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1.07. 업데이트
저자 - 강소천
강소천(姜小泉)은 1915년 9월 16일 함경남도 고원군 수동면 미둔리에서 부친 강석우 씨와 모친 허석운 씨의 2남 4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본명은 용률(龍律)이다. 고원공립보통학교와 함흥 영생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1939년 고향 미둔리에서 결혼했으며, 1945년부터 6·25가 일어나기 전까지 고원중학교, 청진여자고급중학교, 청진제일고급중학교에서 국어교사로 근무했다.
그는 1931년 동요 <무궁화에 벌나비>와 소년시 <봄이 왓다>가 ≪신소년≫ 2월호에 실린 후, 같은 해 ≪아이생활≫에 동요 <길ㅅ가엣어름판>, <얼골몰으는 동무에게>, <울어내요 불어내요>, <코스모스꽃>, <호박꽃과 반딧불> 등을 투고하여 발표했다. 1933년 동요 <울엄마젓>이 ≪어린이≫ 5월호에 입선되고, <까치야>가 ≪아이생활≫ 5월호에 윤석중의 고선으로 뽑혀 발표되고부터 정식 작가로 인정받았다. 1936년 ≪童話(동화)≫에 동요 <제비>, <◇리아>, 동시 <국화와 채송화> 등을, 1937년 ≪소년≫ 창간호에 대표작 <닭>을 발표했으며, 1937년부터는 동요·동시와 함께 동화와 소년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1937년 소년소설 <재봉 선생>과 1939년 동화 <돌맹이 Ⅰ, Ⅱ>를 ≪동아일보≫에 발표한 이후 동화 <감과 꿀>(≪아이생활≫ 1940. 2), <따짜구리>(≪소년≫ 1940. 12), 장편동화 <희성이의 두 아들>(≪아이생활≫ 1940. 9·10∼) 등을 연이어 발표하면서 동화작가로 본격적으로 활동했다.
1941년 첫 동요시집 ≪호박꽃초롱≫을 간행했다. 해방 전 윤석중의 동요, 동시집 출간 이래 유일하게 간행된 ≪호박꽃초롱≫은 그 한 권만으로도 한국 동시문학사에 빛나는 업적이다. 이 동요시집은 일제 말기 혹독한 우리말 탄압 정책 아래 간행되었다는 점뿐만 아니라 당시 주류를 이루던 가창 동요의 형식과 내용을 완전히 탈피하고 새로운 시적 차원을 구축해 해방 이후 우리 동시문학의 방향성을 제시해 준 까닭이다. ≪호박꽃초롱≫에는 서른세 편의 동요·동시와 창작동화 <돌맹이 Ⅰ, Ⅱ>가 수록되어 있는데, 1939년 ≪동아일보≫에 발표한 이 <돌맹이 Ⅰ, Ⅱ>는 그가 동시인에서 동화작가로 변신함을 알리는 중요한 작품이다.
강소천은 고향에서 6·25를 당하고, 1951년 1·4후퇴 때 고향에 부모와 처자를 남겨 둔 채, 흥남에서 군부대를 따라 단신으로 월남했다. 이때 그는 남한 땅을 고향에 두고 온 가족과는 일시적으로 떨어져 지내야 하는 한시적 삶의 공간으로 생각했으나 6·25 전쟁은 남북을 갈라놓은 휴전으로 종결되고 세월이 흐를수록 분단이 고착화되면서 결국 남한 땅은 그에게 삶의 터전으로 새롭게 일구어 내야 하는 공허한 삶의 공간이 되고 말았다. 월남 후 그는 주로 아동잡지 편집과 교육 활동에 종사하며 1963년 타계할 때까지 10여 년간 가장 왕성한 창작 활동을 펼쳤다. ≪어린이 다이제스트≫ 주간, ≪새벗≫ 주간, ≪아동문학≫ 편집위원, 한국아동문학가협회 분과위원장, 아동문학연구회 회장, 문인협회 이사, 한국보육대학 강사, 이화여대 도서관학과 강사, 국정교과서 국어과 심의 의원, 서울 중앙방송국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그는 1960년 ≪동아일보≫에 ‘<돌멩이> 이후’라는 글에서 “나는 동화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동화에다 나는 일본사람들이 우리나라를 빼앗은 이야기며 그 때문에 우리들이 고생하는 이야기를 써 보고 싶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그러나 월남 이후 그가 쓴 대부분의 동화와 소년소설은 일본사람들에게 나라를 빼앗겨 고통 받은 이야기가 아니라 6·25로 야기된 참혹한 피해에 대한 복구가 요원했던 1950년대란 시대사적 명제를 안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체험한 나라 잃은 고통스러운 삶의 질곡을 숨김없이 털어놓고 싶어 했지만 그보다 고향과 혈육의 상실을 가져다준 6·25의 충격이 더 근원적인 아픔으로 남았던 까닭이다. 문학이 한 시대의 갈등과 고뇌를 반영한다는 보편적인 인식을 간과하더라도 6·25 종전 이후 동화와 소년소설에 본격적으로 매달려 온 강소천 동화문학의 제반 내용은 6·25 체험과 고착화된 분단의 영향을 배제할 수 없을 만큼 그 충격은 강소천 동화의 발생론적 배경이 되었다. 강소천에게 6·25가 가져다준 고향과 가족의 상실은 존재 의미를 감당하기 힘들 만큼 진정한 세계의 상실을 뜻하기 때문이다. 강소천에게 삶의 의미를 상실하게 한 1950년대란 살아가야 하는 생존 자체도 문제였지만 보다 근원적인 자신의 진정한 의미를 찾는 문제가 우선 과제일 수밖에 없었다. 삶의 의미를 차단한 분단의 벽을 스스로 당면한 현실로 받아들여야 하는 고통스러운 인식에서였다.
