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리디 접속이 원활하지 않습니다.
강제 새로 고침(Ctrl + F5)이나 브라우저 캐시 삭제를 진행해주세요.
계속해서 문제가 발생한다면 리디 접속 테스트를 통해 원인을 파악하고 대응 방법을 안내드리겠습니다.
테스트 페이지로 이동하기

워치만 니 전집 2집 30권 -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교회생활(일의 재고) 상세페이지

종교 기독교(개신교)

워치만 니 전집 2집 30권 -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교회생활(일의 재고)

The Collected Works of Watchman Nee The Normal Christian Church Life Set Two Vol.30
소장전자책 정가9,600
판매가9,600

워치만 니 전집 2집 30권 -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교회생활(일의 재고)작품 소개

<워치만 니 전집 2집 30권 -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교회생활(일의 재고)> <<회고문>>

성경의 계시와 역사의 확증에 의하면 하나님은 매시대 이 땅 위에서 그분이 창조하신 사람 가운데에서 그분의 특별한 역사를 이루셨고, 이 특별한 역사를 성취하시기 위한 그 특별한 필요를 채우기 위하여 그분이 특별히 선택하시고 온전케 한 사람들을 일으키셨다. 금세기에 하나님의 복음은 서양 문화와 함께 동방에 전해졌다. 수많은 서양 선교사들은 하나님의 위임을 받들고 보수적인 문화의 나라 중국에 와서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마음과 힘을 다 쏟았다. 그들 가운데에는 영적으로나 문학적으로 명성이 높은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 중 하나님의 경륜과 그리스도의 비밀에 대해 분명하고 완전하게 전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금세기 초엽 중국이 제국주의에서 민주국가로 전환한 이래 서양의 문화와 문학에 영향을 받은 젊은 세대 가운데 하나님은 니쑤주(倪述祖)라 이름하는 한 사람을 일으키셨다. 주님께 돌아온 후 그는 그분의 시대적 위임을 수행하기 위해 이름을 니토셍(倪柝聲, 징소리라는 뜻임―역자 주)과 니찡푸(倪儆夫, 파수꾼이라는 뜻임―역자 주)로 바꾸었다. 구원받은 후 니 형제님은 하나님의 돌보심과 양육을 받음으로 젊은 나이에 성경 해석과 영적인 가르침에 있어서 특별하고 탁월했기 때문에 당시 중국에 주님을 사랑하고 추구하는 사람들 가운데 열렬한 환영을 받았으며 이로 인해 중심에서부터 반응하여 따르는 많은 젊은 믿는 이들이 일어났다. 동시에 이것은 중국 기독교 안에 있는 많은 중국인들과 서양의 지도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으며 기독교 안에 적지 않은 반감과 거부감을 일으켰다.

니 형제님은 성경을 숙독하고 과거 이천 년 동안 성경에 대해 강해한 유명한 저서들로부터 도움을 받아 성경의 의문적(儀文的)인 교리를 깨달았을 뿐 아니라, 더욱 성경 안의 진리의 원칙과 영적 의미와 참 생명과 성경의 영을 인식하였다. 그러므로 말로 전한 것이든 저술을 통한 것이든 그의 해석과 전파는 모두 그가 성경에서 본 신성한 이상과 영적인 계시였기 때문에, 그 안에는 진리와 빛과 생명과 영이 충만했으며 살아 있고 생동감도 있으며 하나님으로부터 임한 능력이 가득하여 그의 청중이나 독자들로 하여금 쉽게 감동을 받게 하고 은혜를 입게 하여 그러한 말씀이 메아리치게 하였다.

니 형제님이 일생 동안 전파하고 강론한 것은 다음 12가지 항목으로 요약할 수 있다.

Ⅰ. 하나님에 관하여

그는 하나님이 영원하시고, 스스로 존재하시고, 영원히 존재하시고, 시작도 없고 끝도 없으시며, 모든 면에서 온전하고 완전한 분이심을 지적했다. 하나님은 삼이일, 곧 그분의 신격에 있어서 아버지·아들·그 영이시다. 아버지 하나님은 근원이시고, 아들 하나님은 나타남이시며, 영 하나님은 적용이시다. 아들 하나님은 아버지 하나님의 체현이시고, 영 하나님은 아들 하나님의 실재로서 아들 하나님 안으로 믿는 사람들에게 삼일 하나님을 적용시키신다. 또한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의로우시다. 거룩은 하나님의 내적 본성을 말하는 반면, 의로움은 하나님의 외적인 행동을 말한다. 하나님은 사랑과 빛이시다. 사랑은 그분의 내적 본질의 요소인 반면, 빛은 그분의 외적 나타남의 요소이다. 이러한 하나님은 놀라운 지혜를 가지고 계시며 가장 뛰어난 역사를 수행하신다.

Ⅱ.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경륜)에 관하여

그는, 놀라운 지혜를 소유하시고 최상의 역사를 성취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마음의 갈망을 따라 선한 기쁘심을 가지고 계신데 이것은 곧 그분과 하나되어 그분과 동일한 생명을 갖고 그분과 함께 살고 움직이며 그분과 같이 행함으로 그들을 통해 영광스러운 그분 자신을 표현하는 한 무리의 사람을 얻는 것이라는 것을 지적했다. 이러므로 영원 과거 안에서 그분은 그분 자신 안에서 영원한 계획(경륜)을 예정하셨다. 그 계획은 아들 하나님이 만유의 으뜸과 중심성과 우주성이 되게 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그분은 또한 천지 만물을 구비한 우주를 창조하신 다음 그 안에 그분을 영접하고 표현할 그릇으로서 영과 혼과 몸의 세 부분으로 구성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그 영으로서 사람의 영 안에 들어가 그들을 거듭나게 하사 그분과 같은 생명과 본성을 지닌 많은 아들들을 산출하셨으며, 아들 하나님이신 그리스도의 많은 지체들이 되어 그분의 단체적인 표현인 유기적인 몸을 구성하고 이 표현을 통해 영원토록 삼일 하나님께서 궁극적인 충만한 표현을 얻게 하는 것이다.

Ⅲ. 하나님의 성육신에 관하여

그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아직 그분 자신을 사람 속에 넣어 주지 않았고 사람에게 그분의 생명과 본성을 나누어 주지 않으셨다는 것을 지적했다. 사천 년 후 그분은 아들 하나님 안에서 그 영으로 말미암아 한 처녀의 육신 안에서 잉태되시고 신성과 인성을 둘 다 지닌 하나님-사람으로 태어나셨다. 그분은 온전한 하나님이자 완전한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사람 안으로 이끄셨고 사람의 육신 안에서와 이 땅 위에서 인간의 삶을 사셨으며 그분의 인성의 미덕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모든 속성들을 살아내셨고 하나님을 표현하셨다.

