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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4권 상세페이지

인문/사회/역사 역사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4권

4월혁명, 독재자와 맞선 피의 항쟁
소장종이책 정가15,000
전자책 정가30%10,500
판매가10,500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4권작품 소개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4권>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제4권. 이번 4권의 주제는 ‘4월혁명’이다. 서중석 교수는 4월혁명을 한국 현대사의 분수령이며, ‘제2의 해방’으로 부르고 있다. 1950년대는 이승만 정권의 비리, 부정부패, 선거 부정, 악정, 폭정 등으로 숨이 턱턱 막히던 시기였다. “1950년대는 무기력, 체념, 암울, 불안, 절망, 이런 키워드로 상징된다. 이 책은 4월혁명의 의의를 극명하게 보여주며, 4월혁명 전후의 한국 사회를 반추하고 있다. 무엇보다 요즘 뉴라이트가 국부로 칭송하고 있는 이승만 정권의 폐해를 낱낱이 고발하는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의 시리즈


출판사 서평

민중이 이룬 거대한 승리, 4월혁명은 제2의 해방!
4월 그날, 천지를 진동한 함성은 독재의 총구보다 강했다

“그놈의 동상이 선 곳에는 민주주의의 첫 기둥을 세우고
어서어서 썩어빠진 어제와 결별하자”

한 사회를 바꾸고 새로운 시대를 연 혁명

한국 현대사 연구의 권위자 서중석 교수의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시리즈 4권. 서중석 교수는 이 시리즈를 통해 1945년 해방 공간에서부터 1987년 6월항쟁까지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굵직한 주제를 소개할 예정이다. 4권의 주제는 ‘4월혁명’이다. 서중석 교수는 4월혁명을 한국 현대사의 분수령이며, ‘제2의 해방’으로 부르고 있다. 1950년대는 이승만 정권의 비리, 부정부패, 선거 부정, 악정, 폭정 등으로 숨이 턱턱 막히던 시기였다. “1950년대는 무기력, 체념, 암울, 불안, 절망, 이런 키워드로 상징된다. 그 시대가 어떤 시대였는가를 이런 말로 나타낼 수 있다. 그야말로 미래도 희망도 보이지 않는 시대였다.” 그리고 1960년 드디어 민중이 일어섰다. 2월 28일 대구 학생 시위에서 4월 26일까지 이어진 4월혁명은 막힌 숨통을 틔운 사건이었고, 이승만 정권에 대한 총체적 결론을 내린 역사적 사건이었다. 무엇보다 한 사회를 바꾸고 새로운 시대를 연 혁명이었다. 이 책은 이런 4월혁명의 의의를 극명하게 보여주며, 4월혁명 전후의 한국 사회를 반추하고 있다. 무엇보다 요즘 뉴라이트가 국부로 칭송하고 있는 이승만 정권의 폐해를 낱낱이 고발하는 책이기도 하다.

항쟁인가, 혁명인가, 4월혁명에 서린 민주주의 고투

4월혁명을 가리키는 용어는 참으로 다양하다. 헌법에도 그냥 4·19라고만 돼 있는 것처럼 4·19라고 부르는 경우도 많았고, 또 4·19의거, 4·19학생혁명, 4·19학생운동, 4·19혁명, 4월혁명, 4월학생혁명, 3, 4월 항쟁으로 부르기도 한다. 서중석 교수는 이렇게 용어가 정리되지 않은 까닭을 4월혁명에 대한 연구와 토론이 활발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다음의 두 가지 이유 때문에 ‘4월혁명’이라고 부르는 게 가장 적절하다고 말한다. 하나는 2월 28일 경북 지방의 고등학생 시위부터 3·15 제1차 마산의거와 4월 11~13일에 있었던 제2차 마산의거를 거쳐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이 물러날 때까지를 총괄한다는 의미에서 4월혁명이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4월혁명이 던져준 역사적 과제가 반드시 4월 19일과 4월 26일, ‘피의 화요일’과 ‘승리의 화요일’에서 다 드러나는 건 아니라는 점에서다. 이승만을 하야하게 하고 자유당 정권을 붕괴시킨 건 아주 중요하지만, 우리가 4월혁명 정신이라고 부르는 또는 4월혁명의 의미를 살린 여러 가지 활동은 오히려 4월 26일 이후에 많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5·16쿠데타로 일단락된다고는 해도, 4월혁명 정신은 그 이후까지도 숨을 쉬면서 상당히 중요한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4월혁명’으로 불러야 적절하다는 것이다. 곧 4월 26일을 경계로 해서 그날까지는 이승만을 물러나게 하는 과정, 그 이후는 4월혁명 정신을 구체화하는 과정으로서 4월혁명 운동기 또는 4월혁명기로 나누어서 생각하는 게 좋으며, 그래서 4·19혁명보다 4월혁명이라고 부르는 게 좋겠다고 말하고 있다.
4월혁명은 1980년대에 이르러서는 민주화 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하기도 했다. 1980년대 중반 무렵부터 4·19 기념식이 열리는 곳에 학생들이나 민주화 운동에 나선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그러면서 5·18이 다가오면 5·18을 전후한 시기를 ‘5월 항쟁기’로 선포하고 ‘4월혁명이 제대로 이루지 못한 민주주의 혁명을 이제는 제대로 이루자’고 소리 높이 외쳤다. 곧 4월혁명은 1987년 6월항쟁까지 가는 데 5·18과 함께 큰 역할을 한 것이다.

