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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명작관 2. 가족 상세페이지

테마명작관 2. 가족작품 소개

<테마명작관 2. 가족> 주제별로 엮은 세계 문호들의 중?단편 앤솔러지 [테마명작관] 시리즈 1차분 3권을 에디터에서 펴냈다. 대부분의 세계문학전집들이 책마다 작가별 대표작 장편을 위주로 수록하고 있으나 이 시리즈는 각권의 테마를 설정, 그에 맞는 동서양의 고전 명작들을 골라 실은 것이 다른 점이다. 한 권의 책에서 같은 주제이지만 시대적 공간적 배경이 다른 여러 작품들을 부담없이 골라 읽는 재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거장들의 문학세계까지 접할 수 있다. 현대인들의 가치있는 삶을 위한 문학서이자 학생들의 사고력을 높일 수 있는 교양서이다. 그 두 번째가 오 헨리, 숄로호프, 카프카, 아리시마 다케오, 루쉰, 다자이 오사무, 고리키, 모파상이 들여다본 가족 이야기이다.



저자 소개

저 : 루쉰 魯迅, 본명 : 저우수런(周樹人), 자 : 위차이(豫才)
중국 현대 문학의 창시자로 여겨지는 루쉰은 당대의 중국 예술과 화에서 다른 어떤 작가와도 비견될 수 없는 위치를 차지한다. 중국 공산당이 국민적 영웅으로 찬양한 루쉰은 중국혁명의 지적 원천으로서 추앙받아 왔으며, 마오쩌둥을 위해 사상적 기반을 마련한 인물이기도 하다.

저장성 사오싱(紹興)의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조부의 하옥, 아버지의 병사 등으로 어려서부터 고생스럽게 살았다. 청년시대에 진화론과 니체의 초인철학, 톨스토이의 박애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1898년 난징의 강남수사학당에 입학, 당시의 계몽적 신학문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1902년 졸업 후 일본에 유학, 고분학원을 거쳐 1904년 센다이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였으나, 문학의 중요성을 통감하고 의학을 단념, 국민정신의 개조를 위하여 문예 활동에 힘썼다. 1905~1907년 혁명당원의 활동에 참가하고, ‘마라시력설’, ‘문화편지론’ 등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 무렵 유럽의 피압박민족 및 슬라브계 작품에 공감하여 1909년 동생 저우쭤런(周作人)과 ‘역외소설집’을 공역하는 한편, 망명중인 장빙린(章炳麟)에게 사사하였다.

1909년 귀국하여 고향에서 교편을 잡다가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나자, 남경임시정부와 북경정부의 교육부원이 되어 일하면서 틈틈이 금석 탁본의 수집, 고서 연구 등에 심취하였다. 1918년 문학혁명을 계기로, 처음으로 ‘루쉰(魯迅)’이라는 필명을 사용, 중국현대문학사상 첫번째의 백화소설인 ‘광인일기’를 발표하여 신문학운동의 기초를 다졌다. 5·4운동 전후 ‘신청년’ 잡지의 일에 참가하여 ‘5·4’ 신문화운동의 선봉이 되었다. 1918년에서 1926년에 이르는 동안 창작을 계속하여 소설집 ‘눌함’, ‘방황’, 논문집 ‘분(墳)’, 산문시집 ‘야초’, 산문집 ‘조화석습’, 잡문집 ‘열풍’, ‘화개집(華蓋集)’, ‘화개집 속편’ 등을 출판하였다. 이 중에 ‘공을기(孔乙己)’, ‘고향’, ‘축복’ 등을 발표하여 중국 근대문학을 확립하였는데, 1921년 12월에 발표된 중편소설 ‘아Q정전(阿Q正傳)’은 중국현대문학사상 불후의 대표작으로 세계적 수준의 작품이다. 많은 외국 작가의 작품을 번역하였고, 1920년 이후에는 베이징대학, 베이징여자사범대학 등에서 교편을 잡았다.

1924년 저우쭤런과 어사사를 조직하고, 1925년 청년문학사와 미명사(未名社)를 조직하였으나, 1926년 8월 베이양 군벌의 문화 탄압과 격돌한 베이징 학생애국운동 지지로 말미암아 베이징을 탈출, 아모이대학 중문과 주임으로 부임하고, 1927년 1월 당시의 혁명 중심 광저우(廣州)에 이르러 중산대학의 교무주임이 되었다. 1927년 가을 상하이의 조계에 숨어 쉬광핑(許廣平)과 동거하며 문필생활에 몰두하는 한편, 창조사, 태양사 등 혁명문학을 주창하는 급진적 그룹 및 신월사(新月社) 등 우익적 그룹에 대한 논전을 통하여 매우 전투적인 사회 단평(短評)의 문체를 확립하였다.

