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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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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세백(姜世白, 1748∼1824)
본관은 진주(晉州), 자(字)는 청지(淸之), 호(號)는 호린(晧隣), 별호(別號)는 기치(杞癡)다. 국포(菊圃) 강박(姜樸, 1690∼1742)의 손자요, 강필악(姜必岳, 1723∼1795)의 장남이다. 1792년 45세에 영남 유생 7000명이 모인 도산 응제(陶山應製)에서 장원 급제했다. 저서로 《진종성헌(晉宗成憲)》 4책을 남겼다. 이경유와 함께 1784년 추수사를 창시했으며, 1804년 죽우사를 결사한 주맹으로 활동한 상주 지역 시사의 대표 문장가다.

이경유(李敬儒, 1750∼1821)
본관은 연안(延安), 자(字)는 임하(林下), 호(號)는 덕무(德懋), 별호(別號)는 임옹(林翁)이다. 고조부는 이옥(李沃), 증조부는 식산(息山) 이만부(李萬敷, 1664∼1732), 조부는 이지빈(李之彬), 부친은 강재(剛齋) 이승연(李承延)이다. 1792년 음사로 참봉이 되었으나, 벼슬에 뜻이 없어 평생을 학문과 문학에 바쳤다. 저서로 《임하유고(林下遺稿)》와 《창해시안(滄海詩眼)》이 있다. 강세백의 지음이자 추수사, 죽우사를 결사한 주 인물로 시사 활동을 주도했다.

이이순(李頤淳, 1754∼1832)
본관은 진성(眞城), 자(字)는 치양(穉養), 초자(初字)는 비언(斐彦), 호(號)는 긍재(兢齋), 후계(後溪), 만와(晩窩), 육우당(六友堂), 육우헌(六友軒), 기은(杞隱)으로 경상북도 봉화 출신이다. 퇴계 이황의 9세손으로, 이귀몽(李龜蒙, 1733∼1807)의 아들이며, 모친은 김택동(金宅東)의 딸이다. 1779년(정조 3)에 생원시에 합격해 의금부도사, 군자감주부, 은진현감 등을 지냈다. 6남 2녀 중 차남으로 6형제 중 문장이 가장 뛰어났다고 한다. 문집으로 《후계집(後溪集)》이 있다.

이학배(李學培, 1759∼1831)
본관은 흥양(興陽), 자(字)는 이열(而悅), 호(號)는 천재(川齋)로, 창석 이준(李埈, 1560∼1635)의 7세손이다. 조부는 이지원(李知遠), 부친은 이곤직(李坤直)이며, 모친은 옥산 장씨(玉山張氏) 장지철(張趾哲)의 딸이다. 9세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부인은 풍산 유씨(豐山柳氏) 유필천(柳必天)의 딸이다. 사위는 이정유(李挺儒)의 아들 이선기(李選基, 1785∼1859)다. 1818년(순조 18) 영남 유생들과 함께 채제공의 관작을 회복해 주기를 청하는 상소를 올릴 때, 대표 역할을 했다.

강세륜(姜世綸, 1761∼1842)
본관은 진주(晉州), 자(字)는 문거(文擧), 호(號)는 지원(芝園), 별호는 동초(桐焦)다. 국포 강박의 손자이며, 강필악의 아들이고 강세백의 동생이다. 모친은 이재후의 딸이며, 외가의 학문적 영향을 많이 받았다. 딸과 손녀딸로 인해 진성 이씨 집안과 혼맥이 있다. 추수사, 죽우사의 핵심 멤버였으며, 이경유와 강세백이 죽자 1828년 강장흠과 열운사(悅雲社)로 재결성해 오랜 시사의 전통을 후진에게 잇도록 하는 데 적극 활약했다. 평생 내외직을 두루 거쳐 관직 생활을 했으며, 문집으로 《지원집(芝園集)》 8책과 61세에 종성부사로 가는 여정과 북관에서의 생활을 노래한 한시집 《북정록(北征錄)》 1권이 있다.

