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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판 | 바깥에서 상세페이지

인문/사회/역사 인문

개정판 | 바깥에서

모리스 블랑쇼와 '그 누구'인가의 목소리
소장종이책 정가23,000
전자책 정가30%16,100
판매가16,100
개정판 | 바깥에서 표지 이미지

리디 info

* 본 도서는 <바깥에서 - 모리스 블랑쇼의 문학과 철학>의 개정판입니다.


개정판 | 바깥에서작품 소개

<개정판 | 바깥에서> 『바깥에서』는 모리스 블랑쇼의 소설과 다양한 텍스트들을 톺아보며 그의 독특하면서도 현재적인 사유를 드러낸다. 이 책은 현대 프랑스 철학을 주도하는 많은 철학자들에게 영감을 주어온 작가로서의 블랑쇼를 바라보면서, 동시에 문학적이면서 정치철학적인 그의 사유를 설명한다. 이 책은 책의 중심을 잡고 있는 ‘바깥’뿐만 아니라, 목소리, 글쓰기, 작품, 공동체 없는 공동체, 소통 같은 개념들을 블랑쇼의 텍스트 안에서 정교하게 설명한다. 또한 난해하게만 느껴지는 블랑쇼의 사유가 실제로는 타인과의 관계, 1인칭적인 지배로부터의 탈피, 진정한 소통에 대해 논했음을 드러내며, 블랑쇼에게 있어 정치적인 것은 무엇인지를 끊임없지 질문하고 탐구해 나간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블랑쇼가 문학에서 발견하는 소통의 근거와, 정치적인 것으로서의 빈 중심을 사유하며, 그의 사유가 지닌 여러 결들을 재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 서평

1인칭의 지배를 넘어 타자들의 목소리를 듣다!
문학과 철학의 바깥에서 마주하는 블랑쇼 사유의 현재적 의미!


“여느 성급한 독자가 믿고 있는 것 너머에서, 죽음이라는, 이 죽어 감이라는 사건 아닌 사건에 대한 블랑쇼의 지속적인 관심이 생각하도록 하는 것 너머에서, 모리스 블랑쇼는 나타남의 빛 가운데서 삶과 산다는 것만을 사랑했었을 것이고, 그것만을 긍정했었습니다.”
― 자크 데리다, 「영원한 증인」

모리스 블랑쇼에 대해 우리는 그를 이 시대의 독창적인 사상가들 중 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독창적’인 사상가라는 말을 새롭고 영향력이 큰 어떤 담론을 생산하는 이론가로 이해한다면, 독자들은 망설일지도 모른다. 그의 사상이 푸코나 들뢰즈, 데리다처럼 명성과 함께 사유가 명시적으로 드러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블랑쇼는 실제로 지난 반세기 동안 프랑스 담론의 장을 차례로 지배했던 실존주의, 하이데거주의, 구조주의, 니체주의와 같이 철학 담론의 장을 지배해 온 특정 사조들 중 어떤 것도 그가 대변하거나 주도한 적이 없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자신이 공식적으로 속해 있다고 여겨지는 문학이라는 장르에서 있었던 주도적 운동들(이를테면 초현실주의, 누보로망, 기호학 등) 중 어느 것에도 명시적이든, 암묵적이든 참여한 적이 없다. 그는 강의나 강연을 한 적도 없고, 공식적 자리에 나타난 적도 없으며 누군가와 논쟁을 한 적도 없다. 뿐만 아니라 인터뷰를 하지도 않았으며, 사진조차 구하기 어려운 작가이다. 이런 현실을 고려한다면 어쩌면 블랑쇼는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말할 수 있다. 심지어 ‘모리스 블랑쇼’라고 불리는 ‘그 누구’일 뿐이라고 대답할 수도 있을 것이다. 블랑쇼는 오히려 종교적인 힘을 가졌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그를 드러내지 않은 채 프랑스 현대 철학자들에게 그의 사상을 스며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블랑쇼 자신은 어떤 특정 단어로도 수렴하기 어려운 사상가였다. 그렇다면 ‘블랑쇼’로 대변되는 ‘그 누구’의 철학은 어떻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인가? 그는 여전히 안개에 싸인 채, 난해한 사상가로 남아 있어야 하는 것일까?
이번에 그린비출판사에서 개정증보판으로 발간되는 책 『바깥에서』는 이와 같이 은둔의 철학자로서 오직 그의 책을 읽는 것으로만 만날 수 있는 모리스 블랑쇼의 철학과 그의 풍부한 개념, 그리고 그의 사유 방향을 펼쳐 내는 매우 깊이 있는 연구서이다. 숭실대 철학과 교수이자 그린비출판사에서 발간되고 있는 블랑쇼선집위원회 기획위원인 박준상 선생이 이전의 원고들과 개정증보판을 위해 새롭게 추가한 원고들을 더하여 블랑쇼의 사유의 다양한 결들을 보여 준다. 블랑쇼를 읽은, 혹은 읽을 예정인 독자들이 언제나 부딪히는 블랑쇼의 어려운 개념들, 이를테면 바깥과 소통, 공동체 없는 공동체, 글쓰기와 중성적인 것, 목소리의 정치 등과 같은 개념들을 저자가 직접 블랑쇼의 글들을 세밀하게 톺아보며 독자들에게 설명한다.


