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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귤> 하루 5분으로 만나는 일본문학 대표작가 단편선 – 현대 일본문학의 원류를 만난다
감탄할 만큼이나 높은 시민의식을 보여주는 한편, 여고생을 내세운 성(性) 비즈니스를 비롯, 온갖 종류의 은밀한 서비스업이 발달한 나라. 일본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로 흥미로운 나라다.

이러한 일본에 대한 관심은, 무라카미 하루키(<상실의 시대> 외), 히가시노 게이코(<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외) 등 국내에서도 맹위를 떨치고 있는 소설가들의 유명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일본 특유의 따스함, 아련함, 잔인함, 섬세함을 이질적일 정도로 신선한 소재로 표현하는 작가들의 개성이 마니아층은 물론 일반 대중에게도 매력적인 것이다.

<하루 5분으로 만나는 일본문학 대표작가 단편선: 귤>은, 이러한 일본문학을 있게 한 원류가 되는 소설가들의 단편들을 모았다. 일본 근대문학의 아버지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일본 추리소설의 문을 연 에도가와 란포 등 근대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이 고루 수록돼 있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어딘가 기이하면서도 마음을 울리는 일본소설 특유의 감성을 향유하며, 동시에 근대 일본의 사회, 문화적 배경까지도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책 속으로>
저는 N시멘트라는 회사에서 일하는 여공으로 시멘트 포대를 꿰매는 일을 합니다. 제 애인은 파쇄기에 돌을 넣는 일을 했지요. 그날은 10월 7일이었습니다. 아침이었죠. 그이는 커다란 돌을 파쇄기에 집어넣다가 그만 돌과 함께 파쇄기에 끼고 말았습니다.
함께 일하던 동료들이 황급히 그이를 구해내려 했지만 마치 깊은 물속으로 가라앉듯 제 애인도 암흑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이와 돌은 하나로 뒤엉켜 버렸고 결국 길쭉하고 시뻘건 돌이 되어 빙빙 돌아가는 컨베이어 위로 툭 떨어졌습니다. 컨베이어는 분쇄 통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그이는 강철 탄환과 뒤섞이며 가느다랗고 자디잘게 부서졌죠. 엄청난 기계소리와 함께 저주를 퍼붓는 울부짖음이 들려오더랍니다. 제 애인은 그렇게 굳어져갔고 번듯한 시멘트로 변했습니다. 뼈도, 살도, 영혼도, 모조리 산산조각이 되어 가루가 되었습니다. 그이의 모든 것이 시멘트로 변한 셈이죠. 남은 거라곤 그이가 입었던 너덜너덜해진 작업복뿐입니다. 저는 지금 제 애인을 담을 포대를 만들고 있어요.
저는 그이가 시멘트로 변한 다음날 이 편지를 써서 아무도 모르게 시멘트 통 안으로 쑤셔 넣었습니다. 당신은 노동자인가요? 당신이 만약 노동자라면 저를 가엾게 여기시고 답장을 써 주세요. 이 통 속에 담긴 시멘트는 뭐 하는데 쓰였나요? 전 그것이 알고 싶어요. 제 애인은 얼마나 많은 통에 담겨 있었나요? 또 어떤 사람들이 그이가 변한 시멘트를 쓰나요? 당신은 미장이인가요? 아니면 건축가인가요?
전 극장의 복도가 되거나 으리으리한 저택의 담벼락이 된 제 애인을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어요. 그치만 제가 무슨 수로 그것을 막을 수 있겠어요? 혹시 당신이 노동자라면 이 시멘트를 그런 데엔 사용하지 말아주세요. 아니에요. 상관없어요. 어떤 곳에든 쓰세요. 제 애인은 어디 묻히든 거기서 보란 듯이 번듯하게 일할 거예요. 아무려면 어떻겠어요. 그이는 심지가 굳은 사람이니 맡은 바 책임을 다 할 겁니다. 저는 믿어요.
그이는 참 살갑고 착한 사람이었어요. 게다가 얼마나 다부지고 남자다웠는지 몰라요. 죽기엔 아까운 나이였죠. 이제 갓 스물 여섯이었는걸요. 저를 꽤나 아껴주고 보듬어주었답니다. 저는 그런 사람한테 새하얀 수의를 입혀주지는 못할망정 시멘트 포대를 입혔어요! 관에 누워 있어야 할 사람이 회전 가마 속으로 들어가 버린 셈이죠.
어찌 하면 그이를 온전하게 하늘나라로 떠나보낼 수 있을까요? 서쪽으로, 동쪽으로, 아득히 먼 곳으로, 아주 가까운 곳으로, 뿔뿔이 흩어져 묻혀버린 그이를 말이에요.

