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티를 가득 태운 빨간색 마티즈가 그의 호기심을 자극하다.
“내가 찾던 키티, 당신이군요.”
키티를 사랑하는 그녀에게 빠져 허우적대는 남자 주민성.
그녀가 무얼 해도 귀엽고 사랑스럽다.
“어떻게 고객을 상대로 그런 불손한 생각을 할 수가 있어?”
고객과의 만남. 그런 꿈은 절대로 꿔서는 안 된다고 믿는 여자 김은숙.
무작정 들이대는 그 때문에 정신이 없다.
사랑에 서툰 그녀가 들려주는 가슴 설레는 사랑이야기.
-본문 중에서-
민성은 길게 줄 지어 선 차들 속에서 키티를 발견했다. 일주일 정도는 만나지 못했는데 오늘 다시 그의 눈에 들어왔다. 도대체 저 차의 주인은 누굴까. 빨간색 소형차 안을 인형으로 가득 채운 것을 보면 분명 여자일 것 같았다.
[저도 얼른 자라서 에쿠스가 되고 싶어요. ♡]
여전히 그 차 뒤에 붙어 있는 문구를 보며 민성은 다시 피식 웃었다.
그런데 문득 지금껏 왜 그렇게 차 주인을 보겠다고 열심이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설령 차 주인을 보았다고 치자. 그래서 뭘 어쩌자는 걸까 싶은 의문이 들었던 민성은 이제 키티에게서 관심을 거두기로 했다. 여전히 끼어들기를 못해 아까부터 오른쪽 방향지시등을 켠 채였지만 언제까지고 그가 따라다닐 수도, 따라 다닐 이유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 절절매고 있는 키티가 불쌍했던 민성은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래, 오늘이 마지막이다.”
그는 그 차를 위해 억지로 끼어들기를 하고 키티가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키티가 3차선으로 들어오자 넉 달 가까이 가졌던 호기심에 종지부를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궁금한 건 궁금한 것이니까. 대충 그 차가 어디서 어떻게 빠지는지 알고 있으니 오늘은 기필코 키티의 최종 목적지를 알아낼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이 들었다.
“자, 갑시다.”
민성은 마치 앞에 있는 차에게 말하듯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핸들을 꼭 쥐었다.
골목으로 들어가려고 오른쪽 방향지시등을 켜는 키티를 따라 그도 오른쪽 방향지시등을 켜고 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출근시간을 훌쩍 넘기기야 하겠지만 경한의 잔소리쯤은 이제 가뿐하니까 개의치 않았다.
골목으로 들어선 키티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따라가던 민성의 눈이 점점 커졌다. 한참 따라가다 보니 눈에 들어오는 광경이 왠지 낯설지가 않았던 것이다. 밤과 낮의 차이였을까? 이곳은 분명 미담이 있는 곳이었다. 설마, 설마 하는 마음으로 마티즈를 따라가던 그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걸렸다. 키티가 미담의 주차장으로 들어가자 민성은 속도를 올려 바삐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뒤에 차가 따라오는 것도 모른 채 차를 주차시키고 밖으로 나온 은숙은 그제야 자신 외 다른 차가 들어왔다는 것을 알아챘다. 다른 직원이 출근을 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인사를 하려고 몸을 돌린 은숙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검은색 에쿠스. 이 차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은 미담에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면 그저 단순히 주차를 하기 위해 들어온 차일까? 그런데 그 차는 주차는 하지 않고 그녀의 앞을 가로막고 섰다. 잠시 후 차에서 내린 사람을 본 은숙의 표정이 굳어졌다.
“내가 찾던 키티가 은숙 씨였군요?”
뜻을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싱긋 웃고 있는 그를 보자 겁이 났다.
“어떻게…… 이 시간에 여기까지 오셨어요? 설마 지금…….”
미담으로 매일 한 번씩은 걸려오는 그의 전화를 피한 지 벌써 일주일이었다. 그 정도 했으면 포기할 만도 하건만 이 무슨 스토커 같은 짓이란 말인가. 아무리 가볍게 느껴지는 사람이어도 이 정도까지인 줄은 몰랐는데 갑자기 질려버렸다.
“저도 얼른 자라서 에쿠스가 되고 싶어요.”
“네?”
“그거 붙이고 다닌 지 꽤 됐죠?”
은숙은 인상을 쓰며 그를 쳐다보았다. 잘 맞춰 놓았던 퍼즐이 다시 흐트러진 기분이 들었다. 무언가 그에게 물어봐야 했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물어봐야 하는지 막막하기만 했다.
“흠, 저기요. 그 에쿠스는 어떻게 아세요?”
“은숙 씨가 끼어들기 못한다는 것도 알고 있는데요.”
그의 말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가끔 뒤를 따라오던 검은색 에쿠스. 그냥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가 타고 온 차를 확인한 순간 우연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아침마다 제 뒤를 따라오던 차가 고객님이세요?”
“따라가다뿐입니까? 은숙 씨 끼어들기 시키려고 온몸으로 뒤차를 다 막기까지 했는데요.”
여기선 고맙다고 인사해야 하는 것이 맞을까? 그런데 이상하게 그녀의 투철한 직업정신으로도 고맙다는 인사가 바로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이름도 알려줬는데 고객님은 그만하죠?”
“아니요, 저기…… 고객님.”
“주민성입니다.”
“…….”
“그리고, 정말 좋습니다. 내가 찾던 키티가 은숙 씨여서…….”
그는 가을바람과 어울리지 않게 봄볕처럼 따뜻하게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