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러시아 문학의 거장인 미하일 불가꼬프의 최후의 대작, 『거장과 마르가리따』가 홍대화의 번역으로 열린책들에서 출간되었다. 고골의 『죽은 혼』을 잇는 러시아 환상 문학의 걸작이자, 살만 루슈디가 자신의 소설『악마의 시』에 영향을 준 작품으로 손꼽는 등 수많은 예술가와 독자들에게 영감을 준 작품이다. 1928년에 처음 구상에 들어가 1940년 사망하기 직전까지 불가꼬프가 수정과 보완을 거듭할 정도로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지만, 사후 20여 년이 지난 1966년에야 그나마도 대폭 삭제된 형태로 『모스끄바』지에 처음 게재되어 겨우 햇빛을 보았다. 발표되자마자 러시아는 물론이고 전 세계 문학계에 충격을 던져 주었으며, 이후 여러 차례 영화와 TV 시리즈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소설은 스딸린 치하의 모스끄바에 악마 볼란드 일행이 나타나 일대 소동을 벌이면서 모스끄바 시민들을 공포와 혼란으로 몰아가는 이야기, 소설가 「거장」과 그의 연인 마르가리따의 지고지순한 사랑 이야기, 「거장」이 새로이 해석하여 써낸 예수(예슈아)와 본디오 빌라본 사이의 이야기가 중층적으로 얽힌 구조를 지니고 있다. 또한 시대와 불화했던 미하일 불가꼬프가 소비에뜨 사회에, 더 나아가 전체 인간 세계에 던지는 조롱과 풍자가 서늘한 공포와 유쾌한 웃음으로 펼쳐지고 있다.
『거장과 마르가리따』는 열린책들이 2006년 초에 처음 선보인 뒤 꾸준히 펴내고 있는 「미스터 노 세계문학」 시리즈의 한 권이다. 「미스터 노 세계문학」은 상세한 해설과 작가 연보로 독자들의 깊이 있는 이해를 돕는 한편, 가볍고 실용적인 사이즈에 시선을 사로잡는 개성 있는 디자인으로 현대적 감각을 살린 열린책들의 세계문학 시리즈이다. 12월에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김난주의 번역으로 출간되는 등 앞으로도 열린책들은 세계 문학사의 걸작들을 미스터 노 세계문학 시리즈를 통해 계속 선보일 예정이다.
악마, 인간과 세상을 조롱하다
미하일 불가꼬프는 소비에뜨 정권에 비판적이었던 작가로, 비판 의식과 풍자 정신이 넘치는 작품들을 써서 정부에 의해 전 작품의 출간과 공연이 금지되는 비운을 맞기도 했다. 『거장과 마르가리따』에서 불가꼬프는 악마 볼란드 일당을 20세기 모스끄바에 등장시켜 소비에뜨 사회와 인간 세계에 대한 풍자와 조롱을 한껏 펼쳐 보인다. 첫 등장에서부터 악마 볼란드는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인간 자신」이라는 시인 베즈돔니의 자신만만한 말에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바로 인간」이라고 대꾸한다. 또한 흑마술 공연에서 인간 세계의 외양은 크게 변했지만 인간의 내면 또한 과연 변했는지 모르겠다면서, 그 자리에서 만들어 낸 돈을 관객들에게 뿌려 대 일대 소동이 벌어지게 한다. 이처럼 모스끄바 시민들은 악마의 장난에 무참히 희롱당하며, 그렇게 희롱당하는 것은 인간 자신의 변하지 않는 본성, 바로 탐욕 때문이다. 여기서는 온갖 「계획」과 「개조」를 내세우며 인간 사회를 통제하려 했던 소비에뜨 정권에 대한 작가의 조롱이 드러나는 한편, 스스로 삶을 결정한다고 생각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체제나 사회 관습, 미디어 등에 의해 알게 모르게 삶의 많은 부분이 결정되고 마는 인간들의 현실에 대한 통찰이 드러나기도 한다.
『거장과 마르가리따』에서 보이는 악마 볼란드의 모습은 단순히 「악」이라고 하기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작품 말미에서 거장과 마르가리따에게 영원한 안식을 선사하는 것이 바로 볼란드이듯, 괴테의 『파우스트』에 나오는 메피스토펠레스처럼 그 역시 궁극적으로는 신의 의지 또는 「선」을 실행하는 매개자 역할을 한다. 이처럼 무자비하면서도 인정을 베풀고, 사악하면서도 유쾌하며, 악이면서도 선인 악마 볼란드와 그 일당들은 독자들에게 다층적인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 준다. 그리고 이들의 시선과 행동을 통해 독자들은 인간과 사회의 벌거벗은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본디오 빌라도 ― 고뇌로 몸부림치는 한 나약한 인간의 초상
『거장과 마르가리따』는 볼란드 일당이 벌이는 소동과 거장과 마르가리따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모스끄바 장」과, 거장이 쓴 소설의 내용으로 본디오 빌라도와 예슈아(예수) 사이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예르샬라임(예루살렘) 장」이 병행, 중첩되는 중층적인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이 작품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 중 하나가 바로 「예르샬라임 장」의 실질적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본디오 빌라도인데, 성경에서와는 달리 그의 인간적 고뇌가 상세히 묘사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본디오 빌라도는 최고 권력자이지만 지독한 편두통에 시달리며 오로지 자신의 애견에게만 정을 주는 외롭고 약한 인간으로 그려진다. 그는 예슈아를 처형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나 유대의 대제사장 까이파의 요청에 따라 처형을 승인한 뒤 그로 인해 괴로워한다. 결국 그는 그 괴로움을 떨쳐 버리고자 상당히 충격적이라 할 수 있는 모종의 조치를 취하지만 그마저도 큰 도움이 되지는 못한다. 하지만 작품 말미에서 작가는 바위 산 꼭대기에 애견과 단둘이 앉아 있던 빌라도가 달빛으로 난 하늘 길을 걸어 예슈아에게 갈 수 있게 된 것으로 설정해 그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준다. 이렇듯 다른 이들의 위에 있는 권력자임에도 불구하고(혹은 그렇기 때문에 더) 약하고 외로운 인간적 모습을 보이는 빌라도를 통해 불가꼬프는 인간 존재의 허약함에 대한 연민을 표현한다. 그리하여 이 작품은 단순한 풍자와 조롱을 넘어 인간에 대한 연민과 이해, 구원의 가능성에 대한 모색으로까지 깊이를 확장해 간다.