강봉흠(姜鳳欽, 1762∼1828)
본관은 진주(晉州), 자(字)는 남애(南厓), 호(號)는 덕조(德祖)다. 모헌 강필신(姜必愼, 1687∼1756)의 손자요, 경현재 강세진(姜世晉, 1717∼1786)의 아들이다. 정종로(鄭宗魯, 1738∼1816)의 문인으로 상주 봉대리에 거주했다. 이경유, 강세백, 강세륜 등과 교유하며 시를 즐겨 지었다. 분매(盆梅)를 좋아해 꽃이 피면 시를 읊었으며, 산수를 좋아해 속리산, 청량산, 희양산 등을 유람했다. 저서로 우리나라 시사(詩史)를 정리한 《남애시사(南厓詩史)》가 있다.

강세규(姜世揆, 1762∼1833)
본관은 진주(晉州), 자(字)는 공서(公敍), 호(號)는 긍암(兢菴), 긍재(兢齋)다. 통계(通谿) 보문각대제학(寶文閣大提學) 강회중(姜淮仲)의 후손으로 조부는 강현(姜, 1688∼1747)이며, 부친 강필형(姜必炯, 1722∼1793)과 성산 이씨 이석좌(李碩佐)의 딸 사이의 4남 2녀 중 3남이다. 부인은 두 명으로, 연일 정씨 정안제(鄭安齊)의 딸과 고령 신씨 신정연(申廷淵)의 딸이다. 입재 정종로의 문하에서 도학을 전수했으며, 긍암이라는 호 역시 만년에 입재 선생에게서 받은 것이다. 저서로 《긍암집》이 있다.

강용흠(姜龍欽, 1764∼1832)
본관은 진주(晉州), 자(字)는 순삼(舜三), 호(號)는 간와(艮窩)다. 강사부(姜士孚)의 후예다.

황반로(黃磻老, 1766∼1840)
본관은 장수(長水), 자(字)는 숙황(叔璜), 호(號)는 백하(白下), 평와(平窩)다. 방촌(厖村) 황희(黃喜, 1363∼1452)의 후예로 상주에 거주했다. 심기당(審幾堂) 황계희(黃啓熙, 1727∼1785)의 3남 중 막내다. 형은 황신로(黃莘老, 1755∼?), 황암로(黃巖老, 1759∼1812)다. 1789년(정조 13)에 생원에 입격했으나,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학문에 전념했다. 정종로의 문하생으로 시문과 필법에 뛰어났다. 저서로 《백하집(白下集)》이 있어 그 안에 시사 활동 중에 쓴 시를 많이 남겼다.

이승배(李升培, 1768∼1834)
본관은 흥양(興陽), 자(字)는 대언(大彦), 호(號)는 수계(修溪)다. 수계 거사(修溪居士)라고도 하는데 시냇가에 작은 집을 짓고 스스로 자호(自號)로 삼은 것이다. 상주 청리면에 거주했으며, 월간(月澗) 이전(李㙉)의 7세손으로 부친은 이곤택(李坤宅)이다. 9세에 어머니를 여의었으며 10세부터 시를 지었다. 부인은 광산 노씨(光山盧氏) 노필문(盧必文)의 딸이다. 저서로 《수계집(修溪集)》이 있으며, 그 안에 〈죽우시사서(竹雨詩社序)〉를 남겼다.

강세모(姜世謩, 1753∼?)
본관은 진주(晉州), 자(字)는 종모(宗謨), 호(號)는 좌은(坐隱)이다. 강필장(姜必章, 1722∼1798)의 장남으로 모친은 풍산 김씨(豐山金氏) 김서대(金瑞大)의 딸이다. 동생이 강세은(姜世誾)이다. 풍산 유씨(豐山柳氏) 유발(柳潑)의 맏사위로 유발에게 출계한 유심춘(柳尋春, 1762∼1834)과는 처남 매부 사이가 된다.

강세은(姜世誾, 1780∼1835)
본관은 진주(晉州), 자(字)는 계호(啓好), 호(號)는 과암(過菴)이다. 강필장의 3남으로 두 형은 강세모(姜世謩), 강세건(姜世謇)이며 모친은 강필장의 셋째 부인 손씨(孫氏)로 보인다. 1803년 생원시에 입격했다. 아들 강성흠(姜性欽, 1805∼1864)은 죽우사를 이은 열운사의 핵심 멤버로, 낙강 시회의 시를 기록한 《낙유첩》의 서문을 통해 시사의 전통과 그 의미를 기술했다. 저서로 《과암집(過庵集)》이 일부 남아 있으며, 그중 1830년 금강산을 유람하고 쓴 〈봉래외기(蓬萊外記)〉가 돋보인다.

