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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자 동화선집 상세페이지

백승자 동화선집작품 소개

<백승자 동화선집> 백승자는 그동안 아동문학 동네에서 터부시되어 오던 ‘죽음’을 많이 다룬 작가다. 그의 죽음에 대한 담담한 시선은 일상의 삶에 대한 소중한 마음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일로 넓혀진다. 이 책에는 작가의 깊은 생각이 담긴 동화가 <슬픈 꿈>을 비롯해 14편 수록되었다.

지식을만드는지식 ‘한국동화문학선집’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100명의 동화작가와 시공을 초월해 명작으로 살아남을 그들의 대표작 선집이다. 지식을만드는지식과 한국아동문학연구센터 공동 기획으로 7인의 기획위원이 작가를 선정했다. 작가가 직접 자신의 대표작을 고르고 자기소개를 썼다. 평론가의 수준 높은 작품 해설이 수록됐다. 깊은 시선으로 그려진 작가 초상화가 곁들여졌다. 삽화를 없애고 텍스트만 제시, 전 연령층이 즐기는 동심의 문학이라는 동화의 본질을 추구했다. 작고 작가의 선집은 편저자가 작품을 선정하고 작가 소개와 해설을 집필했으며, 초판본의 표기를 살렸다.

백승자의 작품은 유독 죽음에 대한 내용을 많이 다루는데, 작가가 그동안 아동문학 동네에서 터부시되어 오던 ‘죽음’의 문제에 천착하게 된 데는 유년의 기억을 안고 살기 때문일 것이다.
어린이들이 잠재적 가능태로서 죽음이 삶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아는 것은 소중한 일이다. 현재는 생의 수레바퀴에서 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고, 자신에게 주어지는 시련은 고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수레바퀴의 균형을 잡기 위한 과정임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를 극복하고 관계의 삶을 인식하면서 사랑의 의미를 실천할 수 있을 때 자아 존중의 개념도 확립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따라서 백승자 동화가 죽음 또한 삶의 일부라는 사실과 죽음이 사랑으로 연결된 관계에 대한 의미를 전해 그의 작품이 독자에게 힘을 주는 동화로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슬픈 꿈>은 치매에 걸리신 할머니가 생을 마감하는 데까지의 이야기를 아동의 시선으로 보여 주는데, 그 과정에서 죽음을 통해 삶을 완성해 나가는 둥근 수레바퀴를 만나게 된다. 할머니의 죽음은 슬픔만으로 끝나는 감정이 아니라 온전히 그의 생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성숙을 가져다주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죽음을 통해 비로소 생의 한 단위를 완성한다는 점을 자연스럽게 그려 내고 있다. <물새가 잠드는 곳> 역시 할아버지가 잠든 바닷가, 거센 폭풍우에 휩쓸려 죽은 할아버지의 영혼이라도 돌아와 쉬라고 남겨 둔 빈 무덤, 그곳에 갔을 때 할아버지의 환신처럼 괭이 갈매기가 위를 날며 할머니와 조우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동은 할머니의 허전함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죽음은 더 이상 슬픔이 아니라 할머니의 그리움이란 걸 알게 된다.
백승자의 동화에서 죽음은 자식을 가슴에 묻고 내내 그리워하며 사랑을 나누는 것으로도 표현된다. 작가가 아홉 살에 겪은 가족사를 떠올리기에 충분한 동화 중 특히 <엄마의 일기>에서는 작가 스스로도 동화를 창작하는 과정에 진정한 엄마로 성숙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외할머니의 언덕> 역시 마음의 등대 같던 자식을 잃은 할머니가 자식을 가슴에 품고 사는 그리움을 나타낸다. <그 집 앞>에서도 밸런타인 재스민을 좋아했던 죽은 엄마처럼 엄마의 가게는 이웃집 아주머니들의 놀이터가 되어 더불어 사는 아름다움을 보여 준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아동이 그들과 마음을 나누는 과정은 아동에게 성장으로 이어지게 되고, 현재의 고통과 시련을 이겨 내면서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또한 죽음에 대한 담담한 작가의 시선은 일상의 삶에 대한 소중한 마음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일로 넓혀지고 있다. 다리를 절룩이며 도시락을 챙겨 들고 학교로 온 할아버지의 쓸쓸한 뒷모습을 이해하게 되는 아동(<빛나는 목발>), 새엄마와 아빠와 네 살배기 늦둥이 동생 사이에서 서운한 마음을 가지고 집을 나왔다가 사진전에서 엄마가 좋아하는 라벤더 꽃 앞에서 아빠와 화해하는 아동(<나직하게 말 걸기>), 엄마의 꾸중 때문에 서운해서 다음 날 아침 일찍 집을 나서 돌아가신 아빠와 함께 살던 동네의 산에 올랐다가 자연스럽게 사랑하는 엄마를 떠올리게 되는 아동(<소중한 사람>) 등을 보면, 그들은 가족 간에 서운한 일이 생기거나 오해로 갈등을 빚기도 하지만 결국 이해하게 되면서 가족이 소중한 존재임을 인식하게 된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엄마가 계시지 않아 서운했지만, 부모 없이 편찮으신 할머니와 살고 있는 어린 형제의 엄마 역할을 하는 자신들의 엄마와 함께 형 노릇을 하며 성장하는 형제(<불쑥불쑥 솟아날 거야>), 발표회 준비를 위해 따돌림을 당하던 친구와 함께 연극 연습을 하게 되면서 그 친구의 삶을 이해하게 되고 그 친구의 할머니까지 깜짝 등장시키기도 하면서 착해지고 순해지는 아이들(<동굴의 문을 활짝 연 사람>), 지하도에서 하모니카를 부는 눈먼 할아버지에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안내하고 한층 어른이 된 듯한 자신감을 가지게 되는 아이(<노란 우산과 등대지기>), 그리고 아파트 단지 귀퉁이의 자투리땅을 일구는 것에서 시작된 일로 포도밭을 일구어 포도밭 아파트를 만든 이웃의 이야기 등은 사랑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를 보여 준다. 닫기


