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신동일
동화, 그 유년의 추억
내가 유년 시절을 보낸 1950년대에 더구나 외진 시골에서는 동화를 접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 기껏해야 학교에서 볼 수 있는, 색 바랜 ≪보물섬≫이나 ≪톰 소여의 모험≫, ≪아라비안나이트≫ 등 번역물 정도였다.
그런 나에게 맨 처음 동화를 만나게 해 준 창구(窓口)가 교회였다. 나는 유년 시절부터 교회에 다녔다. 교회에서는 젊고 열성적인 교사들이 성경 외에 성경 동화나 창작 동화를 들려주었다. 우리 교단에서 발행하던 ≪기독교 교육≫이란 잡지에도 가끔 창작 동화가 실렸다. 황광은 목사, 이태선 목사, 최효섭 목사, 장수철, 유영희 씨는 성장해서까지 기억되는 작가님들이다.
≪기독교 교육≫에 실린 <성의(聖衣)>라는 작품을 읽고는 너무도 감동받아서 이런 소설을 꼭 써 보겠다고 깊이 다짐하기도 했다. 십자가에 달리실 예수님의 겉옷을 제비뽑아 가져간 로마 병정의 이야기를 소설로 꾸며 쓴 감동적인 작품이었다. 교사가 부족했던 시골 교회라서 나는 조기에 아이들 지도에 나섰는데, 이런 일을 맡게 되면서 구연동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수년 동안 성경에 나오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구연하거나 극본으로 꾸며 동극(童劇)을 가르치는 일들에 골몰했는데, 두뇌 활동이 왕성한 그 시기의 경험들이 후일 내 창작 활동에 다양한 자양의 토양이 된 것으로 나는 믿는다.
나는 어려서부터 이야기를 좋아했는데 이는 가정환경과 연관이 있었을 성싶다. 아버지께서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님은 시름시름 앓고 계셨는데 효심이 깊은 형님들이 어머님께 밤마다 이야기책을 읽어 드렸다. ≪유충렬전≫, ≪홍길동전≫, ≪강명화전≫ 등이었는데 어찌나 여러 번 읽어 드렸는지 어린 나도 여러 장면들을 흥얼흥얼 외웠을 정도였다.
초등학교에 다니면서부터는 특히 국어 과목을 좋아했다. 당시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볏짚으로 이엉을 얹은 초가지붕에, 벽은 수수깡으로 엮고 흙을 바른 교실이었다. 그런데 고학년 교실은 나이 많고 드센 아이들이 장난을 쳐서 흙은 부서져 내리고 군데군데 겨우 남아 있는 얽은 수수깡 사이로 언뜻언뜻 옆 교실 아이들 노는 모습이 보일 때도 있었다.
2학년 때쯤 그 흙벽 뒤쪽에 얇고 넓은 판자로 요즈음의 학습판에 아이들이 그린 그림을 붙여 두곤 했는데, 내 동시가 붙었던 인상 깊은 추억이 있다. 책이 귀했던 당시에 어쩌다 읽어 보는 ≪새벗≫이나 ≪학원≫ 등의 잡지 속 창작 동화나 동시는 문학에 대한 꿈을 키워 주는 교과서 역할을 했다.
중학교 때에도 글쓰기를 좋아하여 문예부에 들어갔지만 당시 군내 각종 웅변대회에서 1등을 하는 바람에 변론부로 징발되어 문예활동을 접어야 했다. 고등학교 때에는 전교 시 쓰기 대회에 뽑혀 내 글이 학교 행사에서 읽히곤 했다. 신춘문예에 시를 응모하기 시작한 것도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교직에 들어서면서도 ‘글’에 대한 관심은 여전해서, 모교(북창초등학교) 초임 교사로 취임한 후에는 문예부 교사로 등사판 신문을 발간해 가며 더욱 글과 가까이했다.
운문에서 산문으로 문종을 바꾼 계기는 서울에 있는 초등학교로 옮긴 후부터였다. 동료 중 동화작가와 가까이하면서 유년 시절부터 막연히 동경해 왔던 동화에 대한 열정을 되살린 것이었다. 동료 작가가 소개해 준 잡지가 당시 유일한 아동문학 잡지인 ≪아동문학평론≫이었다.
불혹의 나이였지만 습작 활동은 게으르지 않았다.
