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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의 다다, 동경의 다다 상세페이지

인문/사회/역사 인문

경성의 다다, 동경의 다다

다다이스트 고한용과 친구들

구매종이책 정가14,000
전자책 정가9,800(30%)
판매가9,800

책 소개

<경성의 다다, 동경의 다다> 경성과 동경의 쓸모없는 청년들, 다다이즘과 아나키즘에 감염되다!

조선 최초의 다다이스트 고한용(高漢容)에 의해 소개된 식민지 조선의 다다이즘은 불과 2년간 지속된 문학운동/이론이지만, 이후 조선 문단에서 활약한 모더니스트들에게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또한 일본의 다다이스트 및 아나키스트들과 연대하여 근대 이후 우리 문학이 최초로 국제적 동지 의식을 보여 준 운동이었다. 지금껏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고한용이라는 인물을 통해 마해송, 임화, 최승희, 박열, 가네코 후미코, 쓰지 준, 다카하시 신키치, 아키야마 기요시 등 조선-일본의 지식인, 예술인의 자유를 향한 갈망과 연대를 엿볼 수 있다. 한국 문학 연구자인 일본인 저자가 안내하는 이들의 흥미로운 행적을 추적해 보자.


출판사 서평

조선 최초의 다다이스트, 고한용은 누구인가

고작 2년간 지속된 식민지 조선의 다다이즘 그 시작과 끝에 한 사람이 있었다. 1924년『개벽』9월호에‘고따따’라는 이름으로「다다이슴」을 발표하여 국내에 다다이즘을 소개했지만, 2년 후 모든 문학 활동을 중단하여 다다의 종언을 고함은 물론 문단에서 자취를 감춘 고한용(1903~1983)이다. 개성에서 태어나 동경으로 유학 간 고한용은 그곳에서 다다이즘을 접했다. 당시 일본에서 싹트고 있던 다다이즘과 아나키즘은 양국의 지식인, 예술인에게 엄혹한 현실에서도 숨 쉴 수 있는 자유를 주었고, 이들은 사회에서는 소외되었으나 이 두 청년정신을 매개로 자신들끼리 뭉쳤다.

우리에게 잊힌 고한용이라는 인물의 발자취를 찾아낸 이는 놀랍게도 일본의 한국 문학 연구자이자 번역가인 요시카와 나기(吉川?)이다. 정지용을 한국 근대시의 새 창을 연 시인으로 재평가한 연구로 한국에서 문학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고한용의 생애를 중심으로 한국과 일본 다다의 궤적을 그린다. 자유를 억압하는 모든 권위와 제도로부터 해방되기를 꿈꾼 인물 군상은 마치 소설 속 인물들처럼 생생하게 살아 움직인다. 한순간 불꽃처럼 타올랐다 사라진 다다이즘처럼 그들은 경성과 동경, 해방 후 서울에서 뜨거운 우정을 나누고 각자의 길을 찾아 떠났다. 다다이즘으로 한?일 양국을 이었던 고한용과 마찬가지로 문학을 통해 두 나라 독자를 만나게끔 하고 있는 저자는 오늘날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은 한국과 일본의 문학이 사실은 한때 아주 가까이에 있었음을 말하고자 한다.

다이쇼 데모크라시와 3·1운동이 낳은 청년들의 짧고도 아름다운 조우

두 나라의 청년들이 우정을 나눌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1919년에 일어난 3?1운동은 식민지 조선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꾼 계기였다. 3?1운동을 기점으로 조선총독부는 무단정치를 포기하고 문화정치로 전환하여, 집회나 출판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일본 유학의 문을 활짝 열었다. 이 책은 개성 출신 문학청년 가운데 마해송을 중심으로 이 시기를 묘사하는데, 서구에서 들어온 새로운 가치관을 흡수하고 문학을 향한 열망을 키워가던 마해송은 만세 시위와 동맹휴학을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마침 일본 유학생 관련 규정이 완화되자 마해송을 비롯한 조선의 많은 청년들은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다. 고한용도 그 가운데 한 명이었다.