근대성에 조종을 울린 사제
저자는 블랑쇼의 사유야말로 20세기의 극점에 다다랐던 서양의 잠재력과 근대성의 모든 힘들이 쇠진되어 가는 장소에서 전개된다고 말한다. 지난 50년간 프랑스에서는 여러 사조들이 집결되고 흩어져 가고 있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근대성을 뒷받침했던 이념적 지주들(인간의 주체성, 신, 예술의 자율성과 절대성, 예술가의 내면성, 공동체의 이념 등) 자체가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현상학자인 마를렌 자라데르(Marlène Zarader)는 그 몰락의 과정에 블랑쇼가 있었다고 말한다. 그는 “근대성의 한가운데에서, 환상에서 깨어난 세기, 자신의 파탄을 역설적 사유의 대상으로 삼은 세기의 표징, 즉 블랑쇼라는 지고의 상징이 떠올랐다”고 말하며 블랑쇼 사유의 현재성을 드러낸다. 블랑쇼의 사유는 근대성의 환상이 부서져 가는 곳, 한마디로 말해 인간의 힘과 능력의 확신에 대한 환상이 깨어져 나가는 장소에 대한 사유라 할 수 있다. 그는 한편으로는 건조하고 냉정하게, 다른 한편으로는 단호하고 열정적으로 이성적 사유 능력의 최고주권이라 할 수 있는 주체의 사라짐을 말한다. 또한 변증법적으로 구성된 개념적 절대 존재가 어떻게 존재의 바깥(Dehors)으로 향할 수 있는지, 독일 낭만주의자들이 강조한 예술가의 고유성과 절대성이 어떻게 예술가의 주변성으로 드러나는지에 대해 논의한다. 심지어 그는 세계 변혁의 이론으로서의 맑스주의가 어떻게 단순히 타자의 발견으로 귀결되는지도 설명한다. 블랑쇼는 근대성이 쌓아 올렸던 거대한 이념 더미들을 태우는 불꽃을, 그리고 그 더미들이 타고서 남은 잿더미를 보여 준다. 말하자면 블랑쇼는 이 불꽃, 이 잿더미로 우리는 부르는 목소리이다. 그는 그 잿더미 가운데에서, 근대성 전체를 회상하며 죽음의 미사를 집전하고 근대성의 조종을 울리는 ‘사제’가 된다. 그 울림 가운데 그는 어떠한 구성적 이론도 더 이상 전해 주지 않지만, 다만 우리를 우리 자신과 맞닥뜨리게 한다. 우리가 가졌던 환상을 직시하게 하는 것이다.