한편 소비에트 러시아 문학작품을 번역하여 소개하기도 하였다. 1930년 전후하여 중국자유운동대동맹, 중국좌익작가연맹과 중국민권보장동맹에 참가하여 국민당 정부의 독재 통치와 정치 박해에 항거하였다. 1931년 만주사변 뒤에 대두된 민족주의 문학, 예술지상주의 및 소품문파(小品文派)에 대하여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였다. 1927년부터 1936년까지 역사소설집 ‘고사신편’을 출판하였고, 대부분의 작품과 잡문은 ‘이이집’, ‘삼한집’, ‘이심집’, ‘남강북조집’, ‘위자유서’, ‘준풍월담’, ‘화변문학’, ‘차개정잡문’, ‘차개정잡문 이편’, ‘차개정잡문 말편’, ‘집외집’과 ‘집외집습유’ 등에 수록되었다.

또 1931년부터 판화 운동도 지도하여 중국 신판화의 기틀을 다졌다. 루쉰의 일생은 중국 문화사업에 지대한 공헌을 이룩하였다. ‘미명사(未名社)’, ‘조화사(朝花社)’ 등 문학 단체를 영도하고 지지하였으며, ‘국민신보부간’, ‘망원(莽原)’, ‘어사(語絲)’, ‘분류(奔流)’, ‘맹아(萌芽)’, ‘역문(譯文)’ 등 문예잡지를 주편하였고, 청년 작가를 열성적으로 적극 배양하였다. 외국의 진보된 문학 작품을 번역하는 데 힘쓰고, 국내외의 저명한 회화, 목각을 소개하였으며, 대량의 고전문학을 수집, 연구, 정리하고, ‘중국소설사략’, ‘한문학사강요’를 저술하였으며, ‘혜강집’을 정리하고 ‘회계군고서잡록’, ‘고소설구침(古小說鉤沈)’, ‘당송전기록’, ‘소설구문초’ 등등을 집록하였다. 죽기 직전에는 항일투쟁 전선을 둘러싸고 저우양(周揚) 등과 논쟁을 벌이기도 하였으나, 그가 죽은 뒤에는 대체로 그의 주장에 따른 형태로 문학계의 통일전선이 형성되었다.

그의 문학과 사상에는 모든 허위를 거부하는 정신과 언어의 공전이 없는, 어디까지나 현실에 뿌리박은 강인한 사고가 뚜렷이 부각되어 있다. 1936년 10월 19일 폐결핵으로 말미암아 상하이에서 세상을 떠나고 민중 만여 명이 자발적으로 공제(公祭)를 거행하여 훙자오만국공묘에 묻혔다. 1956년 루쉰의 유해는 훙커우공원에 이장되었다. 1938년 ‘루쉰전집’ 20권이 출판되었다. 그를 혁명의 모범이자 사상의 근원으로 여긴 마오쩌둥에 의해 20세기 내내 중국을 지배한 개혁과 혁명적 변화의 선동가로서 거의 신적인 존재로까지 추앙받았다.
인민정부 성립 후, 루쉰의 저서는 분야별로 나뉘어 ‘루쉰전집’ 10권, ‘루쉰역문집’ 10권, ‘루쉰일기’ 2권, ‘루쉰서신집’이 간행되었고, 루쉰이 편교(編校)한 고적(古籍) 여러 종류도 다시 간행되었다. 1981에는 ‘루쉰전집’ 16권이 출판되었다. 베이징, 상하이, 사오싱, 아모이 등지에는 전후하여 루쉰 박물관, 기념관 등이 건립되었다. 닫기 어느 날 나는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중국 본토의 동포들을 화면 속에서 만나게 되었다. 무리 가운데에는 묶여 있는 동포가 있었고 많은 동포들이 그를 에워싸고 있었다. 그들 모두는 건장한 체격이었지만 무감각한 표정으로 구경만 하고 있었다. 설명에 따르면, 묶여 있는 동포가 러시아를 위해 스파이 노릇을 했으므로, 다른 사람들에게 본보기가 되도록 참수시키려 한다는 것이었다. 이 화면을 보고 나서 나는 의학이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학기가 끝나기 전에 도쿄를 떠났다. 아무리 육체적으로 건장하고 강할지라도 무지하고 약한 나라의 사람들은 오직 바보 같은 구경꾼밖에 될 수 없다. 병으로 죽어가는 것보다 그런 상황은 더 안타까웠다. 그러므로 가장 우선해야 할 과업은 동포들의 정신을 개조하는 일이었다. 그 목적을 달성하는 데 가장 적절한 수단은 문학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문학 운동을 촉진시키기로 결심한 것이다.

