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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순

    오상순 프로필

  • 국적 대한민국
  • 출생-사망 1894년 8월 9일 - 1963년 6월 3일
  • 학력 도시샤대학교 종교철학 학사
  • 경력 1954년 예술원 종신회원
    1930년 불교 중앙학교 교수
  • 데뷔 1920년 `폐허`
  • 수상 1962년 서울시 문화상
    1956년 예술원상

2015.02.03.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 공초(空超) 오상순(吳相淳, 1894. 8. 9∼1963. 6. 3)
오상순은 한국 근대시의 선구적 개척자 중 한 사람이다. 서울에서 목재상을 하는 집안의 4남 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나 어의동학교(현 효제초등학교)와 기독교계 경신학교를 졸업하고, 1918년 일본으로 건너가 교토(京都)에 있는 도시샤(同志社)대학교 종교학과를 졸업했다. 귀국 후 YMCA에서 번역 관련 업무와 교회의 전도사 일을 잠시 하기도 했다. 1920년 김억, 남궁벽, 황석우, 염상섭, 김찬영 등과 함께 ≪폐허(廢墟)≫ 동인으로 참여해 7월 창간호에 <時代苦와 그 犧牲>을, 그해 11월 ≪개벽(開闢)≫ 6호에 시 <新詩>를 발표하면서 문단 활동을 시작했다. 1921년 10월 ≪폐허≫ 2호에 <힘의 崇拜>, <힘의 憧憬>, <힘의 悲哀>를 포함한 시 17편과 평론 <宗敎와 藝術>을 잇따라 발표하면서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다. 보성고보 영어교사로 재직하던 1923년에는 ≪동명(東明)≫ 8호에 <放浪의 마음>, <虛無魂의 宣言>을 발표하고, 1924년에는 ≪폐허이후(廢墟以後)≫ 발간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虛無의 祭壇>, <虛無魂의 獨白> 등을 발표했다. 1926년 갑자기 작품 활동을 그만두고 동래 범어사(梵魚寺)에 입산해 불교적 선의 세계를 추구했다. 이 무렵 대구, 부산 등을 유랑하면서 이상화, 이장희, 백기만 등과 교분을 쌓았다. 공초(空超)라는 호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다. 그 후 전국의 사찰을 전전하다가 중국에 건너가 베이징(北京)에 머물면서 저우쭤런(周作人) 등 중국 문인들과 교류하였으며, 귀국 후에는 ‘불교중앙학림(동국대학교 전신)’에 잠깐 몸을 담기도 했다. 1940년 대구로 내려가 이상화의 소개로 알게 된 여인과 살림을 잠시 차렸으나 해방 이후 한국전쟁 동안 일정한 직업도 없이 방랑의 생활을 계속 보냈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에는 조계사(曹溪寺)에 몸을 기탁해 낮에는 연극인 이해랑이 운영하던 명동의 ‘청동다방’에 머물며 여러 문인들과 어울렸다. 이 만남을 기록한 195권의 문인 서명첩인 ≪청동산맥(靑銅山脈)≫을 남겼다. 이 무렵 오상순은 허무를 초극하고자 무소유의 삶을 직접 실천했다. 1961년 몸을 기탁했던 조계사를 나와 안국동의 ‘정이비인후과’에서 생활하다가 고혈압성 심장병과 폐렴으로 입원해 1963년 6월 3일 적십자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폐허≫가 창간되던 1920년부터 40년 넘게 작품 활동을 했지만, 정작 그가 쓴 시는 그리 많지 않았으며 생전에 시집을 출간한 적도 없다. 관념적이며 언어의 미의식을 중시하지 않았다는 문학사의 일반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는 허무적 어조 뒤에 맹렬한 정열을 숨기고 있다. ≪폐허≫의 동인들은 오상순을 온순한 동시에 열정이 있고, 다감하고 눈물이 많으면서도 비장한 종교적 잔인성이 있으며, 사기(邪氣)가 없으면서도 탈선적인 행동을 하는 불가사의한 존재라고 말한다. 독신과 방랑, 그리고 애연(愛煙) 등으로 수많은 일화를 남긴 오상순의 무소유·무정처의 초연한 삶은 그의 시와 밀접한 상관성을 지닌다. 1963년 그가 죽은 지 20일 후에 유고 시집이자 유일한 시집인 ≪공초 오상순 시선≫이 절친한 동료였던 구상의 도움으로 자유문화사에서 간행되었다. 1983년에는 오상순 시전집인 ≪아시아의 마지막 밤 풍경≫(구상 편, 한국문학사)이, 1988년에는 추모 문집인 ≪시인 공초 오상순≫(구상 편, 자유문학사)이 간행되었다. 1992년부터 무소유의 삶을 살다 간 그를 기리기 위해 ‘공초문학상’이 제정되어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다.

편자 = 여태천(余泰天)
여태천은 1971년 경남 하동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김수영 시의 시어 특성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0년 ≪문학사상≫ 신인상으로 문단에 등단했다. 현재 동덕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시집 ≪국외자들≫(2006), ≪스윙≫(2008), ≪저렇게 오렌지는 익어 가고≫(2013), 비평서 ≪김수영의 시와 언어≫(2005), ≪미적 근대와 언어의 형식≫(2007), 편저 ≪춘파 박재청 문학전집≫(2010), ≪이성선 전집 2·산문시 기타≫(2011) 등을 비롯해 여러 권의 공저가 있다. 제27회 김수영문학상(2008)을 수상했다.

<오상순 시선 초판본> 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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