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구도 함부로 발을 들여놓지 못하는 섬에 그녀들이 살고 있었다. 사람의 마음을 읽어서 훔친다고 마녀라고 불리면서.
운명을 거스르지 못해 그곳에서 평생을 사는 그녀들은 운명의 상대를 만나 사랑하고 아이를 낳고 다시 운명을 대물림하면서 그렇게…….
그렇게 살아야 하는 운명을 거부하는 다움 앞에 친구와 함께 해변으로 떠밀려 온 그를 본 순간 알 수 있었다.
그녀가 그토록 거부해온 운명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그, 찬혁은 그녀가 마녀로 살아가도록 신이 준비한 운명의 상대였다.
그녀를 버리고 곧 떠날 그인데도 사랑하고 평생 그리워하며 살아가야 하는 운명의 상대.
[본문 중에서]
저녁 식사 자리는 근사했다. 아니, 좋은 사람들과 같이 먹어서 그런지 여태 둘만 먹었던 밥보다 맛있었다. 술도 곁들여서 그런지 다른 날 보다 더 나른해지진 했지만, 기분 좋은 나른함이었다. 아이들이 웃고 떠들고 현도도 행복해 보여서 그도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녀와 그녀의 이모는 웃고 있긴 했지만, 왠지 슬퍼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몇 번이나 물어보려고 했지만 이번에는 그의 시선을 피하는 듯 자꾸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걸어서 기회를 엿보다 그만두어야 했다. 저녁상이 나가고 과일을 가지고 들어와서 마주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아이들은 건넛방으로 가고 그녀와 그, 현도와 그녀의 이모. 그렇게 넷만 남게 되었다.
“미안해요…….”
문득, 그녀가 그에게 그렇게 말했다.
“현도 씨……. 미안해요.”
이번에는 그녀의 이모가 말했다,
“무슨……?”
“……?”
현도도 그도 두 사람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뭐가 미안하다는 말인지. 모처럼 현도와 같이 저녁을 먹어서 그런지 기분 좋기만 한데 왜 갑자기 그러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준비 끝났어요. 오늘 밤이에요.”
“……?”
“……?”
“생각보다 빨리 돌려 보내줄 수 있어 다행이에요. 오늘 밤 배가 들어올게요. 두 사람을 뭍으로 데려다줄 배가.”
“……!”
그제야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와 현도를 돌려보낼 것이라고, 그것도 지금 곧 밤에 배가 들어올 거라고. 그래서 같이 저녁을 먹은 거라고 말하고 있었다.
“왜……누구 마음대로……. 안 돼. 안……. 아아…….”
이상했다. 화가 치밀어 올라서 그녀에게 야단을 치려고, 아직은 떠날 수 없다고, 아니, 아직은 떠날 생각이 없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온몸에서 힘이 일순간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눈꺼풀이 무거웠다. 며칠이나 밤샘 작업을 한 사람처럼 잠이 쏟아졌다. 그럴 리가 없는데. 단 한 번도 잠에 어려서 뭔가 하려던 것을 할 수 없었던 적이 없었던 그로서는 믿기지 않아 머리를 가로 흔들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잠이 쏟아졌다.
술……. 그랬다. 술 때문인 것 같았다. 술만 마신 것이 화근이었다. 그녀가 그의 술에, 현도의 술에 약을 탄 것이었다. 무심코 곁을 돌아보니 현도는 이미 벽에 기대 늘어져 있었다. 그보다 술을 조금 더 많이 마신 현도는 이미 약에 취해 정신을 놓고 말았던 거였다.
“젠장! 당신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그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말을 잇지 못하고 그대로 털썩 벽에 기대 무너졌다.
[미리보기]
이불이 어깨의 절반만 겨우 가리고 있어 햇살에 반짝이는 그녀의 뽀얗고 작은 등이 하얀 폭포수처럼 부서지는 햇빛과 함께 그의 눈에 들어왔다. 아름답다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단순한 아름다움을 넘어서 성스럽기까지 한 그녀의 모습에 취해 그는 드러난 어깨에 입술을 내렸다. 그녀를 맛보고 싶었다. 얼마나 부드러울지. 물론 그녀는 부드러웠다. 비단이 그처럼 부드러울까? 부드러우면서도 따듯한 그녀의 피부가 그를 미소 짓게 했다.
“으음…….”
혀끝으로 그녀의 살갗을 핥았다. 새끼 고양이가 엄마의 가슴을 핥듯 쪽쪽 소리를 내면서. 당장이라도 달콤한 젖이 흘러나올 것 같았다. 향긋한 향기가 밴 그녀의 피부가 너무 좋아 집착하게 된 그는 그녀의 등에 내린 입술을 더 힘껏 빨아들이며 소유욕을 드러냈다.
그러다 천천히 어깨를 향해서 올라온 입술을 어깨를 타고 넘어 더 부드럽고 물컹한 가슴으로 내려갔다. 그곳은 등보다 더 부드럽고 더 향기로웠다. 그는 숨을 헐떡이며 그녀의 가슴에 입술을 내리누른 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가슴은 그야말로……마약이었다. 젖이었다. 한 번 맛보면 절대 그만 먹을 수 없는 그런 것이었다. 쪽쪽 소리가 날 정도로 빨아대던 그는 다급하고 집요해진 그의 입술에 고통을 느낀 듯 그녀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오더니 이내 돌아누웠다.
“이런. 안 돼. 잠깐만…….”
불현듯 그녀의 가슴을, 젖꼭지를 내어놓게 된 그는 다급하게 중얼거리며 그녀의 허리를 끌어당겨 안았다.
“으음……?”
그 손길에 비로소 그녀도 눈을 떴다. 단잠을 깬 것이 미안했지만 눈을 깜박거리는 그녀의 모습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예뻐서 일순간 내려앉은 그의 목소리는 겨우 말이 되어 나올 정도로 낮았다.
“깼어?”
“그만 해요. 간지럽게.”
멋쩍었다. 자신과 달리 이내 현실에 돌아온 그녀가 화가 난 듯 낮게 다그치자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렸다. 지난밤과 달리 그녀는 냉정했다. 언제 그렇게 뜨거웠나 의심스러울 정도로.
“미안해. 너무 하얗고 작아서 그만……. 내가 미쳤나 봐. 아니면 정말 홀렸나? 후후.”
“작지도 하얗지도 않아요. 도시의 아름다운 여자들에 비교하면 검고 지나치게 건강할 텐데 뭘 그래요? 여자가 처음도 아니고 새삼스럽게.”
“…….”
이상했다. 마치 지난 밤의 그녀와 다른 사람처럼 차갑게 굴어서 대답조차 하지 못한 채 멍하니 내려다보던 그는 그녀의 차가워진 눈동자에서 왠지 모르지만, 작은 상처를 본 것 같았다. 왜 그러는지 모르지만 그녀는 그의 말에 상처받은 것 같았다. 분명히.
“왜 그래? 화가 난 것 같은데. 내가 잘못한 거라도 있어?”
“……아뇨. 없어요. 그런 것.”
없다는데 왜 있다고, 바로 너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 같은지. 분명히 화가 났고 그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아니란다. 아직도 그에게 아 그는 숨을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그를 따라 그녀도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스르륵 떨어지는 이불을 단단히 부여잡고 앉은 그녀는 더 작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