“4·19는 난동”, 반성과 사죄는 이승만 사전에 없었다

“어제 일어난 난동으로 본인과 정부 각료들은 심대한 충격을 받았다.” 이승만 대통령은 4월 20일 오후 5시가 돼서야 처음 담화를 발표했다. 이 담화문도 미국이 압력을 가해서 겨우 발표한 것이었다. 자유당도 이날 처음 성명을 내고 “본당은 선량하고 순진한 학도를 선동하여 폭력 사건을 자행하게 한 장본인 및 그 도당의 악랄한 비국민적 만행에” 통탄을 금할 수 없다고 밝히고, 발포는 부득이했다고 강변했다. 이렇듯 이승만 정권은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거나 반성은커녕 시위한 사람들을 두고 ‘비국민’이라고 단정 지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4월 24일에 수습 방안을 발표했다. 이때도 이승만은 자신은 대통령직을 절대로 사임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자유당과 국무위원들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위기에 빠진 최고 권력자가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지는 대신 주변 사람들 탓으로 돌린 것이다.
25일, 4월혁명에 한 획을 그은 큰 규모의 시위가 전개됐다. 교수 300여 명이 모여 시국 선언문을 채택하고 시위에 나선 것. “학생의 피에 보답하라”라는 유명한 문구가 등장한 이 시위는 이승만 정권에 결정타를 먹였다. 이 시위를 필두로 “이승만은 물러가라”라는 구호가 등장했고, 그날 밤 10만 명이 넘은 군중이 몰려들어 시위를 벌였다. 그리고 4월 26일 ‘승리의 화요일’. 끝까지 버티던 이승만은 결국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4월 26일 오전 10시 20분경 계엄사의 선무용 스피커가 이승만의 사임을 알렸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승리의 화요일’이 온 것이다. 군중은 뛸 듯이 기뻐했다. 일제히 박수를 보내며 환호성을 올렸다. 떠나갈 듯 함성이 울리는 세종로 일대에서 일부 군중이 중앙청 정문으로 밀려들어갔다. 10대 소년들은 이승만 동상을 새끼줄에 묶어 끌고 다녔다. 흰옷을 입은 한 노인네는 덩실덩실 춤췄다. 해방의 날이 따로 없었다.”

