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폐허로 만든 30년전쟁이 끝날 무렵인 1646년, 라이프니츠는 작센 주 라이프치히 시의 독실한 루터교도 집안에서 태어났다. 라이프치히 대학의 철학교수였던 아버지는 라이프니츠가 다섯 살 때 사망했지만, 아버지가 남긴 많은 장서 덕분에 라이프니츠는 폭넓은 독서를 할 수 있었다. 그는 김나지움에 입학하기 전에 이미 라틴어를 깨치고 그리스 로마 고전을 독파했다.
1661년 라이프니츠는 라이프치히 대학에 입학하여 법학과 철학을 공부하며 갈릴레이, 데카르트, 홉스의 저작들을 접하게 된다. 그는 희랍어와 히브리어에 능했고, 철학, 수학, 물리학의 새로운 법칙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었다. 1663년에 쓴 학사 학위 논문 〈개체의 원리〉에서 개체의 존재가치를 형식과 질료를 포함하는 전체존재로 설명하며 모나드 개념의 첫발을 내딛는다. 1666년 박사 학위를 신청했지만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거절되자, 알트도르프 대학으로 옮겨 〈법학에서 분규 사례에 대해〉라는 논문으로 법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다.
알트도르프 대학의 교수 제의를 거절한 후 라이프니츠는 마인츠의 선제후에게 발탁되었고, 1674년 선제후의 외교 사절로 파리를 방문한다. 원래 목적이었던 루이 14세 알현은 실패했지만, 라이프니츠는 당시 지식의 중심이던 파리에서 4년간 지내며 데카르트 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데카르트의 인식론에 모순이 있다고 판단한 라이프니츠는 데카르트의 연장 개념과 공간 논의를 비판하면서 미분과 적분의 기초를 세웠고, 1684년에는 그 해설서인 《극대·극소를 위한 새로운 방법》을 출간했다. 이때 그가 제시한 이진 체계는 현대 컴퓨터의 기초가 된다.
1695년 《새로운 체계》에서 실체의 관계와 영혼 및 육체의 예정조화를 제시했고, 이는 주저 《변신론》(1710)에서 신의 정의正義에 관한 생각으로 발전한다. 1714년부터 제국고문의 지위로 빈에 머물면서 〈이성에 근거한 자연과 은총의 원리〉, 〈모나드론〉을 집필해 ‘변신론’ 철학을 완성했다. 1716년 통풍으로 고생하다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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