저 : 아리시마 다케오 Takeo Arishima,ありしま たけお,有島 武郞
1878년 3월 4일 도쿄에서 태어났다. 화혼양재(和魂洋才) 사상이 철저했던 아버지의 교육방침에 따라 어려서부터 영어를 배웠으며, 외국인이 운영하는 미션스쿨에서 초등학교 과정을 마쳤다. 귀족학교인 가쿠슈인(學習院)을 졸업한 뒤 농학자가 되고자 삿포로 농업학교에 진학하여, 1901년에 기독교의 세례를 받았다. 1903년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포드 대학교와 하버드 대학교에 유학하면서 사회주의에 경도되었으며, 휘트먼과 입센, 톨스토이 등 서구문학, 베르그송과 니체 등 서양철학의 영향을 받았다. 1907년 귀국해 모교에서 교편을 잡은 후에는 신앙에 회의를 품고 기독교에서 이탈해 사회주의연구회를 이끌었다.

1910년 동인지 『시라카바(白樺)』 창간에 참가하면서 문학 활동을 시작했으며, 많은 소설과 평론을 발표해 시라카바파의 중심인물로 활약했다. 1916년 아내와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창작에 전념하면서 『카인의 후예』, 『태어나는 고통』, 『미로』 등을 발표했으며, 1919년에는 대표작 『어떤 여자』를 완성했다. 1922년 「선언 하나」를 발표한 후, 홋카이도의 아리시마 농장을 소작농들에게 나누어주어 농지 해방을 시도했다. 1923년, 『부인공론(婦人公論)』의 기자이자 유부녀인 하타노 아키코(波多野秋子)와 동반자살했다.

저 : 프란츠 카프카 Franz Kafka
유대계 독일 작가. 현대 사회 속 인간의 존재와 소외, 허무를 다룬 소설가이다. 그는 비현실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상황 설정 속에서 인간의 존재를 끊임없이 추구한 실존주의 소설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무력한 인물들과 그들에게 닥치는 기이한 사건들을 통해 20세기 세상 속의 불안과 소외를 폭넓게 암시하는 매혹적인 상징주의를 이룩했다는 평을 받는다.

프란츠 카프카는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프라하의 독일어를 쓰는 중간계급의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자수성가한 상인으로 기골이 크고 독선적이었던 아버지와 관계가 좋지 못했다. 현실적이고 빈틈없는 아버지의 눈에는 아들의 모습이 몽상가에 불과했으며, 어린 카프카의 눈에 아버지는 지독한 일벌레에 가족은 안중에도 없이 사업의 성공에만 몰입하는 사람으로 보였다. 신분상승을 위해 어머니조차 아버지의 사업을 도와야 했기 때문에 그는 줄곧 남의 손에 의해 키워졌고, 그의 나이 두 살 때, 그리고 네 살 때 동생인 게오르크와 하인리히가 태어났지만 곧 죽고 마는 일을 목격하게 된다. 이후 그의 나이 여섯 살 때인 1889년 여동생 엘리가, 또 1년 뒤에는 발리가, 그리고 그 2년 뒤에는 오틀라가 태어나지만, 이 세 자매 역시 제2차 세계 대전의 광기에 희생당하고 만다. 아버지와의 불화와 동생들의 잇단 죽음을 목격하면서 그는 불안정한 유년기를 보낸다.

그의 아버지는 카프카에게 상인의 기질이 보이지 않자 독일계 인문 중고등학교에 입학시킨다. 이곳에서 카프카는 '루돌프 일로비, 시오니스트 후고 베르크만, 에발트 펠릭스 프리브람, 오스카 폴락 등 평생을 두고 교유하는 몇 명의 중요한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1901년 프라하의 카를 페르디난트 대학에 진학한 카프카는 주로 문학과 예술사 강의에 흥미를 보였으나, 아버지의 바람대로 법학을 전공으로 선택한다. 하지만 법관이나 변호사가 될 생각은 추호도 없었으므로, 1906년 법학 박사 학위를 받고 법원에서 1년간의 수습 기간을 마친 뒤 일반 보험 회사에 입사한다. 1908년 보헤미아 왕국 노동자 상해 보험 회사로 자리를 옮긴 후로는 죽기 2년 전인 1922년까지 그곳에서 법률고문으로 근무하는 한편, 오후 2시에 퇴근하여 밤늦도록 글을 썼다.

