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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의 정치 상세페이지

인문/사회/역사 역사

건국의 정치

여말선초, 혁명과 문명 전환
소장종이책 정가30,000
전자책 정가30%21,000
판매가21,000
건국의 정치 표지 이미지

건국의 정치작품 소개

<건국의 정치> 고려 말 공민왕 대부터 조선의 건국에 이르는 40여 년(1352~1392)간의 고려 역사와 정치, 그리고 사상을 다루고 있다. 이 시기는 한편으로는 고려사에 속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후에 조선 건국으로 현실화 된 정치 운동과 사상투쟁이 격렬하게 진행된 시기였다.

이 책은 한국 역사에서 가장 큰 문명 전환의 시기를 14세기 말과 19세기 말로 파악하고, 14세기 말의 변혁이 오늘날 한국인의 전통적 정체성의 기원이며, 그런 의미에서 이 시기에 대한 연구는 오늘날의 한국인을 만든 전통의 기원을 탐색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맥락하에서 저자는 여말초선의 혼란기 속에서의 정치와 사상, 경제와 문화의 유기적 관계를 총체적으로 짚어보고 있다.


출판사 서평

1. 꿈틀대는 역사, 새로운 문명의 탄생

1352~1392. 이 40여 년은 고려왕조를 되살리기 위한 공민왕의 마지막 노력이 좌절된 후 스러져간 고려를 위한 진혼곡이 울려 퍼진 시기이자, 성리학이라는 새로운 이념으로 무장한 신진 세력이 구시대와의 치열한 정치투쟁과 사상투쟁에서 승리를 거둠으로써 탄생한 새로운 국가, 조선을 위한 찬가가 울린 시기이다.
이 책은 500년 고려왕조가 마지막 불꽃을 사른 시기이자 조선이라는 새로운 문명, 새로운 시대의 맹아를 배태한, 고려사인 동시에 조선사를 구성하는 여말선초 40여 년의 역사와 정치, 사상과 문화를 종합적으로 아우른 최초의 연구이다. 이 시기를 다룬 그동안의 책들이 사회사, 정치사, 사상사 등 한 부문만을 다룬 역사서로 그친 데 비해, 『건국의 정치』는 역사와 정치, 사상이 별개가 아니라 역사라는 나무에서 함께 자라난 두 개의 줄기라는 관점을 가지고 역사 속에서 정치와 사상을 함께 바라본다. 그래서 이 책은 딱딱한 정치사상을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 속에서 정치가들과 사상가들의 삶을 따라 대화를 하고, 이야기식으로 그들의 사상을 풀어감으로써 역사와 정치의 문외한도 우리 역사상 가장 뜨거웠던 여말선초 40여 년의 치열한 역사―잦은 전쟁과 외세의 간섭, 부패하고 무능한 내정 등으로 인해 고려왕조가 직면해야 했던 위기와,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제시된 새로운 패러다임과 정치운동, 정신운동이 활화산처럼 폭발하는 격동의 현장―를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게 하는 커다란 미덕을 보여준다.

이 책은 공민왕 대에 가장 큰 정치적 변동이 본격화되었으며, 이 변동이 화해할 수 없는 두 시대의 종언과 탄생의 시발점이 되었다는 점에서 이 시대가 완전하게 새로운 문명으로의 전환을 이룬 시기라고 본다. 또한 이 책은 한국 역사에서 가장 큰 문명 전환의 시기를 14세기 말과 19세기 말로 파악하고, 14세기 말의 변혁이 오늘날 한국인의 전통적 정체성의 기원이며, 그런 의미에서 이 시기에 대한 연구는 오늘날의 한국인을 만든 전통의 기원을 탐색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정치의 많은 부분은 운명적이다. 결정의 중대성에 비해 인간은 미래를 확실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먼저 해야 한다. 이 책에는 자신과 왕조, 국가에 다가올 운명을 알지 못한 채, 폭풍우처럼 몰아닥친 시대의 요구와 소명 앞에서 자신의 이념과 신념에 모든 것을 걸어야 했던 수많은 정치가와 사상가들의 삶의 역사가 녹아 있다.


