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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편지 상세페이지

사진과 편지작품 소개

<사진과 편지> 사진(寫眞)과 편지(便紙)

오늘도 또 보았다.
같은 자리에 같은 모양으로 누구를 기다리는 듯이….
어떤 해수욕장 ―
어제도 그저께도 같은 자리에 같은 모양으로 누구를 기다리는 듯이 망연히 앉아 있는 여인 ― 나이는 스물 대여섯, 어느 모로 뜯어보아도 처녀는 아니요 인처인 듯한 여인 ―
해수욕장에 왔으면 당연히 물에 들어가 놀아야 할 터인데, 그러지도 않고 매일 같은 자리에 같은 모양으로 바다만 바라보고 앉아 있는 여인 ―
이 여인에 대하여 호기심을 일으킨 L군은 자기도 일없이 그 여인의 앞을 수없이 왕래하였다.
"참 명랑한 일기올시다."
드디어 말을 걸어 보았다.
"네, 참 좋은 일기올시다."
붉은 입술 아래서 나부끼는 여인의 이빨 ― 그것은 하얗다기보다 오히려 투명되는 듯한 이빨이었다.


저자 소개

김동인 (金東仁)
1900. 10. 2. ~ 1951. 1. 5.
호는 금동(琴童), 필명은 춘사(春士).
1900년 10월 2일 평남 평양 출생. 일본 메이지학원 중학부와 가와바다미술학교에서 수학.
주요한(朱耀翰)‧전영택(田榮澤)‧최승만(崔承萬)‧김환(金煥) 등과 함께 문학동인지인 『창조』를 발간.
1919년 「약한 자의 슬픔」을 발표하면서 문단활동 시작.
마음이 옅은 자여」(1919), 「배따라기」(1921), 「목숨」(1921) 등과 같은 작품에서 이광수의 계몽주의문학에 맞서 예술지상주의적 경향을 표방하였다.
1923년에 첫 창작집인 『목숨』을 창조사에서 출간하였고, 『창조』의 후신인 『영대』를 발간하였다.
『영대』 동인으로는 『창조』 동인 외에도 김여제(金與濟)‧김소월(金素月) 등이 참가하였다. 1925년에는 「명문」, 「감자」, 「시골 황서방」과 같이 자연주의적 작품을 발표하여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1930년 부터「광염소나타」, 「광화사」, 「젊은 그들」(1930~1931), 「운현궁의 봄」(1933), 「왕부의 낙조」(1935), 「대수양」(1941) 등을 발표하였다.
1951년 1월 5일 서울 성동구 하왕십리동 자택에서 사망하였다.

목차

사진과 편지
명과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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