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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홍 동화선집 상세페이지

책 소개

<김문홍 동화선집> 김문홍은 1976년 ≪소년중앙≫ 문학상에서 동화 <바닷가의 소년>이 당선되면서 동화작가가 되었다. 그의 동화에서 시는 심미적 효용을 넘어 삶의 수단이자 목적이 된다. 이 책에는 시를 통해 삶의 길을 모색하는 <지상의 방 한 칸>을 포함한 9편의 단편이 수록되었다.

지식을만드는지식 ‘한국동화문학선집’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100명의 동화작가와 시공을 초월해 명작으로 살아남을 그들의 대표작 선집이다. 지식을만드는지식과 한국아동문학연구센터 공동 기획으로 7인의 기획위원이 작가를 선정했다. 작가가 직접 자신의 대표작을 고르고 자기소개를 썼다. 평론가의 수준 높은 작품 해설이 수록됐다. 깊은 시선으로 그려진 작가 초상화가 곁들여졌다. 삽화를 없애고 텍스트만 제시, 전 연령층이 즐기는 동심의 문학이라는 동화의 본질을 추구했다. 작고 작가의 선집은 편저자가 작품을 선정하고 작가 소개와 해설을 집필했으며, 초판본의 표기를 살렸다.

동화작가이자 희곡작가 그리고 연극 평론가로, 문학과 공연 현장을 오가며 작품 활동을 해 온 김문홍은 한국 문학사와 연극사에서 특별한 존재다. 등단 후 작가는 문학과 연극 활동, 교직과 학업을 병행하는데, 다소 이질적인 것 같은 이들 활동은 문학과 예술을 통해 자기 구원에 이르려는 작가의 열망을 반증한다.
1976년에 등단한 후 1980년대 중반까지 그는 ≪머나먼 나라≫로 제1회 계몽사 아동문학상을 받는 등 아동문학가로 자리를 잡는다. 이 책에 수록된 <움직이는 산>과 <부처님 곁으로 간 소년>이 이 시기를 대표하는 작품이며, 그의 동화 창작은 이 시기에 집중되었다.
박사 과정 공부와 연극에 심취해 20세기 말을 보낸 작가는 ≪머나먼 나라≫의 계보를 잇는 공상과학 소설 ≪미래 특공대≫에 탑승해 다시 동화로 귀환하는데, 이 책에 수록된 단편 8편이 새로운 동화 쓰기를 위한 그의 시도를 여과 없이 반영하고 있다.

