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일이라면 오지랖이 태평양급인 조민아,
눈치 없는 그녀가 드디어 사랑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고백해 오는 여자를 마다하지 않고 딱 한 달만 사귀는 장신우,
그에게도 말 못할 비밀은 있다.
민아의 단짝친구 강수인, 현재 짝사랑에 가슴 아파하는 중.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기억 때문에 가슴에 커다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정한세, 그들은 열아홉.
공부만 하다가 학창 시절을 마감하기엔 그들의 심장은 지나치게 뜨거웠다.
고3, 그들의 풋풋한 로맨스가 이제 막 시작되려고 한다.
-본문 중에서-
프롤로그
“야이 자식아! 너 매번 이럴 거야? 내가 도대체 언제까지 네 뒤치다꺼리 해줘야 하는 건데?”
“야! 조민아, 너 오늘 왜 이러냐?”
“몰라서 물어? 도대체 이게 몇 번짼 줄이나 알아? 왜 자꾸 일은 네가 다 벌려 놓고 뒤처리는 날더러 해달라는 건데?”
교복을 입은 두 남녀가 서로 마주 보고 티격태격 싸우고 있었다. 교복을 자신의 몸에 알맞게 줄여 입은 여학생의 모습은 누가 본다 한들 예쁘다고 칭할 정도의 외모를 지녔으며 큰 키와 잘 어울리는 늘씬한 몸매를 소유하고 있었다. 그 앞에 서서 여학생을 못마땅한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는 남학생 역시나 주변에서 잘생겼다는 소리 꽤나 들었을 법한 외모에 여학생도 키가 큰 편이었으나 여학생이 남학생을 올려다보는 걸로 봐서는 키가 185는 족히 넘어 보였다.
나 조민아, 19년을 살면서 오늘처럼 짜증이 났던 적은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물론, 어떡해서든 찾으라면 찾을 수는 있겠지. 그러나 지금은 너무 짜증이 나서 내 앞에서 마치 자신은 아무런 잘못도 없다는 듯, 날 내려다보고 있는 장신우의 얼굴조차 꼴도 보기 싫어졌다. 이 녀석으로 인해 도대체 언제까지 내가 이런 황당한 일을 해야 하는지, 이제는 한계였다.
“너 그러다 언젠가는 그 여자들한테 된통 당하는 수가 있어.”
“난 뭐 좋아서 이러냐? 지네들이 좋다고 덤비는 걸 날더러 어쩌라고? 난 그저 다가오는 여자들을 감사히 받아들였을 뿐이고.”
“미친놈.”
“너 오늘 왜 이렇게 까칠하냐? 혹시 그날?”
“지랄하지 말고 비켜!”
“정말 안 해줄 거냐?”
여전히 내 앞에 버티고 서 있는 신우를 강하게 밀친 후 현관문을 힘차게 열었다. 이내 신우에게 어깨를 붙잡힌 채 돌려세워졌다.
“……휴우!”
이미 예상했던 일이라 녀석에게 어깨가 붙잡히는 순간 나도 모르게 한숨이 절로 새어 나왔다. 날 보며 배시시 웃는 이 녀석을 도대체 어쩌면 좋을까?
장신우, 나와는 19년 지기 친구였다. 우리 아빠와 신우 아빠는 어릴 때부터 친한 친구 사이였고, 우연히 결혼을 한 후 서로 옆집에 살게 되어 난 태어나자마자 내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신우와 친구가 되었다. 참 신기한 것은 이 녀석과 난 생년월일이 똑같다는 거였다. 녀석은 장난으로 내게 우리는 천생연분이라 칭하지만 난 그와는 정반대로 악연이라고 단정 지었다. 이 녀석의 저질스런 습관들로 인해 내가 피해를 본 날은 수없이도 많았다.
그래, 나도 인정한다. 녀석은 길을 가다가 앞에 여자가 열 명이 마주 보고 걸어온다면 그 열 명 다 모조리 녀석에게 반하여 작업을 걸 정도로 빼어난 외모를 자랑한다. 그것까진 좋다 이거야. 왜 녀석은 매번 그 수많은 여자를 떼어 놓기 위해 날 이용하느냐, 이 말이다. 제발 좀 알아서 해결하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얘기를 해도 녀석의 말은 항상 똑같았다.
‘안 돼. 워낙 이 몸이 잘 나시어 절대 날 놓아주지 않거든. 그래도 네가 예쁘니깐 걔네들이 널 보자마자 쉽게 떨어져 나가는 거잖아. 그러니깐 기분 좋게 부탁 좀 들어줘.’라고. 매번 그 부탁에 홀랑 넘어가서는 지금은 마치 습관처럼 녀석의 일일 애인이 되어 수많은 여자들의 눈에서 피눈물을 뽑아내고 있다. 이러다 녀석으로 인해 나까지 지옥 불에 떨어지는 건 아닐는지. 가끔은 그 수많은 여자들이 꿈속에 나타나 날 괴롭히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녀석에게 다시는 네 부탁 들어주지 않겠노라며 갖은 변명과 이유를 대며 협박 아닌 협박도 해봤지만 녀석의 감언이설에 넘어가 결국은 또다시 제자리걸음이었다. 제기랄!
아무튼 이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1년 전부터 녀석과 난 우리 집에서 같이 살고 있다. 이유인즉슨 아저씨가(신우의 아버지이자 아빠의 친구) 해외로 발령이 나셔서 가족 모두 이민을 가야 할 판이었다. 그러나 녀석은 왜 그런지 절대 갈 수 없다며 끝끝내 부모님을 설득해 결국은 또다시 내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녀석과 한 지붕 아래에 동거 아닌 동거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물론, 부모님도 계시지만 녀석을 매일 아침저녁으로, 그것도 모자라 학교에서도 마주쳐야 하니 난 딱 죽을 맛인데, 녀석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날 마주치기라도 하면 반갑다며 헤벌쭉 웃으며 내게 달려와 아는 체를 한다. 게다가 그거로는 부족했는지 지금은 같은 반이었다. 내 친구들은 좋겠다며 아주 생난리를 치지만 내 입장이 한번 되어 보라고, 그러면 절대 그런 소리 못 할 거라고. 그렇게 말하면 친구들은 오히려 제발 좀 그래 봤으면 좋겠다며 더 닦달을 해댄다. 앞으로의 내 인생은 찌글찌글 그 자체였다. 장신우, 그 녀석이 내 옆에 붙어 있는 한 내 인생은 해 뜰 날은 없으며 오로지 비가 오기 전의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과 같을 것이다. 암울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