이 무렵 유럽의 노동 환경은 무척 열악했다. 카프카는 공무 출장과 노동자들과의 접촉 등 이곳에서의 업무를 통해 관료기구의 무자비성, 노동자들에 대한 가혹한 대우와 이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직접 체험하고 자본주의 사회의 내면을 속속들이 꿰뚫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카프카가 자신의 작품에서 개인의 소외와 무력감에 대해 보여주는 깊은 통찰은 여기에서 나온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1919년 각혈을 했으나 의사의 진찰을 거부하다 증세가 악화되어 결국 요양소와 여동생들의 집을 전전한다. 하지만 이 시기에 그는 죽을 때까지 함께한 도라 디만트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비로소 일찍이 맛보지 못한 삶의 애착과 행복을 경험한다. 도라는 그의 곁을 밤낮으로 지키며 간호했지만 1924년, 병약하고 내향적이었던 그는 자신에게 부과되는 출세,결혼 등의 중압감에 쫓기며 글을 쓰다가 폐결핵에 영양부족까지 겹쳐 41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하기에 이른다.

카프카는 평생 불행하게 지냈다. 프라하의 상층부를 장악하고 있던 독일인에게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같은 유대인들로부터는 시온주의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배척받았다. 생전에 카프카는 출판업자들의 요청으로 마지못해 발표하기 전까지는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기를 꺼렸으며, 발표된 작품들도 대중의 몰이해 속에 거의 팔리지도 않았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친구에게 보낸 유서에서 자신의 모든 글을 불태워줄 것을 부탁했을 만큼 쓰는 것 외의 다른 것을 바라지 않았지만, 세계의 불확실성과 인간의 불안한 내면을 독창적인 상상력으로 그려낸 그의 작품은 타계후 전 세계에 알려졌다.

1912년에 『실종자』(후에 『아메리카』로 개제), 『변신』을 쓰기 시작했고, 1914년에는 『유형지에서』와 『심판』 집필에 들어갔다. 1916년에는 단편집 『시골 의사』를 탈고했다. 1917년에 폐결핵이 발병하여 여러 곳으로 정양을 다니게 되고, 1922년에 『성』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결국 폐결핵으로 1924년에 빈 교외의 키어링 요양원에서 사망했다. 『변신』 외에 대표작으로 『심판』 『성城』 『실종자』 『유형지에서』 『시골의사』 『시골에서의 결혼 준비』 등 다수가 있다. 닫기 나는 오로지 콱 물거나 쿡쿡 찌르는 책만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읽는 책이 단 한주먹으로 정수리를 갈겨 우리를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엇하러 우리가 책을 읽겠는가? 한 권의 책은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만 한다.

저 : 다자이 오사무 Dazai Osamu,だざい おさむ,太宰 治,본명 : 츠시마 슈지(津島 修治)
다자이는 일본 동북 지방의 아오모리 현(靑森縣) 기타쓰가루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쓰시마 슈지로, 아버지는 그 지방의 대지주이며 귀족원(중의원) 의원이기도 하였다. 8남매 중의 막내로 형제들에 대하여 항상 열등 의식을 지니고 부모의 사랑도 모른 채로 유모의 손에서 성장하였다.

다자이는 고등학교 시절 동인 잡지에 아버지의 방탕한 생활과 위선을 폭로한 『무한 나락』을 발표했으며, 3학년 때인 1929년에는 다량의 수면제를 먹고 첫 번째 자살 미수 사건을 벌였다. 1930년 도쿄대학 불문과에 입학한 다자이는 이부세 마스지를 만나, 이후로 사제 관계를 맺기에 이르렀다. 같은 해, 게이샤 출신의 오야마 하쓰요(小山初代)가 도쿄로 찾아와, 우여곡절 끝에 두 사람의 관계를 인정받게 되나, 그 때문에 다자이는 고향의 가족들로부터 분가 제적을 당하였다. 분가 제적의 실질적인 원인으로는 당시의 다자이가 비합법 운동에 가담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도쿄대학 불문과에 입학한 다자이는 구도 에이조의 끈질긴 권유에 못 이겨 좌익 운동에 가담하였고, 당시의 작품인 『지주 일대』와 『학생군』은 착취계급이나 국가 권력에 대하여 상당히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1931년 구도가 검거된 이듬해에 자수한 이후로 비합법 운동에서 탈락하였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다.

