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수칭의 ‘홍콩 3부작’ 가운데 제1부인 작품으로, ‘홍콩 3부작’은 ≪아주주간≫ 선정 100대 중문 소설 가운데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인신매매꾼에게 납치되어 홍콩에 온 웡딱완이라는 창부와 동양에 대한 환상으로 홍콩에 온 위생국 대리 국장 아담 스미스의 이야기를 그렸다.
출판사 책 소개
스수칭은 ‘홍콩 3부작’에서 웡딱완이라는 여성과 그녀 일가의 삶을 통해서 중국권 최초로 홍콩의 역사를 총괄적으로 서사 내지 재현하고자 한다. 과거 한 개인이나 그 가족의 삶을 통해서 어떤 국가나 집단의 역사를 보여 주었던 소설은 적지 않다. 그런데 ‘홍콩 3부작’은 이 양자의 결합 방식 면에서 특별한 점들이 있다. 첫째는 역사의 도도한 흐름 속에 인물의 삶을 전개했다기보다는 오히려 인물의 삶 속에 역사적 사실을 삽입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홍콩의 역사 자체가 전면에 등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둘째는 3부작의 각 권이 상대적으로 독립되어 있기도 하지만 특히 각 권이 다루고 있는 시간적인 면에서 상당히 편차가 크다는 점이다. 아마도 이런 점들에 대해서는 약간의 설명이 필요할 텐데 다음 부분을 보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홍콩 3부작’의 제1부인 ≪그녀의 이름은 나비≫는 인신매매꾼에게 납치되어 홍콩에 온 웡딱완이라는 어린 창부와 동양에 대한 환상을 좇아 자원해서 홍콩에 온 애덤 스미스라는 영국 젊은이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해, 흑사병이 창궐했던 1894년을 전후한 4년간을 다루고 있다. 제2부인 ≪온 산에 가득 핀 자형화≫는 웡딱완과 그녀의 새로운 운명적 남자인 괏아빙이라는 홍콩 출신 화인 통역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및 웡딱완이 전당포 사업을 통해 부를 축적해 가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해, 싼까이 지역이 조차된 1898년을 전후한 14년간을 다루고 있다. 마지막으로 제3부인 ≪적막한 저택≫은 새로 이주해 온 화자 ‘나’와 웡딱완의 증손녀인 웡딥?의 교류를 중심축으로 해 웡딱완과 숀 쉴러 사이의 이야기 및 웡씨 집안의 은원과 애증을 추적해 서술하면서, 홍콩의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던 1970년대 말의 시점에서 20세기 초중반의 전 시기를 다루고 있다.
3부작의 각 권이 이런 식으로 전개된 것은 사실 작가의 주도면밀한 계획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제1부인 ≪그녀의 이름은 나비≫가 겨우 4년의 기간을 다루게 된 것은, 제2부의 서문에서 스수칭이 스스로 밝힌 것처럼, 작가가 웡딱완과 애덤 스미스에게 지나치게 몰입했기 때문이다. 이에 관해서는 독자들이 작품을 읽어 본다면 충분히 느끼게 될 것이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단순히 인물들 간의 이야기와 역사적 사건을 결합하는 수준에서 머무르지 않는다. 사전에 그 시대와 관련된 각종 자료를 충분히 섭렵해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소설 속에 적절히 삽입한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그 시대의 경관과 느낌까지 재현하기 위해서 인물의 의상과 장신구, 건물의 외양과 실내의 장식, 거리의 풍경과 사회적 풍습까지 모든 것을 세세하고 실감 나게 묘사하고 있다. 이 때문에 마치 아주 잘 만들어진 세트에서 촬영된 영화 장면들처럼 그 시절의 홍콩이 시시각각으로 눈앞에 펼쳐진다. 하지만 아무래도 스토리의 속도감 있는 전개는 지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인물들의 행위 또는 홍콩의 역사가 이 소설의 핵심이라기보다는 오히려 100년 전 홍콩 사회의 모습과 분위기가 중심인 것 같은 인상을 줄 정도다.
≪그녀의 이름은 나비≫가 독자에게 이런 인상을 주는 것은 당연히 작가가 대량으로 당시 홍콩의 면면을 다채롭고 실감 나게 묘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이는 작가의 기법적인 측면과도 관련이 있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의도적으로 사자성어나 고대 시구를 포함해서 고풍스러운 어휘나 표현을 다량으로 구사하는가 하면, 만연체의 문장을 사용하면서 정지된 시점의 장면을 길게 묘사하기도 하고, 동일한 사건과 문구를 여러 차례 반복 사용함으로써 특정 이미지를 거듭해서 떠올리게 하면서 마치 누렇게 퇴색한 사진을 들여다볼 때처럼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뿐만이 아니다. 웡딱완이 한때 사모했던 ?합완의 행방에 관한 이야기에서 보듯이 옛날 구전 설화와 유사한 방식을 작품 곳곳에서 사용한다. 또한 각 인물들은 일부 어설픈 다른 작가의 소설과는 달리 현대인인 작가의 대리인처럼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 당시에 실제로 그러했을 법하게 각자의 출신 배경과 신분에 걸맞은 언행을 한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해서 독자들은 이 소설을 읽으면 흡사 자신이 역사의 한 부분 속에 들어가서 이리저리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소설의 관점이나 사상이 낙후한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무엇보다도 스수칭은 이 작품에서 페미니즘과 포스트식민주의의 관점 및 그와 관련된 소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두어 가지만 예를 들어 보겠다. 여주인공 웡딱완은 병든 아버지에게 효성스러운 딸이자 갓 태어난 남동생을 아끼는 누나로, 인신매매꾼에게 납치되어 와 창부로 생활하면서도 의지할 수 있는 남자를 찾아 평생을 바치려는 ‘착한’ 여자다. 그런데 그녀는 사실 자기 자신도 남성의 지배를 받는 처지에 있으면서 같은 여성인 가정부 아무이를 그렇게도 모질게 괴롭히고 의심하고 경계한다. 이런 행동은 봉건적 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그 시대 여성의 모습 그대로다. 그런데 작품을 계속 읽어 나가다 보면 독자들은 점차 웡딱완과 아무이 두 사람 모두에게 답답한 심정을 느끼게 되는 것을 넘어서서 그녀들을 그렇게 만든 남성 중심주의적 사회의 억압에 대해 분노를 느끼게 될 것이다. 아마도 애덤 스미스에 대해서도 유사한 현상이 일어날 것이다. 애덤 스미스는 흑사병이라는 죽음의 위협과 고립무원이라는 절망적 고독 중에 정신적 피난처로서 웡딱완을 만나 사랑을 하게 된다. 하지만 위기의 순간이 지나가자 그가 지닌 사상과 감정 체계로 인해 결국은 웡딱완을 동양 및 여성에 대한 그의 환상과 편견을 실현하는 대상, 정복의 대상, 경멸의 대상으로 간주하게 된다. 아마도 독자들은 한편으로는 애덤 스미스가 사랑과 지위, 육욕과 도덕, 개인과 집단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보면서 고뇌하고 있는 그를 동정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인종적·성적 차별 관념, 남성 식민 지배자의 이중적 행동, 동양에 대한 왜곡된 상상과 배제 등을 보면서 차츰 남성 중심주의와 오리엔탈리즘의 폐해에 대한 정서적인 체험과 이성적인 인식을 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