2. 고려의 가을

1170년 무신의 난 이후 100여 년간 계속된 무신들의 집권은 고려 쇠망의 기원이 되었다. 이 기간 동안 국가의 공공성은 마비되었으며, 국가는 무신들 간의 사적 탐욕을 위한 격투장으로 전락하였다. 부패와 무기력 속에 기운을 소진해가던 고려는 1231년 몽고의 침입을 계기로 급격하게 몰락하기 시작했다. 외적으로는 원의 압박에 시달리고, 내적으로는 원의 세력을 등에 업은 권문세족들의 전횡과 부패로 인해 국가의 기반은 점점 잠식되어갔다. 왕과 정치 지도자들은 국제 정세를 읽고 이에 대처할 수 있는 안목도, 의지도 갖지 못했고, 불안정하고 치열한 권력투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들의 일신상의 안위만을 염려하는 무력한 개인들에 불과했다. 고려 말의 권문세족은 원과의 밀착, 관직의 사적 분배, 토지로 대표되는 경제력의 독점을 통해 국가를 사유화했다. 왕의 의지만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었다. 제도뿐만 아니라 정치세력 자체를 재편해야 했다.

[공민왕의 개혁과 개혁의 위기 그리고 자주에의 모색]
공민왕은 치열한 왕위 경쟁을 이겨내고 22세에 왕위에 올랐다. 공민왕은 우선적으로 민생과 정치 운영 방식을 개혁함으로써 고려 왕조 초기의 건전한 정치로의 복귀를 꾀했다. 공민왕은 조세와 재판, 형벌 등의 대민 업무를 정비하고 면세와 복지 정책을 실시함으로써 보다 많은 백성들을 구휼하고자 했으며, 전민변정도감을 다시 설치해 권문세족들의 토지, 노비, 고리대금업과 관련된 문제들을 혁파하고자 했다. 정치 운영의 측면에서는 인재 양성과 선발, 관리의 임면과 성적 평가 등에서의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인사제도를 개혁하고, 국가의 기강을 세우기 위해 감찰과 사법기관을 정비하며, 왕의 친정과 원활한 정치적 의사소통을 통해 국가를 재건하고자 했다.

그러나 공민왕의 이러한 시도는 끊임없이 저항에 직면하였다. 제일 처음으로 왕에게 저항한 것은 왕이 가장 불우한 시절을 보낸 원에서 왕을 보좌한 측근들인 연저수종공신(燕邸隨從功臣)들이었다. 부실한 권력 기반을 다지기 위해 공민왕은 측근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는데, 공민왕 즉위 초 논공행상에 따라 고위직을 차지한 다수의 측근들은 권력을 잡자 자신들끼리 치열한 권력투쟁을 벌이는 동시에 원활한 정치적 의사소통을 가로막고 비공식적인 정치 운영을 꾀함으로써 왕의 개혁 의지를 가로막는 주요 세력이 되었다. 이들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왕을 위협하는 데까지 나아갔고, 결국 기철 일파를 제거하기 위해 거사를 일으켰다가 실패하자 왕을 무력화하기 위해 조일신은 난을 일으키기까지 했다.

조일신의 난 이후 공민왕은 정치적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 개혁을 중단했고, 공민왕이 집권한 뒤 위축되었던 권문세족들은 다시금 세력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원의 영향력을 이용하여 끊임없이 공민왕을 압박하였으나, 왕은 홍건적의 난 등 한족의 봉기로 인해 내정이 불안했던 원의 정세를 이용하여 기철 및 원 황실과 인척 관계에 있던 권신 등을 제거함으로써 반격에 나섰다. 거사에 성공한 뒤 왕은 인사 교체를 단행해 거사 참여 인사와 측근들을 주축으로 비상 내각을 구성하고 원에 점령당했던 영토의 회복에 나서 쌍성총관부를 원에 빼앗긴 지 99년 만에 되찾는 성과를 올렸다. 왕은 기철 등을 죽인 뒤, 고려 주권의 공공연한 유린자였던 정동행성의 이문소를 혁파하고 원의 연호를 정지하였으며, 고려의 옛 관제를 부활시켰다.

