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손수자
1953년 부산시 신평동에서 태어났다. 달랑 숟가락 두 벌만 가지고 살림을 차렸던 아버지는 끈기와 성실함으로 꽤 많은 토지와 머슴까지 부리는 비교적 유복한 가정을 일궜다. 아들 하나 딸 다섯 중에서 셋째 딸로 위아래 귀여움을 받고 외할머니가 계셔서 나의 유년은 더욱 풍요로웠다.
딸만 둘뿐이었던 외할머니는 막내딸이 있는 우리 집 한 편에 아버지가 따로 지어 주신 작은 집에서 살고 계셨는데 나는 외할머니를 무척 따랐다. 할머니 방에 들어가 반닫이를 열면 차곡차곡 한지로 된 책이 쌓여 있었다. 할머니는 천주교 신자였는데 그 당시 한글을 깨치고 글을 읽을 줄 아는 몇 안 되는 어른이셨다. 자잘한 꽃무늬가 그려진 겨자색 비단 치마와 저고리를 단정하게 입고선 늘씬한 키에, 늘 성경책을 곁에 두고 있었으며 나에게는 옛날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셨다. 나는 했던 이야기를 또 해 달라고 조르고 졸라 할머니의 무릎에서 잠이 들곤 했다. 한지로 된 책에서 나는 냄새와 할머니의 치맛자락에서 나는 향기가 너무 좋았다.
내가 동화작가가 된 것은 어쩜 할머니의 옛이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할머니는 내가 교육대학에 입학한 후 세상을 떠났는데 그때 내가 얼마나 울고 또 울었는지, 모르는 사람들은 엄마가 돌아가셨느냐고 묻기도 했었다.
또 우무실(윗마을)에 사는, 둘도 없는 나의 책 동무 영희도 나를 동화작가로 만든 씨앗인지 모른다. 영희의 집에 가면 안데르센 동화집과 여러 가지 책들이 많이 꽂혀 있었는데 나는 그 집 뒷방에서 책 읽는 것이 정말 즐거웠다. 영희의 집에서 아래무실(아랫마을)에 있는 우리 집까지 가려면 산길을 지나야 되는데 우리는 늘 중간 지점까지 데려다 주었다가 다시 왔다 갔다 하면서 해가 져야 각자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 후 친구는 중학교 때부터 서울로 공부하러 갔기 때문에 방학 때만 갈증 나는 우정을 나누다가 지금은 서로 소식도 없지만 나는 영희를 가끔 꿈속에서 만나곤 한다.
친구 집에서 읽었던 자주색 표지 세계 명작 동화 전집과 툇마루 뒤편 대나무 숲은 이야기를 읽다가 가끔 상상의 길을 잇는 데 충분했다.
또 강소천 선생님의 <꿈을 찍는 사진관>은 나에게 꿈과 환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작은 길을 열어 주었다. 난 꿈을 찍는 사진관의 배경과 비슷한 작은 동산에 올라가 스케치북을 옆에 끼고 작품 속 그 어설픈 화가의 흉내를 내면서 아랫마을 옆으로 흐르는 낙동강의 반짝이던 강물을 내려다보며 그 분위기에 젖어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중·고등학교는 부산항이 내려다보이는 좀 높은 지대에 있었는데 도서관은 또 제일 높은 별탑이 있는 곳과 가까웠다. 책을 읽다가 부산항의 뱃고동 소리와 세관의 고딕식 건물이 상상의 나래를 펴기 좋은 풍경으로 문학적 소양을 기르는 데 한몫을 했다.
국어 시간은 늘 즐거웠고 선생님들도 나를 귀여워했다. 그와 더불어 학교 신문에 내 글이 실려 인쇄물로 받았을 때의 기쁨도 문학을 향한 계단이었음이 분명하다. 또 국어 선생님 중 시인 한 분이 계셨는데 그분의 <낯선 사람끼리 만난다>라는 시는 울림이 있는 목청과 동적인 문체로 소녀를 시적 감성에 푹 빠지도록 했었다.
조병화 님의 시를 좋아했고 특히 <추억>이라는 시는 사춘기 소녀를 괜한 서글픔으로 센티멘털에 빠지게도 했다. 어쩜 이 감상적 감수성도 작가로 크는 데 거름이 되지 않았나 생각되기도 한다.
도서관과 친하게 지내고 일기를 꼬박꼬박 쓰면서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으며 여고 시절을 보냈다. 성인이 되어 나를 기억하는 동기들이 중간 자리에서 늘 손에 책을 놓지 않았던 내 모습이 생각난다는 것을 보면 그때 읽었던 수많은 책들이 문학적 텃밭이 되었음이 분명하다.
