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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터리 저울추 상세페이지

엉터리 저울추작품 소개

<엉터리 저울추> 요제프 로트의 후기 소설. 엉터리 저울추를 사용하는 가난한 상인들에 대해 동정 어린 시선은 걷히지 않고 오히려 엄격하게 법을 집행하는 자들의 경직된 태도에 비판의 화살이 날아간다. 실행의 소도구, 공공연한 폭력의 상징으로 나타나는 법이 어떤 식으로 인간에게 기여하지 못하고 희생자를 만들어 내는지 이야기한다. 현행법이 행동과 판단의 유일한 기준이 되며 국가 관료의 권위를 세워 주는 목적만 가지고 있을 때, 그리고 책임과 인도주의가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할 때 그게 진정한 엉터리 저울추인 것이다.

소설의 제목 “엉터리 저울추”는 얼핏 상인들이 늘 사용하는 그 엉터리 저울추를 의미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확하게 무게를 재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입장을 고려한다면 도량형기 검정관의 저울추, 다시 말해서 그의 이상적인 척도가 엉터리다. 정확하게 무게를 재는 것이 무의미한 것은 그것이 가난한 상인들에게서 생존의 토대를 빼앗아 가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알코올중독자와 사기꾼들의 사회에 대한 비판보다는 법에 대한 비판에 더 무게가 실려 있다는 것은 엉터리 저울추에 희생된 자들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아이벤쉬츠는 그 지역에서는 드물게 그리고 지나치게 법을 준수함으로써 상인들 사이에서 해롭고 위험한 사람으로 분류된다. 새로운 검정관이 오기 전에 그 사회는 나름대로 불화 없이 사이좋게 살아왔지만, 새롭게 이 사회에 편입된 검정관은 그 속에서 스스로 소외된다. 이런 아이벤쉬츠의 성격에 배경이 되는 것은 그가 하급 장교로서 다년간 활동함으로써 지니게 된 군인적 태도다. 그러나 법적인, 그리고 도덕적인 엄밀함이라는 이상은 그릇된 것이며 심지어는 우스꽝스럽기도 하다는 것이 밝혀진다. 왜냐하면 아이벤쉬츠가 공적인 업무뿐만 아니라 사적인 일을 처리하면서 보여 준 태도는 공무원이 세심하게 양심적으로 일을 계획하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감정이 깨어나는 것은 잠시 후 주점 주인 야틀로브커의 애인 예우페미아를 만나게 되면서부터다. 그는 마치 눈을 처음 뜨는 것처럼, 여자를 처음 보는 것처럼 그렇게 그녀를 느낀다. 그에게 관능적 요소는 자연스러운 것, 즉 인간의 본성에 속한 것이 아니라 타락의 신호이자 성향이다. 그는 갑자기 자신이 “부서지고 흔들리고 붕괴될 것 같은 집”처럼 느껴진다. 인간이 자유롭게 죄를 짓기로 또는 죄에 반대하기로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오류임이 드러난다. 그래서 정확한 저울추에 대한 요구는 적절치 못한 것이 되고, 저울추를 꼼꼼하게 검사하는 것은 엉터리 저울추를 근거로 하는 것이 된다. 단지 법이기 때문에 시행되는 법은 인간에게 기여하지 못하고 인간을 희생자로 만든다.
검정관은 감옥에서 도망친 야틀로브커의 복수심으로 인해 돌로 살해된다. 그는 죽어 가면서 최후의 심판과도 같은 광경을 체험한다. 그것은 전에는 자기가 재판을 했지만 이제 재판을 받는다는 것이며, 다른 말로 하면 그가 전에 사용한 그 척도로써 자신이 판단된다는 것이다. 그의 양심은 그 자신이 그의 척도를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는 엉터리 저울추만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엉터리 저울추들 중의 하나로 간통을 그의 도덕적인 불완전함의 상징으로 들 수 있을지 모른다. 물론 죽어 갈 때의 환상 속에 여성은 등장하지 않는다. 결정적인 것은 그의 죄가 올바른 저울추를 위한 척도를 너무 높게 잡았다는 것이다. 절대적인 타당성을 갖는 인간적 척도는 없다. 그래서 아이벤쉬츠는 대검정관으로부터 유죄판결을 받음과 동시에 무죄판결을 받는다. 즉 그의 저울추는 역설적으로 엉터리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바른 것으로 간주된다.
“법은 법이다”라는 피오트라크의 말에서 잘 드러나는 법조문의 자구(字句) 중심주의는 대검정관의 “업무는 업무다”라는 통렬한 비판에 의해 무력화된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 검정관이 아닌 상인으로의 역할 교체를 통해서 비로소 아이벤쉬츠는 자기 자신의 저울추가 엉터리라는 인식에 도달할 수 있었다.
끝내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복수를 노리던 야틀로브커에게 살해당한 아이벤쉬츠의 비극적인 생애는 히틀러를 피해 고향을 떠나 호텔을 전전하며 글을 쓸 수밖에 없었던 유대인 작가 요제프 로트의 불안정한 현존재를 여실히 보여 준다.