고향 집으로부터 분가 제적을 당한 지 얼마 안 되어, 다자이는 긴자(銀座) 카페의 호스테스와 함께 가나가와 현 에노 섬에서 투신 자살을 기도하였는데, 다자이만 살아남아 가마쿠라(鎌倉)의 병원에 수용되었다. 이 자살에 관하여는 『도쿄 팔경』『인간실격』『광언의 신』『허구의 봄』『광대의 꽃』등에서 다자이 스스로가 언급하고 있다. 다자이는 자살 방조 혐의로 기소 유예 처분을 받았으며, 이때의 체험 역시 평생 동안 죄의식으로 남게 되었다.

퇴원 이후의 다자이는 삶에 대한 희망을 잃고 방황을 하던 중, 대학을 졸업할 가망이 없게 되자 미야코 신문사의 입사 시험에 응했지만 그것마저 실패한다. 그 후 1935년 가마쿠라의 산중에서 혼자 자살을 기도하고, 결국 미수에 그쳤다. 같은 해 ‘일본낭만파’에 합류하였으며 『역행』으로 제1회 아쿠타가와상 차석을 차지하지만 심사 결과에 불만을 품고 심사 위원이었던 가와바타 야스나리에 항의하는 글을 발표한다. 그 후 복막염으로 입원했고, 처방된 마약성 진통제 파비날에 중독되어 정신착란적인 문체를 선보이기도 한다. 마약 중독 치료를 위해 정신병원에 강제로 수용되었으며, 1936년 입원하여 있는 동안 하쓰요가 불륜을 저지른 사건이 계기가 되어 이듬해 두 사람은 미나카미(水上) 온천에서 동반 자살을 기도한다. 이 자살도 미수로 끝나고, 마침내 하쓰요와 결별한 다자이는 후지 산 기슭에서 홀로 지내며 마음의 평온을 되찾는다.

1939년 미치코(石原美知子) 부인과의 결혼으로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된 다자이는, 1945년 일본이 패전할 때까지 활발한 작가 활동을 하며 소시민으로서의 생활을 즐겼다고 할 수 있다. 다자이가 후지 산 기슭에서 홀로 지내던 당시의 생활을 기록한 것이 『부악백경』이다. 1945년 일본 패전 후 전쟁에서 패하여 윤리적 기반을 잃은 일본 사회에 가장 어울리는 무뢰파 작가로서, 이른바 '유행 작가'라는 칭호를 얻었으며, 사카구치 안고, 오다 사쿠노스케 등과 함께 ‘데카당스 문학’, ‘무뢰파 문학’이라 불리며 패배감에 쌓여 있던 일본 젊은이들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다.

다자이의 최후는 비참했다. 폐의 질환이 악화되어 각혈은 물론, 계단도 제대로 오르내리지 못할 지경에 이른 다자이는, 1948년 6월 13일 밤 동거 중이던 야마자키 도미에와 다마 강 수원지에 뛰어들어 자살하였다. 그 시체는 닷세 후인 19일 아침, 썩어 짓무른 채로 발견되었다. 그날이 바로 다자이의 서른아홉 번째 생일이었다.

저 : 미하일 숄로호프 Michail Sholokhov, Михаил Александрович Шолохов
현대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사랑받고 있는 미하일 숄로호프. 그의 작품은 전 세계 84개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소련에서만 900판 이상을 거듭하며 8000만 권 이상이 팔려 나갔다.
1905년 5월 24일 남러시아 돈강 연변 카자크마을에서 출생하였다. 보구차르중학 재학중인 1918년 국내전(시민전쟁)이 발발하자 적위군에 참가하여 돈 지방을 전전하고, 1923년 모스크바로 가서 석공·하역인부 등을 거쳐 교사가 되었으나 문학으로 전향하여 1924년 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이후 2년간 시민전쟁 때의 돈 카자크의 생활에서 취재한 단편집 등 많은 중·단편을 간행하여 작가적 지위를 확보하였다. 25년 고향으로 돌아온 후로는 제2차 세계대전의 한 시기를 제외하고는 거의 그곳을 떠나지 않고 창작활동을 계속하였다. 1937년 이래 최고회의 대의원이었으며, 1961년 제22희 소련공산당대회에서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었다. 또 1939년 이래 과학아카데미의 정회원을 지냈다.

대표작인 대하소설 『고요한 돈강 Tikhii Don(And Quiet Flows the Don)』은 제1차 세계대전 전야부터 혁명을 거쳐 시민전쟁의 종결에 이르는 사이, 돈 지방 카자크 사회의 변천과 그 내부에서의 계급투쟁을 주제로 하여 그들이 혁명의 와중에서 거의가 혁명을 적대시하거나 동요를 계속할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필연성을 해명함으로써, 러시아 문학의 최고 걸작이라는 찬사와 함께 1941년 스탈린상을 수상하였다.

