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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장각에서 찾은 조선의 명품들 상세페이지

인문/사회/역사 역사

규장각에서 찾은 조선의 명품들

규장각 보물로 살펴보는 조선시대 문화사
소장종이책 정가18,500
전자책 정가30%12,950
판매가12,950
규장각에서 찾은 조선의 명품들 표지 이미지

규장각에서 찾은 조선의 명품들작품 소개

<규장각에서 찾은 조선의 명품들> 규장각은 어떤 곳인가
- 조선시대 기록문화의 보물창고
규장각에는 《조선왕조실록》《승정원일기》등 국가의 공식 연대기를 비롯하여 국가의 주요 행사를 기록과 그림으로 정리한 의궤, 국토의 모습을 사실적이고 회화적으로 그린 지도, 《해동제국기》《열하일기》 같은 기행문, 개인의 일기와 문집, 생활사의 단면을 보여주는 각종 고문서 등 조선시대 사람들이 남긴 방대한 자료들이 소장되어 있다. 역사학뿐 아니라 한문학, 지리학, 언어학, 민속학, 군사학, 미술사, 복식사 등 각 분야의 관심사를 충족시켜줄 매력적인 자료들이 가득하다. 이 자료들에는 선조의 삶과 생각의 자취가 담겨 있고 그 시대인들의 문화역량이 함축되어 있어서 조선시대 기록문화의 명품이라 부를 만하다.
이 책은 그중에서 대표적인 것들을 골라 소개하고 있다. 책의 제목을 <규장각에서 찾은 조선의 명품들>이라고 한 것은 바로 그같은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 책에서 소개하는 명품들은 그야말로 맛보기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만큼 규장각은 조선시대를 알 수 있는 무궁무진한 자료들의 보물창고다.

규장각은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나
- 학문적 성과를 바탕으로 개혁을 펼치기 위해 만든 정조의 야심작
규장각은 조선 22대 왕 정조가 창덕궁에 세운 학문연구기관이자 개혁의 산실이다. 세종이 집현전을 설치하여 학문의 전당이자 유교 정치이념을 전파하는 중심기관으로 만든 것처럼 정조는 규장각을 통해 학문적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개혁정치를 펼치고자 했다. 숙종 때 처음 ‘규장각’이라 쓴 숙종의 친필 현판을 걸고 역대 왕들의 글씨와 글을 보관하던 규장각은 정조가 즉위하면서 왕을 뒷받침할 정치 및 문화정책의 추진기관으로서, 역대 도서들을 수집하고 연구하는 학문의 중심기관이자 개혁정책을 추진하는 핵심 정치 기관으로서 거듭 태어났다.
정조는 당파나 신분에 구애 받지 않고 젊고 참신하며 능력 있는 인재들을 규장각으로 속속 불러 모았다. 정약용을 비롯하여 박제가, 유득공, 이덕무 등 당대를 대표하는 학자들이 규장각에 나와 연구하면서 정조 개혁정치의 파트너가 되었다. 규장각은 바야흐로 문화중흥을 이끌어 가는 두뇌집단의 산실이었다. ‘법고창신法古創新(전통을 본받아 새 것을 창출한다)’은 규장각의 설립 취지에 가장 부합되는 정신이다.

규장각, 그 수난의 역사와 현재
규장각은 조선 시대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들을 간행하고 보존하는 기능을 했다. 규장각의 분소라 할 강화도의 외규장각은 그 중에서도 더욱 가치 있는 자료들을 국방상 안전하고 보다 체계적으로 관리할 목적으로 세워졌다. 그러나 외규장각은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의 침공으로 잿더미가 되었다. 이때 프랑스군이 약탈해간 의궤 297책은 현재 파리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으며, 그 반환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외규장각의 수난과 약탈당한 의궤는 아픈 역사를 겪어야 했던 조선왕조의 운명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창덕궁의 규장각 또한 수난의 길을 걸었다. 1910년 한일합방이 되자 규장각은 폐지되고 소장 도서들은 1908년 제실도서帝室圖書로 명명되었다가 잠시 이왕직李王職(일제시대 궁내부) 소관으로 있었으나 1911년 11월 조선총독부 취조국으로 옮겨졌다. 일제의 관리하에 들어가는 불운이 시작된 것이다. 조선총독부는 규장각 도서들을 경성제국대학에서 관리하게 했다.
1945년 8월 15일 일제로부터 ‘해방’을 맞이한 규장각 도서는 1946년 경성제국대학을 승계한 서울대학교 부속도서관으로 이관되었다. 오늘날 규장각이 서울대학교 안에 위치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역사적 과정 때문이다. 서울대학교에서도 오랫동안 도서관 소속으로 있던 규장각 도서는 1992년 독립 건물을 지어 지금의 ‘서울대학교 규장각’의 모습을 갖추었다. 2006년 서울대학교 규장각은 한국문화연구소의 한국학 기능을 합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으로 출범했다.

규장각에서 찾은 보물들
이 책은 규장각에 소장된 수많은 작품 중에서 대표적이라 할 작품들을 골라 그 내용과 저자, 탄생배경 등을 소개하고 그 현재적 의미와 가치를 새겨본다. 왕의 숨결이 느껴지는 어필御筆, 왕실 요양소였던 온양온천의 행궁 모습을 전해주는 온양별궁전도, 조선시대 외국어 학습서인 <노걸대><박통사><첩해신어>, 조선시대의 베스트셀러 박지원의 여행기 <열하일기>, 실록제작의 전과정을 상세히 기록한 <실록청의궤>와 <실록형지안>, 왕실기록문화의 꽃 의궤, 조선의 지성을 대표하는 백과사전 <지봉유설><성호사설><오주연문장전산고>, 조선의 마이너리티 중인들의 기록인 <규사><호산외기><이향견문록>, 그리고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비롯해 예술작품으로도 손색없는 1872년의 지방지도들을 차례로 소개한다.
15년간 규장각 연구원으로 활동해온 필자가 제공하는 풍부한 시각자료와 흥미로운 일화들은 이 책의 또 하나의 장점이다. 그 생생함과 구체성은 이 책을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마치 규장각에 직접 들어가 책장을 하나하나 넘기며 진귀한 보물과 만나는 것 같은 색다른 체험을 하게 할 것이다.