--<시멘트 통 안에 든 편지> 중에서


여자애는 푸석푸석한 머리카락을 뒤로 잡아당겨 묶은 다음, 좌우로 갈라 은행잎 모양으로 틀어 올렸는데, 살이 터서 빗살무늬처럼 보이는 양쪽 볼이 징그러우리만치 빨갛게 달아올라 영락없이 시골 촌뜨기처럼 보였다. 땟물이 좔좔 흐르는 연두색 털목도리를 축 늘어뜨리고 무릎 위에 얹은 큼지막한 보따리를 꼭 끌어안은 채 터실터실한 손으로 빨간색 삼등칸 차표를 흘리지 않으려는 양 단단히 쥐고 있었다. 나는 여자애의 볼품없고 못생긴 얼굴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옷가지도 몹시 찜찜했다. 특히나 이등칸과 삼등칸도 제대로 가리지 못하는 아둔한 구석이 밉살머리스럽고 괘씸하기까지 했다. 화를 삭이려 담배에 불을 붙인 나는 한시바삐 아이의 존재를 잊어버리고픈 심정에서 호주머니에 찔러두었던 석간신문을 펼쳐들었다.
그때였다. 석간신문 지면에 쏟아지던 햇살이 별안간 전등불빛으로 바뀌더니 인쇄 상태가 나빠 흐릿했던 글자들이 순식간에 또렷이 보이기 시작했다. 두 말할 나위 없이 기차는 지금 막 요코스카 선에 유난히 많았던 터널 안으로 들어간 참이었다.
울적한 마음을 달래려는 마음에 불빛으로 환해진 석간신문을 아무리 훑어봐도 세상은 지극히 평범한 사건들로 가득 차 있었다. 강화조약 문제, 신랑신부, 부정사건, 부고 등등. 열차가 터널로 들어서자 마치 기차가 역방향으로 달리는 착각에 사로잡힌 나는 삭막하기 그지없는 기사에서 기사로 이리저리 시선을 옮겼다. 하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비루하고 상스러운 현실이 사람으로 둔갑한 듯한 얼굴을 하고 앞자리에 앉아 있는 여자애한테 줄곧 신경이 쓰였다. 터널을 달리는 열차와 촌스런 계집애, 평범한 기사들로 메워진 석간, 이것은 하나의 상징이었다. 불가사의하고 하등하며 따분한 인생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이 모든 것에 환멸을 느낀 나는 신문을 내던져버렸다. 그리고 창틀에 머리를 기댄 채 죽은 사람처럼 눈을 감고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얼마쯤 지났을까. 문득 불안한 느낌이 들어 무심코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 틈엔가 옆으로 자리를 옮겨 앉은 여자애가 창문을 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러나 묵직한 유리창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메마른 논바닥처럼 갈라진 여자애의 뺨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숨이 차오르는 소리와 이따금씩 코를 훌쩍거리는 소리가 쉴 새 없이 귓가를 맴돌았다. 측은한 마음이 절로 들었다.

--<귤> 중에서


저자 프로필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 국적 일본
  • 출생-사망 1892년 3월 1일 - 1927년 7월 24일
  • 학력 도쿄대학교 영문학 학사

2014.12.01.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소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외 20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芥川龍之介(あくたがわりゅうのすけ) (1892-1927): 일본 근대문학의 아버지. 도쿄(東京 とうきょう) 출생으로 정신이상을 겪었던 어머니가 사망한 후 외숙부의 양자로 자라났고, 단편 <코>가 나쓰메 소세키의 극찬을 받으면서 명성을 얻게 된다. 탄탄한 스토리와 함께 논리성이 강한 간결한 필치로 인간 보편의 심리를 유감없이 드러내는 작품이 많다. 35세의 나이에 ‘막연한 불안’을 이유로 자살했다. 대표작으로는 <라쇼몬>, <지옥변>, <갓파>. <덤불 속>등이 있다.

<역자소개>
인 현 진

연세대학교 생활과학대학 아동학과 학사 졸업.
경희대학교 대학원 일어일문학과 석사 졸업.
일본 7년 거주.
(전) (주)대한재보험 도쿄 지사 근무.
(전) 영진전문대학, 영남이공대학 전임강사.

▶번역서) <<구니키다 돗포 단편집>>, <<요코미쓰 리이치 단편집>>, <<바다에서 사는 사람들>>, <<씨앗, 그리고 열매>>, <<하루 5분으로 만나는 일본문학 괴담편: 인간의자>>, <<하루 5분으로 만나는 일본문학 대표작가 단편선: 귤>>, <<가이코 다케시 단편집>>(발간 예정), <<오카모토 가노코 중?단편집>>(발간 예정)
▶저서) <<시나공 JLPT 일본어능력시험 N1 문자어휘>>, <<비즈니스 일본어회화&이메일 핵심패턴 233>>, <<비즈니스 일본어회화 & 이메일 표현사전>>, <<일본어회화 표현사전>>

목차

귤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다카세 거룻배 / 모리 오가이
도토리 / 데라다 도라히코
시멘트 통 안에 든 편지 / 하야마 요시키
1인 2역 / 에도가와 란포
비참한 죽음 / 구니키다 돗포
사람을 잡아먹는 개 / 고바야시 다키지
가랑눈 / 하라 다미키
밀회 / 호리 다쓰오
시체의 손 / 다나카 고타로
신이 된 말 / 요코미쓰 리이치
장난감 / 다자이 오사무
벚나무 밑에는 / 가지이 모토지로
이상한 소리 / 나쓰메 소세키
땀 / 오카모토 가노코
손가락 / 사사키 도시로
짜증 벌레 / 마키노 신이치
포도 한 송이 / 아리시마 다케오
길 잃은 아이 / 이즈미 교카
공기 사나이 / 운노 주자
마누라 찾기 / 유메노 규사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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