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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을 보라 1 상세페이지

인문/사회/역사 역사

이 사람을 보라 1

인물로 보는 한국 민주화운동사
소장종이책 정가22,000
전자책 정가27%16,000
판매가16,000
이 사람을 보라 1 표지 이미지

이 사람을 보라 1작품 소개

<이 사람을 보라 1> 암흑의 시대를 밝히며 길을 내면서 묵묵히 걸어간 사람들,
희생과 헌신으로 점철된 삶을 살아간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어두웠던 군사독재 암흑시대의 악(惡)과 싸워 민주주의시대를 여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피 흘리고, 죽고, 모진 고난을 당했다. 그 끝 모를 어둠 속에서 등불을 밝혀 절망에 빠진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누구이며, 어떻게 싸웠고, 어떤 고난을 당했던가?

어둠이 어둠을 몰아낼 수는 없다. 오직 빛만이 어둠을 몰아낼 수 있다. 이 책은 어둠에 빛을 비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대의(大義)를 위해 자신을 바친 사람들을 통해 지난 역사를 돌아본 이야기이다. 이 책은 사람의 정신과 인격이 시련과 고난을 이겨내고 어떤 높이에 이를 수 있는가를 보여주며, 그리하여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가며, 진정 가치 있는 삶은 어떤 것인가를 깨우쳐준다.



출판사 서평

‘민주화’의 결실을 누리는 현대인들이 잊지 말아야 할 이야기

E. H. 카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하면서, “과거는 현재에 비추어질 때에만 이해될 수 있고, 또 현재도 과거에 비추어질 때에만 완전히 이해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나치 하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간 독일의 다하우 수용소 기념관 입구에는 미국의 철학자 조지 샌타야나가 한 다음과 같은 말이 걸려 있다. “과거를 잊어버리면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게 되어 있다.” 오늘을 더 완전하게 이해하기 위해, 그리고 지난날의 과오를 다시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과거를 돌아보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 과거를 잊지 않기 위해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끔찍했던 군사독재시대를 돌아보며, 그 암흑시대에 빛을 비추어 민주화시대를 연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책이 간행됐다. 이 땅의 민주화와 인권 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 가운데 가려 뽑은 29명의 인물 이야기를 생생하게 담아낸 [이 사람을 보라]가 그 책이다. 저자는 30여 년에 걸쳐 나라의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김정남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비서관)이다.
김수환 추기경은 민주화운동에 대한 김정남의 헌신을 기리면서 “그의 발길이 미치지 않고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민주화운동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었다. 인권변호사 가운데 한 사람인 홍성우 변호사도 그를 가리켜 “70~80년대 대부분의 주요 민주화운동 사건을 막후에서 조직한 매우 중요한 사람이다. 철저하게 막후에서 활동해 이름이 안 드러났을 뿐이지, 민청학련 이후 등장한 여러 활동가들 중에서 아주 뚜렷한 존재라 할 수 있다”면서 ‘민주화운동의 막후 비밀병기’였다고 회고했다. [이 사람을 보라] 는 저자가 40여 년에 걸친 우리의 민주화 역정을 돌아보며 쓴 [진실, 광장에 서다](2005, 창비 간행)에 이어 7년여 만에 펴낸 두 번째 민주화운동 기록이다.

[진실, 광장에 서다]가 1970~80년대의 주요 민주화운동 사건을 연대순에 따라 서술한 책이라면, [이 사람을 보라]는 그 사건을 만들어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민주화운동과 개인사의 결합이다. 민주화운동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만나 함께 일하며 고락을 나눈 사람들에 관한 체험의 기록이므로 이야기가 직접적이며 구체적이다. 알려지지 않았던 많은 비화들과 일화들도 밝히고 있다. 특히 박종철 사건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한편의 기록 영화를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당시의 사건을 재현시키고 있다.