Ⅳ. 그리스도에 관하여

그는, 신성한 삼일성의 두번째 위격이신 분이 영원 과거 안에서 하나님에 의해 하나님의 기름부음받은 자 곧 그리스도로 세워지신 것을 지적하였다. 시간 안에서 그분은 하나님이 그분 자신을 나타내시기 위해 예정하신 영원한 계획(경륜)을 성취하기 위해 오셨다. 하나님은 그분의 체현인 그리스도가 그분의 영원한 계획 안에서 중심성과 우주성이 되며, 모든 것을 초월하여 창조와 구속 안에서 만유 위에 만유가 되시기를 갈망하신다. 그분이 세우신 이 그리스도는 기꺼이 자신을 낮추사 하나님의 형체를 버리고 종의 형체를 취하여 사람의 모양이 되었고 이 땅 위에서 낮은 인간의 삶을 사셨다. 결국 이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달려 우리 죄인을 위한 하나님의 영원한 구속을 완성하시고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해방하셨다. 또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사 하나님의 독생자에서 하나님의 맏아들이 되셨으며, 더 나아가 부활 안에서 생명 주는 영으로 그분의 믿는 이들 안에 들어가 그들을 하나님의 새창조가 되게하고 그분의 지체가 되게하며 그분의 몸을 구성하게 하셨다. 이로써 그분은 이 몸의 생명과 요소와 머리가 되어 우주 가운데서 삼일 하나님을 나타내는 단체적인 표현을 얻게 되셨다. 장차 올 왕국 안에서 그분은 왕이 되어 그분의 이긴 성도들과 함께 오는 세상을 다스리게 되실 것이다. 후에 새 하늘과 새 땅에서 그분은 새 예루살렘의 중심성과 우주성이 되고 하나님과 사람의 상호 거처가 되고 영원 안에서 삼일 하나님의 충만한 표현이 될 것이다.

Ⅴ.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관하여

그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순교의 죽음이 아닌 우리 죄인들을 위하여 대신 죽으신 죽음으로서 많은 의미가 있음을 지적했다.

(1) 우리의 죄들을 제거하심 (2) 우리를 위해 육체를 못박고 옛사람을 끝내심 (3) 사망의 권세를 잡은 자 사탄을 없이하심 (4) 사탄의 수하에 있는 세상을 심판하심 (5) 우리를 나누는 규례들을 폐하심 (6) 우리 죄인들에 대해 모든 요구, 곧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과 영광의 요구를 만족케 하심 (7) 우리를 위해 그분에게서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해방하심.

Ⅵ.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하여

그는,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성한 영으로 말미암아 그분의 온 존재와 더불어 그분의 몸을 죽은 자 가운데 살리심을 지적했다. 그분의 이러한 부활은 하나님의 독생자로 하여금 신성과 인성을 둘 다 지닌 하나님의 맏아들이 되게 하셨다. 그분의 부활은 또한 그분을 생명의 실재인 생명주는 영, 성령으로 변화시켜 그분의 믿는 이들 안으로 들어가 그들을 거듭나게 하며 그들의 인성을 신성 안으로 이끌어 그들로 하나님의 많은 아들들, 그분의 많은 형제들이 되게 하고 삼일 하나님의 체현인 그리스도를 표현하기 위한 그분의 유기체로서 비밀스런 몸을 구성하는 그분의 지체들이 되게 한다. 이 부활의 실재는 바로 생명의 실재인 성령으로서 오늘날 그분의 믿는 이들 생활 속의 승리의 능력이 되며 장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할 때에 그들의 몸이 변하여 구속함을 얻게 할 무한한 능력이 될 것이다.

Ⅶ. 영원한 생명에 관하여

그는, 성경에서 말한 영원한 생명이 바로 피조되지 않은 하나님의 생명으로서 시간과 본성에 있어서 다 영원하고 아무 흠이 없이 완전하다는 것을 지적했다. 하나님의 이 영원한 생명은 사망을 삼키고 사망을 이기며 또한 썩지 아니할 생명이다. 하나님의 이 생명은 또한 삼일 하나님 자신으로서 그 아들 안으로 믿는 사람의 생명이 된다. 이 생명으로 인해 우리는 신성과 인성을 지니고 하나님과 연합한 하나님-사람이 된다.

Ⅷ. 그 영에 관하여

그는, 그 영이 삼일 하나님의 적용임을 지적했다. 그 영은 아들 하나님을 믿고 그분을 영접한 사람들에게 도달하며, 아버지 하나님을 아들 하나님 안에서 그들에게 적용되게 하신다. 그분은 생명의 영이시며 생명의 실재이시다. 또한 그분은 생명주는 영으로서 아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속에 생명으로 분배하신다. 그분은 또한 아들 하나님 안에 있는 아버지 하나님의 생명으로 말미암아 믿는 이들을 거듭나게 하여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거듭나게 하는 영이다. 그분은 그들 안에서 만유의 실재로서 내주하는 영이시다. 새롭게 하는 영이신 그분은 영원토록 항상 새로우며 영영 쇠하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생명으로 말미암아, 옛 창조에 속한 사람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의 새 창조가 되게 하신다. 거룩케 하는 영으로서 그분은 하나님의 거룩케 하는 본성으로 믿는 이들을 분별하고 거룩하게 하신다. 변화시키는 영이신 그분은 그리스도의 생명의 요소로 그들을 그분의 형상으로 변화시키신다. 그분은 아들 안으로 믿는 이들의 영원한 분깃이신 하나님에 대한 첫열매, 먼저 맛봄이다. 그분은 믿는 이들의 권위이신 아들을 믿는 이들에게 쏟아 부어주시는 능력의 영이시다. 그분은 삼일 하나님의 실재요, 그리스도의 실재요, 모든 진리의 실재이자 그리스도의 부활의 실재이시다. 그분을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삼일 하나님을 소유하고 진리를 소유하며 그리스도와 그분의 부활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Ⅸ. 그리스도의 구속과 하나님의 구원에 관하여

그는, 그리스도의 구속은 그분이 죄인들을 위해 대신 죽으시고 죄를 속량하심으로 말미암아 성취되었다는 것을 지적했다. 죄인인 우리가 이 구속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죄사함과 깨끗케 하심과 의롭다 하심을 얻고 하나님과 화목된다. 그리스도의 구속에 근거하여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우리의 죄를 깨끗케 하시며 우리를 의롭게 하시고 우리를 그분과 화목되게 하시며,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며 그분의 영으로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분별하시며 우리를 거룩케 하신다. 또한 그 영은 영이신 그리스도의 생명의 요소로 우리를 변화시켜 우리로 하나님의 맏아들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게 함으로 결국 그리스도께서 들어가신 신성한 영광으로 우리를 영화롭게 하신다.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로 말미암아, 또한 성령의 거듭나게 하심과 새롭게 하심과 분별하심과 성화와 변화와 형상을 본받음과 영화롭게 하는 역사로 말미암아 성취하신 구원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하나님이 믿는 이들에게 주실 상급과 다른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은 율법과 다른 은혜에 근거한 것이지 결코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상급은 그리스도 안의 믿는 이들이 구속되고 구원받은 후에 살아내는 이기는 생활에 근거하며, 이 상급은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생명 주는 영에 의한다. 이 상급은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에 의해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경륜)을 성취하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건축하는 일에 근거를 두고 있다. 하나님의 구원은 영원한 것이다. 그것은 과거 우리의 죄들로부터 이생의 모든 얽매임과 유혹과 실패에서 우리를 구원하여 새 하늘과 새 땅의 새 예루살렘 안에서 삼일 하나님과 그분의 모든 풍성을 궁극적으로 누리고 충만히 맛보는 것을 포함한다. 하나님의 상급은 시기적인 것으로 다만 천년 왕국 때에 우리가 왕국의 나타남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하고 함께 영광을 얻는 것이다.

