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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란희

2015.01.20.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세계적인 대문호 레오 톨스토이는 “디킨스 소설에 나오는 인물은 모두 내 친구다.”면서 디킨스를 19세기 최고의 문호라고 평하고, 디킨스 초상화를 자신의 서재에 걸어 놓을 정도로 존경했다. 칼 마르크스는 “디킨스는 세상에서 핍박 받는 민중을 위해 세계의 모든 정치인과 사회운동가 이상으로 많은 일을 했다.”고 극찬한다.
찰스 디킨스는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풍미한 소설가다. 이백 년도 넘은 1812년 2월 7일에 영국 남부 포츠머스 외각에서 팔남매 가운데 둘째이자 장남으로 태어난다. 형제 두 명은 어려서 죽는다. 할아버지는 머슴, 할머니는 하녀 출신이고 아버지는 해군 경리국 하급관리였다. 아버지는 사교적이고 유머가 풍부하나 경제적으로 무능하고, 어머니는 선량하고 밝은 성격이나 자녀한테 무정하다.
여섯 살부터 잠시 학교를 다니지만 다락방에서 소설을 읽으며 훨씬 많은 것 배운다. 열한 살부터 런던 빈민가에서 산다. 그리고 열세 살부터 구두약 공장에 취직해서 생활비를 번다. 하지만 아버지는 빚이 점차 늘어나 가족은 채무자 구치소에서 지내고 디킨스 혼자 하숙집에서 생활한다.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생각한 어린애가 노동자로 전락하면서 겪은 좌절과 고통은 자전적 소설 ‘데이비드 코퍼필드(David Copperfield)’에 잘 나타난다.
아버지는 할머니 유산으로 빚을 청산하고 찰스 디킨스를 웰링턴 하우스 아카데미(Wellington House Academy)에 삼년 동안 보낸다. 하지만 어머니는 ‘공장에서 돈이나 벌라’며 끊임없이 반대하고 디킨스는 어머니와 서먹한 관계를 평생 유지한다.
열여섯 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변호사 사무실에서 이 년간 사환으로 일하고 대영박물관 자료실 검토원으로 잠시 일한다. 스물한 살에는 속기법을 익혀서 의회 출입기자가 된다. 여기에서 의회와 정치에 대한 불신과 부정부패, 빈부격차 등 사회현상에 눈을 뜬다. 디킨스가 말년에 고백한 바에 의하면 “젊은 시절에 신문사에서 혹독한 훈련을 잘 견딘 게 내가 성공한 첫 번째 원인”이다. 열여덟 살에는 은행가 딸 ‘마리아 비드넬’과 첫사랑에 빠지나, 여자 부모 측 반대로 헤어진다. 신부 수업을 핑계로 파리에 보낸 것이다. 그래서 마리아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하고 끝까지 기다린 디킨스는 커다란 상처를 받고 사회적으로 성공하겠다는 굳은 결심을 한다. ‘위대한 유산’에서 핍이 에스텔라를 사랑하고 좌절하고 굳세게 결심하면서도 다시 사랑하고 좌절할 수밖에 없는 간절한 이야기와 비슷하다.
스물두 살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 Monthly Magazine에 단편 ‘A Dinner at Poplar Walk’를 발표한다. 스물세 살에는 ‘Boz’라는 필명으로 다양한 정기 간행물에 풍속 전문 스케치를 기고하면서 ‘모닝 크로니클’ 기자가 된다.
스물다섯 살에는 그동안 발표한 풍속 스케치를 모아서 ‘보즈가 그린 스케치’를 출간한다. 그리고 ‘픽윅 페이퍼스’를 연재한다. 스물여섯 살에는 화가 시모어가 만화를 그리도록 보조하면서 시작한 희곡 소설 《픽위크 클럽》을 출판하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다. 이후 이년 동안 ‘벤틀리스 미셀러니’ 편집장으로 일하고 안락한 집으로 이사하면서 더욱 정열적으로 집필활동에 매진한다.
이즈음에 평생에 걸친 문학적 조안자이며 나중에 ‘찰스 디킨스 전기’를 집필하는 존 포스터(John Poster)를 만난다. 4월에는 ‘이브닝 크로니클’ 편집장 딸 캐서린 호가스(Catherine Hogarth)와 결혼한다.
집필활동에 왕성하던 디킨스는 서른세 살 나이에 견문을 넓히고자 아내 캐서린과 함께 미국을 방문한다. 왕도 없고 계급도 없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는 사실에 잔뜩 기대하나, 노예제도를 목격하고 몹시 실망한다.
서른네 살에는 ‘크리스마스 캐럴’을 출간한다. 그해 크리스마스이브 하루에 육천 권이 팔려나간 이후, 영어권 사회에서는 크리스마스트리에 꼭 걸어놓는 장식품처럼 되었다. 이 책이 크게 성공하면서 디킨스는 크리스마스에 대한 이야기를 매년 발표한다.
마흔한 살에는 ‘가정이야기’라는 잡지를 창간해, 가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하지만, 디킨스 자신은 아내와 끊임없는 불화를 겪으며 가정생활을 힘들게 이어간다.
마흔여섯 살에는 윌키 콜린스의 멜로드라마 ‘얼어붙은 골짜기’에 연출을 맡고 배우로 출연하면서 열여덟 살 여배우 엘렌 터넌과 사랑에 빠진다.
이듬해에 아내와 이혼한다. 그리고 전국을 순회하며 작품 낭독회를 시작한다. 극장에서 유료관객을 대상으로 작품 몇 장면을 골라 낭독하는 건데, 엄청난 인기를 누린다. 순회 낭독회를 통해 디킨스는 막대한 돈을 벌지만 건강을 해친다.
이듬해에 ‘일 년 내내(All the Year Round)’라는 잡지를 발행하면서 ‘두 도시 이야기’를 연재한다.
1868년 6월 8일, 오십구 세 나이로 저택에서 소설 원고 ‘에드윈 드루드의 수수께끼’를 하루 종일 쓰고 저녁식사를 하다가 쓰러져 다음 날 세상을 떠난다. 웨스트민스터 사원 ‘시인의 묘역’에 묻혀 묘비에 다음 같은 글을 새긴다.
“가난하고 고통 받고 박해 받는 사람을 동정했다. 이 사람이 죽으면서 세상은 영국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를 잃었다.”
디킨스가 세상을 떠났다는 말에 노동자들은 주막에서 “우리 친구가 죽었다.”며 울부짖고, 신문과 잡지는 며칠 동안 지면에다 찰스 디킨스 일대기를 도배하고, 한 신문은 부고란에 이렇게 적었다. “디킨스가 발표한 소설은 언제나 화제를 불러보았다. 디킨스가 쓴 소설에는 현실정치와 사건을 그대로 담았다. 디킨스가 소설에 담아낸 건 소설이 아니라 현실세계였다.”
디킨스는 가난한 사람에게 깊이 동정하고, 사회적인 악습에 반격하고, 사회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기사로 작성하고 소설에 담았다. 칼 마르크스가 “정치현실과 사회현실에 대해 전문 정치인이나 정치 평론가나 학자보다 많은 진실을 말했다.”고 평가할 정도였다. 초기 소설은 풍자가 강한 반면에 후기 소설은 풍자와 함께 치밀한 구성과 사회비평이 돋보인다.

<크리스마스 캐롤> 저자 소개

신란희 작품 총 10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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