각 분야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수행하며 살아가던 사람들이 왜 순탄한 길을 버리고 그 거칠고 험한 가시밭길을 걸어가야만 했던가? 그들을 가열한 역사의 현장에 뛰어들게 한 생각은 무엇이었나? 어떤 역사적 상황에서 무엇을 했으며, 어떤 고난을 당했고 그것을 어떻게 이겨냈던가? 이 책은 역사적 계기와 인간의 의지가 결합하여 어떻게 역사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보여주면서 그 주체가 되는 고난에 찬 ‘인간’의 역정을 동시에 드러내준다. 비범한 인격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도 보여준다. 그러므로 이 책은 구체적인 인물들의 삶을 통해 기록한 ‘살아 있는 역사’이자 아름답게 살다 간 사람들에 대한 ‘인물 열전’이라 할 수 있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인물 열전’
[이 사람을 보라]는 민주화운동 30년의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주요한 인물들과 더불어 민주화운동의 숨은 조력자였으면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을 함께 다루고 있다. 김수환 추기경, 지학순 주교, 박형규 목사, 법정 스님, 김승훈 신부 같은 정신적 지도자들, 장준하, 리영희 같이 수난 속에서도 양심을 지키며 진실을 밝힌 지식인, 이소선과 전태일, 박종철 같이 온몸을 불살라 악한 시대를 고발한 사람들, 이병린·이돈명·황인철·조준희·홍성우·강신옥·조영래 변호사 같이 인권변론에 생애를 바친 사람들의 삶을 저자의 체험을 바탕으로 생생하게 ‘증언’해 준다. 특히 이 책은 엔 인권변호사들이 ‘어떻게 양심수들의 소신을 지켜주고, 그 사건들을 어떻게 역사에 기록하게 해주었는지’를 소상히 밝히고 있어 인권변론의 작은 역사책이기도 하다. 그리고 지난날의 검찰과 법원에 대한 준엄한 고발장이기도 하다.

민주화운동을 뒤에서 도운 콜레트 노정혜 수녀, 김지하 시인의 어머니인 정금성 여사, 윤보선 대통령의 부인 공덕귀 여사, 구속자가족협의회를 이끈 김한림 선생 같은 이들의 숨은 이야기도 민주화운동이 어떤 수고와 희생 끝에 이루어졌는가를 증언해주고 있다.

민주화운동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사람들
시대의 고통을 함께 아파한 대표적인 성직자로는 김수환 추기경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말이 있어야 할 때 추기경의 말이 있었으며, 누군가가 말해야 할 때 추기경이 나섰다”고 했다. “그의 말은 암흑 속의 불빛이었으며, 탁류 속의 맑은 물이었고 국민의 복음이었다”고 회고했다. 김수환 추기경은 그 어두웠던 시대에 우리에게 희망이자 ‘또 하나의 정부’로서 늘 국민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1971년에 국가보위특별법 제정을 비난하는 성탄 메시지를 발표해 박정희가 방송을 중단시키는 초유의 사태를 일으켰고, 1972년에는 ‘7·4 남북공동성명에 관한 메시지’를 발표해 유신정변이 일어날 것을 미리 일깨워 주었다. 광주민주항쟁 당시인 1980년 5월 20일엔 전두환을 만나 “더 이상 피를 흘려서는 안 된다”고 설득했다. 감히 누구도 섣불리 할 수 없는 일들을 ‘고뇌와 외로운 결단’ 끝에 묵묵히 행동으로 옮겼다. 특히 1987년 광주민주항쟁 7주기 기념미사를 직접 집전하고,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이 조작되었다?는 성명이 발표될 수 있도록 김승훈 신부를 독려해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 그를 두고 “우리 곁에 살다간 성자”라고 한 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말이 되었다. 또한 그의 사후 그를 기리는 추모행렬은 종교와 사상, 세대 등의 벽을 넘는 일대 사건이었다.

1970년대 초반 박정희정권에 의해 세상이 경직되어가고 있을 무렵, 지학순 주교는 1971년 10월에 원주에서 부정부패규탄대회를 열어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당시 규탄의 대상은 지금도 문제가 되고 있는 5·16장학회(현 정수장학회)였다. 또한 지학순 주교는 박정희정권이 긴급조치 위반으로 목을 죄어올 때 법정출두 명령을 거부하며 발표한 ‘양심선언’으로 민주화운동을 새롭게 전개시켰다. ‘양심선언’이 아주 유효한 투쟁수단의 하나가 되었던 것이다. 한국 천주교회가 세상에 눈을 뜨게 만들고,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창립되는 계기를 마련한 이도 지학순 주교였다. 이처럼 그는 맨 처음 길을 내면서 고난의 길을 걸어간 사람이었다.