저자 프로필

백승자

  • 국적 대한민국
  • 출생 1960년
  • 데뷔 1988년 아동문예 '다람쥐와 들꽃'
  • 수상 2012년 방정환 문학상
    1997년 한국아동문학상

2015.01.06.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소개

저자 - 백승자
1960년 충남 예산의 아름다운 산골 마을에서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45세 아버지와 43세 어머니가 낳은 늦둥이로 유난한 편애와 과보호 속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특히 어머니는 남다른 감성의 보물 창고를 지닌 특별한 분이었다. 고단한 농촌 살림을 하는 중에도 너른 안마당을 그림 같은 꽃밭으로 가꿔 주고, 여름마다 손톱에 봉숭아 물 들이는 일을 잊지 않으셨다. 1년 내내 고운 꽃잎이나 단풍잎을 말려 해마다 성탄카드를 함께 만들고 음식 하나에도 색색의 고명을 얹을 만큼 정성을 들이던 어머니. 그리고 엄마보다 한층 더 깊은 속정으로 세상 아무것도 두렵지 않게 감싸 주던 아버지….
또 한편으로는 인현왕후전, 박씨전, 장화홍련전 등… 한지에 손 글씨로 옮겨 쓴 이야기책을 뜻도 모르는 손주들에게 수없이 읽어 주신 할머니도 계셨다.
그 덕분에 나의 유년 시절은 돌아볼수록 편 편의 동화처럼 아름다운 추억이 끝도 없이 펼쳐진다. 무엇이든 여유롭지 못한 시대의 농촌 환경이었지만, 부모님 슬하에서 일곱 남매가 한 번도 마음 시린 적 없이 다복했음에 감사한다.

또래보다 이르게 한글을 뗀 덕에 나는 놀이보다 글 읽는 재미에 먼저 빠졌다고 했다. 언니 오빠가 여럿이니 집 안에 읽을거리도 제법 풍족했다.
여섯 명이나 되는 언니 오빠 모두 책을 좋아하고 글솜씨가 좋았다. 오빠들이 군대 가거나 직장 일로 떨어져 지내는 동안 편지를 많이 주고받았는데, 돌이켜 보니 그 모든 게 글쓰기의 첫 수업이 아니었을까 싶다.
1968년 여덟 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하고부터는 집에서 가까운 학교 도서실이 내 아지트였다. 방과 후에 책가방을 집에 두고 다시 학교에 가서 당직 선생님이 퇴근할 때까지 도서실을 독차지하고 지낸 날이 많았다.
그때 읽은 동화 중 ≪꿈을 찍는 사진관≫, ≪꽃신≫ 등도 평생 기억에 남지만, ≪빨간 머리 앤≫은 내게 난생처음 동화 속 주인공을 동경하게 한 작품이었다.
마치 내가 빨간 머리 앤이 되어 초록 지붕 집과 에이번리 마을, 그리고 그곳 사람들과 더불어 살다 아쉽게 헤어져 돌아온 것 같은 놀라운 착각에 빠져든 것이다. 내게 아프거나 슬퍼서가 아니라 아름다운 느낌으로도 눈물이 난 경험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어쩌면! 길옆에 늘어선 나무나 무심히 흐르는 시냇물에게도 고운 이름을 붙여 줄 줄 아는 소녀가 다 있구나….’
앤을 알고 난 후 한참 동안, 나는 한 편의 영화 같은 꿈을 꾸었는데, 어쩌면 앤을 동경하던 그 힘이 마침내 나를 동화작가가 되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한 학년에 한두 학급뿐인 작은 초등학교라 월말고사에서 1등을 하고 읍내 백일장에 가서 상을 타 오는 일도 어렵지 않았다.
산골 아이의 어느 면이 제법 당차 보였던지, 나를 보고 ‘요 녀석은 서울 데려다 놔도 충분히 살겠다’라고 하시던 선생님이 떠올라 웃음이 난다.

