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오빠의 과한 보호 속에서 지내던 지현에게 절호의 찬스가 찾아온다.
친구들과 잠깐의 자유를 만끽하던 중 의도치 않은 부상을 당하게 되는데.
때마침 오빠는 없고, 그녀를 도와주기 위해 ‘오빠 친구’ 태민이 나타난다.
어렸을 때부터 마음에 품고 있던 첫사랑이!
「꼬맹이.」
이젠 정말, 꼬맹이라는 소리가 듣기 싫다.
“네.”
「비 오는데 우산 없지?」
“왜요?”
「왜요는. 데리러 가려고 하지.」
갑자기 코끝이 시려왔다.
제 마음을 표현할 수 없는 답답함에 가슴이 저릿하여 그를 보는 것이 괴롭고 힘들다.
[미리보기]
1.
“오빠 출장 간 동안 친구들이랑 놀러만 다니지 말고.”
“응.”
“일찍 일찍 다니고.”
“응.”
“문단속도 잘 하고.”
“어휴, 알았다니까.”
건성건성 대꾸하던 지현이 성질을 부리자 수현이 눈을 흘겼다. 스물한 살짜리 꼬마를 두고 출장을 가게 된 수현은 영 불안했다.
오빠인 수현은 고등학생 때부터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고, 지현은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시골에 계신 부모님과 떨어져 함께 지내고 있었다. 부모님이 지현을 늦둥이로 보아 오빠인 수현과의 나이 차이는 아홉 살이나 된다.
지현은 ‘벌써’ 대학생이라며 어른 대접을 해달라고 하지만 수현에게 지현은 여전히 ‘꼬마’에 지나지 않았다. 나이 차이나 고만고만하면 그러지 않을 텐데, 군 제대를 하고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지현은 고등학생이었던 터라 언제나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 같았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전화하고.”
아무리 동생이 싫은 내색을 해도 보호자로서 수현은 꿋꿋하게 제 할 말을 했다.
“네, 네. 알았어요.”
지현도 꿋꿋하게 건성으로 대답했다.
수현은 식사를 이으며 뒤늦게 사춘기가 오나 싶은 얼굴로 동생을 쳐다보았다. 동생이 한 없이 못미더웠지만 출장에 데려갈 수도 없고, 달리 방법이 없었다. 다음날 출장을 떠나면서도 폭풍 잔소리를 늘어놓으며 신신당부를 했으나 기어이 일은 터지고 말았다. 그것도 출장 첫 날.
저녁 업무를 끝내고 숙소로 이동하던 수현은 지현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지현은 거의 울먹거리고 있었다.
「오빠, 어떻게 하면 좋아?」
“왜 그래? 무슨 일이라도 생겼어?”
「그게……친구들이랑 있다가 싸움이 나서……지금……경찰-」
“이지현!”
말도 끝나기 전에 수현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같이 출장을 나온 후배가 놀란 눈으로 수현을 쳐다보았다. 수현은 화가 나서 얼굴이 새빨개져 있었다.
「아니, 화를 내지 말고.」
“내가 화를 안 내게 생겼어! 어떻게 내가 출장간지 하루도 안 지나서 사고야, 사고가!”
「내가 사고 친 게 아니야. 아이, 진짜. 그럼 어쩌라고! 나 그냥 여기서 살아?」
통사정을 하다가 억울했는지 이제는 지현이 버럭거렸다. 수현은 기가 차서 할 말을 잃고 걸음을 멈추었다. 한숨을 들이쉬고 내쉬고를 몇 번 하자 지현이 한풀 꺾인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해. 그런데 우리는 정말 죄 없어. 도와 줘.」
“하아, 환장하겠네.”
수현은 캄캄한 주변을 정처 없이 돌아보았다. 같은 서울이나 되어야 갔다 오지, 출장을 부산까지 왔으니 막막하기만 했다.
「그런데 오빠.」
“왜.”
