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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준호

    조준호 프로필

2026.04.24.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황현(黃玹)
광양현 서석촌(현 전라남도 광양군 봉강면 석사리)에서 태어났으며, 자는 운경(雲卿), 호는 매천(梅泉)이라 했다. 출신 가계를 보면 장수 황씨로 황희 정승의 후손이기는 하나, 중간에 가세가 영락해서 그의 조부에 이르러서는 상업으로 생활을 영위했다고 한다. 이렇게 축적한 재산을 기반으로 황현은 1천 권의 장서를 갖추고 학문에 전념할 수 있었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신동으로 소문이 자자했으나, 관력은 불우하여 34세에야 겨우 성균관의 생원이 되는 데 그쳤다. 그는 생원이 된 후, 조선 안팎으로 혼란한 세상을 등지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곳에서 자신의 거실에 구안옥(苟安屋)이라 이름을 붙이고 독서와 시작(詩作)으로 세월을 보냈다. 그러는 동안 서울에 있는 여러 친구가 “다시 서울에 올라와서 구국 운동에 참가하라”라고 권유했으나, 그때마다 “그대들은 어찌 나를 귀신 나라에서 날뛰는 미친 사람들 가운데로 끌어들여 같은 귀신, 미친 사람으로 만들려 하는가” 하고 도리어 엄절히 책망했다.
혼란한 세상에서 그는 비록 은거했으나 망국상을 그대로 보고 있지는 못했다. 지기였던 김택영이 벼슬을 버리고 중국으로 망명한 것처럼 자신도 망국인의 방도를 생각한 듯하지만, 그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그러던 중 1910년 8월 일본은 소위 한일병합조약이라는 것을 발표해 나라와 민족의 멸망을 공식화했다. 이 소식을 듣고 애절한 절명시를 남기고 순국했다.

조준호
국민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국사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원을 지냈으며(2004∼2005), 현재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조선후기 수도방위체제》(공저: 바다출판사, 2004)가 있으며, 주요 논문으로는 〈조선 숙종∼영조대 근기지역 노론학맥 연구〉(2003), 〈조선후기 석실서원의 위상과 학풍〉(《조선시대사학보》11, 1999), 〈퇴계 이황의 서원 건립 활동과 서원론의 실현〉(《역사문화논총》2, 2006), 〈조선 서원의 전개 과정에서 바라본 사림계의 서원관〉(《한중 국제학술회의 논문집》, 2007) 등이 있다.
조선후기 정치 사회사를 전공하면서 지배 엘리트의 형성과 변천, 그리고 그들의 활동 기반으로 존재했던 서원 연구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현재에는 전통 문화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한국 서원의 존재를 동아시아 유교 문화권 속에서 규명하려는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원서발췌 매천야록> 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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