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레즈 녹스밀러(공): 고성에 홀로 사는 뱀파이어로, 과거의 상처 때문에 인간의 피를 마시는 것을 꺼린다. 이러한 트라우마 때문에 아버지가 몰래 차원을 넘어 라은도를 블레즈의 종속으로 만들어 버린다. 의도치 않게 생긴 종속이라는 존재가 껄끄럽기만 한데, 미친 건지 저게 가끔 귀여워 보인다.
* 라은도(수): 평범하게 대학을 다니고 있는 라쿤 수인이지만, 골목길에서 의문의 차원 이동을 당해 ‘흡혈 라쿤’이 돼 버린다. 제 주인 블레즈가 밥을 잘 챙겨 먹지 않아 자신이 종속됐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당차게 상황을 해결하려 한다. 그러나 일은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꼬이는데. 그래도 라쿤 라씨 32대손 라은도는 굴하지 않지!
평화롭게 살던 라쿤 수인이 어느 날 갑자기 판타지 세계로 차원 이동됐다. 제 목을 물려는 뱀파이어에게서 죽을힘을 다해 도망쳐 나왔는데, 정신 차려보니 그의 종속 뱀파이어가 되어 버렸다.
그렇게 라은도는 인간이 죽는 게 싫어서 흡혈을 마다한다는 블레즈를 위해 방법을 찾기 시작하는데….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때요? 성에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거예요. 양해 받고 피를 좀 뽑고요.”
“누가 이런 곳까지 오려고 하겠어? 일확천금을 주면 모를까?”
“음… 주면 되잖아요.”
적당한 금액을 쥐여주면 돈이 필요한 사람들이 피를 팔기 위해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 말에 블레즈가 저렇게 반응할 줄 알았더라면 절대 그러지 않았으리라.
“돈으로 사람들을 꼬이게 한 다음 사육을 하자는 거군?”
은도의 귀를 의심케 하는 답변이 들려와 저도 모르게 동공이 파르르 흔들렸다.
[본문 중]
다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은도가 곧 소파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 블레즈를 빤히 봤다.
“같이 자면 안 돼요?”
블레즈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저를 슬슬 건드리는 은도를 내려다봤다.
분명 시작하면 멈출 수 없을 게 뻔했으니, 몰아치는 자신을 은도가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극한의 인내심으로 허락받은 키스 정도에서 끝내고 있는데, 이 귀여운 짐승이 자꾸만 저를 자극하는 거 아닌가.
블레즈는 은도에게 한없이 약했다. 둘 사이의 모든 의사 결정권을 은도에게 쥐여 준 지 오래였으므로, 그만 허락한다면 고민의 여지조차 없는 일이었다.
새삼 복잡해진 심경을 가득 담아 은도의 얼굴을 쓰다듬고 있는데, 제 손에 담긴 작은 얼굴에 배시시 웃음이 떠올랐다.
가늘게 휘어지는 눈꼬리와 끝이 둥글게 말리는 촉촉한 붉은 입술은 명백한 유혹의 의도를 띠고 있어, 블레즈는 이 예쁜 얼굴이 천사의 것인지 악마의 것인지 헷갈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도 어느샌가 녹진해진 미소로 마주했다.
“은도야, 너 웃는 거 볼 때마다 몸이 녹아내리는 거 같아.”
블레즈가 은도의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 짧게 입을 맞춘 블레즈가 은도를 그대로 들어 올려 어깨에 둘러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