「나 다쳤어.」
“뭐?”
「떠밀려서 넘어졌는데 여기저기 아파.」
“정말 돌겠네.”
아프다는 소리에 수현은 복장이 터지려고 했다. 엄살을 잘 부리지 않는 지현이었기에 아프다고 하면 정말, 엄청 아픈 것이었다.
“사람이 다쳤으면 병원부터 가야지, 경찰이 왜 그 따위야!”
「오빠. 화 내지 마. 첨엔 몰랐는데 점점 아픈 거야.」
“경찰서 어디야?”
수현은 경찰서를 확인하고 전화를 끊었다.
“집에 무슨 일이라도 있어요?”
후배가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응. 싸움에 휘말렸나 본데, 잠시만.”
어떻게 해야 하나 휴대전화 전화번호를 뒤적거리던 수현은 싫은 표정으로 혀를 한 번 차고는 통화버튼을 눌렀다. 한참 만에 상대편에서 전화를 받았다.
「어이, 친구.」
늘어지는 목소리에 수현은 미간을 잔뜩 구겼다.
“너 이 자식. 또 술 마셨냐?”
「오랜만에 전화해서 웬 마누라 잔소리야?」
“지금 뭐 하는데?”
「자다 일어났다, 자식아.」
“아……그래?”
그러고 보니 조금 있으면 자정이었다. 수현은 슬쩍 미안한 표정으로 이마를 긁적거렸다.
「그런데 전화는 왜 했어?」
“세수하고 당장 OO지구대로 좀 가라.”
「난 죄 지은 거 없는데?」
실없는 대꾸에 수현은 콧방귀를 뀌었다.
“나는 출장을 왔는데, 지현이가 거기 있어서 그래. 싸움 자리에 있다가 휘말렸나 봐. 그것도 그렇지만 아프대. 여기저기 많이.”
「우리 꼬맹이가 어쩌다가?」
“우리 꼬맹이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옆에서 듣고 있던 후배가 ‘쿡’ 하고 웃었다. 수현이 민망한 표정을 짓더니 말을 이었다.
“헛소리 그만하고 어서 가 봐. 병원에 가면 상태 좀 알려주고.”
「오냐. 그런 일이라면 이 오라버니가 출동해 주셔야지.」
수현은 주먹을 불끈 쥐고는 부르르 떨었다. 시원하게 욕지거리를 하고 싶은데 후배가 있어서 겨우 참았다.
정말이지 생각 같아서는 절대 보내고 싶지 않다. 그러나 어쩌겠나. 아무리 성인이라지만 아직 어린 애들한테 너희들끼리 알아서 하라고 할 수는 없었다. 경찰서 일도 그렇고 병원에 데리고 가서 제대로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챙길 수 있는 사람은 최태민 밖에 없었다.
“어서 가라.”
수현은 이를 앙다물고 힘주어 말했다.
수현과의 통화를 끝낸 태민은 양팔을 위로 쭉 뻗으며 기지개를 길게 폈다. 신규 사업 발굴을 위해 거의 한 달간 강행군을 이어가다 몸에 이상신호가 느껴져 어렵게 하루의 휴가를 얻은 것이었다. 24시간 내내 잠만 자겠다고 결심했는데 취침 세 시간 만에 호출을 당했다.
엎드린 채 태민은 휴대전화의 시간을 다시 확인했다. 밤 11시가 넘었다. 수현의 부탁도 그렇지만 지현의 일이니 몸이 부서져도 가야 했다. 고등학생일 때 보고 오랫동안 보지 못했는데 커다란 눈과 동그란 얼굴은 그대로일지 무척 궁금했다.
“아……경찰서라고 했지?”
여전히 몸은 움직이지 않은 채 태민은 휴대전화의 전화번호를 뒤져 어느 곳에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정갈한 목소리의 남자가 전화를 받았다.
“실장님. 접니다.”
그제야 몸을 일으킨 태민은 통화를 하며 욕실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