Ⅹ. 믿는 이들에 관하여

그는, 그리스도 안의 믿는 이들은 본래 삼일 하나님께서 그분을 담고 그분을 표현하며 그분을 대표하고 그분을 위해 통치하며 그분이 창조하신 만물을 다스릴 그분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영과 혼과 몸의 세 부분으로 된 사람임을 지적했다. 창조시 하나님은 다만 사람 안에 영을 창조하여 사람이 그의 영으로 영이신 하나님을 생명으로 영접할 수 있게 했을 뿐, 사람 속에 그분의 생명과 성품을 넣어주지 않으셨다. 그러나 사람은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의 명령을 좇지 않음으로 사탄에 의해 부패되었고 사탄의 악한 본성을 지닌 죄인으로 조성되었다. 이러므로 하나님은 친히 사람이 되사 타락한 인간의 육체를 입으셨다. 예수 그리스도라 불리운 이 사람은 육신 안에서 죄인을 위해 죽임을 당하고 그들의 죄들을 속량하시고 죄인 자신과 사탄, 세상 및 옛창조 전체를 끝내셨다. 죽으신 후 그분의 온 존재는 부활하였고, 부활 안에서 생명 주는 영이 되셨다. 그분은 그분을 믿고 영접한 죄인들 안으로 들어가 그들과 하나가 되어 그들을 거듭나게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고 그분의 지체로서 그분과 하나되어 그분의 유기적인 몸인 교회를 구성하여 그분의 충만으로서 그분의 단체적인 표현이 되게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믿는 죄인들은 그리스도의 추종자,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인 그리스도인이라 불리운다. 그들은 본래 하나님의 옛창조에 속했지만 그리스도 안으로 믿어 거듭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새창조가 되었으며 하나님의 생명과 본성을 소유하여 하나님의 생명과 그분의 영으로 행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살고 일한다. 그들은 영 안에서 함께 건축되어 하나님의 집이요 그리스도의 몸이며 그리스도의 충만인 하나님의 교회가 되어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심을 기다리고 있으며, 그때 그분은 그들을 들어올려 변화시키고 그분의 영광 안으로 받아들여 영원히 그분과 함께 있게 하실 것이다. 그들 가운데 구원받고나서 그리스도의 이기는 생명과 성령 안에 있는 부활 능력으로 말미암아 이기는 생활을 함으로 하나님의 계획(경륜)을 완성하는 일을 하고 그분이 다시 오실 때 먼저 성숙한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천년 왕국에서 그분과 함께 공동 왕이 되어 세상을 다스릴 상급을 얻게 될 것이다. 그들 가운데 이와 같이 먼저 성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천년 왕국 시대에 그분의 징계를 받게 되는데, 그 목적은 성숙하여 천년 왕국 후의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먼저 성숙한 믿는 이들과 함께 새 예루살렘의 구성 요소가 되어 영원토록 새 예루살렘 안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궁극적인 축복과 누림에 참여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ⅩⅠ. 교회에 관하여

그는, 교회가 그리스도 안으로 믿음으로 그리스도께 속한 모든 사람들로 구성된다는 것을 지적했다. 한면에서 이 교회는 우주적이지만 또 한면에서 지방적이다. 우주적인 면에서 교회는 우주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집이요, 그리스도의 몸이다. 지방적인 면에서 교회는 바로 각 지방에서의 하나님의 집이며 그리스도의 몸의 나타남이다. 각 지방에 나타난 이 많은 지방 교회들은 우주 가운데 유일한 하나를 이룬다.

하나님의 집으로서 이 교회는 또한 하나님의 권속이자 하나님의 거처이다. 이것은 하나님으로 하여금 자녀들 가운데서 아버지된 자가 얻고 누리는 즐거움을 누리게 하고, 만족할 만한 안식을 주는 안식처를 얻으시게 한다. 이로써 그분은 이 집에서 그분의 기뻐하심을 따라 행하고 그분의 어떠하심과 소유하심과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나타내게 된다.

그리스도의 몸인 이 교회는 인류 가운데 그리스도가 움직이고 행동하는 유기체로서 만유를 포함한 그분 자신을 살아 나타낸다. 이 몸은 또한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만족케 하기 위해 그리스도에게서 나와서 그분에게 돌아갈 그분의 배필이다. 또한 이 몸은 그분 자신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창조한 한 새 사람인데, 이 새 사람은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경륜)을 완성하기 위해 그분의 생명과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이 교회는 인류 가운데 존재하면서 세계 각지에 분산되어 독립된 많은 지방 교회로 세워져야 하기 때문에 그 안에는 장로들의 다스림과 집사들의 봉사가 있다. 사무에 있어서 교회는 자치적이며 독립적이지만, 생명과 본질에 있어서는 여전히 우주적인 한 몸으로서 동일한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동일한 사도의 교통을 지키며 그리스도를 위해 하나의 간증을 짊어지며 하나님의 일관된 계획(경륜)을 수행한다.

이러한 교회는 외면적으로 말하면 세상에서 부르심받아 나온 수많은 성도들로 구성되지만, 내적으로 말하면 삼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의 믿는 이들 안으로 그분 자신을 분배하고 그들 안에 자라난 결과이다. 그러므로 이 교회는 살아 있는 유기체이지 결코 세상의 종교 조직이 아니며 생명이 없는 물질적인 건물은 더 더욱 아니다.

또한 이 교회는 오늘날 하나님이 그 안에서 다스리고 모든 것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왕국이다.

ⅩⅡ. 새 예루살렘에 관하여

끝으로 그는, 또한 성경의 궁극적인 계시인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신·구약 성경 안에서 구속받은 모든 사람들로 구성된다는 것을 지적했다. 이 새 예루살렘은 영원 안에서 사람과 함께한 삼일 하나님의 장막이며, 하나님의 거처이다. 또한 영원 안에서 그분의 사랑하는 배필로서의 삼일 하나님의 체현인 그리스도의 신부이다. 이 거룩한 성은 또한 길이와 넓이와 높이가 같은 하나님의 지성소이다. 그것은 하나님과 어린양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하나님에 의해 구속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섬기는 장소와 처소가 될 것이다. 그 구성은 다음과 같다. (1) 투명한 정금이 보여 주는 것처럼 삼일 하나님의 근원인 아버지 하나님이 그 본질이시고 (2) 아름다운 진주가 보여 주는 것처럼 삼일 하나님의 표현인 아들 하나님이 그분의 구속하는 죽으심과 생명을 분배하시는 부활 안에서 그 입구이시며 (3) 각종 화려한 보석이 보여 주는 것처럼 삼일 하나님의 적용인 영 하나님이 믿는 이에 대한 그분의 변화시킴 안에서 그 성벽과 기초이시다. 그 성에 있어서의 삼일 하나님의 구성은 하나님과 그분이 구속하시고 거듭나게 하시며, 변화시킨 세 부분으로 된 사람과의 최종적인 완결로서 그분으로 하여금 그들을 한 몸이 되게 하고 영원 안에서 그분의 단체적인 표현과 나타남이 되게 한다. 그 성 안에서 어린양은 그 등이 되시어 하나님의 영광을 비추어 낸다. 그 성의 중앙에는 하나님과 어린양의 행정적인 보좌로부터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이 온 성을 도는 나선형의 길 한 가운데 흐르고, 온 성을 돌면서 성 주위의 열두 문에 이르러 온 성에 물을 공급한다. 강 좌우에는 생명나무가 자라며 달마다 과실을 맺어 온 성을 공급한다. 이와 같이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은 삼일 하나님과 그분이 구속하신 세 부분으로 된 사람과의 연합에 있어서의 정점으로서 삼일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고 영원 안에서 그분의 풍성을 나타낸다. 또한 삼일 하나님이 그분의 구속 안에서 그분이 구속하신 사람에 대한 공급이 가득하여 그들로 하여금 충만히 구속하신 삼일 하나님의 어떠하심과 역사하심과 도달하심을 충만히 누리고 맛보게 한다. 이것이 니 형제님이 본 모든 신성한 계시에 속한 요약으로서 우리에게 전해진 것이다.