그의 많은 작품에는 시와 시인이 등장하고, 이는 플롯을 엮는 데 중요한 기능을 한다. 김문홍의 동화에서 시는 심미적 효용을 넘어 삶의 수단이자 목적이 된다. 문학예술 속에서 삶의 길을 모색하려던 그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저, 여기 있어요!>에서 ‘점박이 너구리’는 자작시를 낭송함으로써 숲 속 음악회의 주인공이 된다. <제발 제 이름 좀 불러 주세요, 네?>에서는 시를 읊는 젊은 연인이 주제를 암시하고, <지상의 방 한 칸>에서는 ‘누나’가 시를 낭송하며 한겨울에 세 평짜리 단칸방을 데우고 있다.
또한 김문홍 동화 속에서 고난은 상당히 낭만적으로 표현된다. 그것은 ‘눈’으로 대표되는데 눈이 갖는 일반적 상징과 마찬가지로 시대 상황이나 인물이 처한 역경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고난 자체를 극복하는 매개체로 작동한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시오 리 눈길을 걸어>에서 ‘소년’은 교도소에서 갓 출소한 아버지와 함께 눈길을 밟아 집을 찾는다. ‘눈’은 생전 처음 보는 부자간 거리 혹은 냉혹한 현실을 상징하면서, 부자간 정을 돋우는 작용도 한다. 이것과 더불어 ‘눈 연작’이라고 할 만한 작품은 <아버지와 눈길>, <눈 오는 밤>이다. <아버지와 눈길>의 아버지는 5·18 광주 혁명에서 계엄군에게 몰매를 맞아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어머니의 임종을 보기 위해 눈길을 거쳐 집을 찾아간다. 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눈사람을 만들다가 문득 제정신을 차림으로써 비로소 세상과 화해하게 된다. <눈 오는 밤>에서는 술주정뱅이 아버지의 세상을 향한 분노까지도 잠재운다. <지상의 방 한 칸>, <부처님 곁으로 간 소년>에서도 김문홍의 ‘눈’은 작품의 배경으로 분위기를 온화하게 할 뿐 아니라, 극적 갈등까지 이완시키는 다분히 낭만적 모티프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그의 동화에는 갈등이 없거나 최소화되어 나타난다. 인물은 개성 없이 유형화되며, 구체적이지 않다.
그렇지만 동화적 상상력을 즐겨 씀으로써 어린 독자들의 감성에 호소한다. <움직이는 산>에서 갈등의 축은 남북 분단의 상황이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등장하는 인물이 남과 북의 ‘아기’다. 그리고 나무와 바람이 배경을 조성하며 남과 북을 상징한다.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남과 북의 오랜 대치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을 김문홍은 아기들의 꿈속에서 찾음으로써, 그 절실함을 드러내는 수법을 쓴다.
그리고 인물의 내적 갈등에 의지한다. 이 특성이 비교적 명확히 드러난 경우가 ≪이틀≫ 연작과 <부처님 곁으로 간 소년>이다. <부처님 곁으로 간 소년>은 사계절의 변화를 통해 삶의 무상함을 은유하고 있는 수작으로, 작가의 창작열이 절정에 이르렀던 시기에 쓰인 글이다. 만공 스님의 곁에서 열반의 경지에 들어간 아이는 모든 갈등을 이겨 낸 인고의 화신이다. 사계로 압축된 인간 삶 속의 다양한 유혹과 번뇌는 소년의 일탈을 부추긴다. 그럴 때마다 소년의 귓가에 들리는 만공 스님의 목소리는 자아 성취를 추구하는 내면의 울림이었다. ≪이틀≫ 연작은 광복 전날과 당일에 일어난 한 소년의 에피소드를 담아냈다. 좋아하는 키리코와 헤어져야 하는 소년에게 광복은 아이러니로 각인된다. 동화의 갈등은 시대적 배경에서 기인할 뿐이고 그것은 해방의 기쁨과 대비되어 소년의 마음속에 커다란 슬픔을 안긴다.
또 여러 사건을 축적한 인물 형상화 기법을 사용한다. 자전적 동화인 <우리 좋으신 선생님>의 경우, 작가는 ‘조우신’ 선생님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를 제공해서 작중인물에 대한 인상을 강화해 나간다. 사람의 양면성을 믿을 수 없었던, 어린이들에게만은 그런 어두운 그늘을 드리우고 싶지 않았던 그의 인간관이 작품 속에 잘 드러난다.
김문홍식 무갈등 동화를 압축한 작품으로 <저, 여기 있어요!>를 들 수 있다. 숲 속 음악회에 참석하고 싶은 너구리는 나비넥타이가 없어 실의에 빠지는데, 이를 해결해 주는 것은 착한 마음씨를 가진 노랑나비다. 나비넥타이를 대신한 나비의 발상, 시인의 시적 상상력이 절묘하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저자 프로필

김문홍

  • 국적 대한민국
  • 출생 1945년 2월 3일
  • 학력 1997년 동아대학교 대학원 국문과 박사
    동아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육학 석사
    부산교육대학교 국어교육과 학사
  • 경력 초등학교 교사
    1989년 부산연극협회 회장
  • 데뷔 1976년 제1회 한국문학 신인상 중편소설 `갯바람, 쓰러지다`
  • 수상 한국아동문학인협회 한국아동문학상
    1982년 제1회 계몽아동문학상 장편동화
    소년중앙 문학상
    월간문학 신인상