유신시대 이래 민주화의 과정에 이르기까지 치열하게 살았고, 그 때문에 아주 혹독한 시련과 박해를 받았던 사람으로 박형규 목사가 있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투옥되었다가, 석방된 후에도 수도권 특수지역 빈민선교 사건으로 또다시 구속되는 등 여섯 번이나 투옥되는 혹독한 고난을 당했다. 그가 받은 시련 가운데 가장 혹독했던 것은 1983년의 예배방해로부터 시작해 장장 6년간의 노상예배로 이어진 제일교회 박해 사건이다. 당시 60여 시간에 걸친 감금과 살해위협을 겪고, 백주의 테러로 생명이 위태롭게 된 일도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핍박에도 그는 얼굴에 노기를 띠거나 화를 내기는커녕 늘 겸손해하며 환하게 웃는 무애(無碍)의 얼굴을 한 사람이다.

사람들에게 ‘무소유’의 가르침을 주고, 불교를 대중 속에 더욱 가깝게 접근시킨 법정 스님. 하지만 그가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최초의 선승이었음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는 1970년대 초 재야 민주화운동의 구심점으로 출발한 민주수호국민협의회에 처음부터 운영위원으로 참여했는데, 이는 불교계에서 민주화투쟁에 참여한 첫 번째 기록이다. 법정 스님은 이후 1973년 11월 민주수호국민협의회를 중심으로 한 (유신 이후 최초로 나온 재야의 반유신투쟁의 선언인) 지식인 15인 선언에도 이름을 올리고, 그해 12월에 장준하와 백기완이 헌법개정 1백만인 청원운동본부를 구성할 때도 운동본부 30명 중 한 명으로 참여했다. 그러던 중 1974년 민주회복국민회의 창립총회 참여를 마지막으로 민주화투쟁의 현장에 공식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법정 스님은 두고 온 동료들을 잊지 못해, 어디에 나가 남 앞에서 강연하거나 글쓰는 일을 삼가고, 추운 날 감옥에 갇힌 동료들을 떠올리며 자신도 추위와 허기를 이겨냈다.

인권이나 민주화를 위한 단체를 만들 때 공동대표나 발기인, 또는 그 병풍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던 김승훈 신부. 그는 평소 “당신께서 다 아십니다”라는 말을 즐겨 썼다. 당시 시대의 짐을 떠맡아 지는 것은 두렵고 위험한 일이었다. 그래서 김승훈 신부는 무섭고 두려운 마음을 “괜찮아, 하느님께서 알아서다 잘해주실 거야” 하고 자신을 달래면서 그 집을 짊어졌던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1987년 광주민주항쟁 7주년 기념미사에서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이 조작되었다?라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명의의 역사적 성명을 발표한 것이었다. 이 사건뿐만이 아니었다. 1976년 3·1절 기념미사 때는 강론을 맡고, 1982년 4월 15일 한국교회사회선교협의회의 ?부산 미문화원 방화 사건에 대한 우리의 견해?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하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패륜인가, 혁명인가
저자는 10·26 사건을 “김재규의 고독한 혁명”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그 혼자서 한 혁명이라는 뜻과 함께, 아무도 그의 혁명을 이해하거나 알아주지 않는 혁명”이라는 의미로 썼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혁명가적 의지와 결단으로 10·26 사건을 벌였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 근거는 한 변호사가 김재규를 접견하면서 남긴 녹음 테이프였다. 그 녹음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변호사와 범행 동기, 범행 현장의 실체적 진실을 놓고 대화한 것이었는데, 묻는 변호사보다 김재규의 답변이 논리정연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이러한 확신을 바탕으로 당시 10·26 사건의 전말과, 당시 김재규와 사건을 함께 실행에 옮겼던 그의 부하들의 뒷이야기까지 상세하게 밝히고 있다.