어릴 적부터 꿈이 선생님이었다. 친구들과 소꿉장난을 하면서도 난 늘 선생님이 되었다. 차렷, 열중쉬어, 차렷, 경례! 인사하는 것이 재미있었고 뿌듯했다. 함께하다가 아이들이 선생님 말도 듣지 않고 저녁 먹으러 간다고 돌아가 버리면 돌멩이를 한 줄로 세워 놓고 혼자서 선생님 놀이를 하기도 했다. 석양에 비친 살구나무 아래 추억의 옛 집에서 선생님 놀이를 하고 있는 장면은 내 가슴에 한 장의 사진으로 남아 있다. 지금이나 그때나 부산교육대학 들어가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책을 손에 놓지 않는 습관 덕분에 틈틈이 버스를 기다리며 단어장이나 문제집으로 공부하면서 72학번으로 교육대학에 당당히 입학했다. 교육대학에서는 도서부원을 하면서 책 분류를 하고 더 다양한 책을 접하게 되었으며 교대신문에 글을 게재하기도 했다.
졸업을 하고 첫 부임지가 반여초등학교였는데 그곳은 무지개마을로 철거민들의 보금자리여서 너무나 열악했다. 새내기 선생님은 애오라지 잘 가르쳐 보겠다는 열정 하나로 아이들에게 동화도 들려주고 환경 정리도 함께하면서 늦은 밤 막차를 타고 집에 돌아오는 날도 많았다. 또 문예부를 맡아 아이들을 지도했고, ≪부산일보≫ 등에 글을 투고하면서 인쇄되어 나오는 글에서 기쁨을 만끽하기도 했다.
퇴근하면서 서점에 자주 들렀는데 ≪아동문학평론≫이라는 책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아동문학에도 평론이 있다? 아주 신선함으로 다가온 ≪아동문학평론≫은 나에게 기존의 동화를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것도 좋지만 나도 동화를 지어 보자는 데까지 이끌어 주었다.
뜻이 있으면 길이 있는 법, 그때 교직에 있으면서 왕성한 창작열을 가지고 계신 정진채 선생님을 찾아가 작품 몇 편을 보여 주게 되었고, 그중 <호박꽃 이야기>로 1988년 ≪아동문학평론≫을 통해 등단을 하게 되었다. 그 전에 몇 번 신춘문예에 응모해 본 적도 있었으나 연이 닿지 않았다. 반짝하고 사라지는 별보다 영원히 반짝이는 별이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등단 후에는 더 도전하지 않았고 많이 읽고 생각하면서 글감이 모이는 대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등단 후 24년 동안 교단 작가로 지금도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한 번씩 힘들고 괴로울 때도 교사 생활을 접지 못하는 것은 다양한 아이들 속에서 건져 올리는 삶의 이야기가 내 동화 글감의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제가 한정적이고 좁을 수는 있으나 인연이 되어 함께하는 모든 삶이 나의 글감이기에 소재나 주제의 확장을 위해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나의 영원한 동화의 주제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자연과의 사랑, 인간과의 정이다.
돌이켜 보면 등단 초기의 작품에서는 대부분 순수 동화에 애정을 가지고 꿈과 현실을 접목해 어떻게 하면 <꿈을 찍는 사진관>처럼 절묘하게 환상과 현실의 연결 고리를 찾을지 고민했다. 그래서 1997년에는 부산교육대학교대학원 국어교육과에 진학해 교과서에 나오는 동화를 분석해 보고 우리 고장 부산의 동화작가인 이주홍 선생님의 동화에 대한 문체론적 연구를 해 석사 학위를 받았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글을 쓰고, 또 늦게 공부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문체에 대한 바른 생각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또 기회가 있으면 후배들과 동화 창작에 대해 함께 이야기해 보고 싶었는데 연이 닿아 올 가을 학기부터 동의대학교 문예창작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아동문학창작세미나 강의를 맡아 예비 작가들과 함께하고 있다.
작품 활동 중반부터는 어른들의 세계에 관심을 많이 가졌다. <누가 겨울에 개나리를 피울까?>, <그 녀석 길들이기>, <시간 여행>은 소외되고 결핍된 공간 속에 존재하는 삶, 그런 시련과 고통의 한을 이겨 내고 외로움을 풀어 가고 있는 인물을 설정해 그 주제를 선명하게 표출하려고 애를 썼다.