2015.02.04.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소개

저자 - 김문홍
영화관에서 꿈을 꾸다
나는 해방되던 1945년 2월 3일 전라남도 완도군 노화면 동천리에서 태어났다. 태어나서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까지는 큰집에서 사촌 누이와 형들 틈에서 자랐다. 어머니는 아버지 뒷바라지를 위해 나를 큰어머니 슬하에 맡겨 놓았던 모양이다. 왜 어머니가 아버지 뒷바라지를 해야 했는지는 훗날 으슴푸레 알았다. 당시 해방 이후 혼란기에 지식인들 대부분은 좌익 사상에 젖어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도 큰아버지의 뒷바라지로 일본 유학을 했던 지식인으로, 아마 그런 사상을 가지고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녔던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큰어머니의 젖을 먹으면서 유년의 가장 중요한 시기를 어머니와 떨어져 지내야만 했다.
큰집이 있는 시골에서 1학년을 마칠 무렵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부산으로 나왔다. 어머니는 나를 도회지 생활에 하루라도 빨리 적응할 수 있게 하려고 1학년에 한 번 더 다니도록 했다. 어머니는 당시에 도시에서 여러 가지 물건을 사서, 고향을 비롯한 시골에서 그것들을 팔아 이문을 남기는 것으로 생활의 방편을 삼았던 모양이다. 유년의 가장 중요한 시기를 어머니와 떨어져 지냈기에 나는 따스한 모성을 크게 느끼지 못한 채 밖으로만 떠돌았다. 방과 후에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영화관에서 보냈다. 어두컴컴한 영화관에서 스크린 속에 펼쳐지는 다양한 삶을 바라보며 모성애의 갈증과 외로움, 그리고 고향 마을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그 시절 끄떡하면 아버지의 호주머니를 뒤져 돈을 훔친 다음 가출하곤 했다. 학교도 가지 않고 영화관을 전전하며 밤에는 시장 골목의 리어카에서 새우잠을 자곤 했다. 그러다 돈 떨어지고 배고프면 집 주위를 서성이다 어머니에게 발각되어 붙잡혀 가곤 했다.
초등학교 6학년 늦가을 무렵, 나는 큰집의 사촌 형 손에 잡혀 고향 마을로 가야 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나를 큰집에 다시 맡겨야만 했던 모양이다. 그곳에서 6학년을 마쳤지만 아버지의 사업이 호전되지 않아 나는 6학년을 한 번 더 다녀야만 했다. 결국 그곳에서 6학년을 마치고 1960년에 부산으로 나와 경남중학교 입시에서 떨어져 부산진역 건너편에 있는 동아중학교에 입학했다. 당시 부산여고에 다니던 양인자가 ≪돌아온 미소≫라는 소설을 발표해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기억이 있다. 나는 중학교 2학년부터 정규 교과 시간에 수업에 참여하지 않고 김래성의 소설 등을 읽으며 문학의 열망을 달래고 있었다.