거장과 마르가리따의 사랑 ― 무엇이 우리를 구원하는가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이인 거장과 마르가리따는, 마르가리따가 이미 결혼한 몸이기에 소위 말하는 불륜 관계이다. 불가꼬프의 세 번째 부인인 엘레나 세르게예브나 역시 결혼한 몸이었다가 남편과 이혼하고 불가꼬프와 결혼하는데, 여주인공 마르가리따에는 이러한 그녀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 엘레나 세르게예브나가 말년에 신장 경화로 시력을 거의 잃게 된 불가꼬프의 구술에 따라 『거장과 마르가리따』를 수정하는 조력자 역할을 하고 남편의 사후 이 작품의 출간에 힘썼듯이, 마르가리따 역시 거장에게 헌신적인 모습을 보인다(「거장」이라는 별명 역시 그녀가 붙여 준 것이다). 거장 또한 마르가리따의 격려 속에 쓴 소설이 혹평을 받자 자신의 몰락이 그녀에게 해를 입힐 것을 염려해 스스로 그녀를 떠난다. 마르가리따의 헌신은 거장을 구하기 위해 사탄의 무도회에서 악마의 부인 역할을 맡기를 불사하는 데까지 이르고, 서로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두 사람은 마침내 예슈아의 명에 따라 볼란드에 의해 영원한 안식을 선사받게 된다.
마르가리따의 희생정신은 다른 에피소드에서도 드러난다. 카페 주인에게 능욕당해 낳은 아기를 손수건으로 질식시켜 죽인 죄로 매일 그 손수건이 눈앞에 나타나는 영겁의 벌을 받은 프리다라는 여인을 알게 된 마르가리따는, 사탄의 무도회를 주재한 보상으로 무엇을 원하느냐는 볼란드의 질문에 거장의 구원을 요청하는 대신 프리다에게 내려진 벌을 사해 달라고 청한다. 작품에 등장하는 예슈아 역시 인간의 선함에 대한 믿음과 그들에 대한 연민으로 스스로를 희생하고 헌신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이처럼 이 작품에서는 사랑과 헌신, 그리고 인간에 대한 연민이 중시되며 그것이 구원 혹은 영원한 안식의 조건이 된다고 할 수 있다.
12년의 집필 기간, 사망 직전까지 수정과 보완을 거듭한 불가꼬프 필생의 대작
불가꼬프가 『거장과 마르가리따』의 구상에 들어간 것은 1928년의 일이었다. 이후 그는 여러 차례 수정된 편집본을 만들었고, 그중 최초의 편집본 중 두 개는 1930년대에 스스로 불살라 버릴 정도로 작품 창작에 심혈을 기울였다. 불가꼬프가 고려했던 작품의 제목도 「기사의 발굽」, 「발굽을 지닌 상담가」, 「어둠의 공작」 등으로 여러 차례 바뀌었다. 결국 1937년 「거장과 마르가리따」로 제목을 최종 결정한 후 마지막 편집본의 작업에 들어가, 1940년 사망하기 직전까지 부인의 도움을 받아 가면서 작품의 수정과 보완에 매진했다. 작가의 사망 이후 부인 엘레나 세르게예브나는 1966년까지 여섯 차례에 걸쳐 이 소설을 검열에 통과시키려는 노력을 하지만, 소련의 공식 문학계는 이 작품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다 『모스끄바』지 1966년 11호와 1967년 1호에 두 번에 걸쳐 많은 부분이 삭제된 왜곡된 형태로 연재되면서 처음 세상에 모습을 보이게 된다. 이러한 왜곡에 맞서 지하 출판본(사미즈따뜨)이 유통되었으며, 프랑스의 임카 프레스,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파종 출판사 등 외국 출판사에서도 지하 출판본을 저본으로 하여 이 작품을 출간하였다.
작가가 사망 직전까지 수정과 보완을 가한 만큼, 작품은 얼마간 미완성의 모습을 보인다. 볼란드의 수행원 중 하나가 작품 말미에서 갑자기 이유 없이 사라져 버린다거나, 상황 묘사의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 몇몇 군데 등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요소가 작품의 완성도에 해를 끼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또한 이 작품은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 두어, 의미상에서도 완결되지 않은 「열린 작품」의 모습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