1974년, 집에서 10리 거리 되는 사립 재단 중학교에 진학해서 고등학교까지 6년 동안 한 울타리 속 학교생활을 했다.
예당저수지 옆 초록색 지붕 단층 건물의 작은 학교. 호수 위로 피어나는 물안개와 물그림자와 학교 뒤편 백제 부흥 운동의 마지막 거점 임존성… 내 사춘기 시절 친구들과 더불어 가꾼 소중한 추억에는 모두 예당저수지와 봉수산이 함께 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소설을 쓰겠다고 멋모르고 매달렸다. 그리고 소설이 뭔지도 모른 채, 나름대로 독서 노트를 만들어 본격적인 문학작품을 탐독하고 습작하는 비밀스러운 재미에 빠져들었다.
충청남도 내 백일장에서 상도 많이 타고 그리스신화와 톨스토이, 괴테, 펄 벅의 작품에 매료되어 밤새운 기억과 수채화 그리는 일이 날로 행복해지던 시점이기도 하다.
아무리 작은 학교지만 남녀공학인 중학교에서 여자아이가 웅변도 하고 전교 학생회장도 해낸 걸 보면 소극적인 아이는 아니었던 듯싶다.

1979년 대학 입시 무렵은 내 일생에 가장 우울했던 한 시절로 기억한다.
판사든 화가든 작가든 디자이너든, 꿈을 꾸기만 하면 뭐든 다 이룰 것 같았던 자신감은 대전의 호수돈여고 대신 내가 다닌 중학교와 같은 재단의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깨어졌다.
문학의 열병에 빠져 기말고사를 팽개치고 절에 들어가 일주일씩 머물 만큼 객기를 부린 적도 있었다.
나름대로의 소망으로 문학과 미술 사이에서 갈등하던 내게, 나를 아끼던 미술 선생님은 당신의 모교에 진학하길 간곡히 권하셨다. 소묘나 데생 실기 시험을 위해 지망하는 대학의 교수에게 개인 교습을 받도록 주선해 주기도 했다.
그러나 부모님은 미술대학에 가기 위해 주말마다 서울까지 올라가 과외 수업하는 걸 용납하지 않으셨다.
당시 내가 미술대학 진학을 포기한 것이 못내 안타까워 나보다 더 많이 눈물 흘린 이경숙 선생님도 내겐 평생 잊지 못할 분이다.
그 뒤 1년을 허송세월했다. 겁도 없이 입산하겠다며 수덕사 근처 환희대란 암자에 찾아가 며칠 묵다 돌아온 기억도 꿈만 같다.
당시 언니 오빠들은 모두 결혼하거나 직장을 따라 서울로 떠나고, 집에는 팔순이 넘은 할머니와 회갑이 지난 부모님뿐이었다. 이미 쇠약해진 부모님은 막내마저 멀리 떼어 놓을 수 없다며 집에서 통학할 수 있는 국립 전문대 진학을 권유했다.
장학금의 유혹도 있었지만, 고교 시절 이원수 선생님의 심사로 그 학교 주최 백일장에서 산문부 장원을 한 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었다.
그렇게 진학한 전문대학의 가정학과 학생으로서 2년 동안, 나는 강의실보다 학보사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았다. 학보사 기자로 취재하고 기사를 작성하고 신문을 편집하는 일에 재미를 붙인 내게 친구들이 ‘가정학과’가 아니라 ‘학보사학과’에 다닌다며 놀릴 정도였다.
그런 중에도 재학 중 교내 소설문학상에 2년 연속 장원으로 뽑혔다. 학보 두 면을 다 차지해 실린 당선작으로 한때나마 화제가 되었는데, 첫해는 단편소설 <시인무대>고 이듬해에는 <동심초>였다. 오랜 습작 끝에 그나마 소설다운 소설로 완성한 그 제목과 내용이 기억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대학 졸업을 앞둔 1982년 12월에 도서출판 지경사 편집부에 입사했다.
‘소설 창작 사원 모집’이라는 신문 광고를 보고 찾아가 어렵사리 선발된 꿈의 직장이었으나, 정작 업무는 순정 만화 대본을 쓰는 일이었다. 하루에 원고 수십 장을 써 내는 직장 생활은 그래도 창작하는 일을 했으므로 보람찼다.
비록 월급쟁이 노릇이라 해도 내가 쓴 대본에 만화가가 그림을 그려 예쁜 책이 한 권씩 탄생되는 기쁨은 제법 컸다. 한창 일본에서 순정 만화 붐이 일던 시절, 내가 쓴 <녹색 바람이 부는 날> 등은 순정 만화 부문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당시 신생 출판사의 편집부 일원으로 정말 의욕을 가지고 일하며 주위 사람들과 어울리는 서울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래도 한 해가 저물 무렵이면 떨치지 못한 신춘문예의 열병을 호되게 앓곤 했다. 결혼 전에, 응모 부문도 소설에서 동화로 바꾸어 <천사와 꽃방망이>라는 작품을 낸 적도 있었다.

