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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

    김연경 프로필

  • 국적 대한민국
  • 학력 2004년 모스크바 국립 사범대학교 대학원 박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박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석사
    서울대학교 노어노문학과 학사
  • 경력 서울대학교 초빙교수

2014.12.02.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Лев Николаевич Толстой
1828년 러시아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톨스토이 백작 집안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1844년 카잔 대학교에 입학하지만 대학 교육에 실망하여 1847년 고향으로 돌아온다. 진보적인 지주로서 새로운 농업 경영과 농노 계몽을 위해 노력하지만 끝내 실패하고, 그 뒤로 3년 동안 방탕한 생활을 한다. 1851년 맏형이 있는 캅카스 지역에서 군 복무를 한다. 이듬해 잡지 《소브레멘니크》에 익명으로 작품을 연재하며 작가로서 첫발을 내딛는다. 톨스토이는 창작 활동을 이어 가며 농업 혁신에 관심을 기울이는 한편, 농민의 열악한 교육 환경을 개선하고자 학교를 세운다. 1861년 교육 잡지 《야스나야 폴랴나》를 간행하고, 1862년 결혼한 뒤 문학에 전념한다.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 대작을 연이어 발표하며 작가로서 명성을 얻는다.
그러나 톨스토이는 이 시기에 삶을 회의하며 정신적 위기에 시달린다. 그리하여 1880년 무렵, 그는 원시 기독교 사상에 몰두하며 사유 재산 제도와 러시아 정교회를 강하게 비판하고, 『교의 신학 비판』, 『고백』 등을 통해 ‘톨스토이즘’이라 불리는 자신만의 사상을 체계화해 낸다. 또한 술과 담배를 끊고 손수 농사를 짓는 등 금욕적인 생활을 지향하며, 빈민을 구제하는 활동에도 매진한다. 1899년 톨스토이는 자신의 사상과 종교관을 집대성한 대표작 『부활』을 완성하지만, 1901년 작품을 통해 러시아 정교회를 모독했다는 이유로 종무원(宗務院)으로부터 파문당한다. 사유 재산에 대한 거부, 저작권을 포기하는 문제로 아내와 불화를 겪던 그는 급기야 집을 나오고, 결국 1910년 11월 폐렴을 앓다가 아스타포보 역장의 관사에서 영면한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저자 소개

김연경 작품 총 15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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