학원문학상을 받고 어깨를 우쭐대다
1963년에 고등학교 역시 부산고등학교 입시에서 낙방을 한 뒤 영도에 있는 해동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고등학교 문예반에 가입해 시를 쓰기 시작했다. 진주개천예술제 등에 참가해 시재를 겨뤘지만 입상한 경험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당시 부산 시내에서는 김종철 등이 뛰어난 시재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당시 학교에는 훗날 문학평론가로 활동한 김천혜, 시조 시인인 양원식 등이 교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리고 3학년 때에는 한글 학자며 독립운동가였던 이태길 선생님을 담임으로 만나면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고등학교 졸업 무렵에 산문(편소설)을 응모해 학원문학상을 받으면서 문학에 대한 열망을 달래고 나의 재능이 소설에 강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결국 나는 초등학교 1학년과 6학년을 두 번이나 다녔기 때문에 또래 아이들보다 두 살이나 위여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다음 해인 1967년 12월에 군에 입대하게 되었다. 그런데 훈련소를 졸업하고 강원도 춘천의 103 보충대로 가던 그날 아침에 북한에서 김신조 일행이 청와대를 치러 오는 바람에 제대 명령이 취소되고 입영 기간이 갑자기 3년여로 연장되었다. 나는 춘천 인근의 자동차 부대로 배속되어 중대 서무계 일을 맡아보게 되었다. 얼마 후에 우리 부대의 대대본부에 동시인인 이준섭이 배속되어 그와 첫 만남을 갖게 되었다.
1970년 10월에 제대했지만 대학 입학 수학 능력 고사의 기회를 놓치게 되어 결국 한 해를 재수하게 되었다.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사촌 여동생이 다니는 제강 회사에 취직해 학원 등록비를 몇 개월 벌어 주간 종합반 학원에 등록했다. 나중에는 학원비가 없어 도강을 하기도 했다. 결국 1972년에 당시 2년제던 부산교육대학에 응시해 합격했다. 1학년 봄 소풍 때 제대병 한 명과 삽·곡괭이를 휘두르며 난장판을 만드는 바람에 나는 결국 유기 정학 처분을 받았다. 퇴학의 위기에 몰렸으나 당시 교대 신문사의 주간이며 극예술연구회 지도 교수였던 연출가 이충섭 교수의 바람막이로 퇴학만은 면하게 되었다.

르네상스 맨으로 살아가기
대학교 재학 중에는 참으로 많은 직책을 맡았다. 교대 신문사의 편집국장, 극예술연구회 회장, 국어과 대표 등으로 동분서주했다. 대학 신문에 연재했던 단편소설을 졸업 무렵에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식>이라는 이름으로 응모했다. 결국에는 최종심까지 겨루다가 송기원의 <경외성서>에 밀려 낙방하고 말았다. 학교 성적이 좋지 않아 졸업하고도 발령을 받지 못하고 임시 교사로 이 학교 저 학교를 돌아다니며 가르쳤다. 그해에 부산해기사협회가 주최한 월간 ≪해기≫의 현상 공모에 단편소설 <당랑(螳螂)>을 응모해 당선하면서 대외적으로 내 이름을 처음 알리게 되었다.
1976년 3월에 장림초등학교에 발령을 받아 교사로 부임하게 되었다. 그해 7월 1일에 전라남도 완도군 보길도 출신인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하고, 학교 앞에 신접살림을 차리게 되었다. 그해에 나는 문단 3관왕을 기록했다. 월간 ≪한국문학≫의 제1회 신인상에서 중편소설 <갯바람, 쓰러지다>가, ≪소년중앙≫ 문학상에서 동화 <바닷가의 소년>이, ≪월간문학≫ 신인상에서 동시 <대밭골 경사>가 당선되었던 것이다.
1978년에는 두 번째로 충무초등학교에 전근 가게 되었는데, 그 학교에서 동화작가 김상남 선생을 운명적으로 만나게 되었다. 당시 나는 부산아동문학회에서 회원 입회 제도의 문제를 지적하고 프로 의식으로 작품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에는 김상남 선생과 탈퇴해 부산아동문학가협회를 창립하고 회원 작품집 ≪하얀 뱃고동≫을 발간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책에 수록된 나의 동화 <쫓겨난 여우>가 당시 공화당 정권을 비판했다는 필화 사건에 휘말려, 나는 수업 중 부산시 경찰국에 불려가 파면 위기까지 몰리게 되었다.
1982년에는 제1회 계몽아동문학상 장편 모집에 장편동화 ≪머나먼 나라≫를 응모해 당선의 영예를 안았다. 이 작품은 마감을 열흘 앞둔 춘계 방학에 거제도 앞 바다의 지심도에서 일주일 동안 칩거하며 하루에 무려 200자 원고지 70장씩을 써야만 했다. 마감 하루 전에 겨우 응모했는데 당선의 영예를 안았던 것이다. 몇 년 전의 3관왕 당선과 이때 받은 상금으로 조그마한 연립주택을 구입하고 내 문패를 달게 되는 날, 아내와 한없이 눈물을 흘리며 감격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결국 그것이 종잣돈이 되어 1997년에 그럴듯한 아파트를 구입하게 되었다. 결국은 문학이 내게 밥을 먹여 주고 집을 사게 해 주고 힘을 갖게 해 준 것이다.

