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광한
본관이 고령(高靈)이고 자는 한지(漢之), 시회(時晦)이고 호는 기재(企齋), 낙봉(駱峯)이다. 1484년(성종 15) 7월에 신형(申泂, 1449∼1487)의 아들로 태어났다. 신형은 문충공(文忠公) 신숙주(申叔舟, 1417∼1475)의 아들이다.
기재는 1510년(중종 5)에 27세로 문과에 급제해 승문원 권지(權知)가 되고부터, 이른바 청현직(淸顯職)이라고 하는 홍문관, 사간원, 사헌부의 관직을 두루 거치면서 경연(經筵)의 시강관, 시독관, 특진관 등을 겸임했고, 조광조 등의 기묘명현(己卯名賢)들과 가깝게 지냈다.
1519년(중종 14) 기묘사화 이후 삼척부사(三陟府使)로 나갔고 이어 1521년에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관직을 삭탈당했다. 39세이던 다음 해 1522년에는 모친상을 당해 3년간 고양(高陽)에서 여묘살이를 했다. 그 뒤 대략 15년간, 40대 전체와 50대 절반을 여주(驪州) 원형리(元亨里)에서 칩거했다.
기재는 1538년(중종 33)에 55세로 성균관 대사성에 제수되었고, 대사간, 형조판서, 이조판서, 대제학, 좌찬성 등 화려한 관직을 두루 역임했다. 1555년(명종 10) 윤11월 1일에 7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박헌순(朴憲淳)
경남 거창에서 태어났다. 한국외대 한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고려대 대학원 고전번역협동과정을 수료했으며,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연수원 연수과정과 상임연구과정을 졸업했다.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실장과 편찬실장, 한국고전번역원 번역사업본부장과 교무처장 등을 거쳤으며, 문화관광부 국어심의회 심의위원을 지냈다.
《효종실록》, 《광해군일기》, 《정조실록》, 《홍재전서》, 《미수기언》, 《매천집》, 《통색촬요》, 《논어집주》 등 다수의 한문고전을 번역했다.
2024년 11월 현재 고전번역교육원 교수이다.
<기재기이> 저자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