이를 계기로 대원 관계는 근본적으로 바뀌어 형식적인 사대 관계에 머물게 되었다. 공민왕은 이 사건을 1세기에 걸친 원의 지배하에 원의 문명에 동화된 지식인들의 현실 인식을 깨부수고 고려의 우수성과 독립성에 대한 자부심을 고취하고 고려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계기로 인식했다.
그러나 원의 영향력에서 벗어남으로써 모든 가능성이 열리는 것처럼 보였던 이 시기는 비운과 좌절의 시기이기도 했다. 홍건적의 침입과 왜구의 침탈로 인해 공민왕이 즉위 초에 가졌던 자신감과 희망은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고, 왕과 신하들, 백성들 간의 신뢰는 무너져갔다. 개혁 의지는 갖고 있으되 당대의 세계에 대한 포괄적 이해와 인식을 결여하고 있던 공민왕의 개혁 정책은 내외의 저항에 가로막혀 고려를 획기적으로 개선시키지 못했고, 계속되는 불운에 왕은 좌절하고 세계에 대한 합리적 이해와 초월적 이해, 그리고 현세적인 정치적 노력과 불가해한 힘에의 의존 사이에서 방황했다. 이러한 방황은 공민왕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고려의 정치가들과 지식인들에게 전형적인 것으로, 고려의 정신세계는 끝내 이를 극복해내지 못했다.

[개혁의 좌절과 실정]
공민왕은 고려가 배출한 가장 유능하고 이상적인 왕 중의 하나였지만, 그도 고려를 살려내지는 못했다. 공민왕은 자신의 능력에 대한 과신으로 인해 정치적 의사소통에 실패하였으며 전쟁의 여파로 인해 민심과 신하들의 지지를 잃었다. 이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365년 자신의 정신적 지주였던 노국공주가 죽자 왕은 정신적 아나키 상태에 빠졌고,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노국공주를 추모하기 위한 토목공사와 불공, 성적 유희에 탐닉함으로써 국가 경제를 파탄시키고 인간적 파멸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집권 기간 동안 일정한 세력을 형성한 신하들을 가차 없이 숙청해온 공민왕은 당대의 가장 유력한 지식인들이자 개혁적 정치 집단인 이제현 그룹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중앙정치에 아무런 기반을 가지고 있지 않던 신돈을 발탁하여 그에게 정치를 일임함으로써 권문세족뿐만 아니라 초야의 신진 유학자들의 제거를 꾀했다. 그러나 공식적인 과정을 통해 정치적 자질이 입증된 적이 없는 신돈의 집권은 기존의 정치 세력의 반발을 낳았다. 따라서 정치 개혁에의 포부는 가졌으나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자질과 기반 및 조건을 결여하고 있었던 신돈은 극단적인 처방과 공포의 조성을 통해서만 겨우 정권을 유지할 수 있었고, 결국에는 현실의 벽을 넘지 못했다.

왕의 신임을 잃어가던 신돈은 반역을 모의했다가 발각되어 처형당하고 공민왕은 친정을 선포하고 다시금 개혁을 천명한다. 하지만 자신의 개혁을 지지하고 이를 수행해나갈 수 있는 집단과도 결별하였으며 한 개인으로서나 제왕으로서나 건전한 판단력을 상실한 그의 앞에는 좌절만이 놓여 있을 뿐이었다. 개혁은 좌절되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 좌절과 어둠의 시대에 새로운 희망의 싹이 움트고 있었다. 이제현 이래 확산되기 시작한 성리학이 이색을 중심으로 결집되어 새로운 정신적, 정치적 운동으로 개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3. 혁명: 이성계의 집권과 조선의 건국

공민왕이 환관 최만생과 자제위 홍륜에 의해 암살된 후 우왕이 왕위에 올랐고, 다시 한번 고려의 재기를 위한 시도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우왕 역시 보수 반동적인 이인임이라는 커다란 장애물을 뛰어넘지 못하고 정치적 책무를 방기해버린다. 우왕은 전통적인 규범을 공공연히 파괴하고 왕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품위까지 저버린 채 향락의 세계에 안주하게 된다.