한 편을 쓰더라도 제대로 쓰자
1987년부터 1997년까지 한 10여 년 동안은 대학에서 석사 학위와 박사 학위를 받는다고 창작에 전념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동안 동화집 10여 권, 희곡집 4권, 소설집 4권, 연극 비평집 2권, 연극 학술서 2권 등 20여 권이 넘는 저술을 남겼으니 그리 빈약하지는 않은 것 같다. 한국동화문학상, 계몽아동문학상, 이주홍문학상, 한국아동문학상, 부산연극제 희곡상, 전국연극제 희곡상을 받았으니 문학 인생에서 역시 그리 허술하게 엄벙덤벙 허송세월하진 않은 것 같다.
아동문학 쪽에서나 일반 문학 쪽에서나 나를 과작의 작가라고 여긴다. 하긴 아동문학을 40여 년 가까이 해 온 셈인데 동화집이 10여 권밖에 되지 않으니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작품 수가 많다고 훌륭한 작가는 아니지 않은가. 작품집 100여 권 내면 뭐 하나. 죽어서 관에 못질할 때 사람들의 입에 좋은 작품 서너 편 언급되면 그 작가는 훌륭하게 문학 인생을 보낸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항상 그렇게 생각한다. 작품을 많이 쓰는 것보다는 한 편을 쓰더라도 제대로 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나 자신에게 항상 역설하곤 한다.
나는 늘 이런 소리를 듣는다. 아동문학 쪽에서는 소설과 희곡을 쓰지 말고 동화에만 전념하라고 한다. 소설 쪽에서는 아동문학과 연극을 때려치우고 소설에만 집중하라고 한다. 그러면 뭔가 이 방면에서 큰 업적을 이루고 성과를 내지 않았겠느냐고 한다. 그러나 연극 쪽에서는 내가 무슨 창작을 해도 핀잔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여러 분야의 창작을 하게 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리고 각각의 분야에서 창작한 작품들이 모두 그만그만한 평가와 성과를 기록하고 있기에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당하게 르네상스 맨으로 살아가는 것을 자랑하며 두 어깨에 잔뜩 힘을 주기도 한다.