2차 세계대전 중에는 종군기자로 전선을 누비면서 많은 기사를 썼고, 이때의 경험으로 르포 소설 『그들은 조국을 위해 싸웠다』(1943~1969)와「인간의 운명」(1957)을 쓰기도 했다. 1965년에 『고요한 돈 강』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1932년 이후 공산당원이 된 숄로호프는 현실 정치에서도 큰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1984년 2월 21일 암으로 사망했다. 닫기
작가파일보기 관심작가알림 신청 저 : 기 드 모파상

Guy de Maupassant
1850년 노르망디의 미로메닐 출생으로, 1869년부터 파리에서 법률 공부를 시작했으나 1870년에 보불전쟁이 일어나자 군에 자원입대했다. 전쟁이 끝난 후 1872년에 해군성 및 문부성에서 근무하며 플로베르에게서 문학 지도를 받았고, 1874년 플로베르의 소개로 에밀 졸라를 알게 되면서 당시의 젊은 문학가들과도 친분을 쌓았다. 1880년 6명의 젊은 작가가 쓴 단편모음집 『메당 야화』에 「비곗덩어리」를 발표하면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그 후 『메종 텔리에』, 『피피 양』 등의 단편집을 비롯하여 약 300편의 단편소설과 기행문, 시집, 희곡 등을 발표했다. 또한 『벨아미』, 『피에르와 장』등의 장편소설을 썼으며, 그 중 1883년에 발표한 장편소설 『여자의 일생』은 프랑스 사실주의 문학이 낳은 걸작이라는 평을 받았다.

모파상은 작품으로 명성을 얻으면서도 신경질환 및 갖가지 질병에 시달렸고, 1891년에는 전신 마비 증세까지 보이기 시작했다. 1892년 자살 기도를 한 후 정신병원에 수용되었으나 끝내 회복되지 못하고 이듬해인 1893년 43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작가파일보기 관심작가알림 신청 저 : 막심 고리키

Максим Горький,본명 : 알렉세이 페쉬코프
본명은 알렉세이 페쉬코프. 1868년 니즈니노브고로드에서 태어나, 1877년에 니즈니노브고르도 쿠나빈스코예 학교에 입학했다. 11살 때부터 생계가 어려워 학업을 중단하고 ≪세상속으로≫ 들어갔으며, 1879년부터 1884년까지 어린 나이에 제화점 점원, 화공도제, 기선주방일 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했다. 1884년, 16살이 된 고리키는 대학진학의 희망을 품고 카잔으로 떠났고, 1892년까지 러시아 남부 전역과 남 베사라비아, 크림과 카프카즈를 포함하는 러시아 순례를 하면서 시골 품팔이, 어부, 기선의 접시닦이, 철도원 등으로 일했다.

1892년 ≪카프카즈≫ 신문에 막심 고리키라는 필명으로 첫 단편소설 「마카르 추드라」를 발표했다. 1895년부터 1896년까지 〈사마라신문〉의 주필로 일했고 바로 그 신문에 '이에구질 흘라미드'라는 필명으로 약 200편의 칼럼, 르포, 평론, 그리고 「이제르길 노파」를 포함한 다수의 단편소설을 발표하였다. 1896년에는 당시 〈사마라 신문〉의 교정원이었던 에카테리나 파블로브나 볼쥐나와 결혼했다. 1896년부터 1897년까지 고리키는 〈니줴고로트스키 리스토크〉 신문사에서 일했으나 갑자기 건강이 악화되어 1897년 아내와 함께 남부지방으로 이주하였다. 1898년 초, 고리키는 다시 니즈니노브고로드에 돌아와 『르포와 단편소설』 1,2권을 집필하여 출간하였고, 이 책은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두었다. 비평가들은 『르포와 단편소설』의 출현을 러시아의 사회문화적 사건, 작가의 자기 정체성 확립의 순간으로 평가하였다.