한편 명의 침략 의도에 대한 의심 때문에 대외 관계에서 곤경을 겪던 이 시대에, 조선 건국의 토대를 이룬 정치 집단이 등장하고 정치 세력화하게 된다. 주로 학문적인 영역에서 성장해왔던 신진 유신들이 대외 정책으로 친명 사대 외교를 적극 주장하며 처음으로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을 표명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고려 백성들의 비참한 삶을 목격하고 학문의 진정한 의미를 되묻게 되면서 성리학을 역사의 대안으로 제시하였다. 이 과정에서 조선 건국의 실질적인 두 주역인 이성계와 정도전이 만나게 된다. 군사와 학문, 정치 분야에서 뛰어난 기량을 가지고 있던 이들은 전쟁과 유배 생활을 통해 당대의 고려에 내재된 고통을 이해하고 내면화했으며, 자신들의 역사적 사명을 발견했다. 최영이나 이제현, 이색, 정몽주 등도 역시 새로운 시대를 열어나갈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으나, 이들은 서로의 능력과 기회를 결합시키지 못했고, 새로운 시대와 이념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갔다(그러나 정몽주는 뒤에 조선 유학의 사표로 부활하면서 조선의 이념적 건국자가 된다). 1388~1392년까지의 5년 동안 고려 정국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하게 요동쳤다. 이성계를 중심으로 결집된 신진 성리학자 중 일부와 신흥 무장 세력이, 왕실과 이색을 중심으로 온건 개혁파를 결집하여 이인임의 정치 노선으로 복귀하고자 한 조민수파와 권력투쟁을 벌인 끝에 승리를 거두고 마침내 조선을 건국하였다.

공민왕의 개혁이 “고려성”에 대한 반성을 기초로 하고 있었다면, 이 시대의 개혁은 정치와 문명에 대한 보편적인 성찰로 나아가고 있었다. 이 시대에는 무엇이 역사에서 옳은 행동이며, 무엇이 항구적인 국가의 원리인지에 대한 논쟁이 폭발하였고, 이런 논쟁들은 권력투쟁에서 불가결한 부분을 차지했다. 구체적인 정치적 대안의 선택을 놓고 강경파와 온건파가 분열하고 대립했다. 이들의 실력대결이 종식되었을 때 고려는 멸망했고, 조선이 건국되었다.

[위화도 회군과 조선의 건국]
공민왕이 시해된 뒤 긴장이 고조되기 시작한 대명 관계는 1388년 명이 단교와 더불어 고려의 북방 영토를 점령하겠다고 선언하면서 결정적인 파탄 상태에 돌입했다. 평소 명의 태도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고 있던 고려는 명이 운남 정벌에 성공하자 다음은 고려 차례가 될 것이라는 강한 두려움을 갖게 되고, 명은 고려의 세공마가 부실하다는 이유를 들어 사신 장자온을 구속하고 고려와의 외교 관계를 중단한다. 이에 고려는 외교적 노력을 포기하고 군사적으로 대응할 준비를 한다. 대응책을 놓고 고려의 정치권은 분열되었고, 결국 강경파가 승리하여 요동 공격에 나섰다. 공민왕 대 후년의 숙원 사업이었던 공요책攻遼策은 요동 지역에 대한 명의 의지가 확고한 데다 고려의 국력의 한계로 인해 포기되었었으나, 대명 관계가 계속 불안한 상태를 유지하면서 드디어 다시 수면 위로 등장한 것이다. 그러나 이성계와 조민수는 위화도에 도착한 뒤 1주일 동안 움직이지 않다가, 왕명 없이 회군을 결정했다. 반역이 감행된 것이다. 마침내 교전이 개시되었고, 최영의 군대는 이성계의 공격 앞에 패퇴했다. 미련을 버리지 못한 우왕은 회군파를 급습했다가 실패하고 마침내 폐위되었다.