약력과 작품 및 수상 연보

1945년 전라남도 완도군 노화면 천구리에서 아버지 김남호와 어머니 황초심의 장남으로 태어나 큰아버지 댁에서 사촌들과 함께 성장함. 아버지의 복잡한 사정 때문에 태어나자마자 부모와 떨어져 초등학교 1학년 입학 무렵까지 7년간 큰어머니와 사촌 누이에게 양육됨.
1953년 고향에서 국민학교 1학년을 마치고 부산으로 옮겨 모든 것이 낯설고 물설다 해 수정국민학교에 1학년에 다시 입학함.
1958년 성지국민학교 6학년 겨울에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고향의 큰아버지 댁에 맡겨져 학교를 다니다 6학년을 끝냈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다시 한 번 더 6학년을 다니기 시작함.
1960년 부산으로 옮겨 동아중학교에 입학함. 중학교 재학 시절 부산여고에 재학 중이던 양인자가 ≪돌아온 미소≫를 발표하자 그때부터 문학에 뜻을 두고 소설 작품을 읽기 시작하며 문학에 눈뜨기 시작함.
1963년 해동고등학교에 입학해 3년간 문예반 활동을 함. 당시 해동고등학교에는 문학평론가 김천혜, 시조 시인 양원식, 독립운동가며 한글 학자인 이태길 등이 교사로 근무하고 있어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음.
1966년 고등학교 졸업 무렵 단편소설로 학원문학상(김동리 선생 심사)을 받아 문학적 재능을 인정받음.
1967년 12월부터 1970년 10월까지 34개월간 육군에 복무함.
1972년 부산교육대학(2년제)에 동기생들보다 일곱 살이나 많은 만 27세의 나이로 국어교육과에 늦게 입학함. 부산교육대학 재학 시 대학신문사 편집국장, 극예술연구회 회장 등을 맡으면서 소설 창작과 연극 활동을 하기 시작함.
1974년 부산교육대학 졸업을 앞두고 ≪중앙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에서 <단식(斷食)>이 최종심까지 논의되는 것을 계기로 삼아 본격적으로 소설 창작에 매진함. 부산교육대학교 졸업. ‘부산해기사협회’의 기관지 ≪해기≫에 해양 소설(단편 <당랑(螳螂)>)이 당선됨.
1975년 부산장림초등학교에 부임해 교사 생활을 시작하고 7월에 전라남도 완도군 보길도 출신으로 광주에서 살고 있는 김민경과 결혼함.
1976년 제1회 ≪한국문학≫ 신인상 중편소설 모집에서 <갯바람, 쓰러지다>(김동리, 황순원, 최인훈, 김승옥 심사), ≪월간문학≫ 신인상에 동시 <대밭골 경사>(박홍근 선생 심사), ≪소년중앙≫ 문학상(이원수 선생 심사)에 아동소설 <바닷가 소년>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장남 김우림이 태어남.
1977년 동화작가 김상남, 강기홍, 성기정, 김재원, 동극 작가 박원돈, 동시인 최만조, 이국재, 이우철 등과 함께 본격적인 프로문학을 주장하며 ‘부산아동문학회’를 탈퇴해 ‘부산아동문학가협회’를 창립하고 연간집 ≪하얀 뱃고동≫을 발간함. 중편 역사 동화 <나비가 된 왕자>가 ≪소년조선일보≫에 연재됨.
1978년 충무초등학교로 옮기고 차남 김지림이 6월에 태어남. 그 학교에서 동화작가 김상남 선생과 함께 근무하면서 문학 단체 활동을 벌임. 부산 아동문학가협회의 연간집 ≪하얀 뱃고동≫ 에 수록했던 동화 <쫓겨난 여우>가 당시 박정희 공화당 정권의 언론 탄압을 비판했다는 투서로 수업 중에 불려가 부산시 경찰국 정보과에서 조사를 받음. 6월에는 동극 작가 박원돈의 동극집과 함께 첫 동화집 ≪움직이는 산≫(문성출판사)을 발간하고 남포동 신신 예식장에서 이원수 선생을 초대해 출판 기념회를 가짐.
1979년 월간 ≪아동문예≫ 2월호에 중편 아동 소설 <부처님 곁으로 간 소년>을 발표함. 장편 역사 아동 소설 ≪날개 돋친 임금님≫이 월간 ≪소년≫지에 1년 반 가까이 연재됨. 1980년대 초까지 이국재, 김재원, 구옥순, 김수미, 정진용 등과 함께 동시 창작 모임인 ‘산호초’의 동인 활동을 활발하게 진행함.