방현아
성균관대학교 사범대학 한문교육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일반대학원 한문학과에서 한국 한문학을 전공해 석사와 박사 과정을 졸업했다. 국사편찬위원회 사료 연수 과정에서 고문서와 초서를 전공해 일반 과정과 고급 과정을 수료했다. 18∼19세기 남인 문단의 문학적 특징과 전승에 대해 연구하고 있으며, 같은 시기 서울 지역의 문화에도 관심이 많다. 특히 한문학의 저변 확대와 한문 교육 등 일반 대중이 쉽게 한문학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한문학연구소 수석연구원이며, 한국고간찰연구회 상임연구원이다.
저서에 《지원 강세륜의 삶과 시문학》(2023), 《우리 시대의 고문진보》(공저, 2023), 《이유수의 시고와 간찰》(공저, 2023), 《조선의 선비 서울을 노래하다》(2024, 공역), 《총명쇄록》(2025, 공역), 《상주권 강안학과 소통 문화의 지평》(2025, 공저), 《17세기 초 예안학단 인물들의 삶과 학문》(2025, 공저)이 있다.
논문으로는 〈봉화금씨 금경(琴憬), 금업(琴), 금개(琴愷)의 학문과 교유 : 《나산세고(羅山世稿)》를 중심으로〉(2025), 〈화서학파 수춘(壽春) 이민응(李敏應)의 생애와 구민활동〉(2025), 〈독립운동가 겸산(兼山) 김정기(金定基)의 삶과 문학〉(2025), 〈긍암(兢菴) 강세규(姜世揆)의 시문학 소고〉(2025), 〈국포(菊圃) 강박(姜樸)의 〈총명쇄록(聰明瑣錄)〉에 대한 고찰〉(2025), 〈용헌(慵軒) 황사우(黃士祐)의 생애와 《용헌일록(慵軒日錄)》의 자료적 고찰〉(2024), 〈강내한(姜內翰) 수친연(壽親宴) 송시첩(頌詩帖)의 자료적 고찰과 그 의미〉(2024), 〈18∼19세기 남인(南人) 시단(詩壇)의 시적 특징의 일면−국포(菊圃)의 시맥과 상주 지역의 낙강(洛江) 선유(船遊)를 중심으로-〉(2023), 〈《기해합계(己亥合禊)》를 통한 상주 지역의 수계(修禊) 양상과 그 의미〉(2023), 〈박필리(朴弼履) 가(家)와 인왕산 세심대(洗心臺), 공간의 일고찰−이현곤(李顯坤)의 산천재(山天齋)와 정선(鄭敾)의 〈산천재도(山天齋圖)〉를 포함하여〉(2023), 〈상주(尙州) 지역 시사(詩社)의 전통과 그 사적(史的) 전개 양상−추수사(秋水社), 죽우사(竹雨社), 열운사(悅雲社)와 〈낙유첩(洛遊帖)〉을 중심으로−〉(2022), 〈19세기 북관 기행 한시집 《북정록》 연구〉(2022), 〈호린(皓隣) 강세백(姜世白)의 생애와 시 경향−가승(家乘)과 시사를 중심으로−〉(2022), 〈반창(半蒼) 홍순호(洪醇浩)의 생애와 초기 시 연구〉(2022), 〈녹리(甪里) 고성겸(高聖謙)의 〈한성악부(漢城樂府)〉 연구〉(2022), 〈담녕(澹寧) 홍의호(洪義浩)의 〈자각이십영(紫閣二十詠)〉 연구(硏究)〉(2021), 〈담녕(澹寧) 홍의호(洪義浩)의 금강산(金剛山) 기행시(紀行詩) 연구(硏究)〉(2021), 〈지원(芝園) 강세륜(姜世綸)의 《북정록(北征錄)》으로 본 북관(北關)의 인문지리(人文地理)〉(2020), 〈지원(芝園) 강세륜(姜世綸)의 〈한경잡영(漢京雜詠)〉 연구(硏究)〉(2019) 등이 있다.

<죽우사 시집> 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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