이후 조선이 건국되기까지 개혁파는 몇 차례의 치열한 권력투쟁을 벌인다. 우왕과 최영을 제거한 뒤 위화도회군의 정치적 의미를 두고 조민수파와 1차 권력투쟁을 벌여 승리를 거둔 개혁파는 국가 운영의 모든 측면을 공공화시키기 위해 혁명적인 개혁안을 제시하였다. 개혁파들은 전대의 개혁이 어떤 이유로 실패했는가에 대한 역사적 반성에서 출발하여, 보편적인 국가 운영 원리와 문명에 대한 성찰을 키워나갔다. 이들은 토지의 사적 소유권 자체를 완전히 부정하는 급진적인 전제 개혁, 전제 개혁을 통해 확보된 안정적 재정을 토대로 하여 국가의 “공공성”을 제고시키기 위한 관제 개혁, 지방관의 자질 향상과 직급 상향화 그리고 지방관에 대한 엄격한 감찰 대책 수립에 의한 지방정치의 개혁, 적절한 보수 지급과 체계적인 지휘 체계의 확립을 통한 군정 개혁을 개혁의 급선무로 삼았다.

한편 개혁이 급진화되면서 반개혁파의 거센 저항에 부딪힌 개혁파들은 개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마침내 왕조의 교체를 추진하게 되었다. 반개혁파들은 고려왕조의 존속을 위해 싸웠다. 하지만 위화도회군을 “불신不臣의 역모”로 규정한 명의 입장 표명에 따라 수세에 몰렸던 이성계파는 “우왕과 창왕은 제거되어야 한다”는 갑작스런 명의 입장 선회를 기점으로 반개혁파의 숙청에 나섰다. 결국 정몽주가 암살됨으로써 개혁에 대한 모든 저항은 끝나고 말았다.

[조선의 국가 원리]
1392년 조선이 건국되었지만 국호는 여전히 고려였고, 제도도 고려의 것을 고치지 않았다. 그것은 조선의 건국이 공양왕이 이성계에게 왕위를 선양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으며, 왕조 교체에 따른 민심의 동요를 막기 위한 정치적 고려에 따른 것임을 뜻한다. 그러나 정도전은 조선의 문명적 근원을 기자조선에 둠으로써 한반도에 존재했던 다른 모든 국가들의 역사적 의미를 부정했고, 조선이 고려의 제도나 관습을 상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이 지향하고 이해했던 세계관과 정치관은 고려와 근본적으로 달랐다.

조선의 건국자들은 성리학이라는 새로운 세계관을 수용하고, 그에 의해 스스로의 정치적 경험을 반성함으로써 500여 년이나 지속된 안정적인 정치체제를 만들어냈다. 정도전의 성리학은 단순한 형이상학이 아니라 구체적인 정치체제론으로, 인간의 정신적 완성을 위해 제도를 체계적으로 설치하고, 그것을 현실 정치제도에 긴밀하게 연관시키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리고 그 목적에 반할 수 있는 정치권력의 위험성을 통제하기 위해 세심한 정치제도와 이념, 관행이 만들어졌다.

성리학자들에게 시간과 공간의 분리는 무의미하며, 세계는 지금 바로 여기에 있다. 정신적이고 보이지 않는 것조차도 철저하게 현세화하고자 했던 성리학자들에게 세계는 분열의 위기로 가득 찬 것이었으며, 그들은 죽음을 통해서라도 그 분열을 뛰어넘고자 했다. 그들에게 죽음은 영원한 삶, 즉 생의 완전한 개화이다. 여기에서 현재의 역사뿐만이 아니라 그것이 가야 할 역사의 이념으로부터 자신의 역사적 의미를 이해하는 인간이 탄생한다. 이것이 공자가 제시했던 “춘추적 인간”이며, 조선의 정치적 인간들의 뿌리를 이루고 있는 정신이었다.


4. 문명의 전환, 우리 앞에 놓인 역사

여말선초 40여 년 동안 고려는 수차의 전쟁과 기근, 폭정을 겪었지만,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매우 창조적인 시대였다. 고려 말의 실천적 지식인들은 국가의 공공성 붕괴, 그리고 불교의 부패와 유학의 현실도피로 인해 발생한 정신적 공백 현상을 목격하고, 도탄에 빠진 백성들의 고난을 함께 슬퍼하였다. 성리학을 새로운 문명과 국가 이념으로 받아들인 이들은 당대 고려의 정신적 혼란과 정치적 위기를 자신들의 역사적 사명으로 받아들여, 정신적이고 정치적인 혁명운동에 헌신하였다.

