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스티븐 소더버그 영화 원작!
현대 SF 문학, 대중문화, 서브컬처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 영향을 끼친 스타니스와프 렘의 최고 걸작
1961년에 출판된 『솔라리스』는 폴란드를 넘어 세계 SF 소설의 클래식으로 자리매김했지만, 놀랍게도 제대로 된 영어 번역본이 나온 시기는 렘이 사망하고 난 뒤인 2011년이다. 폴란드 문학 전공자인 빌 존스턴이 최초로 폴란드어 원전을 번역하여 출간하기 전까지 영미권 독자들이 읽은 버전은 프랑스어판에서 영어로 중역된 판본이었다. 프랑스어판 자체가 원전의 내용을 임의로 축약한 데다 오역도 더러 있었으므로 이 판본을 통해 중역된 영어판 또한 여러 문제를 안고 있었다. 지금까지도 종이책 형태로 독자에게 판매되는 영어판은 바로 이 문제의 중역본이다. 폴란드어 원전에서 한국어로 직접 번역한 이번 민음사판 『솔라리스』는 폴란드어를 제2의 모국어로 삼는 최성은 역자의 애정과 공력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SF 작가 스타니스와프 렘은 비영어권인 폴란드인으로서, 아서 C. 클라크, 아이작 아시모프, 필립 K. 딕과 함께 20세기 SF를 대표하는 거인이다.
렘은 폴란드 제2공화국 르부프(현 우크라이나 리비우)의 유복한 유대계 의사 가정에서 태어났다. 당시의 르부프는 폴란드인, 우크라이나인, 유대인 등 여러 민족이 뒤섞여 살았는데, 이후 나치 독일과 소련의 지배를 받았던 문화적, 역사적으로 복합적인 지역이다. 또한 렘이 성년을 맞았을 무렵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그는 생존을 위해 정비공, 용접공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면서 폴란드 저항군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전후 크라쿠프에서 의학을 공부했으며, 철학과 과학 등을 연구하면서 심리학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의과대학 재학 중에 등단했고, 첫 책인 장편소설 『우주 비행사들』(1951)이 성공을 거두면서 전업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렘은 SF 작가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이는 광의의 SF로, 현대 SF 작가가 제시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이미 다루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소설은 과학과 문학에 대한 광범위한 지식, 인간에 대한 성찰, 가톨릭 세계관에서 비롯된 신에 대한 질문을 특징으로 하며, 특히 사고할 수 있는 기계의 창조로 발생한 도덕적 문제를 제기하는 메타픽션의 전형을 창조해 냈다. 풍자와 익살을 무기 삼아, 인류의 이해를 초월하는 미지와의 만남을 그려 내서 그러한 미지와의 갈등으로 부각된 인간의 본성을 파악하는 유의 인식적, 철학적, 윤리적, 심리적인 이야기 전개에 있어 탁월하다. 대표적인 장편소설로 『에덴』 『솔라리스』 『무적호』를 꼽을 수 있다.
한편 렘에게 있어 단편소설은 예리한 비평 정신과 분방한 예술적 상상력, 치밀한 과학적 사고가 어우러지는 자유로운 실험의 장이었다. 여기에서는 진심과 농담이, 서정과 그로테스크가 정면으로 충돌하며 일상적인 가치 체계가 전복되고 온갖 아이디어가 과감히 시도된다. 렘다움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분야로, 『우주 비행사 피륵스 이야기』를 비롯해 『이욘 티히의 우주일지』 외 이욘 티히 연작, 『사이버리아드』 외 로봇 연작이 유명하다.
그는 자유자재로 장르를 넘나들었는데, SF 외에도 인간과 기계의 관계에 대한 철학 논문, 논쟁적인 문학비평, 실재하지 않는 책에 대한 서평, 이야기체 소설에 대한 확률론, 실험적인 탐정소설, 인공지능, 사이버네틱스, 우주론, 유전공학, 게임 이론, 사회학, 진화를 다루는 사변적인 에세이, 라디오 방송극과 시나리오를 썼다. 또한 작품에서 인공지능, 검색 엔진 이론, 생체공학, 가상현실, 기술적 특이점, 나노 기술 등을 예측했으며, 2011년 검색 엔진 구글에서는 『우주 비행사들』 출간 60주년을 맞아 기념일 로고를 띄워 축하하기도 했다. 렘의 작품은 4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4000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