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언제 끝나는 걸까.
오랫동안 물어왔지만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았다.
그러다 깨달았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얼마의 시간이 지나도 모자라지 않다는 것을.
대체 널 어떻게 해야 할까. - 신우현.
네가 날 버렸어. 신우현. 내가 아니라 너야. - 윤진서.
십 년간 멈춰있던 사랑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리보기]
남자는 마지막으로 그림을 향해 시선을 주고는 밖으로 나갔다. 한동안 끓어오르는 감정을 짓누르는 것처럼 눈을 감았다. 스무 살, 그날 이후로 마음 안에서부터 짓무른 상처가 되어오던 사람을 보게 되었다.
뉴욕의 작은 전시회에서.
거칠지만 화려한 붓놀림 사이로 드러난 얼굴은 그가 지난 십년동안 버리지 못한 여자였다. 변함없이 남의 잔잔한 마음에 돌을 던져놓고 아무렇지 않게 홀로 웃고 있었다. 온갖 밝은 색깔로 빛나는 얼굴을 보며, 우현의 깊은 곳에 움트던 잔인한 마음과 마주보게 되었다.
더는 웃지 못하도록 하고 싶다.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도록 만들고 싶다.
윤진서를, 망가뜨리고 싶다.
길고 고통스러운 한숨을 내쉬었을 때, 그는 피지도 않을 담배를 습관처럼 입에 물었다. 싸늘한 뉴욕의 밤거리는 시끄럽고 요란스러웠다. 한참만에야 핸드폰이 울리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가 마침내 기계를 귓가에 댔을 때 처음으로 얄궂다는 생각을 했다.
[그림은 마음에 드십니까.]
십 년. 길다면 긴 세월이었다. 그는 어두운 밤거리를 쳐다보았다.
......
“후회하려면 지금 말해.”
“나는…….”
우현은 진서에게 손을 뻗어 당겼다.
듣고 싶지 않다.
이제 그녀의 선택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파리에서 만난 전 약혼자가 나타난다 하더라도, 우현은 되돌려 줄 마음 따윈 없으니까.
윤진서, 넌 지옥에 발을 디딘 거야.
우현은 인정했다.
그래, 어쩌면 나도.
거짓으로 쌓아올려진 위태로운 관계가 어떤 결말로 흘러가든 우현은 진서를 잡아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게 변해 버릴지 알 수 없는 말보다도 행동이 필요하다. 우현은 힘껏 당겨 윤진서를 끌어안았다. 입술이 맞부딪치고 그녀의 몸이 자신의 몸과 빈틈없이 맞물렸을 때, 금욕의 밤들이 우현의 자제력을 뒤흔들었다.
긴 머리카락이 손에 휘감겼다. 목덜미를 쓸어 올리는 손길에 당황한 숨소리와 함께 그녀의 향기가 몸속 깊은 곳까지 들어왔다. 그의 키스는, 오래된 굶주림만큼이나 집요했다.
“내 이름을 불러.”
자신을 약혼자로 착각하길 바라지 않았다. 우현은 인정했다. 자신의 깊은 구석에 숨겨진 치졸한 감정의 정체를.
“……우, 현아.”
느리고 낮은 목소리. 한때 웃음으로 충만했던 그녀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우현은 차라리 웃고 싶을 만치 고통스러웠다.
윤진서, 네가 이겼어.
그녀에겐 말할 수 없을 만치 명백한 자신의 패배였다. 단지 눈앞에 두고 싶었다. 그의 안에 숨겨진 흉악한 진실은 진서가 설사 결혼한 여자라고 해도 다를 것이 없었다는 것이다. 아이가 있어도, 누군가의 아내라고 해도, 신우현은 윤진서를 포기할 수 없다.