러시아 사회문화의 주요 인사가 된 그는 체호프, 레핀, 샬라핀, 메레쥐코프스키, 안넨스키 등 당시 문화계 인사들과 두터운 교분을 나누었으며, 이외에도 안드레예프, 부닌, 쿠프린, 베레사예프 등 '네오리얼리즘' 작가 군과 가까이 지냈다. 1898년 가을부터 잡지 〈삶〉의 이념적 지도자가 된 고리키는 1900년 9월부터는 출판공동체 〈즈나니에〉를 운영하였고, 1904년부터 1913년 폐간 때까지 새로운 네오리얼리즘 계열의 문학 선집을 40권을 출판했다. 1902년부터 1905년까지 모스크바 예술극장의 고정 작가로서 활동하였으며, 희곡 〈밑바닥에서〉의 초연은 체호프의 〈갈매기〉와 함께 러시아연극사의 한 장을 장식하였다. 1905년 정치적 이유로 러시아를 떠난 고리키는 미국과 이탈리아를 거쳐 1913년 러시아로 돌아왔으며, 첫 망명 기간 동안 사회평론을 포함하여 『어머니』, 『고백』, 『필요없는 인간의 삶』, 『여름』, 『마트베이 코줴먀킨의 삶』, 『어린시절』 등 많은 작품을 발표하였다.
다시 러시아를 떠난 고리키는 1924년까지 독일과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체류하였고, 1925년부터는 역사 서사시 「클림 삼긴의 삶」의 집필을 시작했다. 1928년 5월 소련으로 돌아온 고리키는 잡지 〈우리들의 업적〉,과 〈문학수업〉을 창간하였으며, 1936년 지병으로 사망하였다. 닫기
작가파일보기 관심작가알림 신청 저 : 오 헨리


O. Henry,본명 윌리엄 시드니 포터(William Sydney Porter)
미국 단편 소설 작가로서 본명은 윌리엄 시드니 포터(William Sydney Porter). 보통 사람들, 특히 뉴욕 시민들의 생활을 낭만적으로 묘사했다. 그의 단편 소설들은 우연의 일치가 작중인물에 미치는 영향을 우울하고 냉소적인 유머를 통해 표현하고 있으며, 또한 갑작스런 결말로 인해 극적 효과를 높이고 있다. 이러한 기법은 그의 등록상표가 되다시피했으나 그런 수법의 유행이 한물가자 평론가들은 바로 그런 수법 때문에 그의 작품을 높이 평가하지 않게 되었다. 그는 숙모가 교사로 있는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고, 졸업 후에는 숙부의 잡화상에서 점원으로 일했다. 1882년 텍사스로 가서 농장, 국유지 관리국을 거쳐 오스틴에 있는 제1국립은행의 은행원으로 일했다. 1887년 애설 에스티스와 결혼했으며, 이무렵부터 습작(習作)을 시작했다. 1894년 주간지 <롤링 스톤 The Rolling Stone>지를 창간했으나 사업은 실패로 끝났다. 이후 <휴스턴 포스트 Houston Post>에서 기자, 칼럼니스트로 활동했고 가끔 만화도 기고했다.

1896년 2월 은행 공금횡령 혐의로 기소되었다가 친구들의 도움으로 온두라스로 도피했다. 그러나 아내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오스틴으로 돌아왔고, 당국의 배려로 재판은 아내가 죽을 때까지 연기되었다. 그는 최소한의 형을 받고 1898년 오하이오의 컬럼버스에 있는 교도소에 수감되었으며 모범적인 복역으로 형기는 3년 3개월로 줄어들었다. 그는 교도소의 병원에서 야간에 약제사로 일하면서 딸 마거릿의 부양비를 벌기 위해 글을 썼다. 미국 남서부와 중남미를 무대로 한 그의 모험소설은 즉각 잡지 독자들로부터 인기를 얻었으며 그는 출감하면서 이름을 W. S. 포터에서 O. 헨리로 바꾸었다. 1902년 헨리는 스스로 '지하철위에 건설된 바그다드'라고 묘사했던 도시인 뉴욕에 도착했다. 1903년 12월부터 1906년 1월까지 그는 뉴욕의 <월드 World>에 매주 글을 쓰면서 동시에 잡지에도 기고했다. 최초의 소설집 『캐비지와 왕 Cabbages and Kings』(1904)은 온두라스를 배경으로 이국적인 인물들이 펼치는 이야기이며 『400만 The Four Million』(1906)·『The Trimmed Lamp』(1907)는 뉴욕 시민들의 일상 생활과 낭만과 모험에 대한 추구를 묘사했고, 『서부의 마음 Heart of the West』(1907)는 텍사스 산맥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환상적인 내용의 소설이다.