니 형제님이 전성경에서 전파하고 강론한 것들은 광범위하고 심오하다. 그러나 이상의 열두 가지 항목이 그의 중심과 노선이며 목표이다. 나의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처음 삼십 년은 꾸준히 니 형제님의 모든 저서를 통독했으며, 그 후로부터 삼십 여 년 동안 그리스도인의 사역의 과정에서 다시 그것을 복습하였다. 그 저서들을 참고하고 인용함으로 내가 받은 유익의 그 풍성과 받은 은혜의 넘침은 삼일 하나님의 새창조의 걸작품과 무한한 영원으로라야 온전히 표현할 수 있으리라. 각지에 있는 독자들이 주님의 은혜를 받아 니 형제님의 저서의 중심과 노선과 목표를 그들의 믿음의 중심과, 달리는 노정의 노선과, 좇아갈 목표로 삼으므로 함께 넘치는 은혜에 잠겨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비록 니 형제님이 잠들었지만 그의 말은 언제까지나 끊이지 않으리라. 파수꾼은 떠났어도 징치는 자의 징소리는 새벽별이 떠오르기까지 울리리라. 이러한 회고문이 약간이나마 저자 니 형제님에 대해 신선한 기억을 줄 수 있기를!

1991년 7월 24일 유익을 얻은 위트니스 리

미국 캘리포니아 애너하임에서


<<편집자 설명>>

일찍이 십여 년 전 각방면에서 필요를 절감한 우리는 즉시 워치만 니 형제님의 간행물과 저작, 설교 원고, 및 기록들을 포함하여 일생동안 그가 전한 메시지들을 비교적 완비되고 정리된 책으로 내고자 계획을 세워 이 어렵고도 방대한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하여 다방면에서 수집하여 원고를 교정하고 정리하고 재편집하여 출간했습니다. 우리는 이 한세트의 극히 진귀한 저작물을 「워치만니 전집」이라 이름하여 그 연대에 따라 총3집으로 나누었는데,
제 1집은 초기작품으로 1922년부터 1934년까지,
제 2집은 중기작품으로 1935년부터 1942년까지,
제 3집은 후기작품으로 1943년부터 1952년까지입니다.
현재 수집하는 일은 거의 완료되었으며 독자들의 만족을 위하여 먼저 제 1집 20권을 출간했으며 나머지는 계속 출간할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중보기도하는 것을 잊지말아 주시기를 간청하며 기대합니다.

편집부


<<소개말>>

이 책에는 총 열아홉 편의 메시지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 책의 초점은 주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이 책은 로마서 6장의 가르침을 특별히 주의하며, 우리의 생명에 있어 영에 속한 부분과 자신에게 속한 부분을 어떻게 분별하는지 설명해 줍니다. 또한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어떻게 마귀를 대적하여 이기는지, 어떻게 영적인 일을 행하는지 아주 분명하게 제시해 줄 것입니다. 이 책은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이 읽어야 할 뿐 아니라 연구해야 할 것입니다.

기독도보 제15기 ‘신간 소개’에서 발췌


<<서문>>

교회사에서 오늘날만큼 십자가의 메시지가 필요한 시대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물론 보혈로 이미 구속받은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필요한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십자가의 더 깊은 방면의 진리를 알고 체험하는 것입니다. 단지 주님의 대속의 죽음(물론 이것도 영광스러운 것이지만)만을 아는 것으로는 믿는 이들의 영적 생명이 성장하는 데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이루신 모든 것을 하나하나 체험하여 생명이 성숙한 하나님의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한 세대의 마지막에 와 있으며 이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습니다. 사탄의 활동은 참으로 전보다 더욱 심해졌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에게서 받는 핍박과 압제와 미혹은 더욱 많아졌는데, 그 중 가장 심각한 것은 그에게 속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성도들이 일어나 십자가의 승리로 대적을 반대하고 공격하는 것을 배워야 할 때입니다. 이 전쟁은 아주 맹렬한데 무기도 없이 어떻게 성도들이 이길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성도들이여, 여러분은 마땅히 일어나 골고다의 승리 위에 서서 그리스도의 승리를 선포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왕께서 이미 가까이 오셨습니다! 대적이 완전히 패배하여 땅에 엎드러질 날도 멀지 않았습니다!

이 한 권의 작은 책은 대부분이 ‘부흥보’에 실린 것들입니다. 그러나 문장이 고르지 못하고 교정도 완전하지 않아 뜻밖에 많은 가르침들이 매장되는 데 이르렀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역량과 시간을 사용하여 우리는 이것을 새롭게 수정하고 번역하여, 그리고 약간의 새로운 내용을 더하여 한 권의 책으로 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책에는 적잖은 번역 원고(원저자 이름은 모두 목차에서 밝혀 두었음)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은 비록 그들 원저자의 국적과 민족과 환경이 서로 다르다 해도 우리가 전한 것은 동일한 메시지이기 때문입니다. 독자들은 이 책이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 책이 출간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또한 이 책의 번역과 수정 작업에 도움을 준 몇몇 형제자매들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기뻐하신다면, 그분께서 독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인도하시고 또한 그들을 주 예수님 안에서 예비하신 더 풍성한 생명 안으로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합니다.

1927년 2월 난징(南京)에서 니토셍


깊은 영적 통찰력과 폭포수 같은 말씀의 사역으로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쳐 온 웟치만 니의 메시지들이 62권의 전집으로 출판되었다. 1922년부터 중국 공산당에 의해 투옥되기 직전까지 웟치만 니의 모든 말씀들을 담고 있는 이 전집은 그의 풍성하고 깊이 있는 사역을 총망라하고 있다.

워치만 니 전집 총 62권
1집
1권 -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영적 전쟁
2권 - 십자가의 도
3권 - 기독도보(1)
4권 - 기독도보(2)
5권 - 기독도보(3)
6권 - 기독도보(4)
7권 - 기독도보(5)
8권 - 부흥보(1)
9권 - 부흥보(2)
10권 - 부흥보(3)
11권 - 부흥보(4)
12권 - 영에 속한 사람(1)
13권 - 영에 속한 사람(2)
14권 - 영에 속한 사람(3)
15권 - 마태복음 연구
16권 - 계시록 연구
17권 - 주제별 진리 연구 기록(1)
18권 - 주제별 진리 연구 기록(2)
19권 - 주제별 진리 연구 기록(3)
20권 - 복음에 관한 질문

2집
21권 - 복간 기독도보
22권 - 집회생활, 교회의 기도사역
23권 - 노래 중의 노래, 찬송가
24권 - 이기는 생명
25권 - 통문휘간(通問彙刊) (1)
26권 - 통문휘간(通問彙刊) (2), 웟치만 니의 간증
27권 -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신앙
28권 - 하나님의 복음 (1)
29권 - 하나님의 복음 (2)
30권 - 사역의 재고
31권 - 열린문 (1)
32권 - 열린문 (2)
33권 -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생활
34권 - 영광스러운 교회
35권 -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
36권 - 중심 메시지
37권 - 일반 메시지 (1)
38권 - 일반 메시지 (2)
39권 - 좌 행 참,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
40권 - 주여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삽나이까?
41권 - 특별집회 메시지 및 대화기록 (1)
42권 - 특별집회 메시지 및 대화기록 (2)
43권 - 특별집회 메시지 및 대화기록 (3)
44권 - 특별집회 메시지 및 대화기록 (4)
45권 - 특별집회 메시지 및 대화기록 (5)
46권 - 특별집회 메시지 및 대화기록 (6)

3집
47권 - 교회의 정통, 권위와 순복
48권 - 초신자를 온전케 하는 공과 (上)
49권 - 초신자를 온전케 하는 공과 (中)
50권 - 초신자를 온전케 하는 공과 (下)
51권 - 교회의 사무
52권 - 주님의 사역자의 성격
53권 - 성경을 읽는 길, 자아의 파쇄와 영의 해방
54권 - 하나님의 말씀의 사역자
55권 - 사역보, 복간 열린문 (1)
56권 - 복간 열린문 (2), 복간 부흥보
57권 - 워치만 니 사역 재개 메시지 기록
58권 - 영적인 판정과 판정의 실례
59권 - 고령훈련 기록 (1)
60권 - 고령훈련 기록 (2)
61권 - 주의 회복 안의 성숙된 인도 (1)
62권 - 주의 회복 안의 성숙된 인도 (2)


편집자 설명

1집을 출간한 후에 우리는 계속해서 각지 형제자매들에게 열렬한 반응을 받았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본 전집이 국내외의 성도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본 전집의 모든 내용을 신속히 출간하기 위해 우리는 하나하나 정리하고 개편하였다. 이제 2집의 스물두 권은 계획대로 열여덟 권이 완성되어 먼저 출판한다. 주님께서 이 책을 사랑하고 아끼는 모든 사람을 축복하시기를 바란다.

