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살의 우정은 지방대학을 다니다 중퇴를 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구직활동을 시작한다. 하지만 일할 곳을 찾는 것이 만만치가 않고 낙담하고 있던 중 대신건설이라는 곳에 취직하게 되었다. 하지만 우정이 취직한 대신건설은 평범한 사무실이 아니었다. 험상궂은 남자들이 바글거리는 정체불명의 사무실, 우정은 그 사무실의 분위기를 견디지 못해 사표를 낼 결심을 하게 되는데,
그러던 중 잠시 밖에서 사무실에서 필요한 물품을 사가지고 돌아온 어느 날 사무실에 놓여있는 시커먼 쇼파에 매일 보는 험상궂은 남자들이 아닌 처음 보는 낯선 남자가 앉아있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보시던 외화 속 수단을 입은 금발의 랄프신부와 분위기가 꼭 닮은 하얀 얼굴의 남자를 본 순간 첫 눈에 반해버린 우정은 속으로 외쳤다.
“저 남자는 내거야!”
23살의 귀여운 강아지 같은 기우정과 27살의 멋진 깡패오빠 김준수의 엽기발랄한 로맨틱 코미디.
*본문 중에서
“아르바이트 하는 곳입니다. 앉으세요.”
안으로 들어선 준수는 약간은 지저분해 보이는 의자를 끌어당겨 긴 다리를 꼬고 앉아 상현을 응시했다. 상현은 다리를 꼬고 앉아 자신을 쳐다보는 눈빛이 주는 위압감에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보기에는 그저 마른 몸에 하얗고 말쑥하게 생긴 게 다라고 생각했는데 가까이서 마주 대하니 그것이 아니었다. 약간의 후회가 밀려왔지만 최대한 기에 눌린 듯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생맥주를 따라 준수의 앞으로 내밀었다. 준수는 맥주잔과 상현을 번갈아 보다가 낮게 말했다.
“용건은.”
“며칠 동안 우정이 집 앞에서 차를 대놓고 계신 걸 봤습니다.”
“그래서?”
“우정이와 헤어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우정이가 힘들어합니다. 가끔 전화통화로 훌쩍이기도 하고…….”
상현의 말에 되도록 동요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했다. 헤어졌다고 말한다고? 저놈과 전화통화를 한다고? 마음에 걸리는 말 하나하나에 불쑥 솟아나는 질투심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물방울이 맺힌 맥주잔을 들며 길게 들이켰다. 상현의 말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힘들어하지 말고 저와 만나자고 그러니까 사귀자고 말했습니다. 우정이 당장 허락한 것은 아니지만 조금 시간을 달라고 한 것은 반허락이나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상현이 우정에게 사귀자고 한 것은 사실이었으나 우정은 잠시 거리를 두고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말했을 뿐이었다. 상현이 하는 거짓말에 동요하는 것은 다시 맥주를 들이켜고 있는 준수뿐이었다.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뭐지?”
“이렇게 우정의 집 앞에서 기다리지 말아 달라고 하는 거죠. 마음을 정리하고 있는데 더 힘들어 할게 분명합니다.”
“헤어졌다고 마음을 정리하고 있다고 우정이 그렇게 말하던가?”
“네.”
낮은 목소리는 상현을 위축시키기에 충분했고 겨우 대답했을 때의 눈빛은 무섭도록 소름이 끼쳤다. 우정이 알면 화를 낼지도 모를 일이나 우선은 거짓말로라도 준수에게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고 포기하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준수가 풍기는 위압감 때문인지 이건 아니다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자신이 위축되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채지 않기를 바랐다. 준수가 비어있는 맥주를 모두 마시고는 잔을 내려놓고 묻는다.
“이름이 어떻게 되지?”
“오상현입니다.”
“오상현! 우정이와 어떻게 알게 된 거지?”
“초등학교 동창입니다.”
“그렇군.”
준수가 꼬고 있는 다리를 바꾸며 팔을 앞으로 쭉 뻗으며 몸을 천천히 움직였다.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한쪽으로 약간은 삐딱하게 젖혀진 얼굴이 상현을 쳐다보고 있었다.
“오상현 거기까지다. 기우정이 마음을 정리하던 무얼 하던 상관없이 넌 딱 거기까지만 해라.”
“무슨 뜻입니까?”
“전화를 해도 안 되고 우정이를 만나는 것도 안 돼.”
준수의 느릿한 말투가 귀에 제대로 들려온다. ‘네, 알겠습니다.’ 라고 순간적으로 대답이 나올 듯했지만 군대를 다녀온 대한민국 남아의 자존심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아 있는 힘을 다해 말했다.
“지금 제 말을 제대로 듣지 않고 있군요. 우정이가 잊고 싶어 하는 건 그쪽입니다.”
준수가 일어나 앉아있는 상현의 팔을 꽉 잡는다. 팔에서 느껴지는 악력이 상상 이상의 힘이라 놀랄 수밖에 없었다. 팔을 빼내려고 하지만 꽉 붙들린 팔은 제 맘대로 되질 않았고 무섭게 노려보는 눈빛 때문에 그나마 저항하던 움직임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몸도 마음도 내 것인 여자야. 거기서 더 발전하면 너, 죽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