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대(漢代) 동방삭(東方朔)이 편찬하고 진대(晉代) 장화(張華)가 주를 단 소설. 변방의 기괴한 신이나 짐승, 신기한 사물들에 대한 상상력을 마음껏 펼쳐 보임으로써 중국 소설의 상상력의 원동력이 되었다. ≪신이경≫의 풍자와 해학에서 회해미(?諧美)의 진수를 볼 수 있다.
≪신이경(神異經)≫은 한대(漢代) 동방삭(東方朔)이 편찬하고 진대(晉代) 장화(張華)가 주를 단 한대(漢代) 소설로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이 전혀 전해지지 않아 우리는 여러 가설과 추측으로 접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신이경≫을 비롯한 ≪십주기(十洲記)≫, ≪한무내전(漢武內傳)≫, ≪한무고사(漢武故事)≫, ≪동명기(洞冥記)≫ 등 한대에 지어졌다고 전해지는 소설들은 진대(晉代) 이후의 방사(方士)들이 자신들의 종교를 신비화하기 위해 저술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신이경≫ 도처에서 발견되는 신선사상(神仙思想), 방술(方術),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과 팔괘(八卦)에 입각한 체재 등은 저자가 방사 출신이었음을 증명해 준다. 예컨대 <동황경>에는 열한 개 조목 중 나무에 관계된 조목이 일곱 개나 나오며 그 밖에 <남황경>에서 여름과 불을 상징하는 ‘화서(火鼠)’와 ‘한발(旱魃)’, <서황경>에서 금속성의 메마르고 거친 땅의 이미지가 묘사된 ‘금산(金山)’, <북황경>에서 겨울과 물을 상징하는 ‘계서(磎蹊)’와 ‘횡공어(橫公魚)’ 등은 ≪신이경≫의 서사적 특징을 잘 보여주는 조목들이라 하겠다.
뿐만 아니라 ≪신이경≫의 팔방(八方) 개념은 ≪주역(周易)≫ 팔괘와의 상관성을 연상시킨다. 아마도 <동남황경(東南荒經)>의 ‘지호(地戶)’와 <서북황경(西北荒經)>의 ‘천문(天門)’ 등이 그 예가 될 것인데, ≪신이경≫에서의 방위 개념은 후천팔괘도(後天八卦圖)의 팔괘 방위에 의해 성립된 것으로 보인다. ≪주례(周禮)≫ <대사도(大司徒)> ‘소(疏)’에 인용된 <하도괄지상(河圖括地象)>에 ‘하늘은 서북쪽으로 꺼지고 땅은 동남쪽으로 꺼졌다. 서북쪽은 천문이 되고 동남쪽은 지호가 된다(天不足西北, 地不足東南. 西北爲天門, 東南爲地戶)’라고 되어 있다. 또 ≪역위건착도(易緯乾鑿度)≫에 ‘건(乾)이 천문이 되고 손(巽)이 지호가 된다(乾爲天門, 巽爲地戶)’라고 되어 있다. 이렇게 볼 때 ≪신이경≫의 체재는 건(乾)이 동북쪽에 위치하고 손(巽)이 동남쪽에 위치한 후천팔괘도의 팔괘의 방위에 근거했다고 할 수 있다.
바로 이 점이 다른 지리박물지(地理博物志) 형식의 작품들, 즉 ≪산해경≫이나 ≪십주기(十洲記)≫, ≪박물지(博物志)≫ 등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신이경≫만의 특징을 이루고 있다. ≪신이경≫은 크게 <동황경(東荒經)>, <동남황경(東南荒經)>, <남황경(南荒經)>, <서남황경(西南荒經)>, <서황경(西荒經)>, <서북황경(西北荒經)>, <북황경(北荒經)>, <동북황경(東北荒經)>, <중황경(中荒經)> 아홉 편으로 나누어져 있다. 지상(地上)을 중앙, 정사방(正四方)과 사간방(四間方)으로 9등분한 뒤 일정한 방위 개념에 입각해 변경의 기이한 사물들을 서술해 나가는 것이 ≪신이경≫ 체재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은 중국 신화서인 ≪산해경(山海經)≫과 유사하나 ≪산해경≫이 중앙과 동서남북으로 나누어져 있는 것에 비해 ≪신이경≫은 중앙과 팔방으로 나누어져 있다. 이러한 방위 개념은 음양오행설과 팔괘와 결합되어 ≪신이경≫ 체재의 특징들을 만들어내는 토대가 된다.
≪신이경≫은 지리서적 외형(外形)을 빌려와 각 변방의 사물에 대해 기록한 서술 방식부터 ≪산해경≫과 매우 유사하며 ≪수서≫ <경적지>나 ≪구당서≫ <경적지>, ≪숭문총목≫ 등에서 ≪산해경≫과 나란히 지리류(地理類)로 분류되기도 했다. ≪신이경≫은 분명 ≪산해경≫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작품임에 틀림없지만 도교 설화(道敎說話)의 색채가 더욱 가미된 모티프들은 새로운 의경(意境)을 창출해 내고 있어 중국 소설의 상상력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이경≫은 변방에 있는 기괴한 신이나 짐승, 신기한 사물들에 대한 상상력을 마음껏 펼쳐 보이면서도 동시에 ≪신이경≫만의 독특한 개성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특히 괴걸(怪傑) 동방삭의 명성에 힘입어 위상을 지켜왔던 ≪신이경≫의 풍자와 해학은 ≪십주기(十洲記)≫나 ≪한무내전(漢武內傳)≫, ≪동명기(洞冥記)≫ 등의 지괴소설(志怪小說)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회해미(?諧美)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본 편역은 ≪사고전서(四庫全書)≫를 저본(底本)으로 하되 주를 달거나 교감을 하는 과정에서 대만(臺灣) 왕궈량(王國良)의 ≪신이경 연구(神異經硏究)≫[문사철출판사(文史哲出版社), 1985]와 저우츠지(周次吉)의 ≪신이경 연구(神異經硏究)≫[문진출판사(文津出版社), 1986]를 참조했다. 현재 ≪신이경≫ 판본은 송(宋), 원(元)대까지 산발적으로 흩어져 전해지다가 명대(明代)에 와서야 단행본으로 정리된 것이다. 이 때문에 각 유서(類書)들에 전해지는 판본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는데, 편역 과정에서 다양한 서적들을 참조해 가능한 가장 완전한 문장의 형태를 갖추도록 교감하려고 노력했다. 주(注)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거나 어려운 한자들의 뜻을 풀이했고, 원문을 고증하고 교감한 내력에 대해 비교적 꼼꼼하게 제시했다. 내용이 중복되어 전해지는 조목을 제외하고 ≪신이경≫의 거의 모든 원문에 대해 역주를 시도했고, 현재 전해지는 ≪신이경≫ 판본에는 남아 있지 않으나 다른 서적들에 흩어져 전해지는 일문(佚文)까지 수록했다. 이에 본 편역은 일반 독자들의 교양을 위한 서적이 될 뿐 아니라 학술적인 가치까지 갖추었다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