어머니, 우리 시대의 어머니들
군사독재시대의 민주화운동 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은 대부분 남자다. 하지만 모든 일에 그렇듯, 민주화운동의 역사에 커다란 역할을 한 여성들도 많다. 다만 전면에 잘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이 책에서는 그중에서 대표적인 인물 7명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1987년 광주민주항쟁 7주기 기념미사 때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이 조작되었음을 밝히는 성명이 발표될 수 있게, 사제단과의 연락을 도맡아 해준 사람 황국자 여사. 당시 서울대교구 홍보국장이던 함세웅 신부에게 이 성명의 초안을 전달하기 위해 끊임없이 오간 그의 노력과 지극정성이 있었기에 성명이 발표될 수 있었다. 황국자 여사(참여정부에서 국정원장을 지낸 고영구 변호사의 부인)의 지극한 발길이 유월항쟁을 크게 도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여성사회학의 이론적 기반을 닦고, 지은희, 신혜수, 이미경, 장하진, 고은광순, 오한숙희, 최영희 등 내로라하는 여성운동가들이 한결같이 대모로 삼는 이는 바로 이효재 선생이다. 그는 1969년부터 12년 동안 이화여대 ‘한국여성자원개발연구소’ 소장을 맡아 화곡동에서 도시주민 공동체운동을 전개했는데, 이는 시대보다 20~30년은 앞서 간 것이다. 이화여대 졸업생이 쫓기는 신세가 되면 제1차 피신처가 되는 곳이 이효재 선생의 집이었다. 점차 그의 집은 많은 인사들이 도피과정에서 한 번쯤 거쳐가는 관문 같은 역할을 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1978년에 성래운 등 해직교수들이 중심이 되어 발표한 반유신교육선언인 ?우리의 교육지표? 사건 때 모두가 몸을 사리며 서명을 꺼릴 때 유일하게 서명한 대학교수가 이효재였다. 1986년에는 한국여성민우회를 창립하고 초대 민우회장이 되는가 하면, 1990년대 들어서는 정신대 문제를 인류가 해결해야 할 숙제로 보고,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를 만들어 수요집회를 조직, 상례화했다.

고은 시인의 [만인보]에도 등장하는, 명동 가톨릭여학생관(지금의 전진상교육관)의 콜레트 노정혜. 가톨릭여학생관은 1970~80년대 당시 가족을 감옥에 둔 구속자 가족들이 찾아가 위안 받고,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점차 단순한 휴식 공간에서 구속자 가족들의 모임인 구속자가족협의회의 모임과 활동의 산실로 바뀌어갔다. 1975년 2월 인혁당 사건의 진상조사 발표를 위한 모임도 여기서 진행되었고, 70~80년대 시대의 징표와 진실을 전달하고 전달 받는 비밀통로 같은 역할을 한 월요강좌도 여기에서 이루어졌다. 무엇보다 여학생관은 한국 민주화운동의 은밀한 해외 통로 역할을 했다. 김지하의 양심선언, 전태일의 전기 [불꽃이여, 나를 태워라], 김지하의 재판기록 [김지하는 누구인가], 김재규의 육성녹음, 광주민주항쟁의 기록 ?분노보다 슬픔이? 등이 일본에서 알려질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가톨릭여학생관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렇듯 가톨릭여학생관은 한국 민주화운동의 주요 포스트였고, 국내와 해외를 연결하는 통로였다. 그리고 그 모든 수발을 들어준 것이 콜레트 노정혜였다. 그는 프랑스에서 태어나 28살 때인 1962년에 한국에 와서,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을 사랑했고,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한결같이 애쓴 사람이었다. 지금은 신림동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다.