편집부


영문판 서문(번역본)

수년 동안 나의 친구들은 내가 ‘선교’의 일을 수행하는 성경적인 방법이라고 믿는 바와 이러한 일에 의해 세워진 교회의 성경적인 특징에 대하여 글을 쓸 것을 독촉했지만, 이제까지 주님은 이러한 일에 대하여 나에게 그분의 뜻을 지시하지 않으셨다.

개인적으로 나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나의 사역이 기독교의 외형에 떨어지지 않고 영적인 본성 안에서 보존되어야 한다고 느꼈다. 그러나 나는 고린도서의 진리가 에베소서의 진리만큼이나 소중하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 두 서신을 쓴 사도가 한 사람이며, 그는 동일한 영에 의해 영감을 받았다. 에베소서의 진리에 익숙한 사람들은 고린도서의 오류를 범할 수 없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영적인 사람들이 하나님의 외적인 명령을 무시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지! 물론 나도 단지 방법적으로 정확한 것이 성도들에게 어떤 영적인 유익을 주지 못하리라는 것을 믿지만, 나는 또한 하나님께서 이미 명령하신 것이 단지 외적인 것들에 관련된다고 해서 그것을 제해 버리는 자유는 분명히 영적 생명을 저해할 것이라고 믿는다. 하나님은 영원하시다. 그분과 관련된 모든 것은 영원하다. 단지 기독교의 방법적인 면만을 취하는 것은 죽은 것이지만, 성령의 능력을 아는 사람이 이것을 취한다면 그것은 영원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은 오직 하나님의 노선을 따라서 일하실 것이다”(M. E. Barber)라는 말은 수년 전에 주님을 섬기기 시작했을 때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진리는 이 수년 동안 나에게서 성장되었다. 때로 우리가 ‘하나님의 노선’을 점검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지난 연말 우리는 상해(上海)와 한구(漢口)에서 신약 시대에 하나님의 일 안에서의 성령의 본에 대하여 젊은 동역자들을 위해 특별 집회를 가졌으며, 그 집회의 말씀은 노트에 기록되었다. 주님은 이것이 출판을 위한 것임을 분명하게 해 주셨다. 나는 이 노트를 완전히 수정했지만, 이것이 내가 주님 안에 있는 젊은 형제들에게 전한 메시지이므로 구어체의 특성을 지니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이제 이 원고를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사용해 주시기를 기도하며 밖으로 내보낸다. 주님께서 그분의 많은 종들과 많은 자녀들 가운데 더 큰 한 마음 한 뜻을 주시기를.

사역을 위한 영적인 장비에 관하여는 다른 곳에서 다루었는데, 이것은 단지 주님의 성령이 일하실 수 있는 ‘노선’일 뿐이다.

어떤 이들은 벌써 이 책이 영어로 출간될 수 있는가를 물어 왔으며 심지어 이 일에 열심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 나의 책 가운데 영어로 번역되는 첫 번째 책이 되어야 하는지, 모든 종들의 주께서 그분의 생각을 알려주시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는 이 책에 언급된 방법들이 많은 나의 동역자들에 의해 이미 실행되었으며, 수행 가능한 것이고, 합당한 영성이 구비되기만 하면 하나님의 축복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1938년 1월 23일 상해에서

워치만 니


서문

이 책은 내가 최근에 상해(上海)와 한구(漢口) 두 지방에서 동역자들과 성경을 연구한 기록으로서 내가 수정하여 완성된 것이다. 이 원고는 말씀 전한 것을 기록한 것이므로 많은 부분이 구어체(口語體)이며 완전히 저술한 것이 아니므로 많은 부분이 다 완성한 것처럼 완전하지는 않다. 하나님께서 청중을 크게 축복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두 차례에 걸쳐 전한 이 메시지들이 더 많은 사람에게 전달되어 축복의 범위가 확대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출판하게 되었다.

지난 십 년 동안 나의 친구들은 주님의 일과 교회에 대한 나의 의견을 분명히 공포(公布)해 달라고 여러 번 요청했었다. 내가 그렇게 하지 않고 지연한 이유는 나 개인에게는 참으로 의견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의롭다 하는 모든 것을 나도 의롭다 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정죄하는 모든 것을 나도 정죄한다. 나는 성경의 배경과 시대가 우리와 다르기 때문에 결코 이런 저런 점에서 성경과 다를 수 있다고 말할 담대함을 감히 가진 적이 없었다. 나는 나와 나의 동역자들이 참으로 온갖 연약함 속에서 휘청거리며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고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우리의 행위는 이러하지만 우리의 교리는 그럴 수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기를!

또한 변론이란 얼마나 무익한 것인지! 내가 실제로 무언가를 공포했다면 어떤 이는 그것을 공격의 목표로 삼고, 어떤 이는 선전의 도구로 삼았을 것이다. 거기에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바로 이런 까닭으로 질문에 답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전에 복음서원(福音書院)에서 출판된 이런 종류의 책들도 판매가 중단되었다. 이는 우리가 우리의 입장을 의심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친구들이 우리의 간증을 오해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우리의 간증의 내용은 결단코 교회의 외형 한 가지만이 아니다.

또 나의 사역은 기독교의 영적인 방면을 위한 것이라고 자인한다. 반면에 이런 종류의 일은 기독교의 방법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내가 기독교의 방법적인 문제를 다루는 것을 피하고 전적으로 나 자신의 영적인 사역만 주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즐거울지! 그러나 주 안의 사랑하는 많은 친구들은 줄곧 나를 안식하지 못하게 하고 내가 이 문제를 처리하기를 원했다.

그렇지만 나는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할 지에 대해 계속 분명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오늘날까지 이 면에 대해 묵묵히 지내왔다. 그러다가 고린도서를 쓴 사람이 에베소서를 쓴 사람이고 에베소서를 쓴 사람이 고린도서를 쓴 것을 보고 비로소 나의 길이 분명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에베소서의 진리로 인하여 어떤 심한 분쟁이 있었던 적은 없지만, 고린도서의 가르침을 인한 변론은 끊임없이 계속되어 왔다는 것이다! 그렇다. 에베소서의 진리는 영적인 것이고 범위가 하늘에 있는 것이므로 조금 차이가 있더라도 사람들이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고린도서의 가르침은 실행적인 것이고 범위가 땅에 있는 것이므로 그것을 조금이라도 소홀히 할 때에는 모든 사람의 눈이 그것을 주목하게 된다. 참으로 고린도서는 너무 실제적이다. 이 점에 있어서 고린도서는 에베소서보다 더 우리의 순종을 시험한다.