저자 프로필

요제프 로트 Joseph Roth

  • 국적 오스트리아
  • 출생-사망 1894년 9월 2일 - 1939년 5월 27일

2015.01.05.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소개

요제프 로트(Joseph Roth, 1894년 9월 2일∼1939년 5월 27일)
“나의 가장 강력한 체험은 전쟁과 내 조국의 멸망이다. 내가 가졌던 유일한 조국은 오스트리아ᐨ헝가리 제국이었다.” 바이마르 공화국이 멸망하기 몇 주 전에 나온 이 고백을 읽어 보면 그의 생애가 방향을 찾지 못하고 헤매게 된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그는 1927년에 발표한 소설 ≪끝없는 도주(Die Flucht ohne Ende)≫에서 다루었다.
지원병으로 전쟁에 참여했던 로트는 1916년에 한 군인 신문의 기자가 되었다. 전선에서 쌓은 경험을 토대로 그는 제국이 붕괴된 뒤 빈의 평화주의 신문인 ≪새로운 날(Der neue Tag)≫의 지방 통신원으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그 후 베를린에서 증권 신문을 비롯한 몇몇 신문의 인기 기자로 성장하면서 로트는 주로 하층민과 전쟁 희생자의 근심과 고통, 일상생활의 관찰, 새로운 영화와 책과 연극 평에 대한 기사를 작성했다. 그는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토대로 해 책과 연극에 대한 휴머니즘적인 감정을 추구하는 정치적 노선을 대변했다. 1924년은 로트의 저널리즘적인 사회참여의 절정을 이루는 해였다. 이해에 그는 특히 신문 ≪전진(Vorwärts)≫과 잡지 ≪용(Der Drache)≫을 통해 신랄한 시와 혜안이 번득이는 시사 해설을 발표함으로써 점점 더 극심하게 극우의 길로 나가는 정치와 문화를 비판했다. 힌덴부르크가 제국 대통령으로 선출되자 로트는 자포자기에 빠지기 시작했다. 시사 정치적인 저널리스트에서 문예 오락 담당 기자로 변모해 갔다. ≪프랑크푸르트 신문 (Frankfurter Zeitung)≫의 독자들에게 파리, 남프랑스, 러시아, 이탈리아, 알바니아 그리고 유럽의 다른 나라들 소식을 전해 주었다. 그러면서 그는 점차 소설가로서 두각을 드러내게 되었다.
로트가 신문 기사를 통해서 문학적 자질을 아낌없이 보여 주었던 것처럼, 그의 에세이와 소설들은 시사적인 문제와 씨름하는 가운데 작성되었고 또한 대부분이 부분적으로 신문에 이미 발표된 것들이었다. 예를 들면 다소 오래된 신문 기사 중에서 자신의 긴 글들을 모아서 ≪방랑하는 유대인(Juden auf Wanderschaft)≫(1927)에 실었다. 이 에세이는 자신의 정체성을 모색하는 작가에게서 동부 유럽 유대인 정신에 대한 예리하고 연민 어린 시선을 가진 분석가로서의 면모를 느끼게 한다. ≪거미줄(Spinnennetz)≫(1923)부터 ≪우파와 좌파(Rechts und Links)≫(1929)까지의 그의 모든 소설들은 시사적인 문제를 다루었으며 주인공은 전쟁 부상자, ‘잃어버린 세대’의 젊은이들, 해방된 여성들이었다. 이러한 작품들에서 주로 사용된 기록문학적 문체는 로트를 신즉물주의(Neue Sachlichkeit)의 선두 주자로 급부상하게 만들었다. 소설 ≪욥(Hiob)≫(1930)에서 로트는 자신의 기존 작품 세계에서 탈피해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 했다. 그것은 바로 성경적 신화의 소재를 채택했고 전설과 동화에 접근하는 언어로 기록했다는 것이다. 대표작인 ≪라데츠키 행진곡(Radetzkymarsch)≫(1932)에서 그는 추억 어린 고향으로 돌아갔다. 비애에 젖은 인상주의적인 영상을 선보이면서, 그러나 한편으론 비판적인 입장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 제국의 멸망을 주도면밀한 정확성으로 그려 냈다.