꿈에도 그리던 자유, 1950년대를 끝장낸 혁명

4월혁명은 어떤 의의가 있는가. 우선 1950년대가 어떤 시대였는지 볼 필요가 있다. 1950년대는 무기력, 체념, 암울, 불안, 절망, 이런 키워드로 상징된다. 그 시대는 그야말로 미래도 희망도 보이지 않던 시대였다. 서울대 문리대 4·19 선언문에 담긴 것처럼 캄캄한 밤이었다. 나라를 빼앗기고 무단 통치를 받은 1910년대를 여러모로 떠올릴 수 있는 억압의 사회였다. 무엇보다도 1950년대는 보도연맹 집단 학살 사건, 거창 양민 학살 사건 등 대규모 민간인 학살이 초래한 공포 사회였다. 말을 못 하는, 입을 닫고 묵종해야 하는 사회 위에 건설된 반공 독재로 자유가 크게 억압받았고 인간의 사고, 사상이 심하게 위축됐다.
4월혁명은 이런 1950년대를 끝장낸 혁명이었다. 4월혁명으로 정말 꿈에도 그리던, 그렇게 갈구하던 자유가 찾아왔다. 그러자 문화인, 지식인, 학생들이 앞질러 만끽했다. 박정희 군사 쿠데타 정권조차 4월혁명이 마련한 민주주의의 큰 틀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5·16쿠데타를 일으키고 나서 석 달이 지난 1961년 8월, 정권을 민간 정부에 넘기겠다는 민정 이양이라는 것을 발표하게 된다. 그 발표에는 미국의 압력이 직접적으로 작용했다고 하지만 그와 함께 4월혁명의 큰 힘 때문에 그것을 배신할 수 없는 면이 아주 크게 작용했다.
또 4월혁명은 민족 자주에 대한 관심을 강하게 갖게 했다. 그러면서 통일 운동이 강력히 전개되었다. 교원 노조 운동과 같은 노동 운동도 활발하게 일어났다. 공무원 공채를 실시하고 공무원 임용령 등을 공포해 공무원 사회에 신선한 바람이 일기도 했다. 또 법치주의가 자리 잡기 시작한 것도 4월혁명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거창 양민 학살 사건을 신호로 해서, 제주 4·3 학살을 포함해 한국전쟁 전후 자행된 수많은 민간인 집단 학살 사건이 재조명된 것이었다. 이처럼 4월혁명과 같은 민주화 운동은 썩어빠진 어제와 결별하고, 우리 사회를 변모시키고 사회에 신선한 바람, 역동적인 힘을 부여하고 생기를 불어넣어 새 출발을 하게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 점에서 4월혁명은 헌법 전문에 마땅히 들어갈 만큼 중요한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저자 프로필

서중석

  • 국적 대한민국
  • 출생 1948년 8월 25일
  • 학력 서울대학교 대학원 박사
    연세대학교 대학원 석사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학사
  • 경력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 상임공동대표
    일본교과서바로잡기운동본부 공동대표
    1988년 신동아 기자

2019.01.07.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소개

저자 서중석은 1948년 충남 논산에서 출생했다.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9년부터 1988년까지 동아일보 기자로 재직했으며, 6월항쟁 당시 《신동아》 취재기자로 역사적 현장에서 그날의 사건들을 생생히 목격하고 기록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이며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 아시아 평화와 역사교육 연대 상임 공동대표, 제주 4·3사건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 회복 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다.

저자 김덕련은 서울대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2004년부터 2015년까지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에서 기자로 일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신문사 일을 하면서 틈틈이 역사 관련 책 작업을 함께해왔다. 《세계를 바꾸는 파업》, 《근현대사 신문》(2권), 《세계사와 함께 보는 타임라인 한국사》(5권)를 함께 쓰고 만들었다.
주요 저서로 《80년대 민중의 삶과 투쟁》 《한국 근현대 민족문제 연구》 《한국 현대 민족운동 연구 1·2》 《신흥무관학교와 망명자들》 《남북협상: 김규식의 길, 김구의 길》 《조봉암과 1950년대》(상·하) 《비극의 현대 지도자》 《배반당한 한국 민족주의》 《이승만의 정치이데올로기》 《한국 현대사 60년》 《이승만과 제1공화국》 《대한민국 선거이야기》 《지배자의 국가 민중의 나라》 《6월항쟁》 등이 있다.

목차

책머리에
연표

첫 번째 마당
항쟁인가 혁명인가
4월혁명에 서린 민주주의 고투 기억해야

두 번째 마당
대통령은 3·15 부정 선거 몰랐다?
이승만은 3·15선거 총기획자

세 번째 마당
부정 선거 할 이유,
이승만에겐 없었다?

네 번째 마당
부정 선거 노하우의 총결산
이승만 정권의 3·15 부정 선거

다섯 번째 마당
이승만 “백색 전제”에 맞서 떨쳐 일어선
1·2차 마산의거

여섯 번째 마당
4·19 그날, 천지를 진동한 함성은
독재의 총구보다 강했다

일곱 번째 마당
4월혁명 정신과 이승만 이념은 같다?
속보이는 궤변

여덟 번째 마당
이승만, 4·19 전에 이미 물러설 결심?
하야 발표 후에도 사임 안 하려 버텼다

아홉 번째 마당
이승만은 왜 박정희와 달리
사임할 수밖에 없었나

열 번째 마당
반일 정책 때문에
미국이 이승만 제거?

열한 번째 마당
학생의 피에 보답한 교수들,
썩어빠진 어제와 결별한 시인

나가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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