또 아이들과 생활하면서 그들의 이야기, <걸어 다니는 바다>, <깃발>, <하늘 나라 기차표>, <물과 거품>, <단지 엄마>, <꽝꽝나무와 막대사탕>, <제발>, <누가 보고 있을까?>는 스스로 외로움을 이겨 내는 방법과 더불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따뜻한 손길이 아직도 많이 있음을 표현하고 싶었고, 인간의 기본적인 예의에 대한 이야기도 동심과 함께 풀어내려고 했다. 참, <할머니의 옛이야기>는 내가 외할머니의 무릎에서 들은 이야기를 기억하면서 새로 구성한 글인데 할머니보다 감칠맛이 적어 아쉽기도 하다.
앞으로도 인간에 대한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단편은 물론이고 장편도 서너 편 더 쓰고 싶다. 특히 장편은 먼 나라, 한국을 떠나 미국이나 인도네시아·싱가포르 등에 있는 우리 아들딸의 이야기에서 소재를 찾아 낯선 곳에서의 가족 간의 유대와 세계 속의 우리 아이들의 이야기를 써 보고 싶다.
어쩜 인생은 한 편의 동화인지도 모른다. 옛날이야기처럼 행복한 이야기로 결말이 나는 푸른 동화 속의 주인공으로 살면서 죽을 때까지 열심히 쓰는 동화작가로 남고 싶다.
작품 및 수상 연보
1988년 동시 세 편 <놀이터>, <유월>, <1학년 교실> 발표(교육 자료). ≪아동문학평론≫에 동화 <호박꽃 이야기> 발표.
1991년 동화집 ≪꽃이 된 구름≫(아동문예) 출간.
1993년 ≪꽃이 된 구름≫으로 제15회 부산아동문학상 수상. 장편동화 ≪가슴마다 사랑≫으로 제1회 눈높이아동문학상 당선. 동화집 ≪시간 여행≫(아동문예) 출간.
1994년 ≪가슴마다 사랑≫(대교출판) 출간. 동화집 ≪시간 여행≫으로 해강아동문학상 수상.
1996년 ≪일기 쓰는 해님≫(아동문예) 출간.
2000년 ≪하늘별꽃≫(아동문예) 출간. ≪제1회 우리나라 좋은 동화 12≫(파랑새어린이)에 <하늘 나라 기차표> 수록.
2002년 ≪하나는 바람돌이≫(한국독서지도회) 출간. ≪복이 아재: 제10회 우수창작동화 20≫(대교출판)에 <걸어 다니는 바다> 수록. ≪제3회 우리나라 좋은 동화 12≫(파랑새어린이)에 <깃발> 수록.
2004년 ≪100년 후에도 읽고 싶은 한국명작동화 2≫(예림당)에 <깃발> 수록.
2005년 ≪하늘 나라 기차표≫(아이톡) 출간.
2006년 ≪눈물꽃≫(해성출판), ≪꽝꽝나무와 막대사탕≫(청개구리) 출간. <황금소나무>로 한국불교아동문학상 수상. <깃발>로 영남아동문학상 수상.
2007년 ≪하늘이네 교실 이야기≫(아동문예), ≪과학동화 1학년≫(효리원) 출간.
2007년~2009년 ≪열린아동문학≫에 장편소년소설 <그리움과 비누 거품은 닮았다> 6회 연재.
2008년 ≪땅으로 내려온 구름≫(한국헤밍웨이) 출간.
2009년 ≪하늘이네 교실 이야기≫로 제29회 이주홍아동문학상 수상.
2010년 ≪허수아비 아빠≫(연두비) 출간.
2011년 ≪나무거울≫(해성출판) 출간.
2012년 ≪단지 엄마≫(아동문예) 출간.
해설 - 김종헌
김종헌(金鐘憲)은 경북 선산에서 태어났다. 경북대학교와 대학원을 졸업한 후 대구대학교 대학원에서 <해방기 동시의 담론 연구>으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0년 ≪아동문학평론≫에 동시 부문 신인상을 받고 문단에 나왔으며, 2004년 ≪아동문학평론≫에 <언어유희를 넘어선 내적인 음악성의 부각>을 발표하면서 아동문학 평론을 시작했다.
아동문학 잡지에 동시와 평론 등을 발표하고 있으며, 현재 동시조 ‘쪽배’ 동인으로 활동한다. 한편 아동문학 이론서로 ≪동심의 발견과 해방기 동시문학≫(청동거울) 등이 있으며, 그 밖에 <해방기 이원수 동시 연구>, <한국 근대 아동문학 형성기 동심의 구성 방식>, <윤복진 동시의 서정적 현실 대응>, <동화에 나타난 다문화가정의 표상 연구>, <이종기의 1950년대 초기 동시 연구>, <정운모 동시 연구> 등의 논문을 발표했다. 현재 대구교육대학교 대학원(아동문학교육 전공)에서 아동문학을 강의하고 있으며, 대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겸임 교수로 있다.
<손수자 동화선집> 저자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