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터 벌리(Walter Burley, 1274/1275∼1344?)
세속 사제이자 철학자였으며, ‘단순명료한 박사(Doctor planus et perspicuus)’라 불렸다. 그는 14세기 전반부의 가장 뛰어난 논리학자이자 자연학자였다. 거의 80편에 달하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고 그 가운데 대략 60편 가량이 보존되었는데, 대부분은 논리학과 자연학에 관한 것이고, 나머지는 신학과 실천철학에 관한 것이다. 논리학의 전 분야에서 중요한 저술을 남겼고, 특히 《토론에서의 의무》 등은 해당되는 세부 분야에서 표준을 정립했다고 평가받는다. 논리학 분야의 벌리의 또 다른 대표작은 《논리학의 순수성에 관하여(De puritate artis logicae)》다. 벌리는 이 책에서 온갖 종류의 귀결들을 망라하는 논증 이론을 제시함으로써 중세 논리학의 전 분야에서 이정표가 될 만한 걸출한 업적을 이루었다.
벌리는 논리학 못지않게 자연학에서도 대단한 업적을 이루었다. 그가 남긴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 주해서들은 이 분야 주요 저작으로 손꼽힌다. 벌리는 또한 옥스퍼드 계산가 중 한 명으로 중요하게 거론된다. 중세 논리학과 중세 자연학 사이의 상호작용 관계를 이해하는 일은 17세기 근대 과학 혁명을 부각하면서 중세 과학과 근대 과학 사이의 단절을 지나치게 강조해 온 오랜 잘못을 교정하는 첫걸음에 해당한다. 그런 관점에서 갈릴레이 등 17세기 근대 과학 혁명의 개척자들의 업적의 배경이 되고 선취했다고까지 칭송되는 옥스퍼드 계산가 전통과 벌리가 논의의 핵심으로 부상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벌리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오컴ᐨ벌리 논쟁’이다. 이 논쟁에 대한 관심이 고조될수록 그 전선이 논리학, 자연학, 그리고 형이상학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정치철학과 윤리학으로까지 확대되라는 것을 예감할 수 있다. 벌리의 방대한 저작 목록에는 당연하다는 듯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과 《니코마코스윤리학》에 대한 주해서가 포함되어 있다.
박우석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뉴욕주립대학교(버펄로) 대학원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난 4반세기 동안 한국과학기술원에서 교수 생활을 했다. 현재 한국과학기술원 디지털 인문사회과학부 명예교수다. 한국논리학회 회장, 한국분석철학회 회장, 한국바둑학회 회장, 한국중세철학회 부회장을 지냈다. 스프링어(Springer)출판사의 총서 “SAPERE(Studies in Applied Philosophy, Epistemology and Rational Ethics)”의 자문위원이고, 국제학술지 《Al-Mukhatabat: A Trilingual Journal for Logic, Epistemology and Analytical Philosophy》의 편집위원이다. 저서로 《Philosophy’s Loss of Logic to Mathematics》(2018), 《Abduction in Context》(2016), 《중세철학의 유혹》(1997), 《알프레트 타르스키》(2024), 《논리학과 인공지능 바둑》(2024)이 있고, 국내외 유수 학술지에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최근 번역한 책으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초기 논리학》(2023), 《아리스토텔레스주의 실재론적 수학철학: 양과 구조의 과학으로서의 수학》(2022)이 있다.
<토론에서의 의무> 저자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