본(本)에 관해서 몇 마디 말하고 싶다. 기독교는 명령 위에 세워진 것일 뿐만 아니라 본 위에 세워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을 명령으로 행하시지 않고 먼저 교회 안에서 많은 방법을 안배하셔서, 후에 들어온 자들이 그것을 보고 즉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어떻게 행하는가를 보도록 하신다. 모든 것이 다 추상적인 명령과 객관적인 규정이 아니라, 구체적인 모범과 주관적인 생활이 많이 있다. 이것들은 우리에게 다만 복종하라고 하지 않고 무언가를 느끼게 한다. 기독교에 명령이 있지만 명령 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분의 뜻을 실행하는 사적(事蹟)이 담긴 많은 역사(歷史)를 우리 앞에 두셨다. 이렇게 하여 그들이 한 것을 봄으로써 우리도 어떻게 행할 것을 알게 하신다.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명령하신 적이 없는데 왜 꼭 그것을 준행해야 하느냐고 말하는 사람이다. 당신은 그분의 행위와 인도하심과 그분의 교회를 보았는데도 아직 그분의 뜻을 모르는가? 아이가 가정에서 사사건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아버지께 묻는가, 아니면 그의 형들이 씻고 사람들을 대하고 사람 앞에 나아가고 물러나며 겸손한 태도로 양보하는 것을 보고서, 자신도 씻고 사람들을 대하고 사람 앞에 나아가고 물러나며 겸손한 태도로 양보하는 법을 알게 되는가? 언제나 우리가 보고 배우는 것이 듣고 배우는 것보다 더 많고 깊다.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니라면 하나님께서 왜 신약의 사도행전을 주셨고 구약의 많은 역사서를 주셨겠는가? 이것은 우리가 본으로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명령으로 아는 것보다 더 쉽기 때문이다. 태초에 그분은 한 면으로 우리에게 분명한 명령을 주셨고 또 한 면으로는 그분의 집에서 일하는 모든 방법을 안배하셨다. 그분은 그다지 많은 말씀을 하시지 않은 것 같지만, 이미 우리 눈앞에서 행하심으로 우리가 분명히 보도록 하셨다. 그분께서 하신 일을 보고서도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이 일을 이렇게 해도 되는 것이냐고 물을 수 있는가?

많은 때 본과 명령은 동등한 가치를 갖는다. 또 어떤 때에는 본의 가치가 명령보다 더 뛰어나다. 왜냐하면 명령은 추상적인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한계를 알 수 없도록 하는 어려움이 있는 반면에, 본은 이미 준행된 명령이므로 그것을 볼 때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이 무엇인가를 알게 될 뿐 아니라 이 명령이 어떻게 준행되었는가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우리가 더욱 쉽게 하나님의 길을 알 수 있도록 한다.

만일 우리가 기독교 안에서 본을 제해 버리고 명령만을 남긴다면 우리에게 별로 남는 것이 없게 된다. 명령은 명령의 위치를 가지고 있지만 본도 본의 위치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아는 사람은 마땅히 이 점에서 문제가 없어야 한다.

많은 변론을 피하기 위하여 나는 이 책을 쓰지 않기를 얼마나 원했었는지!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부담과 진리를 알고자 하는 자들에 대한 책임을 보았다. 이 책이 주님의 이름으로 영화롭게 되도록 하나님께서 내게 은혜를 베푸시고 형제들이 나를 긍휼히 여겨 주기 바란다!

제1장은 매우 전문적인 것으로서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만일 당신이 이 부분을 읽을 때 확신이 없다면 그것을 그냥 넘어 가고 제2장부터 읽기 바란다. 제1장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거기서 멈춰서는 안 된다. 그 부분은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다. 당신은 이 책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하여 제2장부터 제10장까지 읽어야 한다. 당신이 이 책을 읽은 후에는 속에 하나님의 빛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만일 하나님의 빛이 없다면 이 책의 가르침을 거절하고, 하나님의 빛이 있다면 성경의 진리에 순종하기 바란다.

물론 나는 이 작은 책에서 모든 문제를 다 다룰 수 없다. 이것은 불가능하다. 어떤 것은 내가 다른 곳에서 이미 언급했었고 어떤 것은 다른 곳에서 앞으로 언급될 것이다. 그러므로 독자는 이 책의 중심점이 지방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1938년 2월 15일 상해에서

워치만 니


머리말

우리의 한 가지 목적은 주님의 일을 완전히 성경대로 하기 원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고자 하는 웅지(雄志)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요 가장 높은 표준이며 완전한 본이요 권위가 충만한 명령임을 믿는다. 우리는 어떤 훼손이나 부족함 없이 이런 것들을 좇아 행하고자 하는 웅지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바울과 같이 하나님의 모든 뜻에 대하여 거리낌이 조금도 없기 바란다.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주의할 뿐 아니라 성경의 본도 주의한다. 성령의 인도하심은 물론 귀한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성령의 인도하심만을 원하고 성경의 본을 주의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생긴다. 그럴 때 사람은 자신의 잘못된 사상과 근거 없는 느낌을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여겨 그것이 틀렸는지조차도 모르게 된다. 만일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성경과 충돌되는 일을 하게 되고, 또 그것을 성령의 인도하심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은 물론 성경의 본도 주의할 때 비로소 그 인도하심이 성령에서 나온 것인지를 증명할 수 있다. 만일 어떤 인도하심이 성경과 일치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것을 성령의 인도하심이라고 말할 수 없다. 하나님은 사도행전에서는 사람을 이렇게 인도하고 오늘날에는 저렇게 인도하실 수 없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대하시는 것이 겉으로는 다르더라도 원칙에 있어서는 동일하다. 그분의 뜻은 변함이 없다. 영적인 일은 시간의 지배를 받지 않으며 영원한 것이다. 영원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다 영원하며 시간에 따라 바뀌지 않는다. 그분이 행하신 모든 일에는 영원한 성질이 들어 있다. 이러할진대 우리가 어찌 사도행전에서의 하나님은 이런 분이시고 오늘날의 하나님은 또 다른 분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우리에게 환경의 차이나 외형과 일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원칙적으로 하나님의 마음가짐과 길은 사도행전에서 지시한 것과 다를 수 없다.