바깥, 한계 상황이자 소통의 장
블랑쇼가 근대성에 조종을 울리는 사상가라 하여 그를 사유를 사회‧문화‧정치 이론으로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의 일부로 볼 수도 있지만, 그는 포스트모더니즘 바깥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정확히 서술하자면 그가 향해 나아가는 지점은 모든 문화가 그 영향력을 상실하게 되는 곳이다. 그 지점은 죽음, 병, 고독, 추방 등 한계 상황 가운데 ‘나’의 자기 동일성이 의문에 부쳐지는 지점이다. 또한 그곳은 모든 문화의 바깥이며, 가치체계를 가능하게 하는 세계와 구성적 담론, 그리고 예술의 문화‧사회적 의미, 나아가 인간의 모든 의식적 가치 부여가 무효가 되는 곳이다. 그 지점은 인간의 유한성이 극적으로 드러나는 장소, 불가능성의 장소, 죽음의 장소이다, ‘바깥’, 즉 문화‧세계의 바깥을 말하는 블랑쇼의 사유를 다시 바라보게 되면, 그의 사유가 일종의 비극적 사유이며 세계에서 추방된 자의 사유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블랑쇼의 사유는 비극과 추방으로 끝나지 않는다. 비극과 추방으로만 환원될 수 없는 어떤 지점이 존재한다. 우리는 비극적 사유 안에 개입하는 긍정적인 계기를 읽어야만 한다. 블랑쇼는 자아의 불가능성, 말하자면 자기 긍정의 궁극적 불가능성과 세계의 불가능성을 말하지만, 그 불가능성 가운데 하나의 긍정이, 나와 타자 사이에 ‘우리’라는 가능성이, 날것의 소통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것을 발견다. 여기서 나와 타자의 소통은 문화 바깥에서, 또한 모든 정치‧경제‧철학‧이념의 지평 바깥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이 소통은 죽음으로 나아가는 존재이자 죽음을 드러내는 존재인 인간의 유한성의 나눔이자 바깥의 분절로서, 바깥으로의 탈존으로서 숨결을 나누는 것이며, 죽음 가운데 숨 쉬는 생명을 나누는 것이다.

공동체 없는 공동체
죽음 가운데 숨 쉬는 생명의 나눔을 말했던 블랑쇼는 이 소통의 가능성을 ‘공동체 없는 공동체’로서 묘사한 바 있다. 공동체가 없는 공동체가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어떤 독자들은 ‘공동체 없는 공동체’라는 개념을 수사적인 표현으로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블랑쇼는 ‘공동체’를 조화된 상태로 생각하는 독자들에게 매우 깊고 진지한 질문을 던진다. 블랑쇼는 질문한다. 왜 공동체는 어떤 원리, 기준, 이념, 즉 어떤 동일성들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생각될 수 없는가? 이 동일성들의 바탕에는 이미 인간 본질에 대한 정의, 다시 말해 인간과 그 자신과의 관계, 자아와 자신과의 관계에 대한 정의가 놓여 있지 않은가? 왜 이러한 인간 본질에 대한 정의로부터만, 그에 따르는 동일성으로부터만 타자를 이해하고, 타인과의 관계를 이해하는가? 결국 인간 본질에 대한 정의로부터 구성될 수 있는 공동체에서는 구성원들 전체가 ‘경제적’ 목적에 봉사해야 하는 하나의 원자들로 환원되지 않는가? 블랑쇼는 지적한다. 그 정의에 부합되지 않는 타자들을 배척하는 것이 당연한, 우리가 상상하는 그 공동체는 결국 전체주의적 공동체라는 사실을 은연중에 폭로한다. 블랑쇼는 ‘공동체’에 대한 우리의 관념의 실체를 드러내며, 공동체의 본질에 대한 우리의 사고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한다.
블랑쇼는 바타유의 공동체에 대한 생각(어떤 공동체도 이루지 못한 자들의 공동체를 의미한다)에서 어떤 가능성을 발견하며, 내재주의와 전체주의를 넘어서 있으며 전체의 고정된 계획은 없는 공동체의 가능성을 찾는다. 기구, 조직, 이념, 바깥, 동일성, 정체성 바깥에 존재하는 공동체는 나와 타인의 관계, 나와 타인의 함께 있음을 규정한다. 그 공동체는 개체의 확대로서의 전체의 실현이 아니며, 전체에 종속된 개체의 의식에 기초하지도 않는다. 블랑쇼가 말하는 공동체 없는 공동체 안에서 나와 타인의 관계는 각자 모두가 소유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어떤 고정된 공동의 속성에 의해 규정되지 않는다. 바로 그럴 때, 개체나 전체의 본질을 전제하지 않을 때, 오직 그럴 때만 블랑쇼는 어느 것으로도 환원될 수 없는 ‘우리’라는 존재가 드러난다고 말한다. 우리의 존재는 공동-내-존재이다. 그것은 나의 고유한 내면성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나의 존재 자체를 내가 결정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말한다. 블랑쇼가 말하는 공동체 없는 공동체란 실현 불가능한 것이라고 지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블랑쇼는 이 이루기 힘든 공동체, 동일성에 근거를 두고 있지 않고 동일자의 억압을 거부하는 공동체, 오히려 타자의 발견과 차이의 발견으로 역설적으로 지속되는 공동체에 대한 요구가, 나와 타인의 관계에서 취소될 수 없다고 본다. 나아가 공동체 없는 공동체에 대한 요구는 우리의 미래가 모든 정치적 구도의 설정에서 고려될 필요가 있음을 보여 준다. 결국 블랑쇼는 우리에게 말한다. 이 드러나지 않은 공동체에 대한 요구를 정당화하고 있는 이유는 ‘우리’라는 존재의 지고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타자와의 관계가, 가시적인 계획이나 목적, 기구, 이념, 철학에 따라 한정될 수 없음을, 고정화‧사물화될 수 없음을 말하기 위해 블랑쇼는 우리에게 다시 한 번 ‘공동체 없는 공동체’를 말한다.