1984년 늦깎이로 ≪아동문학평론≫지에서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고, 습작을 쉬지 않고 노력한 끝에 1987년에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동화 그리고 소설, 또 다른 나 세우기
포기할 수 없는 좁은 문을 앞에 놓고 나는 하나님께 막 떼를 썼다.
하늘나라 어딘가에 떠다닐 성싶은 이야기 한 자락을 내게 안겨 달라고.
구도자처럼 마음을 비우고 하늘을 보면 하얀 구름송이처럼 떠다니던 이야기 한끝이 내 손에 잡힐 듯도 해서였다.
신춘문예 당선 소감의 일부다.
요즈음 돌이켜 보면 내 소설·동화의 대부분은 또 다른 내 모습처럼 보인다. 환경은 다르지만 글 속에 내 모습을 세워 나가는 작업이 된 듯하다. 앞에서 내 인격 형성에 홀어머니가 크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소개했는데, 동화는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내 성격과 무관치 않게 생각된다.
4남 1녀를 키우신 우리 어머니는 공정하고 눈썰미가 좋아서 동리 애경사가 있으면 이삼일씩 뽑혀 가서 일을 보아 주셨다. 그동안만은 우리 형제가 어머니를 만날 수 없었다. 어머니는 일하시는 잔칫집 주변에 얼씬대지 못하게 하셨고 이삼일 동안 꼬박 잠을 제대로 주무시지 못해 눈이 퀭한 모습으로 돌아오시면서도 마른 떡 한 조각 치마 속에 담아 오는 법이 없으셨다.
성장하면서 각인된 어머니는 ‘절대로 올곧아야 했고, 절대로 비굴하거나 이(利)에 양심을 팔지 못하는 가풍’ 그것이었다.
이런 모습들은 우리 4남 1녀가 전수받아야 했고 또한 짊어지고 살아가야 할 방식이고 굴레였다. 아무리 내게 도움이 될 듯싶어도 교만하다고 생각되는 사람 옆에는 얼씬도 않아야 하는 결벽증 비슷한 일은 아직도 저버리지 않는 내 삶의 방식이다.
나는 영락없이 그런 어머니를 닮았고, 작품 속에 세워지는 등장인물들 역시 그런 모습들이다.
‘대교출판’에서 상재된 첫 장편소설 ≪잠들지 않는 별≫에 등장하는 기훈이도 편부 편모의 상황만 다를 뿐 바로 나 자신의 모습이다.
방에 들어선 아버지 입에서 울음을 참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사람들이 하나 둘 흩어졌다. 사람들이 돌아가고 얼마나 지났을까? 아버지도 눈이 충혈된 채 집을 나섰다.
‘아버지!’
기훈이는 아버지에게 매달리고 싶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기훈이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돌아섰다. 힘을 내면 웬만한 어려움쯤은 이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내일부터 밭을 돌봐야겠다.”
기훈이는 지나친 언동이나 허튼소리를 못 한다. 아무리 어려워도 손을 벌리지 못한다. 남에게 진 빚은 갚아야 직성이 풀린다. 그래서 이웃 할머니에게 얻어먹은 감자가 맘에 걸려서 뜸부기를 잡아 보은하려고 그물을 기워 들고 한밤중에 논으로 나가가게 된다. 손수레를 끄는 고아원 원장 역시 “장원(莊園) 안의 귀한 자리보다 하나님 문지기가 좋다”라는 성구(聖句)에 초(礎)한 내 마음속의 발현처럼 느껴진다.
종교와 문학을 한 뿌리로 한 장편
장년에 들어선 내게 종교는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세 개의 창을 가진 라일락>은 특수한 상황이기는 해도 생각의 투망 속에서 건져 낸 일상이기도 하다.
축하 노래를 부르고 케이크를 자른 후 밤 10시 반쯤 모두 불을 끄고 기도할 때였어요. 아빠가 천천히 나리의 방으로 들어가시는 걸 보았어요.
아빠는 커다란 손으로 작고 예쁜 나리 손을 붙잡고 이렇게 기도했지요.
“착하고 예쁜 나리 마음에 좋은 꿈을 갖게 해 주세요. 나리의 이 작은 손이 크고 튼튼하게 자라나서 좋은 일을 할 수 있게 해 주세요!”
