라도 쟁취해야 한다. 그가 죽음으로 외친 ‘마광수에 대한 재평가’를 위해서 우리는 그 출발점으로 ‘즐거운 사라’를 세상 속으로 내보내야 한다.

가장 폭력적이지 않았던 한 작가를, 가장 폭력적인 방법으로 단죄를 한 아이러니!

책의 면지를 고를 때에도 죽음이 연상된다면서 ‘검은색’만큼은 피하고 싶다던 마광수. 평소 죽음 자체에 대해 그렇게도 두려워했던 그가 2017년 9월 5일, 얼마나 견디기 힘들었으면 그 선택을 했던 걸까. 누가 그를 ‘거기’까지 몰고 갔나. 단지 소설 속에서만 자유로운 상상을 펼치던 섬세한 예술가인 그를, 그의 표현대로 하자면 ‘위선적인’ 지식인들이 후진적 법의 잣대로 단죄를 했기 때문이다. 그들에겐 소설 하나를 판금시키는 것쯤으로 인식되었던 그 사건이 한 명민한 인재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마광수는 실제로 지식인의 권력을 이용해 누군가의 성의 주체적 권리를 침해한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그의 전체 작품을 자세히 살펴보아도, 그의 소설이나 작품에는 ‘폭력성’이 없다. 이 사실을 많은 사람들은 간과하고 있다. ‘즐거운 사라’ 역시 ‘여대생’이 몸을 함부로 굴린다는 기득권의 고정관념이 잣대였다. 그리고 소위 ‘교수’가 그런 글을 썼다는 것이 문제였다. 아마 주인공이 여대생이 아니었고, 하류 계층이었다면 기득권에겐 용인될 수 있는 내용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작가가 교수가 아니라 그들의 시각으로 봤을 때 하층민이었다면 또한 용서될 수 있는 일이었을 것이다. 마광수의 잘못은 바로 지배 계층의 ‘체면’에 손상을 입힌 죄였던 것이다.
가장 폭력적이지 않았던 한 작가를 가장 폭력적인 방법으로 단죄를 한 아이러니는 우리 사회와 문학사에 큰 죄과로 남지 않을까. 마광수를 비난하는 자, 그의 작품 전체를 보고 돌을 던져라. 노벨상 역시 한 작품으로 수상하는 것이 아니다. 한 작가의 일대기와 작품 전체를 보고 평가하는 것이다. 우리도 한 작가의 가치를 논할 때 한 조각이 아니라, 그 전체를 보고 비난을 하든, 가치를 매기든 해야 할 것이다.
-조선우(책읽는귀족 대표)

목차

• 서(序)

1. 사치스런 우울
2. 밤이 무서워요
3. 사랑은 빗물
4. 슬픈 삼각관계
5. 가련한 인생
6. 자연(自然) 속에서
7. 절망보다 더 두려운 희망

• 사라가 남긴 글 - 빈센트 반 고흐
• 마무리 시(詩) - 사라의 법정
• 작가 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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