또한 사도행전은 교회 역사(歷史)의 ‘창세기’이다. 바울 시대의 교회는 성령께서 일하신 ‘창세기’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사람이 아내를 취하여 데려온 후에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거든 이혼 증서를 써서”라고 말씀하셨지만 주 예수님은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고 말씀하셨다. 이 두 가지에는 차이가 있지 않은가? 아니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주님께서 이것을 말씀하신 것이 하나님과 상반되고 다른 것 같지만 하나님의 목적은 언제나 처음과 같다.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을 인하여 아내 내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하나님께서 처음에는 아내를 내어 버릴 수 있다고 말씀하시다가 잠시 후에는 또 버릴 수 없다고 말씀하시고, 또 잠시 후에는 버릴 수 있다고 말씀하시어 재삼재사(再三再四) 변하시는 것 같다. 그러나 주님은 ‘본래는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목적은 처음이나 나중이나 동일하다. 오늘도 당초와 여전히 똑같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분명해야 한다. 우리는 ‘창세기’에 나오는 모든 명령을 보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안에서 나중에 허가된 모든 것들까지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중에 허가된 것들은 다 “너희…을 인하여”가 있어 하나님의 당초의 뜻과 같이 순결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모든 뜻을 알려면 하나님께서 작년에 어떻게 사람을 인도하셨고 십 년 전에 어떻게 인도하셨으며, 백 년 전에 어떻게 인도하셨는지를 보아야 할 뿐 아니라, 처음, 즉 교회의 ‘창세기’로 돌아가 하나님께서 본래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보아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가장 높은 뜻의 표시이다. 오늘날 환경과 배경과 사정에 많은 차이가 있지만 이런 것들은 우리의 본이 될 수 없고 우리를 지배할 권위가 없다. 우리는 반드시 본래로 돌아가야 한다. 환경이 어떠하든 배경이 어떠하든 사정이 어떠하든 하나님께서 본래 우리에게 주신 본이 어떠한가를 물어야 한다. 환경이 우리를 지배할 수 없고 배경과 역사도 우리를 지배할 수 없다. 우리는 반드시 본래로 돌아가야 한다. 본래의 그것만이 하나님의 영원한 뜻이고 하나님의 영원한 길이며, 우리의 표준이요 우리의 본이다. 우리는 본래 하나님께서 성경에서 우리에게 주신 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영적인 교리는 귀한 것이다. 우리가 언급한 성령의 충만과 그리스도의 승리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길 등등은 다 귀한 것들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면적인 진리를 돌아보실 뿐 아니라 외면적인 진리도 돌아보신다. 내면적인 것이 귀하지만 하나님은 외면적인 것도 소홀히 여기지 않으신다. 에베소서와 로마서와 골로새서를 하나님께서 쓰셨지만, 사도행전과 디모데전·후서와 고린도전·후서도 하나님께서 쓰신 것이다. 에베소서는 매우 높고, 로마서에는 은혜가 충만하고, 골로새서는 사람의 행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말한다. 이 외에 다른 내용도 많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사역의 일을 어떻게 해야 하고 교회를 어떻게 조직하며, 교회의 외형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하여도 언급하셨다. 하나님은 한 가지도 우리 스스로 생각하여 행하도록 남겨 두지 않으셨다. 하나님의 일에서 하나님은 한 번도 우리에게 생각하라는 여지를 남기지 않으셨다. 사람은 생각 없는 삯꾼을 쓰기를 두려워하지만 하나님은 너무 구상이 많은 일꾼을 쓰기를 두려워하신다. 하나님은 다만 사람이 그분께 순종하고 그분의 말을 듣기 원하실 뿐이다. 그분에게는 참모가 필요하지 않다. 바울은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라고 말했다. 사람은 모사가 되기를 좋아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필요로 하지 않으신다. 일에 관한 모든 항목을 하나님께서 다 안배하셨으므로 우리가 생각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우리가 어떻게 생각해야 하며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를 말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시고 어떻게 일하시는가를 물어야 한다. 영적인 것들이 귀한 것이듯 이런 것들도 똑같이 귀하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한 가지 일은, 바리새인들이 그릇의 바깥은 씻었지만 그릇 속에는 더러운 것이 가득 차 있었으므로 주님의 책망을 받았다는 것이다.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그릇이 더러운 것은 상관없고 속이 깨끗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속이 깨끗하기를 원하실 뿐 아니라 밖도 깨끗해 지기를 원하신다. 외면적인 것만 있고 내면적인 것이 없는 것은 영적인 사망이다. 내면적인 것만 있고 외면적인 것이 없는 것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다. 그러므로 주님은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아니하여야 할지니라”고 말씀하신다.

신약 안에 있는 모든 것은 별로 중요하게 보이지 않는 것조차도 하나님의 뜻의 표현의 일부분이므로 다 영적 가치가 있는 것이다. 어떤 것은 매우 작고 중요하지 않게 보이지만 하나님은 한 번도 무의미한 일을 하신 적이 없다. 모든 것에 영원한 의미와 가치가 있다. 만일 사람이 그것들을 소홀히 여긴다면 상당한 영적 손해를 피하기 어렵게 된다. 우리는 성경 안의 외면적인 것들을 율법으로 지켜야 한다고 믿지 않는다. 그렇게 하는 것은 죽은 것이고 영적인 가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다만 외면적인 것들만 율법화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내면적인 영에 속한 진리도 율법화 되어 죽은 것으로 만들어질 가능성이 있다. 사실상 하나님께 속한 모든 것은, 외면적인 것이든 내면적인 것이든, 성령 안에 있을 때에는 살아 있는 것이지만, 율법 안에 있을 때에는 죽은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것이 외면적인 것이고 어떤 것이 내면적인 것인가를 나누지 말고, 다만 그것이 성령 안에 있는가 율법 안에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이번에 우리가 연구하는 성경은 그릇의 외부 문제인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것들을 따르기 위한 율법과 규례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성령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주의하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는 교회의 문제가 항상 변론이 되는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 안에서 행한다면 외면적인 많은 것들도 아주 살아 있는 것들이 될 것이다. 바울의 서신 안에서 다룬 교회 문제를 오늘날 여러 저자들의 책에서 다룬 교회 문제와 비교해 보면 이 차이점을 알게 될 것이다. 어떤 것이든 육체 안에 있을 때에는 좋은 것도 죽은 것으로 변한다. 모든 것은 성령 안에 있을 때만이 살아 있는 것이고 생명이다. 우리는 우리가 성경을 상고하고 실행할 때 모든 것이 성령 안에서 살아 있는 생명이 됨으로써 하나님의 뜻과 일치되기를 바란다.

이번에 우리는 세 가지 대상에 대하여 성경을 상고할 것이다.

* 내가 말한 ‘우리’는 동역자들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동역자들은 단체이므로 우리라고 말할 수 있다―사도행전에서 동역자를 말할 때 사용된 ‘우리’를 기억하기 바람―이것은 성경이 허락한 것이다. 형제들 가운데 ‘우리’라는 말을 사용했다면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을 포함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범위가 너무 작아서 종파의 냄새가 있게 된다. 여기서 우리가 말하는 ‘우리’는 동역자들을 대표하여 말한 것이지 어떤 형제들을 대표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동역자들에 대하여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우리쪰 가운데에는 일정한 규례나 원칙이나 규정이 없다. 우리는 오직 성경의 빛을 따라 행하기 원한다. 언제든지 우리에게 성경의 빛과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으면 우리는 그것을 실행한다. 우리가 얻은 빛이 충분하지 않을지라도 우리가 빛을 보면 즉시 실행한다. 이것은 어떤 소경이 사람을 볼 때 처음에는 나무처럼 보였다가 후에는 사람으로 보였던 것과 같다(막 8:22-25). 우리가 처음에는 잘 이해하지 못했던 것도 두 번째에 가서는 이해하게 된다. 우리는 우리의 헌법을 쓴 적이 없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일정한 헌법이 있으면 성경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헌법이 없고 오직 한 권의 성경이 있을 뿐이다. 우리가 성경에서 빛을 보면 그것을 즉시 실행하고 잘못 본 것은 정정한다. 우리는 이 성경에 근거하여 우리가 행했던 것을 정정한다. 장로 문제에 대해서도 전에는 그렇게 분명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많이 분명해졌다. 만일 우리가 교만하지 않고 더욱 겸손하다면 더 많은 빛을 얻게 되고 하나님의 뜻을 더욱 분명히 이해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일정한 헌법 없이 오직 성령을 좇아 공개된 성경에서 언제나 새로운 빛을 받는다는 것을 선언할 수 있다. 우리에게는 어떤 최종적인 결정이 없다. 언제든지 우리가 이렇게 최종적인 결정을 할 때 우리는 성경의 빛의 문을 닫아 버리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 밖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하여 반드시 항상 우리의 마음을 열어 놓고 하나님의 새로운 빛을 받도록 준비되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잘못을 알기 원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어 우리가 자신들의 잘못을 모르는 어두움에 머물지 않도록 하시기 바란다!

