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새하 : 32세. 사고 이후의 기억을 모두 잃은 agio 카페의 주인.
매일 그녀의 카페에 찾아오는 한 남자를 보면서 가슴이 들썩거렸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자신의 남편이라고 했다. 하지만 왜 그는 자신을 알고 있으면서 이제야 남편임을 밝히는 걸까? 둘만의 추억을 잃은 그녀에게 그가 다시 시작하자고 한다.
정연우: 35세. 이혼이라는 말을 그녀에게 하자마자 집을 나가버린 그녀가 갑자기 사라졌다.
그는 아직 그녀를 사랑하는데. 일 년 후 다시 나타난 그녀가 너무나 밝게 웃고 있 다. 이젠 놓치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녀는 언제나 그만의 여자니까.
그런데 그녀 옆에 이상한 놈이 알짱거리고 있다. 이러다가 그녀가 다른 놈을 쳐다보기라도 하면. 마음이 급하다.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그녀에게 어떻게 마음을 전해야 할까. 친구는 예전처럼 그녀를 대하면 안된다고 하는데 매일매일 그녀를 위해 자신의 성격을 바꾸기 위해 거울을 보고 연습을 한다.
[미리보기]
그의 침묵을 허락으로 받아들인 새하가 다시 말을 시작했다.
“그런데 정말 우리가 결혼한 사이었다면 정연우 씨는 왜 나한테 그 사실을 밝히지 않은 거죠? 작년부터 우리 카페에 왔던 걸로 알고 있는데요.”
연우는 기어이 그녀가 한번쯤 물어 오리라 짐작했던 질문을 하자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미치도록 당신을 찾아다닐 때는 알 수 없었던 당신을 알게 된 건 은석이 때문이었어. 처음 당신을 보고 은석이도 많이 놀랐다고 하더군. 일 년을 모습을 보이지 않은 이유가 다른 것이라 생각했지 교통사고를 당해서 기억을 잃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을 테니까.”
“다른 이유라니요?"
새하의 질문에 연우가 잠시 머뭇거리는 것 같더니 그녀의 눈을 쳐다보며 대답했다.
"……우리 결혼생활이 그다지 행복하지만은 않았어.”
새하도 이미 짐작하고 있었던 사실이지만 그의 입에서 직접 그런 얘기가 나오자 마음도 무거워졌다.
“아이는, 아이는 없었나요?
“응. 노력 중이었어.”
울컥 했지만 이렇게밖에 지금은 대답할 수 없었다. 연우는 새하가 어머니의 강요 때문에 임신에 대해 많이 불안하고 조급해 했다는 얘기는 차마 하지 않았다. 겨우 결혼하고 4년이라는 시간을 같이 지냈을 뿐인데 한 번의 유산과 여러 번의 인공수정을 시도했었던 과거는 지금 그녀가 알아야 할 진실은 아니었다. 나중에 천천히 그녀가 자신들의 결혼생활에 대해 좀 더 듣기를 원하면 그러면 그때 얘기해 줄 생각이었다.
“아, 그랬군요. 혹시 아이라도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었거든요.”
그녀는 실망인지 아니면 안심인지 모르는 말을 했다.
“당신이 한다는 카페에 처음 발을 들여놓는 순간 그대로 당신한테 가서 내가 누구인지 밝히고 싶었어. 하지만 그러면 당신이 다시 어디론가 숨어버릴지도 모른다고 은석이가 얘기해 주더군. 아직은 당신에게는 환경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내가 당신 앞에 나서면 더 혼란스러워할 수 있다고 천천히 당신이 날 받아 들일 수 있게 시간을 주라고. 물론 나도 그 녀석 말에 동의했어. 정신의학적으로 맞는 이론이니까. 하지만 이론과 현실은 정말 틀려.”
“그래도, 그래도 너무 오랜 시간동안을 밝히지 않고 지낼 수 있죠? 일 년이라는 시간 동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건 어쩌면 얘기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 아닌가요? 그런데 왜 아직도 내 앞에서 왔다 갔다 하냐고요. 혹시 정말 내가 당신을 알아보지 못하는지 궁금해서 그런 건가요?”