1984년, 스물다섯의 나이에 결혼하게 되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살림에 매달려 두 아들을 낳아 키우며 평탄한 결혼 생활을 영위했다. 그때는 또 살림살이가 적성에 맞는 듯, 아이 키우고 음식 만들고 집 안 꾸미는 나날이 무엇보다 행복했다.
그래도 문학의 꿈을 아주 버리진 않았던지, 결혼 이듬해 한국여류시인협회 주관의 백일장에서 <강>이란 시로 우수상을 받았다. 6개월 된 첫아이를 품에 안고 시상식장에 나가 기자들의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은 기억이 새롭다.
틈틈이 책 읽는 걸 게을리한 적이 없었던 게 문학의 길 한 귀퉁이에나마 발을 디디게 된 계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첫아이가 네 살이고 둘째 아이가 배 속에 있던 1988년 가을, 전국 마로니에 여성 백일장에 참가했다. 그런데 마감 시간에 쫓겨 수필 대신 단숨에 휘갈기듯 써 낸 짧은 동화 <샘이와 송이>가 뜻밖에 장원으로 뽑혔다.
같은 해 12월 아동문예 문학상에 <다람쥐와 들꽃>이 2회 추천되어, 나는 동화작가의 길에 입문했다. 우연히 두 차례나 나의 등단작 심사를 맡으신 이영호 선생님을 지금껏 내 문학의 길을 열어 주신 사부님으로 생각하고 있다.
등단 후 한동안 두 아이를 키우며 한 달에 5∼6편의 동화 원고 청탁을 소화해 내는 부지런한 창작 시절이 이어졌다. 심야에, 그것도 마감일에 임박해서야 원고 쓰는 속도가 붙는 버릇 때문에 당시 작품은 단 한 편도 밤을 새우지 않고 쓴 게 없었다.
글을 쓸 때마다 동화 같은 풍경 속에서 동화 같은 꿈을 꾸며 지내 온 어린 시절이 오롯이 떠올랐다. 그래서 내 작품의 배경 속에 내 어린 시절의 모습이 많이 투영되어 있다.