시인 김지하의 어머니, 정금성. 서강대 김윤의 어머니, 김한림, 윤보선 전 대통령의 부인, 공덕귀. 이들은 당시 어느 한 사람만의 어머니가 아니었다. 박정희 군사독재 시절, 이 땅에서 정의를 부르짖다 감옥에 들어가야 했던 모든 젊은이들의 어머니였고, 구속자 가족의 표상이었으며, 가족운동을 몸으로 창시하고 이끈 사람들이었다. 구속자가족협의회가 만들어진 후 어머니들은 독재권력의 기세에 눌려 한숨짓는 어제의 구속자 가족이 아니라 자식들을 대신해 독재권력과 싸우는 주체적인 어머니로 바뀌어간다. 외신 기자들을 만나 국내의 민주화투쟁 소식과 자료를 전하고 때로는 기자회견도 했다. 《동아일보》 광고 사태 때는 격려광고를 내는 데도 앞장섰다. 어머니들은 더 나아가 치마나 보따리 속에 구명운동 서명철, 성명서, 옥중서신, 항의문, 진정서, 호소문 등을 넣고 다니며 요소요소에 전달하는 등 비밀연락의 역할도 했다. 3·1 민주구국선언이 탄생할 수 있었던 ‘원주선언’은 정금성 여사가 운반해간 자료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시대의 지식인의 표상
독립군 출신으로 결코 일본군 장교 출신의 박정희에게 질 수 인간적으로 뒤질 수 없다면서 매일 아침 냉수마찰을 하고, 자신을 가다듬는 수기와 명상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장준하. 그는 단연 박정희의 정적이었다. 박정희가 유신쿠데타를 단행하자, 이듬해 개헌청원 1백만인 서명운동을 벌이다가 징역 15년을 선고받았으며, 석방된 뒤 1975년 8월 17일 포천의 약사봉에 올랐다가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만다. 묘소를 이장하면서 세상에 처음 공개된 그의 유골이 진실을 밝혀달라고 외치고 있다. 박정희 앞에서 “일제가 그냥 계속되었다면 당신은 만주군 장교로서 독립투사들에 대한 살육을 계속했을 것 아닌가”라고 면박을 주었다는 장준하의 생애가 자세히 실려 있다.
또한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등의 명저로 젊은이들의 눈을 열어주고 새로운 정신을 불어넣어주었던, 시대의 스승 리영희. 그의 책은 때문에 인생의 행로가 달라진 사람들이 많았다. ?농사꾼 임군에게 보내는 편지?로 구속기소되어 재판을 받을 때, 판결문에서의 범죄사실이 공소장에 있는 공소사실과 글자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았다는 사실은 지금도 사람들에게 쓴웃음을 짓게 한다. 그는 언론사에서 두 번 퇴직당하고, 교수직에서 두 번 해직되고, 아홉 번 연행에 다섯 번 감옥에 가고, 세 번이나 형사재판을 받는 수난을 겪었다.

젊은이들의 필독서 [민족경제론]을 쓴 박현채. 그는 한때 백아산 빨치산 문화부 중대장이었고, 1차 인혁당 사건으로 2년의 징역형을 살고, 신민당 대통령 후보 김대중의 경제정책이라 할 수 있는 [김대중 씨의 대중경제 100문 100답]의 주요 저자였다. 그는 당시 경제평론이나 경제 관련 원고를 쓸 수 있는 몇 안 되는 전문가로서, 민족경제학파의 중심이요 야전군 사령관이었다.

가시밭길을 선택한 인권변호사들
인권변호사 4인방이라고 부르는 이돈명, 황인철, 조준희, 홍성우 변호사를 비롯해, 인권변론 효시이자 대부였던 이병린 변호사, 법정에서 감옥으로 간 강신옥 변호사, 그리고 [전태일 평전]을 남긴 조영래 변호사 등의 생애도 감동적이다..
조영래는 1975년에 감옥에 있던 김지하와 여러 번에 걸쳐 서신을 나눈 끝에 김지하의 양심선언을 집필했고, 1976년에는 저 유명한 [전태일 평전]을 탈고했다. 엄혹했던 시절 수배 속에서도 그의 활동은 멈추지 않았다. 저자는 [전태일 평전]의 첫 독자의 영광을 누린 뒤 조영래의 원고를 일본정의평화협의회의 송영순에게 보냈고, 그것이 일본에서 [불꽃이여, 나를 태워라]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그때 일본판의 저자 이름은 김영기(金英琪)였는데, 저자에 따르면 이는 당시 이 책이 출간되는 데 힘을 보탰던 김정남, 조영래, 장기표 세 사람의 이름에서 한 자씩 따서 만든 이름이다.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
저자는 유신시대, 군사독재시대가 저지른 가장 큰 폐해로, 인류 진보와 세계 평화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우리 민족의 자질과 우수한 역량은 물론 창의적이고 훌륭한 인물들까지 민주 대 반민주의 대결구도 속에서 모두 소진되는 결과를 가져온 것을 꼽는다. 지금 세계를 호령하는 ‘한류’도 우리나라가 민주화되었기에 가능한 것이며, 이런 민주화의 저력과 에너지를 바탕으로 비로소 문화가 꽃피는 현상이라고 평가한다. 그만큼 민주화운동의 역사는 우리 역사를 바꾼 위대한 사건이다. [이 사람을 보라]는 그 과정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찾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을 기억하기 위해 씌어진 책이다. 이 책은 2006년 5월부터 격월간 잡지 《공동선》(도서출판 공동선)에 연재되고 있는 글들 가운데 28편을 가려 뽑아 새로 다듬고 구성한 것이다.