새하는 괜찮다고 그가 지금이라고 자신의 앞에 나타나 준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그와 대화를 하다 보니 억울하기도 하고 화가 나가도 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정말 결혼생활이 안 좋았다면 이렇게 자신의 앞에 나타나지 않았을 텐데. 그럼 그들 사이에는 감정이라는 끈이 아직 남아 있는 걸까? 그래도 조금만 빨리, 아주 조금만 빨리 얘기를 했었더라면 지금 이렇게 낯선 감정으로 그를 만나지 않았으리라는 원망이 들어서 마음과는 달리 그에게 곱게 말이 나가지 않았다.
“미안해. 난 당신을 매일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서 욕심을 부리지 않으려고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어. 모든 게 다 내 잘못이야. 우리 결혼생활도 다 내 책임이고 당신에게 과거를 가르쳐 주지 않고 침묵만 해서 힘들게 한 것도 다 내 책임이야. 당신이 이혼을 원한다는 얘기만 하지 않으면 뭐든지 할게.”
“…….”
연우는 새하가 느끼는 감정을 충분히 이해 할 수 있었다. 갑자기 나타난 사내가 자신이 그녀의 남편이라고 한다고 해서 바로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우리가 많이 안 좋았군요. 난 당신한테 결혼에 대해 물었지 이혼이라는 단어는 쓰지 않았거든요.”
“여자가 이혼이라는 말을 하는 건 남자에게 빨리 용서를 빌라는 얘기고 남자가 이혼을 얘기하면 정말 이혼을 원한다는 말이 있지. 난 당신하고 이혼하고 싶지 않아.”
“그런데 왜 자꾸만 반말이세요?”
“응?”
“연우 씨는 내가 누군지 아니까 편할지 모르지만 나한테 연우 씨는 낯선 사람이거든요. 그러니 다짜고짜 반말하는 건 거슬려서요.”
연우가 피식 웃었다.
“미안. 하지만 오랜 습관이라서 나도 고치기가 힘들어. 그리고 이제 다시 만날 테니까 그냥 이해해줘.”
“뭐, 그렇다면. 그닥 큰 일도 아니니까. 반말하세요. 나이도 저보다 많으실 테니까. 혹시 저도 말 놓지 않았을까요?”
“아니. 우리가 나이차이가 있어서 당신은 그렇지 않았어.
“…….”
연우는 찡긋거리는 새하를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물어봐도 괜찮을지 모르겠는데 혹시 서준범이라는 남자에게 감정이 생겨버린 거야?”
연우는 아무런 감정이 나타나지 않는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지만 겉모습과는 달리 초조하게 그녀의 입에서 나올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준범이는 아직은 친구에요. 물론 감정이 더 깊어질 수도 있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그 말은 만약 나와 헤어지면 그와 함께 할 생각이라는 말인가?”
준범과는 더 이상의 진전이 없을 거라는 걸 확신하지만 웬 심술인지 제대로 대답하기 싫었다.
“왜요? 난 남편이라는 사람이 있는지도 몰랐는걸요. 그럼 당연히 끌리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죠. 그게 문제라는 생각은 안 들어요. 그리고 내가 당신에 대해 알았다고 해도 과거와 지금의 감정이 달라져서 다른 사람과 같이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잖아요.”
새하는 그가 자신을 아직 사랑한다는 고백을 했던 말이 떠올라 더 당당하게 얘기했다.
“아직 나에게도 희망이 있다면 다시 시작해 보고 싶어. 당신이 새롭게 나란 남자를 알아갈 수 있는 기회를 가져줬으면 좋겠어.”
여전히 그에게는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정말 자신이 하는 말의 의미를 알고나 있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지금은 어떤 대답을 할 수가 없네요. 하지만 기억을 살리는데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할게요.”
“언제나 연락해도 돼. 밤이든 낮이든.”
그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렇게 까지는 하지 않을 거예요. 오늘 정말 감사합니다. 당신이 내 남편이라는 건 아직 받아들일 수 없지만 내 과거를 알고 있는 누군가가 한 명 더 생겨서 안심이 되네요.”
“난 단순하게 당신의 과거를 아는 사람이 아니라 당신과 같은 집에 살았던 이새하의 남편이라고.”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같이 묶어 얘기하는 그녀가 맘에 들지 않아 다시 한 번 그녀에게 자신이 어떤 존재였는지 말했다. 물론 새하도 그런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면서도 일부러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