조선은 세계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새로운 견해에 기초하여 건국되었다. 여말선초의 성리학은 어떠한 초현세적인 힘이나 원리에도 의존하지 않고, 오로지 현세 속에서 인간을 완성하려고 했다. 이를 위해 인간의 정신적 완성을 위한 제도를 체계적으로 설치하고, 그것을 현실 정치제도와 긴밀하게 연관시켰다. 여말선초의 성리학자들은 민생의 정치적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면서도, 동시에 인간성의 완성을 목표로 하지 않는 정치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이 시기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문명 전환의 시대였다. 대외적으로는 (오늘날의 미국보다 더 강했던) 세계의 제국 원이 명으로 교체되는 시기였고, 대내적으로는 불교가 성리학으로, 고려가 조선으로 바뀌는 대전환의 시대였다. 당대인들 역시 그 점을 명백히 인식하고 있었다. 또한 이 시기는 역사와 정치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것들―투쟁, 전쟁, 혁명, 독재, 개혁과 반개혁(기득권층의 저항)―이 압축적으로 분출된 시기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것은 대한민국의 건국 이후 우리가 걸어온 역사적 노정에서 우리가 직접 경험한 것이기도 하다. 역사는 반복된다. 여말선초 40여 년의 역사는 바로 오늘 우리 앞에 놓인 역사이자, 우리가 맞고 있는 많은 문제들에 해결책을 시사하고 있는 역사가 아닐까?



저자 소개

저 : 김영수


서울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영남대 정외과 교수, 대통령실 연설·기록비서관으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장면·윤보선·박정희-1960년대 초 주요정치지도자 연구』(2001, 공저), 『한국정치사상사』(2005, 공저), 『건국의 정치: 여말선초, 혁명과 문명전환』(2006), 『변용하는 일본형시스템: 현장보고』(2008, 공저), 『세종 리더십 이야기』(2010, 공저) 등이, 역서로 『해양국가 일본의 구상』(2005, 공역), 『리더십강의』(2000) 등이, 논문으로 「근세 도쿠가와 일본의 정치와 윤리: ‘赤穗事件’에 나타난 武士道의 ‘정치-윤리’의 갈등을 중심으로」(2004), 「조선건국의 정신적 기원: 14세기 주자학 수용의 내적 계기를 중심으로」(2010) 등이 있다.

목차

머리말

제1장 고려의 가을
1. 역사로의 귀환
2. 고려의 가을
1) 원의 고려 통치: 지배와 보호의 역설
2) 원 지배하의 고려 정치: 권문세족과 탐욕의 시대
3) 코스모폴리타니즘과 고려의 개명: 성리학의 유입과 혁신 운동의 대두


제2장 개혁과 전쟁: 공민왕 대 전반기의 정치
I. 개혁
1. 공민왕 원년의 개혁과 반동: 권문세족과의 전쟁
1) 공민왕의 즉위 과정: 2전 3기
2) 개혁의 목표: 태조 왕건으로의 복귀와 ‘무일’의 정치
3) 민생 개혁: 권문세족과의 투쟁
4) 정치 운영의 개혁: 인사, 사정, 소통
5) 개혁의 장애: 개혁이냐 측근이냐
2. 개혁의 위기와 반원 정책: 조종의 법을 회복하라
1) 개혁의 중단과 친원 세력의 집권: 군주를 떨게 하는 기철 일족
2) 공민왕의 반원 정책과 독립: 너의 부모는 고려 사람이다
II. 전쟁
1. 새로운 시작: 지루한 개혁
2. 전쟁: 개혁의 실패와 신뢰의 파괴
1) 전쟁의 서막: 국가가 장차 망하겠구나
2) 제1, 2차 홍건적의 침입: 개경의 함락과 정세운의 대첩
3) 전쟁 영웅들의 처형: 정치의 슬픔과 정몽주의 비탄
4) 왕과 신하의 불신: 김용의 반란―누구를 믿을 수 있겠는가
5) 원의 침입: 덕흥군의 난과 민심 이반―누가 전하를 따르겠습니까
3. 방황: 고려의 정신적 방황―하늘의 길, 인간의 길