저자 프로필

신병주

  • 국적 대한민국
  • 학력 서울대학교 대학원 박사
    서울대학교 역사학과 학사
  • 경력 외교통상부 외규장각도서 자문포럼 위원
    남명학 연구원 상임 연구위원회 위원
    건국대학교 문과대학 사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규장각 학예연구사

2015.02.27.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소개

저자 - 신병주 (申炳周)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사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서울대·건국대·국민대·가톨릭대·서울여대 등에서 조선시대 지성사, 조선 후기 사회와 실학, 한국사를 이끈 지성들 등 주로 조선시대의 사상과 문화를 주제로 강의하였으며, 서울대학교 규장각 학예연구사로 재직하였으며, 현재 건국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역사의 대중화에 깊은 관심을 가져 KBS의 <역사추리> <역사스페셜> <불멸의 이순신> 자문을 맡았으며, 현재 KBS의 과 EBS 어린이 역사 드라마의 자문을 맡고 있다. KBS1 라디오 지금은 실버시대, ‘신병주의 역사인물이야기’를 진행하고 있으며, 남명학연구원 상임연구위원, 외교통상부 외규장각도서 자문포럼 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남명학파와 화담학파 연구』『66세의 영조, 15세 신부를 맞이하다』『하룻밤에 읽는 조선사』『고전소설 속 역사여행』『조선왕실 기록문화의 꽃, 의궤』『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공저)』『모반의 역사(공저)』『제왕의 리더십(공저)』『조선 최고의 명저들』『조선 중·후기 지성사 연구』『규장각에서 찾은 조선의 명품들』 『이지함 평전』등이 있다. 최근에는 조선시대를 이끌어간 지성들의 인물 연구에 관심을 갖고 평전 집필을 준비 중에 있다. 또한 규장각에 소장된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선조들의 투철한 기록정신과 품격있는 왕실문화를 연구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목차

감사의 글
들어가는 말 - 조선의 보물창고 규창각

1. 어필과 기록화의 세계
글씨로 느끼는 국왕의 숨결 - 어필
조선 왕실 최고의 요양소, 온양행궁 - 온양별궁전도
초상화로 되살아난 조선시대 관리들 - 선현영정첩과 진신화상첩
영조 때의 청계천 공사와 그 기록들 - 준천사실과 준천시사열무도
19세기까지 계속된 임진왜란의 기억 - 임진전란도
기록화로 전해진 ‘가문의 영광’ - 참의공사연도

2. 전통과 세계의 만남
조선시대 외국어 학습과 역관들의 활약 - 노걸대?박통사?첩해신어?통문관지
이용후생의 기치를 내건 북학파의 선구적 저술 - 북학의
새로운 시대의 지향을 담은 기행문 - 열하일기
19세기 풍요로운 한양을 노래한 ‘한양찬가’ - 한양가
110년 전 민영환 일행 세계를 보고 돌아오다 - 부아기정과 환구음초

3. 지도와 지리지에 나타난 시대의 흐름 찾기
605년 전 조선이 바라본 세계 -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500년전 조선 팔도 생생한 삶의 현장 들여다보기 - 신증동국여지승람
지도 제작에 반영된 북벌의 꿈 - 요계관방지도
조선 후기 지도 제작의 결정체 - 대동여지도
흥선대원군이 만든 459장의 지도 - 지방 지도

4. 세계적인 기록 유산들
조선시대판 타임캡슐 - 조선왕조실록
93년 만에 고국의 품에 안기다 - 오대산본 조선왕조실록
실록 제작의 전 과정을 기록한 책 - 실록청의궤와 실록형지안
국왕의 숨결까지 놓치지 않은 기록 - 승정원일기
왕의 일기에서 출발한 국정 최고 기록물 - 일성록

5. 의궤로 보는 조선의 왕실문화
조선 왕실 기록문화의 꽃 - 의궤
의궤를 통해 되살아난 광해군 시대의 외교, 국방, 과학
- 영접도감의궤, 화기도감의궤, 흠경각영건의궤
인조가 인목대비를 위해 잔치를 베푼 까닭은? - 왕실 잔치와 관련된 의궤
66세의 왕 15세 신부, 영조의 결혼식 - 영조정순후가례도감의궤
영조 왕릉이 동쪽으로 간 까닭은? - 원릉산릉도감의궤
정조의 화성행차, 8일간의 장엄한 기록 - 원행을묘정리의궤

6. 조선의 지성을 대표하는 백과사전들
전통과 세계를 껴안은 문화 백과사전 - 지봉유설
중국 백과사전의 핵심을 가려 뽑은 거질 백과사전 - 유원총보
축적된 학문 역량을 체계화한 ‘개혁 교과서’ - 반계수록
실학파의 호수 성호 이익 - 성호사설
19세기 백과사전의 집대성 - 오주연문장전산고

7. 선비들의 정신 세계 속으로
서릿발 같은 비판을 쏟아낸 지식인, 남명 조식 - 남명집
백성들 속으로 뛰어든 참지식인, 이지함 - 토정유고
실증적이고 객관적 역사 기록을 위하여 - 연려실기술
조선시대 마이너리티, 중인들의 기록 - 규사, 호산외기, 이향견문록, 소대풍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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