<별밭으로 가는 은빛 사다리> 중에서
<세 개의 창을 가진 라일락>이나 단편 <별밭으로 가는 은빛 사다리>는 실제로 서울역, 종각역, 종로3가역에서 노숙자들에게 밥을 퍼 주고 흰 눈을 뒤집어쓰며 밤 12시에 내복을 나눠 주던 경험을 그린 글들이기도 하다.
2008년 3월 조간신문을 읽던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한국인 남편에게 맞아 죽은 어린 베트남 신부의 죽음에 대한 기사를 읽은 후였다.
21세기 경제 대국이란 한국으로 시집왔다가 안타깝게 죽은 신부도 참으로 불쌍했지만 2등 국민처럼 무시당하며 성장해 가는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은 더욱 심각한 문제라고 나는 생각했다.
엄마나 아빠가 베트남이든 몽고든 필리핀이든 이 땅에서 사는 어린이들은 똑같이 사랑받고 대접받는 어린이로 자라야 합니다. 이 책이 아직도 남아 있는 다문화 가정 어린이들의 눈물과 고통, 어려움을 지워 주는 지우개, 나와 조금 다르다고 남을 무시하거나 미워하는 마음을 지우는 지우개, 그런 지우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엄마는 응오꾸엔 대왕의 딸≫ 서문 중에서
어떤 경우에도 인간은 평등하며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 종교적 인간관이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쓴 책이 ≪엄마는 응오꾸엔 대왕의 딸≫이다.
틀 잡힌 창작 이론보다는 동화가 좋아 글쓰기에 뛰어든 나이기에, 영혼을 팔아 문학을 살 만큼 자기 혼을 불사르고 입술 트며 고뇌해서 글 쓰는 작가들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순수문학보다는 결과적으로 다분히 ‘기독교적 사랑이란 내면적 가치’를 드러내는 목적의식들이 배어 있는 글들을 주로 써 왔다는 자성 때문이다. 그러나 앞으로도 나의 창작 방향은 바뀌지 않을 것 같다. 장년을 넘어서는 내게 큰 욕심인지 모르지만 종교와 문학을 한 뿌리로 한, 가치 있는 장편을 남기고 싶다.
경력 및 작품 연보
1945년 음력 6월 11일 충남 당진군 우강면 세류리에서 부 신현표, 모 김미자 여사의 4남 1녀 중 넷째 아들로 태어남.
1952년 부친 소천.
1959년 북창초등학교 졸업.
1962년 합덕중학교 졸업.
1965년 합덕고등학교 졸업.
1968년 공주교육대학 교사 양성 과정 졸업.
1970년 북창초등학교 근무(초임).
1971년 주성환, 윤계화의 장녀 주경숙과 결혼.
1972년 장남 상빈 출생.
1974년 차남 상겸 출생.
1978년 내경초등학교 근무.
1979년 한국 방송통신대학 초등교육과, 동 대학 국어국문학과 편입 5년 수료. 북창 초등학교 근무.
1978년 서울소년의집 초등학교 근무.
1980년 서울 자운초등학교 근무.
1991년 장로 피택 및 취임.
1998년 정년퇴직.
1982년 베델 성서 신학 수료.
1984년 동화 <떠다니는 섬>으로 ≪아동문학평론≫ 제3회 신인문학상 당선.
1986년 문예진흥원 ‘문학 창작 실기 교실’ 수료.
1985년 동화 <날아라 꽃씨>로 ≪교육 신보≫ 주최 전국 교원학예술상 동화 부문 최우수상 받음(서울시 교육감상).
1987년 동화 <풀잎 각시>로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화 부문 당선. KBS TV <11시에 만납시다>(김동건 진행) 출연. CBS <선생님 축하해요> 출연, 라디오 부문 방송대상 받음.
기독교 방송국 <명작 드라마> 1년간 집필.
1988년 교육 도서 ≪감동 유발을 위한 지도 기술≫, ≪성취동기 유발을 위한 지도 기술≫ 엮음(현대교육 출판).
1989년 위인전 ≪황희≫(문공사) 출간.
1990년 창작 동화집 ≪은하수로 날아간 조약돌≫(백수사) 출간, 현대아동문학상 받음. 을유문화사의 요청으로 당 출판사 기획 출판에 참여해 기획 자문 및 작가 섭외. ≪손에 손 잡고≫ 10권 완간. 위인전 ≪슈바이처≫(삼성미디어) 출간.
1991년 장편동화 ≪깨묵이의 별난 모험≫(지경사) 출간.