강소천의 동화문학은 그에게 상실감을 안겨 준 엄청난 6·25의 체험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하는 수난의 문제를 감싸 안고 있는 삶의 원리이자 존재 방법이었다. 동요·동시에서 동화로의 전환은 이야기하고 싶은 단순한 대리충족의 차원에 머문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새로운 삶의 창조 곧 ‘찾음’이란 생성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자기 극복의 한 방법이었던 것이다. 안으로 ‘상실’이라는 충격적인 현실에 순응하면서, 밖으로는 새로운 자기 발견을 감내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까닭이다. 6·25로 죽음의 공포와 굶주림, 밀려오는 그리움과 외로움을 몸소 체험해야 했던 강소천에게 우선 어떠한 과제보다 가장 인고하기 힘들었던 문제는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의 상실감이었다.
강소천은 그러한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 주고자 했다. 그는 ≪인형의 꿈≫(새글집, 1958) 후기에서 “나는 여러분에게 아름다운 꿈을 주기 위해서 늘 동화를 쓰고 있습니다”라는 신념을 표명할 수 있었다. 따라서 강소천 문학에 나타난 꿈은 자신이 인식한 수난의 문제에 대한 수습의 과정을 실현하는 인과적 계기물이자 보다 극명한 자신의 내면 정신을 구현하는 하나의 상징물이라 할 수 있다. 고향을 북에 두고 단신 월남한 그에게 동경하는 세계에 대한 내면적 지향성이 절실하면서도 6·25란 시대사적 명제를 극복해 내고자 한 긴장감이 꿈으로 변이되었던 까닭이다. 곧 그에게 꿈이 6·25 이후의 고통스러운 자폐적 삶의 공간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게 하고, 정당한 문학적 감응력에 소진할 수 있게 한 양식임은 자명한 일이다. 이처럼 강소천은 1951년 1·4후퇴 때 월남 이후 어린이에게 꿈을 심어 주는 동화작가로 변신해 1963년 간경화증으로 타계할 때까지 10여 년간 왕성한 창작 활동을 펼친 동화작가였다.
1963년 세상을 떠난 직후 그가 편집위원으로 활동했던 ≪아동문학≫ 5집(1963)은 추모특집으로 그를 기렸고, 이듬해 ≪아동문학≫ 10집은 <소천의 인간과 문학>이라는 특집으로 그를 조명했으며, 1964년에는 배영사에서 전 6권의 ≪강소천아동문학전집≫이 간행되었다.
그는 마해송 등과 어린이 헌장을 기초했고, 어린이들을 위한 독서 지도와 글쓰기 지도 등을 통해 아동문예 육성에 남다른 열성을 보이기도 했다. 그의 아동애호에 대한 노력은 그의 작품과 함께 인정받아 사후 1963년 5월 문공부 주최 제2회 5월문예상 본상을 수상했으며, 정부는 1985년 10월 19일 ‘문화의 날’을 맞아 그에게 대한민국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그의 72회 탄생일인 1987년에는 그를 아끼는 문인들이 동요시 <닭>을 새긴 강소천 문학비를 서울대공원 진입로에 세웠으며, 1965년 배영사에서 제정한 ‘소천아동문학상’을 오늘날까지 시상하며 그를 기리고 있다. 현재 그는 경기도 양주군 교문리 가족묘지에 잠들어 있다.
저서로는 동요시집 ≪호박꽃초롱≫(박문서관, 1941), 동화집과 소년소설집으로 ≪조그만 사진첩≫(다이제스트사, 1952), ≪꽃신≫(한국교육문화협회, 1953), ≪진달래와 철쭉≫(다이제스트사, 1953), ≪꿈을 찍는 사진관≫(홍익사, 1954), ≪달 돋는 나라≫(대한기독교서회, 1955), ≪바다여 말해다오≫(대한기독교서회, 1955), ≪종소리≫(대한기독교서회, 1956), ≪무지개≫(대한기독교서회, 1957), ≪인형의 꿈≫(새글집, 1958), ≪꾸러기와 몽당연필≫(새글집, 1959), ≪대답 없는 메아리≫(대한기독교서회, 1960), ≪강소천 아동문학독본≫(을유문화사, 1961), ≪한국아동문학전집-강소천편≫(민중서관, 1962), ≪어머니의 초상화≫(배영사, 1963), ≪강소천 아동문학전집≫ 전 6권(배영사, 1964), ≪강소천문학전집≫ 전 15권(문음사, 1981), ≪강소천 아동문학전집≫(교학사, 2006) 등이 있다.
해설 - 김용희
동시인, 아동문학평론가. 1956년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경희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2년 ≪아동문학평론≫지에 아동문학평론이 천료되어 평론 활동을 시작했으며, ≪쪽배≫ 동인으로 동시조를 쓰고 있다. 지은 책으로 아동문학평론집 ≪동심의 숲에서 길 찾기≫, ≪디지털 시대의 아동문학≫, ≪옥중아, 너는 커서 뭐 할래≫(엮음), 동시조집 ≪실눈을 살짝 뜨고≫, 동시 이야기집 ≪짧은 동시 긴 생각 1≫ 등이 있으며, 제9회 방정환문학상, 제18회 경희문학상, 제21회 한국아동문학상, 제1회 이재철아동문학평론상을 수상했다. 현재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객원교수, 한국아동문학연구센터 부센터장, 한국아동문학학회 회장, 계간 ≪아동문학평론≫ 편집주간으로 활동하고 있다.
<강소천 동화선집> 저자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