당시 일본의 분위기는 어땠을까. 1차 대전 이후 전 세계적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의 영향으로 일본에서도 그에 대한 요구가 높아졌다. 헌정 옹호 운동, 보통선거 운동 등의 정치적 운동만이 아니라 사회, 문화 등 넓은 영역에서 낡은 제도나 사상을 개혁하려는 운동이 1910년대와 20년대에 걸쳐 활발해졌고, 특히 교육 기회를 넓혀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른바‘다이쇼(大正) 데모크라시’의 영향으로 대학과 학과 설립 및 학위 수여가 쉬워졌다. 이 책에 나오는 동경으로 유학 온 조선의 문학청년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니혼 대학 예술과(미학과)에 입학하는 데는 이러한 한?일 양국의 시대적 기류가 작용한 것이다. 예술과에는 고한용, 마해송 외에도 임화, 김기림, 김춘수 등이 입학했고, 박열, 한설야, 이용악, 구상, 손창섭, 정비석, 이육사 등도 다른 과에 적을 두었다고 한다. 마침내 만나게 된 두 나라의 청년들은 어떻게 어울리게 되었을까.

젊은 예술가들의 초상―함께 취하고 어울리고 빛났다

동경에서 고학을 하며 대학을 다니던(당시 고학이 일종의 유행이었고 니혼 대학은 야학이 가능했다) 고한용은 민족주의나 사회주의, 허무주의 어디에서도 답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다다를 발견하고 한순간에 사로잡힌다. 일본의 다다이즘은 주로 다카하시 신키치(高橋新吉, 1901~1987)의 시와 쓰지 준(?潤, 1884~1944)의 다다적 에세이를 통해 소개되었다. 신키치의 다다이즘은 서구의 그것을 정확하게 수용한 것이라기보다 다다 정신에 불교적 정서를 입힌 독자적인 것이었고, 쓰지 준의 다다도 노장 사상과 동양 정신이 혼합된 것이었다. 무엇보다 한?일 양국에서 출현한 다다이즘의 핵심은 기존의 권위와 속박(유교적 도덕, 기독교, 사회주의, 낭만주의 등) 모두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1920년대 중반 이후 조선 문단에서 세를 얻은 모더니즘과 프롤레타리아 문학에 뛰어든 문인들이 대부분 한때나마 다다이즘에 몰입한 것(훗날 이들은 이를 부정했다)은 이러한 권위에 대한 부정 때문이다.

영원한 청년정신이었던 다다이즘은 고한용과 다카하시 신키치, 쓰지 준 등을 강하게 결속시켰다. 이들은 서로 다른 국적이나 심화되어가는 제국과 식민지 간의 갈등을 뛰어넘어 어울렸다. 1923년 간토(關東) 대지진으로 조선인 및 반체제 인사 학살이 벌어지자 조선인 유학생 상당수는 귀국하거나 동경을 떠났다. 고한용도 경성으로 돌아왔는데, 이후 쓰지 준과 다카하시 신키치를 경성으로 초대하여 조선 문인들에게 소개하고 다 같이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고 한다.

