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도 내가 잘하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요?”
안나는 남자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귀에 들어오지도, 중요하기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저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싶을 뿐이었다. 이 황홀함에서 깨어나면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상상도 하지 못한 채로.
“승우 씨가 여기 왜 있어요?”
쏟아지는 아침 햇살과 함께 안나를 반긴 건 다름 아닌 승우였다.
안나의 팀 막내 사원이자 그녀의 부사수 한승우.
모두 없던 일로 하고 싶으면서도, 왠지 승우에게 끌려 갈등하는 안나에게, 그는 결코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던진다.
“정 갈등이 된다면 안나 씨의 마음을 확실히 굳힐 방법이 있기는 한데.”
“어떻게요?”
“맨정신으로 다시 해보는 거죠.”
결국 더없이 완벽한 연하남 승우에게, 그리고 그와의 환상적인 시간에 몸을 던진 안나. 그런 승우가 알고 보니 엄청난 낙하산?
승우를 붙잡고 싶은 마음과, 그를 차마 욕심 낼 수 없는 마음 사이에서 안나는 두 번째 딜레마에 빠지고 마는데…….
#알고보니귀한아들
#짝사랑남의반란
#낮에는착한후배밤에는짐승남
#낮져밤이
#보기보다잘하는게많아요
[미리보기]
“대리님, 이것 좀 알려 주시겠어요? 이 차트가 조금 헷갈리는데요.”
안나가 열심히 타자하고 있는데 승우가 해맑게 웃는 얼굴로 다가왔다. 그녀에게 질문할 거리를 잔뜩 프린트 해오기까지 했다. 안나는 짜증을 삼키는 표정으로 천진해 보이기까지 해는 승우를 노려봤다.
제법 무서운 안나의 눈초리에도 불구하고 승우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오히려 보란 듯이 가지런한 치아까지 드러내 보이며 더욱 환하게 웃었다.
“줘봐요.”
안나는 보는 눈들을 생각해 승우가 바리바리 챙겨 온 자료들을 넘겨받았다. 그 자료들을 살펴봄에 따라 그녀의 미간은 서서히 좁아졌다. 이미 안나가 승우에게 가르쳐 준 적이 있던 내용이었다.
곧 안나는 지금 장난하냐는 듯한 표정으로 승우를 올려다보았다. 여전히 예쁘게 웃고 있는 승우가 진심으로 몰라서 이러는 건지, 아니면 안나를 놀리려고 그러는 것인지 그녀는 분간이 되지 않았다.
“진짜 몰라요?”
“그래서 가져왔죠.”
“이미 가르쳐 준 내용인데요.”
“혹시라도 실수할까 봐 확실히 여쭤보고 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아서요.”
승우는 아무도 안 보는 사이 안나에게 살짝 윙크를 했다. 이걸로 그가 지금 일부러 모른 척한다는 사실이 확실해진 것이다. 안나는 한숨을 삼킨 후 화를 참는 목소리로 승우에게 말했다.
“이것부터 알려 주면 돼요?”
안나는 언짢은 기분을 감추지 않은 채 승우에게 물었다.
“네, 잠시만요.”
승우는 본격적으로 배우려는 것처럼 자신의 책상에서 의자를 끌고 오기까지 했다. 그리고 안나 쪽으로 꽤나 가깝게 붙어 앉았다.
“자, 일단 이것부터 보죠.”
안나는 승우가 잔뜩 뽑아 온 자료 중에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손으로는 입으로 해주는 설명과는 다른 말을 쓰기 시작했다.
- 지금 뭐하자는 거예요, 승우 씨?
안나가 쓴 문장을 보고 승우가 웃음이 삐져나오려는 것을 참는 듯 헛기침을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안나는 당장에 승우의 허벅지라도 꼬집어 주고 싶었지만 당연히 참아야만 했다.
그러다 아무런 생각 없이 승우의 허벅지에 시선을 던진 안나는 저도 몰래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 길쭉하고 탄탄한 하체를 보려니 주말 내내 그와 즐겼던 뜨거웠던 시간이 떠오른 것이다.
그리고 아름다운 허벅지 사이에 용맹하게 자리 잡고 있을 더 아름다운 남성 역시도. 실은 안나는 지금 이렇게 사무실에서 사무적인 척 서로를 대하고 있는 것도 웃긴다고 생각했다.
“여기까지는 작년 수치고, 이 부분부터는 올해 분기별로 나눈 거예요.”
“이 부분은요?”
승우는 펜으로 어딘가를 가리키는가 싶더니 이렇게 썼다.
- 안나 씨랑 같이 있고 싶어서요.
승우가 적은 대답을 보고 안나는 눈을 굴렸지만 웃음이 날 것만 같았다.
“이 부분이랑 여기는 읽는 법 자체가 달라요. 작성할 때도 주의해야 되고요.”
제법 친절하게 설명하는 와중에도 안나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 일에 집중 좀 하시죠.
“그럼 제가 작성한 표도 맞게 되어 있는 건가요?”
승우 역시 펜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 안나 씨 때문에 집중이 안 되는걸요. 금요일 밤부터 오늘 새벽까지 계속 생각난다고.
“잘한 것 같은데요? 왜 다시 알려 달라고 한 건지 모르겠는걸?”
안나는 차마 승우의 허벅지를 꼬집을 수 없어 그의 옆구리를 공략했다. 그러는 와중에 아까의 일로 억울한 마음을 담아 살짝 비꼬는 말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승우는 움찔했으나 얼굴만은 평온해 보였다. 안나는 애써 웃음을 참으며 몇 마디 더 설명을 이어 갔다.
“어때요. 이제 좀 이해가 가요?”
“딱 한 가지만 더요.”
승우는 그렇게 말하며 또 한 번 펜을 움직였다.
- 오늘은 우리 집에 갈래요?
그 순간 안나의 눈앞엔 자동으로 승우의 근사한 피지컬과 그와 즐기게 될 뜨겁고도 강렬한 장면이 펼쳐졌다. 벌써부터 그녀의 호흡이 가빠지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