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와라노 데이카(藤原定家, 1162∼1241)
아버지는 《천재와카집(千載和歌集)》의 편찬자 후지와라노 슌제이(藤原俊成)다. 병약했던 어린 시절로 인해 다소 신경질적이고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로 성장했다. 10대에 이미 요염미를 강조한 자신만의 가풍을 성립시켰지만, 너무나 생소했던 탓에 젊은 시절 그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방황의 시절을 보내게 된다. 하지만 이른바 데이카의 새로운 가풍은 《쇼지 백수(正治百首)》 참여를 계기로 고토바인의 적극적인 지지를 얻게 되면서, 이후 《신고금와카집》의 편자에 발탁되는 등 고토바인 가단을 이끄는 존재로까지 발돋움하게 된다. 그러나 《신고금와카집》 완성을 축하하는 연회가 열릴 즈음부터 고토바인과의 관계가 악화했고, 가마쿠라 막부 측과 친밀한 관계를 쌓아 나갔다. 1221년 막부 토벌을 기치로 내건 조큐의 난(承久の乱)의 실패로 인해 고토바인 세력이 정계에서 축출되면서 명실상부한 가단의 권위로 자리 잡게 되었다. 《신고금와카집》 편찬 이외에도 다양한 우타아와세(歌合)에서 판정원(判者)을 맡고 《매월초(毎月抄, 마이게쓰쇼)》와 같은 가론서 제작을 통해 자신의 가풍을 확고히 해 나갔다. 말년에는 고전 작품의 서사에 힘을 쏟았으며 그의 가풍은 신고금가풍으로 칭송되면서 당시의 가단은 물론 후대의 가풍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개인 가집 《습유우초(拾遺愚草, 슈이구소)》, 자작 모노가타리 《마쓰라노미야 모노가타리(松浦宮物語)》 등을 남겼다.
미나모토노 미치토모(源通具, 1171∼1227)
내대신(内大臣)을 지낸 미나모토노 미치치카(源通親)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다이라노 노리모리의 딸이었다. 청년기에는 아버지의 후광을 배경으로 좌근위중장(左近衛中将), 장인두(蔵人頭), 참의(参議) 등을 거쳐, 1212년 권대납언(権大納言)까지 벼슬이 오르게 된다. 1201년 이후 《1500번 우타아와세(千五百番歌合》 등 고토바인 가단을 대표하는 수많은 우타아와세에서 명성을 쌓았고, 이 활약을 바탕으로 《신고금와카집》의 편자로 선출되는 영예를 안았다. 《신고금와카집》 이후 칙찬집에 37수의 노래를 실었다.
후지와라노 아리이에(藤原有家, 1155∼1216)
대재대이(大宰大弐)를 지냈던 후지와라노 시게이에(藤原重家)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 이름은 나카이에(仲家)였으나, 1180년 아리이에(有家)로 개명했다. 벼슬은 종3위(従三位), 대장경(大蔵卿)에 이르렀다. 이후 《신고금와카집》의 편찬자로 선출되는 등, 당시 가단의 중심인물로 자리 잡았다. 《천재와카집》 이후 67수의 노래를 칙찬집에 실었다.
후지와라노 가류(藤原家隆, 1158∼1237)
중납언(中納言) 후지와라노 미쓰타카(藤原光隆)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20세경에 후지와라노 슌제이(藤原俊成) 문하에 들어가 와카를 공부했다. 슌제이와 더불어 당대의 시성 사이교(西行)와도 교류했으며, 그의 추천으로 《후타미우라 백수(二見浦百首)》를 읊은 이후, 미코히다리 가문(御子左家)의 소장파 가인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이후 슌제이의 아들 데이카(定家)와 함께 고토바인 가단을 대표하는 가인으로 성장했다. 《천재와카집》 이후 칙찬집에 281수의 노래를 실었다.
