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어흥이 제일 좋아하면서도 무서워하는 것은 바로 떡과 곶감 그리고 그녀 어재규였다. 어흥이 열두 살 때 재규네가 그의 앞집으로 이사를 왔다. 그리고 그녀가 이사떡이라고 돌린 시루떡에 반한 이후 어흥은 재규의 밥이 되었다. 그리고 재규는 아홉수에 걸려 허덕이고 있을 아홉 살에 재규를 만나서 인생이 꼬였다며 종종 입버릇처럼 이야기 하고는 했다.
그녀는 솜씨 좋은 할머니로부터 떡 만드는 방법을 전수받았다. 요리와는 영 담을 쌓은 며느리 대신 그녀의 할머니는 제법 손끝이 야무진 재규에게 어렸을 때부터 떡을 만드는 비법을 물려주었다. 그래서 지금 그녀는 웬만한 떡들은 다 집에서 손으로 만들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재규는 그것을 이용해 어흥을 조련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별로 떡을 좋아하지 않았었다는 어흥의 모친인 영애의 말에 그는 재규가 자신에게 먹이는 떡에 무언가 약을 타고 있다는, 그래서 자신이 끊을 수 없다는 요상한 루머를 퍼트리며 괴로워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흥은 그녀의 떡을 지금까지 끊을 수 없었다. 오죽했으면 어흥이 최전방에서 군인으로 복무하고 있을 때 어느 날 갑자기 이른 아침에 집에 전화를 했다. 그러더니 재규가 만든 떡이 먹고 싶다며 지금 당장 못 먹으면 탈영할 것 같다는 말을 할 정도였다. 때문에 고3수험생이었던 재규는 가장 중요하다는 3월 첫 모의고사를 앞두고 손수 시루떡을 만들어야만 했다.
덕분에 그의 질풍노도의 시기를 잔잔한 강물로 잠재운 것도 그녀의 떡이며, 가출하다가 그녀에게 딱 걸렸을 때 그를 가출 13시간 만에 집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한 것도 그녀의 떡이었다. 재규가 만든 떡이 제법 맛이 좋기는 했다. 하지만 온갖 산해진미를 놔두고, 그리고 그 온갖 달콤한 것들을 놔두고 어흥이 그녀의 떡을 선택할 만큼의 맛과 가치가 있는지는 의문이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은 혹시 어흥이 재규를 좋아해서 그런가 하는 1차적인 추측을 했다. 물론 어흥이 재규를 좋아하기는 했다. 그런데 재규를 이성이 아닌 동성으로 취급을 해서 문제였다. 오죽 하면 툭 하면 사우나나 같이 하자고 해서 그녀의 혈압을 올렸다. 결정적으로 그가 그녀에게 느끼는 감정은 인간 대 인간으로서 느끼는 좋은 감정에 불과하다는 게 문제였다.
그리고 재규는 미남이면 모를까 미인과는 거리가 멀었다. 한때 인기가 있었던 연예인 닮은꼴 찾기 프로그램에서 성별이 80% 이상 남자이고 싱크로율 85% 정일우가 나왔으면 말 다한 거였다. 믿을 수 없다며 연속으로 다른 각도로 찍어 보았다. 하지만 네 번은 정일우였고 한 번은 이수근이라는 결과에 그녀는 좌절을 해야만 했다. 그나마 정일우가 꽃미남이라는 사실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다고나 할까?
그렇다면 두 번째로 그녀의 성격이 좋은가? 그것도 아니었다. 못생겼으면 성격이라도 좋아야 한다면서 재규의 동생인 재연은 늘 그녀의 성격 모남을 지적했다. 하지만 그건 태생적으로 고쳐지지 않는 것 같았다.
“넌 신데렐라가 성질 더러운 계모와 언니들이 없었다면 어땠을 것 같아? 백설 공주에서 왕비가 없었다면 백설 공주가 돋보였겠어? 그리고 둘리에서 고길동이 착해 빠진 사람이었다면? 클라이맥스는 늘 악당들이 만들어 주는 거야. 착한 사람들에게 딱 숟가락만 얹으면 되는 상황으로 만들어 주는 게 어디 쉬운 줄 알아?”
그녀는 늘 악당옹호론을 펼치며 자신의 비틀어진 성격을 합리화했다.
그러면 세 번째로 그녀가 돈이 많은가? 아니다. 그녀가 주식에 올인 하다 도그헤어가 된 지 오래였다. 그럼 왜? 허우대 멀쩡하고 훈남인 어흥이 그녀의 밥으로 살고 있는가?
이 미스터리에 대해서 지금부터 차근차근 알아보도록 하자.
-미리보기-
오랜만에 동네 단골 횟집에 온 두 사람은 늘 그렇듯 입구에 들어가기 전에 횟집 수족관 앞에서 우럭과 도미들을 희롱했다. 어느 각도로 봐도 잘생긴 멀끔한 모습의 남자와 ‘나 집에서 그냥 막 나왔어요.’라고 쓰여 있는 복장을 한 꾀죄죄한 여자가 교양 넘치는 대화를 시작했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어흥.”
“넌 떡 줘도 잡아먹을 거잖아.”
“띵동! 근데 얘들 숨겨 둔 떡밥 같은 건 있지 않겠어?”
“얘들은 떡밥 안 먹거든? 그건 붕어나 먹는 거야.”
날씨가 추웠는지 여자는 제 몸보다 두 배쯤은 커 보이는 큰 점퍼 속에 몸을 최대한 웅크렸다. 그리고는 양손은 주머니에 넣은 상태로 남자에게 횟집 유리문을 열라는 턱짓을 하며 시크하게 대답했다. 그런 상황이 남자는 익숙했는지 알아서 유리문을 열고 여자가 먼저 들어가도록 한 발자국 옆으로 물러났다. 그리고는 그녀의 뒤를 따라서 들어가며 궁금한 듯 다시 물었다.
“근데 떡밥은 무슨 맛일까?”
“안 먹어 봐서 모르겠네.”
여자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리고는 늘 자신들이 앉는 자리에 앉아서 자주 시켜먹는 도미를 주문했다. 그러다가 여자는 점퍼를 벗으면서 뭔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남자에게 말했다.
“그런데 너 의성어가 좀 바뀐 것 같지 않아?”
“무슨?”
“넌 ‘어흥’보다는 ‘멍멍’이래야 어울리잖아.”
“이게 자꾸만 오빠한테 너래!”
오늘도 기어올라 자신의 머리 꼭대기에 앉은 여자 때문에 남자는 혈압이 올랐다. 사실 오빠라는 말로 협박하는 건 남자가 말이 막히거나 할 말이 없을 때 종종 나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늘 그렇듯 여자는 일말의 당황도 하지 않은 채 무표정한 모습으로 상황을 바로잡아 주었다.
“그때 내가 만든 두텁떡에 세 살 나한테 팔았잖아. 너 그때 나한테 쿨 하게 먹고 떨어지라고 했잖아. 그래서 너랑 나랑 동갑된 거 잊었어?”
“기억 안 나는데? 그나저나 오늘은 자연산으로 먹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