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 순간부터 한 남자만을 바라 본 여자 노영아
뒤늦게 마음을 알게 된 남자 권기영
일생 친구였던 두 남녀의 알콩달콩 로맨스
-본문 중에서-
“가서 자.”
영아는 뚱하게 말했다.
“자자고.”
“그러게 기다리지 말라니…….”
그러다가 이번에도 눈이 커졌다.
“너랑 자 보고 싶어. 아니, 너랑 자야겠어.”
기영이 그녀의 어깨를 부드럽게 잡고는 그 어느 때보다 담담한 어조로 그러나 아주 열띤 눈빛으로 말했다.
“미, 미쳤냐?”
영화는 머리가 확 비는 것 같았다.
“미친 거 같긴 한데, 아무래도 너랑 한 번은 자봐야 할 것 같아. 내가 지금 제정신이 아니거든. 그 생각밖에 안 들어.”
“야, 그, 그게…… 마, 말이 되냐?”
“왜 그렇게 더듬어? 그렇게 놀랄 일이야?”
“말 같은 소리를 해야 놀라기라도 하지. 이건 뭐…….”
친구 관계를 끊자는 이야기인데, 아직 그럴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친구 관계를 끊으면 기영과도 끝내 마침표를 찍게 될 테니까. 그러나 그녀의 마음을 배반하고 몸뚱어리가 제멋대로 굴었다. 벌써부터. 이건 엄청난 위기였다. 이 위기를 제대로 넘기지 못한다면 파국밖에 더 있겠는가.
“한번 자보자.”
남의 속도 모르고 기영이 거듭 보챘다.
“권기영.”
“왜, 노영아.”
“너 미쳤냐?”
“미쳤다고 생각하고 자자. 나, 너랑 잘래.”
“너 진짜, 이게 지금 애처럼 떼쓴다고 될 일이…… 읍.”
영아의 눈이 커다래졌다. 기영이 그녀의 입술을 덮었고, 혀끝으로 부드럽게 쓸었다. 심장이, 심장이 말도 못하게 뛰었다. 아니 온몸이 떨렸다. 너무 보드랍고 감미로워서.
“나랑 왜 자고 싶냐?”
영아는 어쩐지 오늘 자신이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없으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몰라.”
기영의 목소리는 전에 없이 잔뜩 쉬어 있었다.
“못생겼는데.”
“그걸 이제 알았어?”
그녀가 나직이 말하자, 그가 어색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그래서구나.”
“뭘 그래서야?”
“이 얼굴로 어디 가서 남자 하나 제대로 못 물까봐, 너 내가 불쌍한 거지?”
“뭐?”
“거지 적선하는 셈치고 자주겠다는 거 아냐?”
“말을 해도 꼭.”
“그럼 뭐냐?”
도저히 이해가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못났다고 뚱뚱하다고 놀릴 때는 언제고 이젠 자고 싶다니. 영아는 자신이 그렇게 못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때론 못난이라고 부르는 그의 어투에 어쩐지 애정이 묻어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그것 때문에 자존감에 상처를 입지는 않았다. 그의 말을 완전히 믿었다면 설마 머리가 빈 것도 아닌데, 그렇게 비하하는 기영을 이때까지 사랑하게 되지는 않았으리라. 하지만 자신이 그의 이상형과 거리가 멀다는 것도 알았다.
기영이 만난 여자들은 공통점이 있었다. 그대로 런웨이를 걸어도 될 것 같은 마르고 키가 큰 여자. 161㎝ 그것도 반올림해야 되는 키에, 53㎏ 물론 공복에 재야되는 몸무게를 지닌 그녀와는 차원이 다른 여자, 그런 여자가 기영의 취향이었다. 취향과 아주 먼 여자에게 왜 갑자기 성적인 구애를 하는 것인지, 삐딱하게 생각하지 않으려 해야 삐딱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넌 싫냐?”
기영이 시종일관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뭐?”
영아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했다.
“내 키스가 싫었어?”
“…….”
“난 좋았는데.”
“…….”
“넌 거지랑 잘 수 있는지 몰라도 난 아니거든. 너랑 키스 해보니까 왠지 너랑 잘 수도 있겠다, 싶거든.”
“비유를 해도 꼭.”
“네가 먼저 했거든?”
“…….”
“키스할 수 있음 그 어떤 것도 가능해. 마음만 있다면.”
‘마음만 있다면? 마음이 있다는 소리야, 뭐야?’
“잤는데, 아니면.”
영아는 불신에 가득 차 물었다. 사실은 이미 기울어졌다. 오늘 이런 일이 있었는데, 내일 아무렇지 않을 자신이 없었기에, 이왕 벌어진 일 그래 파국까지 한 번 미친 듯이 달려보자, 하는 마음이 아주 없진 않았다.
“아니면 아닌 거지, 뭐.”
기영이 아주 쉽게 대답했다. 그러니 기울었지만 되돌리려 애를 쓰는 것이다. 오늘 키스 이전으로-전날 술 취한 그가 했던 것은 기영이 기억을 하지 못하니.- 돌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게 말이 돼?”
“왜 말이 안 되냐? 달라질 게 없잖아. 자보니까 우리 서로 아니다, 그럼 그냥 예전처럼 지내는 거지, 안 그래?”
“참 말이라고 싶다. 넌 정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
“그럴 수 있어.”
“그럴 수 있는 것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안 해보고 모르는 일 아냐?”
“넌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먹어 봐야 아, 이게 똥이구나 할 인간이야.”
“네가 똥이라고?”
“뭐?”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먹어 보면 똥이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