한국 문학 최초의 국제적인 연대, 다다이즘 그리고 아나키즘

경성으로 돌아온 고한용은 1924년 잡지『개벽』에「다다이슴」을 발표하여 조선 최초의 다다이스트가 된다. 그는 그 후 여러 차례 동경과 경성을 오갔는데, 저자는 여기에 고한용이 참여한 일종의‘코뮌’, 여러 예술가가 얽히고설킨 복잡한 연애사, 고한용과 아나키스트와의 교류 등을 흥미진진하게 다루고 있다. 1926년 다다이스트 쓰지 준과 고한용, 아나키스트 시인 아키야마 기요시(秋山淸, 1904?~1988)가 결성한‘삼국동맹’의 장면(154~159쪽 참조)은 이 세 사람이 펼친 우정의 최정점이자 이별이었고, 동시에 어떤 이념에도 속하기를 거부하여 문학을 떠난 고한용의 마지막 뒷모습이었다. 그 후 신키치는 선불교로, 쓰지는 다다로서 파멸의 길로, 고한용은 보통 사람으로 각자의 길을 걸어가며 영영 만나지 못한다. 고한용은 1974년 아나키스트 박열 추도 모임을 맞아 신키치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 우정에 대한 추억과 소회를 남긴다(216~217쪽 참조). 다다이즘은 하나의 문학운동으로 만개하기에는 제대로 된 이론이나 체계가 부족했고 부정의 정신이 전부였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짧은 평화기 자유와 문학을 꿈꾼 한?일 청년들은 이를 매개로 우정의 한 시기를 만들어 냈고, 이는 근대 이후 한국 문학이 최초로 국제적 동지 의식을 보여 준 장면이었다.



저자 소개

오사카에서 태어나 신문사에 근무한 뒤 한국에 왔다.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의 신문방송학과 대학원에서 잠깐 공부했지만 재미를 붙이지 못했다. 그때 다른 공부거리를 찾아 등록한 문학학교에서 신경림 시인을 만난 게 한국 문학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다. 그 후 신경림 시인의 추천으로 인하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 근대문학을 전공했다. 전부터 메이지, 다이쇼 시대의 일본 문학을 즐겨 읽던 것이 결국 1920년대의 한국 청년들과 공통되는 독서 체험으로 이어져 한국 근대문학을 연구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었다. 정지용 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하여 지금은 도쿄에서 한국 문학 등의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주로 한국 현대 작가들의 작품을 번역하고 있는데, 시미즈 지사코(淸水知佐子)와 공동으로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완역 작업을 진행 중이다.
저서로『최초의 모더니스트 정지용』(역락, 2002),『朝鮮最初のモダニスト鄭芝溶』(土曜美術社出版販?, 2007),『京城のダダ, 東京のダダ─高漢容と仲間たち』(平凡社, 2014)가 있으며, 한국에서 출간한 번역서로『모두 별이 되어 내 몸에 들어 왔다―신경림-다니카와 슌타로 대시집(對詩集)』(예... 담, 2015), 다니카와 슌타로의『사과에 대한 고집』(비채, 2015) 등이 있다.

목차

한국어판 출간에 즈음하여 | 쓸모없는 사람들의 자유로운 세계
머리말 | ‘고(高)따따’라는 사람

1장 다다 이전
상업 도시, 개성
‘만세’ 전후

2장 동경 유학
자칭 천재들의 집합 장소 ─ 니혼 대학 미학과
명물 교수, 마쓰바라 간
‘고학’의 유행
좌익 청년들의 소굴 ─ 니혼 대학 사회과
조선 최초의 다다이스트
동양적 다다
쓰지 준의 사상
간토 대지진

3장 경성에서
다카하시 신키치, 해협을 건너다
「서울 왔던 다다이스트의 이야기」
은인 쓰지 준
경성 문단의 대환영
권총 난사 사건의 진상
최승희와 쓰지 준

4장 다시 동경, 그리고 미야자키
『시전행』의 코뮌
쓰지, 아키야마, 고한용의 ‘삼국동맹’
팜파탈 유키코
다다의 종언

5장 그 후
유키코의 죽음
귀국 후
서울에서 보낸 편지

부록 고따따의 에세이
1. 「다다이슴」
2. 「서울 왔던 다다이스트의 이야기」
3. 「DA·DA」
4. 「잘못 안 다다 . 김기진 군에게」
5. 「우옴피쿠리아」

해설 | 다다에 대한 몇 가지 덧붙이기
후기
고한용 연보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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