제3장 좌절과 실정: 공민왕 대 후반기의 정치
I. 좌절
1. 신돈의 대리 정치: ‘세상을 떠나 독립한 사람’의 정치
1) 공민왕의 정치적 좌절과 신돈의 집권 배경: 노국공주의 죽음
2) 신돈의 정치 세력 재편과 권력 강화: 유자는 나라에 가득 찬 도둑이다
3) 신돈의 개혁 정치: 노예가 말하기를, 성인이 나왔다
4) 신돈 정치의 악화
2. 공민왕의 슬픔과 타락
1) 공민왕의 유희와 토목공사: 백성은 왕의 하늘이요, 먹는 것은 백성의 하늘이다
2) 공민왕의 불교 신앙: 왕도냐 불도냐
3. 신돈의 처형

II. 실정
1. 마지막 개혁 시도
2. 타락과 암살
3. 명의 건국과 요동 정벌
4. 암흑 속의 빛: 새로운 대안 성리학


제4장 우왕 대의 폭정과 절망
1. 어둠과 빛: 권문세족 정치의 부활과 성리학의 도전
1) 제1차 권력투쟁: 우왕의 정통성에 대한 의혹
2) 제2차 권력투쟁: 성리학의 정치적 등장과 신진 유신들의 저항
3) 개혁을 위한 최후의 노력
4) 제3∼5차 권력투쟁: 친왕파의 제거와 이인임의 승리
2. 폭정: 폭군과 권신의 정치
1) 우왕의 폭정: 생존을 위한 자기 파괴와 풍자
2) 권신들의 전횡: 최영의 딜레마와 이색의 침묵

3. 위기: 외교와 국방의 실패
1) 대외 정책의 위기: 대명 관계의 악화
2) 왜구와 해적의 시대: 백성들의 절망과 메시아에의 열망
4. 대안의 발아: 칼과 성리학의 만남
1) 이성계의 정치적 부상: 전쟁, 입신, 역성혁명의 꿈
2) 유배와 혁명의 성리학: 정도전의 시련과 이성계와의 만남


제5장 혁명: 이성계의 집권과 조선 건국
I. 권신 정치의 붕괴: 최영·이성계의 연합과 무술정변
II. 요동 정벌과 위화도회군: 망국의 서막
III. 조선의 건국
1. 개혁: 특권의 전면적 해체와 재분배
1) 전제 개혁: 인정은 밭둑에서 비롯된다
2) 지방정치의 개혁: 수령이 합당하면 백성이 복을 받는다
3) 관제 개혁: 『주례』의 제도적 상상력
4) 군정 개혁: 왜구 문제 해결의 실마리
2. 폭풍의 계절: 권력투쟁과 조선의 건국


제6장 영혼의 전쟁: 유교-불교 논쟁과 ‘이단’의 발견
I. 불교의 정치사상: 법Dharma의 통치와 국가의 보호
1. 석가모니의 정치적 이상: 진실한 법의 통치와 공화주의
2. 동아시아의 불교와 정치: 왕권과 묘법의 보물

II. 이단의 탄생: 여말선초의 척불론과 이理의 에스프리―천하에는 두 도가 없다
1. 여말선초의 불교 비판: 불승은 세상의 큰 좀벌레이다
2. 불교의 정치적 지위에 관한 논쟁: 양검兩劍의 대립
3. 정치가의 불교 신앙과 정치 행위에 관한 논쟁: 불도는 왕도와 공존할 수 있는가?
4. 기복 불교 비판: ‘기복’의 정치에서 ‘위민’의 정치로
5. 불교를 위한 변명: 오랑캐의 도도 도이다
1) 유불동도론: 유자나 불도가 다같이 조금도 다름이 없다
2) 호불론: 불교를 위한 변명


제7장 조선의 국가 원리와 조선인
1. 조선의 헌정과 제도: ‘정치적인 것’의 성찰
1) 내적 정치제도론: 정신의 제도화와 예치―백성은 가르치지 않을 수 없다
2) 외적 정치제도론: 욕망의 제도화와 정치―임금에게는 음란과 방탕이 쉽게 온다
2. 조선인: 춘추적 인간과 이理의 모험―군자는 몸을 희생하여 인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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