동화작가라는 이름을 얻은 지 어느덧 25년이다.
4년 전, 내 나이 50이 되던 해 수묵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반백의 나이에 이르러서야 내가 나에게 선물하듯 새롭게 시작한 취미 생활이었다.
지난해 우연히 무명천에 들꽃 수를 놓는 스님을 알게 된 후, 꽃수를 놓는 일이 또 하나 사는 재미가 되었다. 그림 그리는 일도 꽃수를 놓는 일도, 내 손에서 애잔한 꽃밭이 일구어지는 특별한 기쁨이므로 포기하기 어렵다.
그러나 예서 제서 소소한 행복을 찾는다 해도 나는 이미 동화작가로서의 삶을 먼저 선택했다. 그럼에도 아직 손꼽을 만한 작품을 내놓지 못한 부끄러움이 앞선다.
솔직히 등단 후 10년쯤 책을 내지 못했던 때에는 두 아이를 낳아 키우고 지켜보는 일이 글 쓰는 것보다 달고 행복했노라고 고백할 수 있다. 물론 내 인생에서 비중을 두고 공들인 그대로, 작품보다는 두 아들이 더 잘 커 준 것이 자랑스럽다.
그러면서도 이따금 누에 입에서 명주실 나오듯 빛나는 작품을 차례차례 쏟아 내는 작가를 보면 기가 죽는다. 하지만 동화 창작에 대한 내 부족한 용량을 나는 알고 있다.
‘많이’도 아니고 ‘빨리’도 아니고 ‘화려하게’도 못 된다. 그저 ‘천천히 오래오래’ 갈 줄 아는 끈기 하나로 둘레둘레 두루두루 세상을 구경해 가며 문학의 길을 갈 생각이다. 그 길 위에서 만나는 마음 맞는 이들과 따뜻하게 손잡고 인정을 나눌 것이다.
쓰는 일보다 읽는 일에 치중하고 살았으니, 언젠가는 쓸거리가 고이고 넘칠 거라는 내 인생 멘토의 말을 굳게 믿는다.
흐르는 세월에 순하게 묻어가며 마침내 늦둥이처럼 고맙고 아름다운 동화 한 편 건질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약력과 작품 및 수상 연보

1960년 충남 예산 출생.
1988년 단편동화 <샘이와 송이>로 전국마로니에 여성백일장 아동문학부문 장원.
단편동화 <다람쥐와 들꽃>으로 월간 아동문예 작품상 동화 부문 2회 추천으로 등단.
1993년 ≪어미새가 사랑하는 만큼≫(아동문예) 출간.
1996년 ≪민들레꽃이 피었어요≫(삼성출판사), ≪나란히나란히≫(한국비고츠키) 출간, ≪무지개가 떴어요≫(한국비고츠키), ≪뻐꾹시계와 신호등≫(한국비고츠키) 출간.
1997년 단편동화집 ≪호수에 별이 내릴 무렵≫(아동문예) 출간, ‘97 한국아동문학상’ 수상.
≪펭귄의 꿈≫(민지사) 출간.
1998년 ≪백조가 된 아이≫(눈열린교육) 출간.
2001년 ≪삼촌이 날아가 버렸어요≫(꿈이있는아이들) 출간.
2002년 ≪엄마는 나만 미워해≫(꿈이 있는 아이들) 출간.
2003년 ≪개구리야 정말 미안해≫(꿈소담이) 출간.
2007년 ≪누가 고슴도치나무에 올라갈래?≫(교원), ≪우르르쿵 무너진 부주산≫(교원) 출간.
2012년 장편동화 ≪해리네 집≫(청개구리) 출간, ‘방정환 문학상’ 수상.

해설 - 박종순
1964년 경남 의령군의 작은 들 마을에서 태어나 자연 속에서 유년을 살았다. 흙을 만지며 소꿉놀이도 하고, 꼴을 베고 소를 먹이며 일하는 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 넓은 자연의 품이 현재까지 힘이 된다고 믿는다.
아이 엄마가 된 후 아동문학에 발을 들여놓았으며 창원대학교 대학원에서 공부해 <이원수문학의 리얼리즘 연구>라는 논문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2011년에 창작과비평사에서 출간한 연구 논문집 ≪이원수와 한국아동문학≫에 글을 실었다. 2003년에 아동문학 평론으로 등단을 했으며, 학회 활동과 평론 쓰기로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으나 늘 부족하다.
진주교육대학교에서 5년간 아동문학과 어린이 글쓰기 지도에 대한 강의를 했으며, 지금은 창원대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 가르치고 배우며 문학과 글쓰기에 대한 깊이를 가지려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지역에서 독서 문화 활성화를 위한 활동을 다양하게 하고 있다.

목차

작가의 말

빛나는 목발
외할머니의 언덕
물새가 잠드는 곳
노란 우산과 등대지기
슬픈 꿈
불쑥불쑥 솟아날 거야
마지막 숨바꼭질
동굴의 문을 활짝 연 사람
소중한 사람
포도밭 아파트로 오세요
엄마의 일기
열두 살의 사진첩
나직하게 말 걸기
그 집 앞

해설
백승자는
박종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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