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아(23살. 간호사)
엄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고향이 뭐고 타향이 무어란 말인가. 내가 살면 그곳이 고향이다.
남자는 사치다. 나는 목표가 있고 반드시 잘 살아야만 한다.
노아 슈미트(28살. 외과 3년차)
동양의 갸날픈 여인이 내 눈에 들어왔다. 분명 운명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을 거부한다. 밀어내기만 한다.
정말 이대로 포기해야만 하나? 그럼 내 심장은?
박경민(25살,광부)
단지 돈 때문에 온 독일. 영아를 다시 만났다. 어렸을 때부터 똑똑하고 예뻤던 그녀. 영아의 아픔을 감싸줄 수 있는 건 나밖에 없다. 이 운명을 받아들이고 싶다.
-본문 중에서-
[어느 여자가 선생님 같은 사람이 관심이 있다는 데 싫다고 하겠어요. 하지만 저는 아닌 거 같아요. 선생님을 좋아하는 건 아닌 거 같아요.]
기어이 내뱉고 말았다. 이렇게 대답할 수 밖에 없는 자신이 원망스러웠지만 점점 깊어지는 그에 대한 마음을 지금이라도 막지 않으면 자신이 상처를 받을 게 분명했다. 열렬히 사랑해도 그를 위해서 헤어졌다는 지현의 말을 잊을 수 없었다.
‘잘한 거야. 영아야.’
[정말입니까? 이렇게 당신 심장 소리가 들리는데도 아니라는 말입니까?]
차 안에서 그녀 쪽으로 몸을 돌린 노아가 자신을 쳐다보도록 양손으로 영아의 얼굴을 잡고는 숨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이 다가갔다.
[…….]
[이렇게 당신 눈동자가 흔들리는데도 아니라는 겁니까?]
[…….]
[그냥 인정해요. 당신의 진심을.]
[네, 그래요. 나도 떨려요. 하지만 난 믿을 수도 없고 용기도 없어요.]
[뭘 믿을 수 없고 무슨 용기가 필요하다는 말입니까?]
노아의 목소리가 격앙되었다.
[당신처럼 멋진 남자가 나를 좋아한다는 것도.]
[그만큼 당신도 멋지다는 얘기잖아.]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향하는 게 싫어요.]
[그냥 내 뒤에 숨어.]
[그리고, 당신한테 상처 받는 것도 싫어요.]
[내가 죽지 않는 한 당신한테 상처 주는 일은 없어.]
어느새 흘렀는지 모르는 영아의 눈물을 그가 엄지손가락으로 닦아 주었다.
[미안해요.]
영아가 눈을 감아 버렸다. 그와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이 점점 커지기전에 이곳을 벗어나야 했다.
[당신은 바보군.]
노아가 그녀를 놓아주자마자 차에서 황급하게 내렸다. 그녀는 자신을 부르는 노아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지금 돌아서면 힘들게 전한 자신의 말이 거짓이었단 걸 그가 알까 봐 주먹을 쥐고는 있는 힘껏 모르는 척했다. 그러고는 영아는 크리스마스이브에 눈 내리는 거리를 어딘지도 모르는 체 하염없이 걸었다.
‘바보, 울지 마. 네가 한 결정이잖아. 후회하지 마, 정말 후회하면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