주님 안에서 그분을 섬기는 우리가 몰라서는 안 될 많은 문제들이 있다. 이것들을 모른다면 우리의 마음가짐이 옳을지라도 지식이 결핍되어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일치되게 행하지는 못하게 된다. 물론 신약에 있는 우리에게는 우리의 선지자로서의 어떤 사람이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언(선지자로서 말함)을 멸시치 말고”라고 말씀하셨다. 우리의 사역(ministry)이 무엇이든, 우리의 교리적인 사역이 무엇이든, 하나님의 일에서 우리가 일하는 공통적인 원칙들이 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람을 보내시며, 보내심을 받은 사람들의 발자취는 어떠하며, 교회가 어떻게 세워지며, 선교회와 교회의 차이가 무엇이며, 일꾼들간에 어떻게 동역하는가 등등은 주님을 섬기는 모든 사람이 반드시 알아야 할 매우 중요한 것들이다. 이번에 우리의 집회는 과거의 모든 견해를 버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어떤 것도 의지하지 않고, 다시 한 번 하나님 앞에 나와 빛을 얻음으로써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는 것”을 얻어 주님의 일을 재고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지식을 얻은 후에 발생한다. 우리는 얼마나 쉽게 지식을 율법으로 삼고 문자적인 것을 좇아 지식을 의지하여 생명을 잃게 되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문제가 성령께 달려 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빛을 보고 성경의 가르침을 알았을지라도 성령이 없다면 여전히 죽은 것이다. 어떤 종류든 그 종류의 환경 안에서 살아야 한다. 예를 들어, 사람은 반드시 공기가 있는 환경에 있어야 생존하고 물속에 두면 죽게 된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과 성경의 본을 성령 안에 둔다면 그것이 살아 있는 것이 된다. 그릇의 바깥 부분같이 아주 작고 사람들이 중하게 보지 않는 것도 살아 있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의 본을 보는 동시에 그런 본들을 원칙이나 규례나 율법으로 삼아 지키는 것을 피하고, 그것들을 성령 안에 둠으로써 살아 있고 생명에 속한 것이 되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기 원한다.

일반 형제들에 대하여

성경에 대한 이러한 상고는 단지 동역자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많은 형제들을 위한 것이다. 과거 십여 년 동안 많은 동역자들이 많은 간증들을 나타냈었다. 각지의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간증을 받은 것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자. 그분이 우리를 거절하지 않으셨을 뿐 아니라 우리의 많은 자녀들도 우리를 거절하지 않은 것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한다. 그들은 우리의 영적인 사역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다. 그들은 우리가 십자가의 메시지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전한 것을 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만유의 머리시요 성령께서 하나님의 능력이심을 안다. 그들의 소망은 들림받는 것이고 그들의 눈은 계속 왕국을 향하고 있다. 그러나 각지에 있는 많은 형제들은 우리와 오랫동안 접촉하였는데도 아직도 우리의 일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대체 일꾼이 무엇이며 교회가 무엇인지를 모른다. 그들은 우리가 이렇게 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으나 왜 우리가 이렇게 하는지를 모른다. 그들은 대체 무엇이 그 사역(the ministry)이고, 무엇이 일(work)이고, 무엇이 일꾼(worker)이고, 무엇이 교회인지를 알지 못한다. 그들은 우리의 근거가 무엇이고 우리의 입장이 무엇인지를 모른다. 초기에 우리는 형제들은 이런 것들을 알 필요 없고, 다만 하나님 앞에서 믿음과 능력이 있는 사람이 되고 사람 앞에서 사랑과 행위가 있는 사람이 되면 족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최근에 우리의 간증을 받은 사람들이 우리의 길을 모르기 때문에 몇 가지 폐단이 발생하게 되었다.

(1) 합당치 않은 바람

그들은 우리의 일이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마땅히 바라야 할 것 이상의 바람을 가지게 되었다. 그들은 한 일꾼이 자신을 형제들에게 얼마나 드려야 하고 지방에 있는 교회는 마땅히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모른다. 그러므로 그들은 교회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사도’가 해 주기 바라고 교회가 마땅히 책임져야 할 것을 ‘사도’가 책임지기를 바란다. 이러므로 지방에 있는 교회를 자라지 못하게 하며 일꾼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게 한다. 본래 형제들이 힘써야 할 것을 일꾼이 힘써 주기를 바라고 교회가 책임져야 할 것을 일꾼들이 책임지기를 바란다. 이는 지방에 있는 교회가 하나님께서 원하는 교회를 닮지 못하도록 하며 하나님께서 일꾼들에게 시켜 하게 하신 일을 그들이 할 수 없도록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꾼이 어떠한 사람이고 일이 어떠한 것인지를 그들이 알도록 하여, 일꾼들에 대해 마땅히 가져야 할 그 이상(以上)의 바람을 갖지 않도록 일을 재고할 필요가 있었다.

(2) 정확하지 않은 말

어떤 형제들은 주님의 일의 원칙에 대해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밖으로 정확하지 않은 말을 하게 되었다. 그들은 우리의 내용과 일의 원칙을 모른 결과, 가르침을 받지 않은 말을 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사람들이 우리를 오해하게 만들었다. 이 무리들은 우리를 잘못 대표한 것이다. 그들이 말한 것은 우리의 뜻과 방법이 아니므로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도록 했을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는 형제들이 잘못된 말을 함으로써 생긴 불필요한 오해와 다툼을 피하기 위하여 형제들에게 일의 원칙이 어떠하고 동역자들이 왜 이렇게 행하는가를 알려 주기 위해 이 일을 재고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형제들이 우리가 가는 길을 깨닫고 또한 그들 자신들의 책임을 알며 성경 안에서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진리에 대해 분명해지기를 바란다.

우리를 책망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지난 몇십 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책망하고 비평해 왔다는 것을 누구나 알 것이다. 그러나 이 비평은 두 방면에서 온 것이다. 한 방면은 수준이 높기 때문이고 한 방면은 수준이 낮기 때문이다. 수준이 지나치게 높은 사람은 아는 것이 많으므로 사람들이 말한 것에 대해 이것도 틀렸다고 말하고 저것도 틀렸다고 말한다. 어떤 것도 그들의 눈을 만족시킬 수 없다. 이외에 수준이 낮은 사람들도 비평할 줄 안다. 그들에게는 참된 지식이 없기 때문에 이것도 틀렸다고 하고 저것도 틀렸다고 오해하여 자신들도 알지 못하는 말을 함부로 한다. 많은 사람들은 아는 것이 너무 많아서 비평하고, 또 많은 사람들은 모르기 때문에 비평한다. 지식이 높은 사람들에 대하여는 우리가 사람의 손에서 가르침 받는 것을 배우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겸손한 마음을 주시기 바란다. 알지 못?



이 책의 시리즈


저자 프로필


리뷰

구매자 별점

5.0

점수비율
  • 5
  • 4
  • 3
  • 2
  • 1

1명이 평가함

리뷰 작성 영역

이 책을 평가해주세요!

내가 남긴 별점 0.0

별로예요

그저 그래요

보통이에요

좋아요

최고예요

별점 취소

구매자 표시 기준은 무엇인가요?

'구매자' 표시는 리디에서 유료도서 결제 후 다운로드 하시거나 리디셀렉트 도서를 다운로드하신 경우에만 표시됩니다.

무료 도서 (프로모션 등으로 무료로 전환된 도서 포함)
'구매자'로 표시되지 않습니다.
시리즈 도서 내 무료 도서
'구매자’로 표시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같은 시리즈의 유료 도서를 결제한 뒤 리뷰를 수정하거나 재등록하면 '구매자'로 표시됩니다.
영구 삭제
도서를 영구 삭제해도 ‘구매자’ 표시는 남아있습니다.
결제 취소
‘구매자’ 표시가 자동으로 사라집니다.

이 책과 함께 구매한 책


이 책과 함께 둘러본 책



본문 끝 최상단으로 돌아가기

spinner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