후지와라노 마사쓰네(藤原雅経, 1170∼1221)
후지와라노 요리쓰네(藤原頼経)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벼슬은 종3위 참의(参議)까지 이르렀다. 헤이안 말기에 유행하던 놀이인 축국(蹴鞠, 게마리)의 대가로, 이후 축국으로 유명한 아스카이 가문(飛鳥井家)의 시조가 된다. 고토바인의 총애가 남달랐으며, 고토바인 가단에서 주최한 다양한 노래 모임에 출석했다. 이후 《신고금와카집》의 편찬자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개인 가집으로는 《아스카이집(明日香井集)》이 있다.
자쿠렌 법사(寂蓮法師, 1139∼1202)
속명은 후지와라노 사다나가(藤原定長)다. 아자리 슌카이(阿闍梨俊海)의 아들이며, 후지와라노 슌제이(藤原俊成)의 조카다. 종5위상(從五位上) 중무소보(中務小輔)에 오르지만 쇼안(承安) 2년(1172) 무렵에 출가한다. 미코히다리(御子左)가의 가인으로 활약했고, 1201년 《신고금와카집》의 선자로 발탁되었지만, 이듬해 사망하고 말았다. 가집으로 《자쿠렌 법사집(寂蓮法師集)》이 남아 있다.
최충희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어과를 졸업하고 일본 쓰쿠바대학교 대학원에 유학해 일본 고전 시가 문학 전공으로 석·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경희대학교 대학원에서 일본 고전 시가 문학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83년부터 현재까지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언어문화학부 교수로 재직 후 2019년 3월 정년 퇴임했다. 주된 연구 분야는 일본 고전 시가, 그중에서도 와카, 렌가, 하이카이를 중심으로 주석학적 연구 방법에 입각해 고전 읽기를 시도하는 것이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부총장, 한국일어일문학회 회장을 지낸 바 있으며 국내의 다양한 일본 연구 관련 학회에서 임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일본 시가 문학사》(공저, 태학사, 2004), 《일본 시가 문학 산책》(제이앤씨, 2006), 《일본 문학의 흐름》(공저,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부, 2007), 《요사 부손의 봄, 여름, 가을, 겨울》(제이앤씨, 2007), 《고바야시 잇사 하이쿠 선집−밤에 핀 벚꽃》(태학사, 2008), 《고금와카집 천줄읽기》(지식을만드는지식, 2011), 《햐쿠닌 잇슈의 작품 세계》(공저, 제이앤씨, 2011), 《렌가라는 문학과 소기》(인문과 교양, 2014), 《일본 시가 문학 길라잡이》(한국외대 지식출판원, 2017), 《후찬와카집 천줄읽기》(공역, 지식을만드는지식, 2017), 《습유와카집》(공역, 지식을만드는지식, 2018), 《후습유와카집》(공역, 지식을만드는지식, 2018), 《금엽와카집 / 사화와카집》(공역, 지식을만드는지식, 2019), 《천재와카집》(공역, 지식을만드는지식, 2020) 등이 있으며, 일본 시가 문학 연구와 관련한 많은 논문이 있다.
이상민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어과를 졸업했다. 동대학원에서 석사를 취득한 후, 문부성 장학생으로 도일했다. 도쿄대학교 대학원 인문사회계 연구과에서 중세 가인 돈아(頓阿)의 와카를 테마로 해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16년 귀국 후 현재는 한국외국어대학교, 한국방송대학교에서 일본어와 일본 문학에 관련한 강의를 하고 있다.
중세 남북조 시대의 가인, 돈아의 와카를 중심으로 다이에이(題詠) 영법의 특징과 중세 가단들의 관계를 테마로 해서 연구하고 있다. 역서로 《후찬와카집 천줄읽기》(공역, 지식을만드는지식, 2017), 《습유와카집》(공역, 지식을만드는지식, 2018), 《후습유와카집》(공역, 지식을만드는지식, 2018), 《금엽와카집 / 사화와카집》(공역, 지식을만드는지식, 2019), 《천재와카집》(공역, 지식을만드는지식, 202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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