일생, 자신은 진서에게 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타는 것만 같은 갈증으로 그녀의 가는 몸을 잡아채 억눌렀다. 비틀대며 뒤로 밀려가는 그녀를 꽉 잡고 자신의 입 안에서 뭉개지는 여린 살갗을 핥고 빨아들였다. 진서의 입술을 느끼자 닿는 살갗에서부터 찌릿한 전율이 금욕하며 살아온 우현의 잠겨 있던 빗장을 망가뜨렸다.
젖어 들어가는 소리와 동시에 혀가 파고들어 머뭇대는 그녀의 혀를 얽어맸다. 우현은 넥타이를 거칠게 풀어헤치며 진서의 머리를 움켜쥐어 젖혔다. 절로 공기가 빠져나가며 밀도 높게 달라붙는 사내의 혀가 목구멍까지 닿자 놀란 듯 허우적거렸다.
입과 입만으로도 성교가 가능할까. 질문한 사람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의 혀는 능수능란하게 진서의 입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가 천장을 핥아 내고 치열을 더듬으며 진서조차 알지 못했던 성감대를 찾아내기 시작했다.
“흐읍. 하아, 하아.”
짧게 벌어진 동안 헐떡이는 진서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우현은 셔츠를 찢어 내듯 벗어 버렸다. 여전히 움켜쥔 진서의 머리카락을 놓아주지 않은 채 우악스럽게 목이 늘어난 티셔츠를 아래로 내렸다. 드러난 브래지어를 가리는 손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는 비꼬는 입가를 숨기지도 않았다.
“그거 치워.”
“나, 이건…….”
“치우라고 했어.”
협박했다. 우현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녀의 물기 젖은 눈동자를 경멸하며 바들바들 떠는 손이 아래로 떨어질 때까지 꼿꼿하게 서 있었다. 그가 가까이 다가가 두 사람 사이에 남은 공간이 사라질수록 몸이 자로 딱 맞춘 듯 겹쳐지는 육체가 당황스러웠는지 진서의 표정이 흔들렸다.
그의 바지 위로 솟은 성기의 열기가 그녀에게 닿게 된다면 어떨까. 악의적인 생각이 떠오르자마자 우현은 뒤로 보이는 침대 위로 진서를 잡아 던졌다.
출렁거리는 매트 위로 튕겨 오르며 시트에 휘감기는 얼굴이 확 붉어졌다. 우현의 입꼬리가 야비하게 뒤틀렸다.
“처음도 아닐 텐데?”
창백하게 핏기가 가시는 얼굴을 보자 욱신, 어딘가가 아파 왔다. 우현은 강렬하게 감정을 거부했다. 그의 손 안에서 흐트러지고 구겨진 차림의 진서를 보며 다른 남자의 흔적을 모조리 지워 내고 싶었다.
그는 진서의 청바지 버클을 풀었다. 지이익, 내려가는 지퍼 소리에 흠칫 몸을 떠는 진서의 모습을 망막 깊숙이 새겨 넣었다. 바지를 벗겨 내던지자 그녀가 드러난 길고 하얀 다리를 한쪽으로 겹치더니 몸을 웅크렸다.
우현은 손가락에 팬티의 끈을 걸고 아래로 슥 잡아당겼다. 그녀의 자발적 도움이 없인 내리기 힘든 행동의 저편에는 진서가 원해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가 굽혀진 무릎 때문에 더는 내릴 수가 없자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
도망치지 마. 더는 용납해 주지 않을 테니까.
우현의 태도를 읽은 걸까. 아니면, 그녀도 싫진 않다는 것일까. 결국 진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무릎을 폈다. 까맣게 곱실거리는 음모가 언뜻 보였고 숨겨진 밀부가 살짝 벌어진 다리 사이로 우현의 시야에 맺혔다.
속옷은 쉽게 바닥으로 떨어졌다. 우현은 우악스러운 행동에 늘어나 버린 티셔츠 덕분에 어깨와 가슴이 드러난 상체로 손을 뻗으려다 멈췄다.
“벗어. 직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