로트는 자신의 작품들이 거둔 놀라운 성공을 제대로 즐길 수 없었다. 아내 프리들의 정신병 발병으로 인해 심한 죄책감에 시달리고 이로 인해 많은 돈이 필요하게 되자 한때 투쟁의 대상이었던 우파 신문 ≪뮌헨 신문(Münchner Neueste Nachrichten)≫의 거액 연봉 공세에 포섭되기도 했다. 이때 작성된 기사를 보면 그에게 점차적으로 문화 페시미즘이 강하게 자리 잡는 것을 볼 수 있다.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하자 로트는 누구보다도 먼저 독일을 떠났다. 그는 파리로 망명을 떠났고 그 후 빈, 잘츠부르크, 암스테르담, 마르세유, 니스 그리고 폴란드 등지를 전전했다. 또다시 기자로 변신한 로트는 국가사회주의에 맞선 강력한 정신의 전사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는 이미 근본적으로 너무나 페시미즘에 젖어 1934년에 나온 소설 ≪타라바스(Tarabas)≫(1934)의 부제가 말해 주듯, 자신을 “이 땅의 손님”이라고 여겼다.
망명 이전에 이미 로트는 삶의 방향 정립에 실패해 술에 의지해 살았다. 그러나 본향을 찾는 일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가톨릭의 온전한 질서 체계 속에서 곧 은신처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말하자면 합스부르크 왕가의 복원을 오스트리아를 파시즘으로부터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으로 간주했던 것이다. 그 때문에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신문 기사와 강연을 통해 가톨릭 정통주의의 이념을 대변했으며 후기 소설 ≪황제의 흉상(Die Büste des Kaisers)≫(1935), ≪카푸친의 무덤(Die Kapuzinergruft)≫(1938)의 작품 세계는 옛 합스부르크 제정에 대한 찬미와 과도한 이상화의 경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현실과 배리되는 이러한 입장은 로트의 만년에 와서 점점 더 완고한 반시온주의적이고 반공산주의적인 논쟁을 낳았다. 다른 한편 로트는 그의 휴머니즘적인 입장을 충실하게 고수하면서 시대의 희생자들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망명자원조기금을 후원하고 파리의 자유 도서관 건립을 돕고 반파시즘적인 회의에서의 연설을 주저하지 않았다.

주경식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논문 <레싱의 관용 사상>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독일 트리어대학과 뮌스터대학에서 연구했다. 역서로 T. W. 아도르노, M. 호르크하이머의 ≪계몽의 변증법≫(문예출판사, 공역), R. 슈넬의 ≪미디어 미학≫(공역), G. E. 레싱의 ≪미스 사라 샘슨≫(지식을만드는지식) 등이 있다. 현재 강릉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목차

엉터리 저울추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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