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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 단편집 초판본 상세페이지

소설 한국소설

송영 단편집 초판본

소장종이책 정가16,000
전자책 정가20%12,800
판매가12,800

송영 단편집 초판본작품 소개

<송영 단편집 초판본> 계급주의적 정치사상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작가인 송영의 5편의 작품이 실렸다. 계급문학이 가지고 있었던 도식성에서 벗어나 소설적 진실성을 담기 위한 몸부림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송영 작품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송영 소설은 그의 정치사상을 아울러 고찰할 때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 오늘날 송영 문학 연구는 소설보다는 희곡에 집중되어 있는데, 그것은 그의 소설들이 대부분 계급 사상을 형상화해 문학적인 완성도가 낮은 것으로 평가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의 문학 전체를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계급주의 경향들은 일제 강점기라는 당대의 현실과 연결해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당시의 사회주의 운동은 계급 해방뿐 아니라 민족해방운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기 때문에 당시의 계급문학은 민족 문학의 차원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저자 프로필

송영

  • 국적 대한민국
  • 출생-사망 1903년 5월 24일 - 1978년
  • 경력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조선연극인동맹위원 위원장
    동양극장 문예부원
    1935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KAPF) 회원
  • 데뷔 1925년 개벽 소설 `늘어가는 무리`

2015.02.05.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소개

송영(1903∼1978)
송영(宋影)의 본명은 송무현(宋武鉉)이고, 필명은 송영 외에 송동양, 앵봉산인, 앵봉생 등이 있다. 1903년 5월 24일 서울에서 출생했고, 어린 시절에는 조부와 부친의 영향으로 문학을 가까이 하게 됐다. 15세(1917)에 배재중학에 입학하면서 박세영과 함께 ‘소년문예구락부’를 조직했고, ≪새누리≫라는 잡지를 발간하여 습작 소설을 게재했다.
1919년에 3·1운동에 가담하여 동창생들과 ≪자유신정보≫라는 비밀 신문을 발행하기도 했으나, 가정 형편이 어려워 다시 학교로 돌아가지 못하고, 3년 동안 운송부 잡역으로 일한다. 이 시기 동안 크누트 함순, 도스토옙스키, 고리키, 고골, 체호프, 몰리에르 등의 외국 문학과 레닌과 마르크스의 이념 서적을 접하게 된다.
1922년 일본으로 건너간 송영은 동경에서 낮에는 공장 노동자 생활을 하고, 저녁에는 예술 강의를 들으며 문학에 대한 열정을 불태운다. 반년간의 일본 생활을 마감하고, 1922년 말 고국으로 돌아온 송영은 ‘새누리’라는 문학 단체를 조직했으나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성과를 내지 못한다. 새누리의 재건을 위한 결실로 1923년에 염군사가 발족하였다. 새누리의 멤버였던 박세영, 이적효, 이호 등이 중심으로 이뤘지만, 염군사는 ‘무산계급 해방 문화의 연구 및 운동을 목적으로 한다’고 조직 강령을 정한 사상 단체의 성격이 강했다. 이런 강한 정치성으로 인해 파스큘라와의 연합을 거절당했다.
송영은 <느러가는 무리>가 ≪개벽≫(1925. 7)의 현상 공모에 당선되면서 정식으로 문단에 데뷔한다. 그는 1925년 8월 24일에 결성된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에 참여하지 못하고, 고양군으로 내려가 아동교육에 힘쓴다. 그곳에서 박세영과 함께 아동문화 예술 단체인 ‘앵봉회’를 조직하고, 아동잡지 ≪별나라≫를 편집했다. 이런 경험들이 소설 <야학 선생>(1932), <그 뒤의 박승호>(1932), 희곡 <월파 선생>(1936)에 나타나 있다.
송영은 KAPF의 1차 방향 전환 이후 KAPF 내의 중심인물로 떠오른다. 1차 방향 전환 이후 프로문학은 현실에 대한 계급적 이해라는 막연한 접근에서 벗어나 노동자 계급의 입장에서 세계를 바라보고 그것을 반영해 나가는 것으로 전환한다. 그런 과정에서 KAPF는 예술가 조직이 아닌 대중 조직으로 변모한다. 송영은 1차 KAPF 검거에서 불구속 처분을, 2차 KAPF 검거에서는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난다. 1935년 KAPF 해산 후에 송영은 <월파 선생>과 <황금산> 등을 발표하며 꾸준한 작품 활동을 해나가다가, 프로 극단의 존립 자체가 어려워지자, ‘동양극단’의 전속 작가로 활동한다. 당시 비평계에서는 상업 작가가 됐다고 그를 비판했지만, 송영은 “오히려 좋은 극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항변했다. 1938년 ‘시국대응전선사상보국연맹’에 참가하여 ‘전조선전향자대회’에 참석하기도 하는데, 이는 진심에서 우러난 것이 아닌 의사 전향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러나 1940년 이후에는 국민 연극과 관련된 활동을 하기도 했다.
해방 이후 이기영, 한효 등과 함께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연맹(예맹)’을 조직했으나, 1946년 임화의 주도로 예맹이 ‘조선문학가동맹’으로 통합되자, 1946년 월북하게 된다. 월북 후 활발한 문학 활동을 벌이다가 6·25전쟁 때는 종군작가로 참전하고, 1959년 9월 8일 북한에서 가장 영예로운 칭호인 인민상 계관인(桂冠人)이 된다. 1978년 정신 질환으로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학균
김학균은 1970년에 충북 보은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세종대학교 교양학부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논저로는 <김승옥 소설에 나타난 화자의 성격 연구>(1999), <염상섭 소설의 추리소설적 성격 연구>(2008) 외에, <‘사랑과 죄’에 나타난 연애의 성립 과정> 등 염상섭의 소설에 대한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목차

느러가는 무리
석공 조합대표(石工組合代表)
군중정류(群衆停留)
아버지
‘솜틀거리’에서 나온 소식(消息)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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