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분야: 현대/BL *작품 키워드: #후원자공 #발레리노수 *공: 카렐 클레멘츠: 세계적인 미디어 재벌이자 장학 재단의 이사장. 누군가를 그리워하듯 늘 같은 외형의 사람들과 건조한 관계를 이어가던 그에게, 그의 환상을 그대로 재현한 듯한 소년 사샤가 다가온다. *수: 사샤 세드린: 발레 스쿨의 유망주. 가난과 외로움, 편견을 등지고 오직 사랑하는 발레만을 위해 뉴욕으로 유학을 왔다. 관대한 후원자, 카렐 클레멘츠에게 인정과 애정을 받고 싶다는 열망이 나날이 커져 가던 중, 후원자가 전해 온 제안에 사샤의 삶이 급변하기 시작한다. *이럴 때 보세요: 불안전하게 흔들리다 점차 단단히 완성되어 가는 사랑 이야기를 보고 싶을 때 *공감 글귀: 저는 이 음악이 제 인생 같다고 생각했어요.
<라 발스 (La Valse)> 세트
작품 정보
*본 도서의 1~6권(라 발스, 그랑파)은 재출간된 도서로, 재출간시 인물의 나이 및 에피소드 등 일부 개정된 부분이 있습니다. 도서 이용에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러시아의 작은 마을에서 발레에 대한 꿈을 키워 온 사샤 세드린.
재능을 인정받아 뉴욕의 발레 스쿨에 재학하게 되나, 궁핍한 가정환경과 타고난 불안증, 만성적인 애정결핍에 시달리며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런 사샤에게 있어 유일한 위로란 제 후원자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편지를 써도 답을 해 주지 않던 그에게 서운함을 느끼던 중,
우연한 계기로 후원자와 재회하게 되고 그에게서 뜻밖의 제안까지 받게 된다.
최고의 발레 댄서가 된다고 약속한다면, 원하는 걸 모두 지원하겠다는 것.
사샤는 그의 곁에서 후원을 받으며 발레리노로서 성장하고,
사랑이 고팠던 만큼 점점 더 그가 주는 애정을 갈구하게 된다.
한편 레전드라 불리는 발레 댄서 사샤 세드린의 열렬한 추종자 카렐.
‘사샤’의 환생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닮은 소년을 마주하게 된다.
‘사샤 세드린’과 사샤를 겹쳐 보며, 사샤가 우상인 ‘사샤’만큼 성장하길 바라는 욕심으로 후원을 결심한다.
그러나 이러한 속내도 모른 채 열렬히 그만을 바라보는 사샤를 지켜보며,
카렐은 자기 자신에게 환멸을 느끼고 사샤와 거리를 두려 하는데….
***
“저는 얼마 후에 첫 키스를 할 거예요.”
그 말에 카렐이 쿡쿡 웃었다.
자신이 어떤 반응을 기대했는지는 사샤 본인조차도 몰랐지만, 아무튼 이 반응이 아닌 것만은 알 수 있었다. 키스를 가볍게 여기는 듯한 그 반응에 사샤는 허무감에 휩싸였다.
“아무렇지도 않으세요?”
“그런 것도 내게 허락을 받을 필요는 없어요.”
“허락해 달라고 말한 건 아니에요.”
“그럼?”
카렐이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사샤를 내려다봤다. 키 차이가 하도 나서 가까워질수록 끝없이 올려다보아야 했다.
“진짜 키스해도 괜찮아요?”
바로 직전에 허락해 달라는 건 아니었다고 한 것과 반대로 사샤는 곧바로 모순되는 물음을 던졌다.
“물론이죠.”
그리고 날아갈 듯 가벼운 카렐의 수긍에 사샤는 충격받았다.
“왜요…?”
“왜라니…. 무슨 의도로 그런 걸 묻는지 잘 모르겠네요.”
카렐은 미간을 찌푸리면서 턱을 매만졌다. 턱을 큰 손으로 감싸고 수염이 미세하게 돋아 살짝 거칠어진 표면을 매만지는 게 그의 버릇인 것 같았다. 사샤는 저도 모르게 까치발을 해 손을 뻗어 그의 턱을 같이 만졌다.
불시에 카렐의 턱을 만진 사샤는 만족스러워졌다. 겉보기에는 매끈했지만 밤이 깊어서 그런지 역시나 손끝에 미미하게 돋아난 수염이 만져졌던 것이다.
“왜요? 왜요? 왜 키스는 해도 돼요? 훌륭한 무용수는… 하면 안 되는 게 많아요. 저는 인성도 빵점이고 인간관계도 좋지 않고 친구를 패서 프랑스로 보내버렸는데…. 왜 여자랑 키스하는 건 허락해 주시는 거예요? 왜?”
사샤는 그렇게 말하면서 앞으로 고꾸라졌다. 카렐의 바위같이 단단한 가슴팍에 이마를 쿵 박았다.
그리고 사샤는 바닥으로 쓰러지기 직전 카렐이 제 양팔을 턱, 하고 받아 드는 것을 느꼈다. 이상하게 시야가 뱅뱅 돌고 어지러웠다. ‘하아….’ 깊이 숨을 내뱉자 더운 한숨이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
“이런…. 마신 게 진짜 술이었나?”
“왜요? 왜 말리지 않으세요? 만약 제가 카렐이고 카렐이 사샤라면 저는 반대했을 거예요. 왜냐면 발레만 해도 모자라니까…! 왜 된다고 하시는 거예요? 왜요?”
이미 취기가 올라 ‘왜요, 왜요.’ 하고 따져 대는 발음은 ‘애오, 애오’에 가까웠지만 사샤는 인지하지 못했다.
“왜냐니, 나는 이미 다른 사람과 해치워버렸으니까 그렇죠.”
“네…?”
사샤는 ‘에?’ 하고 물으며 카렐을 올려다봤다. 그는 조금 찌푸린 얼굴로 사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난 공평한 사람입니다. 나도 못 지킨 걸 남한테 강요할 수는 없죠.”
사샤는 입을 조그맣게 벌리곤 카렐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거센 충격이 뒤통수를 치고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