글을 쓴다는 것 그리고 말을 한다는 것
블랑쇼의 책들이 난해하게 느껴졌던 것처럼 블랑쇼의 소설들(『하느님』을 제외한)은 독자들에게 익숙한 ‘독서’라는 것을 매우 특이하게 경험하도록 한다. 그의 소설들은 읽어 내려 갈수록 지워져 가는 것 같고, 작품은 독자들에게 ‘이해’ 대신 침묵으로 미끄러져 내려가는 것 같다. 블랑쇼는 자신의 소설에서 언어의 현전(현재)을 보여 주고자 했다. 언어의 중심에 어떤 사실이나 메시지, 사상을 주장하기 위해 제시된 명제들이 아니라 바로 타인(타인으로서의 독자)과의 관계가 있음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블랑쇼의 소설에서는 그가 만들어 놓은 허구적으로 구성된 공간도 무너뜨리면서 다만 관계만을 바로 이 순간에 현시시키고자 하는 몸짓이 있다. 그러한 점에서 그의 소설은 설사 철학적 명제들과 표현이 그 안에서 보인다 하더라도, 모든 것을 규정하고 설명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인간을 가르칠 수 있다고 전제하는 어떤 철학책의 반대편에 놓여 있다.
블랑쇼는 언어를 말하기 이전, 자아에 대해 한 번 더 비판한다. 언어가 의식의 투명성을 그대로 보존해서 표현해 줄 수 있고, 또한 의식의 힘도 그대로 매개해 줄 수 있다고 믿는 자아는 이론 안에 출구를 열어 두지 않고, 반대로 가두어 둔다. 게다가 그 자아는 모든 것을 대상화할뿐더러 그의 말을 듣고 읽는 자까지 대상화한다. 블랑쇼의 관점에서 보면 언어에 대한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1인칭의 지배는 중립적인 지식의 욕구가 될 수 없으며, 인간들에게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언어 일반에 대한 지배의 욕구를 드러낼 뿐이다.
자아의 언어에 대한 지배 욕구에서 돌아선다는 것은, 블랑쇼에게 있어 침묵으로 돌아섬을 뜻한다. 물론 그의 침묵을 언어와 한 번도 접촉해 본 적도 없고 언어에 의해 오염되어 본 적도 없는 자연의 침묵이자, 언어 이전의 침묵과는 다르다. 침묵은 완전히 언어를 차단하고 맹목적이거나 기계적으로 입을 다문다는 의미가 아니다. 블랑쇼는 말해야 하며, 나아가 말로 절규해야 한다고 말한다. 말과 절규의 뒷면에서 들리는 말과 들리는 절규가 아닌 침묵이 말해야 한다. 침묵은, 즉 인간의 침묵 또는 언어의 침묵은 백지 상태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단어들의 열림이자 언어를 추진하는 동력이며 언어의 진정성을 보증하는 음악이다. 또한 말하는 ‘나’와 타자를, 언어에 함께 연루되어 있는 글 쓰는 자와 독자를 잇는 통로이다. 나아가 언어의 현재로서의, 침묵인 음악으로서의 그 언어 덕분에, 닫힌 책이 ‘작품’으로 열리고, 또한 타자와의 관계가 열린다. 블랑쇼는 말을 한다는 것과 글을 쓴다는 것이 어떤 시점에서 관계에 내맡겨질 수밖에 없는 ‘주사위 던지기’(un coup de dés)라고 말한다. 블랑쇼에게 우리는 언어를 통해 1인칭의 권력을 행사할 수 없고, 오히려 나 자신이 나의 바깥으로 뒤집어지고, 그것에 나 자신을 맡길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언어로 규정된 사회적 관계를 넘어 우리가 단수적(singulier) 관계 자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공동의 어떤 자가 될 수 있어야 한다. 블랑쇼에게 말하는 것과 쓴다는 것은 이러한 것이다. 1인칭의 권력을 포기하고, 하나의 타자에게로 나아가 ‘나’를 뒤집어 열고, 그에게 이후의 일을 맡길 수밖에 없는 내기, 그것이 바로 블랑쇼가 말한 글쓰기와 언어의 본질일 것이다.