중편 동화 <보리수 열매의 추억>이 이원수, 강소천, 권정생 동화와 함께 4인 동화집으로 묶여 일본(소인사)에서 번역 출간(나카무라 오사무 번역).
1992년 장편동화집 ≪잠들지 않는 별≫(도서출판 대교), 장편동화 ≪선생님이 바뀌었어요≫(지경사), 교육 도서 ≪발표력과 구연동화≫(한국교과연구회) 출간.
1993년 모친 소천. 장편동화 ≪명견 달타냥의 멋진 모험≫(지경사) 출간.
1994년 단편동화집 ≪출동 지구 구조대≫(한국서적공사), 장편동화 ≪서울친구 평양친구≫(지경사), 단편동화집 ≪오늘 과제는 산수 27쪽≫(고려원 미디어), ≪재미있는 글쓰기 여행≫(대교출판), 위인전 ≪원효≫(아이템풀), ≪주시경≫(아이템풀) 출간.
1995년 장편동화집 ≪크레파스 친구의 모험 여행≫(지경사) 출간.
1996년 ≪세 개의 창을 가진 라일락≫(도서출판 규장) 출간, 기독교 출판 문화 대상 받음. 장편동화집 ≪왕코 선생님과 괴짜 농구부≫(지경사), ≪토끼전≫(지경사) 출간.
1997년 장편동화집 ≪우리들의 말썽꾸러기 선생님≫(교학사), 교육 도서 ≪표준 논술특강≫(교학사), ≪제갈량 논술≫(지경사) 출간.
1998∼2000년 한국아동문학인 협회 사무국장 역임.
1999년 위인전 ≪진흥왕≫(파랑새어린이), ≪불멸의 이순신≫(지경사) 출간.
2000년 사립학교에서 공립학교로 전근, 서울 자운초등학교 근무.
2002년 ≪탈무드≫(지경사) 출간.
2003년 ≪낙제생 톨스토이≫(아테나) 출간.
2004년 ≪겨레의 잊혀진 영웅들을 찾아서≫(아테나), ≪하늘에서 내려온 바구니≫·≪팥죽 할머니와 호랑이≫(교육문화사) 출간.
2005년 ≪톨스토이 단편집≫·≪어사 박문수≫(지경사), ≪80일간의 세계여행≫(계림), ≪2년간의 여름방학≫(해마루) 출간.
2006년 동화 ≪별밭으로 가는 은빛 사다리≫(아테나), ≪한국대표수필≫(지경사), ≪한민족을 지킨 역사의 주인공들≫(해마루), ≪곽재우≫·≪안창호≫(지경사) 출간.
2007년 ≪광개토대왕≫·≪발해를 세운 대조영≫(아테나) 출간.
2008년 ≪돈키호테≫(지경사), ≪파브르≫(효리원) 출간.
정년퇴직.
2009년 손녀 은파 출생. ≪엄마는 응오꾸엔 대왕의 딸≫(도서출판 가문비) 출간.
2010년 ≪엄마는 응오꾸엔 대왕의 딸≫로 방정환 문학상 받음.
2011년 손자 은서 출생.
해설 - 김종헌
경북 선산에서 태어났다. 경북대학교와 대학원을 졸업한 후 대구대학교 대학원에서 <해방기 동시의 담론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0년 ≪아동문학평론≫에 동시 부문 신인상을 받고 문단에 나왔으며, 2004년 ≪아동문학평론≫에 <언어유희를 넘어선 내적인 음악성의 부각>을 발표하면서 아동문학 평론을 시작했다.
아동문학 잡지에 동시와 평론 등을 발표하고 있으며, 현재 동시조 ‘쪽배’ 동인으로 활동한다. 한편 아동문학 이론서로 ≪동심의 발견과 해방기 동시문학≫(청동거울) 등이 있으며, 그 밖에 <해방기 이원수 동시 연구>, <한국 근대 아동문학 형성기 동심의 구성방식>, <윤복진 동시의 서정적 현실 대응>, <동화에 나타난 다문화가정의 표상 연구>, <이종기의 1950년대 초기 동시 연구>, <정운모 동시 연구> 등의 논문을 발표했다. 현재 대구교육대학교 대학원(아동문학교육전공)에서 아동문학을 강의하고 있으며, 대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겸임 교수로 있다.
<신동일 동화선집> 저자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