저자 프로필

김정남

  • 국적 대한민국
  • 출생 1942년
  • 학력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학사
  • 경력 김영삼 정부 교육문화수석비서관
    1987년 평화신문 편집국장

2021.05.14.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소개

저자 : 김정남

서울대 문리대 정치학과를 나왔다. 1964년 6?3 한일회담반대투쟁의 배후 인물로 구속된 이래 30여 년 동안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다. ‘민주회복국민회의’의 결성을 주도하는가 하면,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을 위한 국민연합’의 활동을 지원했다. 각종 성명서 작성, 구속 인사에 대한 변론자료 준비와 구명운동, 구속자 가족들에 대한 지원, 한국 민주화운동 해외 지원 세력과의 연대, 수배자들을 위한 은신처 마련과 수발 등으로 민주화운동을 막후에서 뒷받침하고 도왔다.

양심선언운동의 제창, 최종길 교수 고문치사 사건과 인혁당 사건의 진상조사 및 폭로, 김지하 양심선언 발표, ‘민주구국헌장’의 작성과 발표, ‘보도지침’ 폭로도 그의 주도나 지원 속에 이루어졌다.

그는 민주화와 인권을 요구하는 수많은 성명서를 막후에서 작성했는데, 그 가운데는 김영삼의 무기한 단식투쟁(1983) 때 발표한 「국민에게 드리는 글」과 「김대중, 김영삼의 8?15 공동성명」도 들어 있다. 1987년에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조작되었다는 사실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에 알리고, 이를 고발하는 사제단의 성명서를 작성하여 6월항쟁이 폭발적으로 전개되는 데 기여했다 .

1987년에는 《평화신문》의 창간에 적극 참여하여 편집국장을 지냈으며, 김영삼 정부 때 대통령 교육문화수석비서관을 역임했다. 김수환 추기경은 민주화운동에 대한 헌신을 기리면서 “그의 발길이 미치지 않고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민주화운동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목차

개정판 서문
초판 서문

1. 그는 또 하나의 정부였다-김수환
2. 길을 내면서 간 사람-지학순
3. 환하게 웃는 무애(無碍)의 얼굴-박형규
4. 무소유의 삶-법정
5. 어느 민족주의자의 길-장준하
6. 시대의 촛불-리영희
7. 패륜인가, 혁명인가-김재규
8. 우리는 큰 빚을 지고 있다-이소선과 전태일
9. 아직도 못다 한 이야기-박종철
10. 당신께서 다 아십니다-김승훈
11. 재야의 원류, 인권 변호사의 효시-이병린
12. 따뜻한 가슴을 지닌 진짜 변호사-이돈명
13. ‘무죄’라는 말 한 마디-황인철
14. 인권변호의 중앙-조준희
15. 인권변론 한 시대-홍성우
16. 법정에서 감옥으로-강신옥
17. 짧은 삶, 큰 자취-조영래
18. 아름다운 사람-황국자
19. 여성학, 여성운동의 대모-이효재
20. 민주화운동의 숨은 포스트-콜레트 노정혜
21. 어머니 사랑의 힘-정금성
22. 어머니, 우리 시대의 어머니-김한림
23. 나, 그들과 함께 있었네-공덕귀
24. 몸으로 일구어낸 한살림-박재일
25.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송영순
26. 민족경제론-박현채
27. 희생과 헌신으로 점철된 삶-박중기
28. 변혁운동의 좌절인가?-이수병

한국 현대사 연표(1960~87) /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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