저자 프로필

박준상

  • 국적 대한민국
  • 학력 파리 8대학 철학과 박사학위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학과
    연세대학교 수학과
  • 경력 숭실대학교 철학과 교수
    사단법인 철학아카데미 상임위원
    전남대학교 철학연구교육센터 연구원

2015.11.30.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소개

프랑스 파리 8대학 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숭실대 철학과 교수로 있다. 저서로는 『빈 중심: 예술과 타자에 대하여』, 『바깥에서: 모리스 블랑쇼의 문학과 철학』이, 역서로는 『카오스의 글쓰기』, 『무위(無爲)의 공동체』, 『기다림 망각』, 『밝힐 수 없는 공동체/마주한 공동체』 가, 논문으로 「원음악(原音樂): 예술의 동근원」, 「몸의 음악: 예술에서의 모방과 반모방에 대한 물음」, 「불협화음」 등이 있다.

목차

2판의 머리말
약어표
들어가면서

1장 | 바깥과 소통의 경험
1. 가능한 죽음과 자아의 가능성
2. 불가능한 죽음과 자아의 불가능성: 하이데거와의 대화
3. 불가능한 죽음과 소통의 경험
4. 소통의 장소로서의 바깥

2장 | 공동체 없는 공동체 65
1. 분리 가운데서의 타자와 나
2. 책임성으로부터의 소통
3. 타자의 현전: 레비나스와의 대화
4. 타자를 위한 ‘나’
5. ‘우리’를 위하여
6. 공동체 없는 공동체

3장 | 글쓰기에서의 중성적인 것
1. ‘제3의 인물’
2. 글쓰기에 나타나는 ‘그’
3. 본질적 언어(문학적 언어)
4. 음악으로서의 언어(말라르메)
5. 목소리로서의 이미지

4장 | 글쓰기로부터 소통으로
1. 무차별적 유한성
2. 언어 내의, 언어로 인한 유한성(헤겔-코제브)
3. 유한성의 언어로서의 잡담
4. 참여로서의 미메시스(플라톤)
5. 소통에 대한 요구로서의 유한성의 목소리
6. 목소리의 진리

결론을 대신하여_목소리의 정치

부록 | 다른 텍스트들
블랑쇼의 또 다른 긍정
모리스 블랑쇼, 얼굴 없는 ‘사제’
언어 안의 자연
『죽음의 선고』에 대하여
언어의 현전
한 어린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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