1980년 두 번째 동화집 ≪하늘을 나는 열차≫(새로출판사), 동화 소설집 ≪부처님 곁으로 간 소년≫(교학사 소년문고), 장편동화 ≪개구장이들의 모험≫ 발간. 2월에 장녀 김혜림이 태어남. 장편동화 ≪우리들의 친구 또또≫(월간 ≪아동문예≫에 연재)가 제3회 한국동화문학상을 받음.
1982년 제1회 계몽아동문학상에서 장편동화 ≪머나먼 나라≫(김동리, 신지식, 장수철 심사)가 당선됨.
1983년 장편동화 ≪머나먼 나라≫(계몽사), ≪누나와 흰나비≫(금성출판사)가 소년 소녀 한국 문학 시리즈로 발간됨.
1984년 장편동화 ≪쌍동이 형제≫(광문출판사)가 발간됨.
1987년 1997년까지 10여 년 동안 동아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 교육과(교육학 석사), 동아대학교 대학원 국문과 박사 과정(문학박사)에서 학문을 연구하는 관계로 몇몇 청탁 원고(단편동화)만을 겨우 쓸 뿐 사실상 아동문학 창작 활동을 잠정적으로 중단하게 됨.
1988년 장편 아동 소설 ≪잃어버린 왕국을 찾아서≫(광문출판사), 희곡집 ≪안개주의보≫ 발간.
1989년 부산연극협회 회장 역임.
1996년 소설집 ≪지상의 섬≫ 발간.
1997년 2월 동아대학교 대학원 국문과에서 <함세덕 희곡의 극적 전략과 의미 구조 연구>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음.
2005년 이주홍문학상(희곡 <세한도에 봄이 드니>) 수상을 계기로 오랫동안의 침묵을 깨고 동화 창작 활동을 재개함.
2006년 부산아동문학인협회 카페에 <김문홍의 아동문학 통신>이라는 이름으로 ≪아동문학≫의 동화집 서평, 아동문학 시론 등을 연재해 지금까지 120여 회 계속함.
2007년 장편 아동 소설 ≪미래특공대≫(해성출판사)를 발간함. 2009년까지 부산아동문학인협회 회장을 역임. 2010년까지 계간지 ≪어린이문예≫와 ≪글수레≫에 문종별 글쓰기와 초등학생 논술문 쓰기에 대한 글을 연재함.
2008년 세 차례에 걸쳐 ≪국제신문≫ 신춘문예 동화 부문, 세 차례에 걸쳐 이주홍아동문학상 심사를 역임함. 연극 학술서 ≪부산연극사≫ 발간.
2009년 세 차례에 걸쳐 ≪부산일보≫ 신춘문예 희곡 부문 심사를 역임함.
2010년 단편동화집 ≪저, 여기 있어요!≫(해성출판사)를 발간함.
2011년 1월에 동화집 ≪저, 여기 있어요!≫로 한국아동문학상(한국아동문학인협회)을 받음. 부산아동문학인협회 카페에 동화 창작의 이론과 실제에 대한 ≪동화창작법 38강을 연재함. 제7회 윤석중문학상 심사를 역임함.
현재 부산창작극연구회 공동 대표, 부산시립극단 운영 위원, 부산희곡작가협회 자문 위원, 부산연극평론가협회 회장, 부산아동문학인협회 자문 위원으로 있음. 한국동화문학상, 계몽아동문학상, 부산연극제 희곡상, 전국연극제 희곡상, 한국아동문학상, 자랑스런 연극인상 등을 받음.

해설 - 김영균
1961년 강화에서 출생했다. 경인교대를 졸업하고 경희대학교 대학원에서 교육학 석사와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한양초등학교에서 교사와 경희대학교에서 강사로 재직하고 있다. ‘공연과이론을위한모임’(공이모) 회장을 역임했으며 아동극 작가, 연극 평론가, 교육연극학회 이사, 아동문학학회 이사로도 활동 중이다.

목차

작가의 말

움직이는 산
부처님 곁으로 간 소년
우리 좋으신 선생님
시오 리 눈길을 걸어
지상의 방 한 칸
이틀
이틀 2
저, 여기 있어요!
제발 제 이름 좀 불러 주세요, 네?

해설
김문홍은
김영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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