헨리의 말년은 자신의 인기에도 불구하고 악화된 건강, 금전상 압박과의 싸움, 알코올 중독 등으로 얼룩졌다. 1907년에 한 재혼은 불행했다. 1910년 6월 5일, 과로와 간경화, 당뇨병 등으로 뉴욕 종합병원에서 사망했다. 사후에 『Sixes and Sevens』(1911)·『뒹구는 돌 Rolling Stones』(1912)·『Waifs and Strays』(1917) 등 3권의 선집이 나왔다. 나중에 즉흥적으로 쓴 소설과 시를 모은 『O. 헨리 선집 O. Henryana』(1920)·『Letters to Lithopolis』(1922)와 초기의 작품을 모은 2권의 책 『Houston Post, Postscripts』(1923)·『O. Henry Encore』(1939)가 출간되었다. 『경찰관과 찬송가 The Cop and the Anthem』·『마지막 잎새 The Last Leaf』 등의 단편에서 보이는 따뜻한 휴머니즘은 독자의 심금을 울린다. 제럴드 랭퍼드가 쓴 전기 『앨리어스 O. 헨리 Alias O. Henry』가 1957년에 나왔다. 닫기
작가파일보기 관심작가알림 신청 역 : 권일영


서울 출생. 동국대학교 경제학과를 마치고 [여성중앙] 등 월간지와 멀티미디어 관련 기자로 일했다. 중앙일보사에서 [소년중앙], [여성중앙] 등의 월간지 취재기자와 멀티미디어 관련 업무를 하였다. 지금은 전업 번역자로 일하고 있다. 1987년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무라타 기요코의 『남비속』을 우리말로 옮기며 번역을 시작, 일본어와 영어로 된 소설을 번역했다. 옮긴 책으로는 모리미 도미히코의 『유정천 가족』, 마키메 마나부의 『사슴남자』, 아야츠지 유키토의 『미로관의 살인』과 『암흑관의 살인』, 가이도 다케루의 『바티스타 수술 팀의 영광』을 비롯한 다구치-시라토리 시리즈, 아비코 다케마루의 『살육에 이르는 병』과 『탐정영화』, 기리노 나쓰오의 『다크』와 『IN』 등이 있다. 또 미야베 미유키, 오리하라 이치의 작품과 에이드리언 코난 도일과존 딕슨 카가 함께 지은 『셜록 홈즈 미공개 사건집』을 우리말로 옮기기도 했다.
작가파일보기 역 : 유소영

이화여대 중어중문학과와 한국외국어대학교 통역대학원 한중과를 졸업했다. 중국 양주대학교 한국어과 외국인 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제주대학교 통역대학원에서 중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역서로는 『이중톈, 정치를 말하다』,『마교사전』(한소공), 『개구리』(모옌), 『중국문화기행』(위치우위), 『중화를 찾아서』(위치우위), 『몸:욕망과 지혜의 문화사전』(샤오춘레이), 『손자병법의 탄생』(웨난), 『샛별』(커윈루), 『안녕, 나의 어린시절』(펑슈에쥔), 『지구가 감춰놓은 29가지 비밀』(리나), 『가족』(루쉰 등) 등이 있다.
작가파일보기 역 : 이항재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투르게네프의 후기 중단편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리키세계문학연구소 연구교수와 한국러시아문학회 회장을 지내고 현재 단국대학교 러시아어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소설의 정치학 : 투르게네프 소설 연구』『사냥꾼의 눈, 시인의 마음』『러시아 문학의 이해』(공저) 등이 있고 러시아 문학에 관한 많은 논문을 썼다. 옮긴 책으로 미르스키의 『러시아 문학사』, 투르게네프의 『귀족의 보금자리』와 『첫사랑』, 부닌의 『아르세니예프의 생애』『숄로호프 단편집』『추콥스키 동화집』『내가 처음 만난 톨스토이』『학교에 간 필리포크』『톨스토이와 행복한 하루』등이 있다.
작가파일보기 역 : 김난령

경북대학교 문헌정보학과를 졸업한 후, 출판기획자, 해외저작권 에이전트로 활동하였다. 이후 영국으로 건너가 런던 인스티튜트의 런던 칼리지 오브 프린팅에서 인터랙티브 멀티미디어 석사 학위를 받았다. 어린이 책을 비롯해 문학과 교양서를 우리말로 옮기는 일을 하며, 대표적인 책으로는 어린이 책인『제비갈매기 섬의 등대』,『마틸다』,『여섯 번 저녁 먹는 고양이 시드』,『클라리스 빈의 영어 시험 탈출』,『크리스마스 캐럴』,『비밀이 담긴 찬장』,『베르메르 미스터리』, 『라모나는 아빠를 사랑해』, 『라모나는 아무도 못 말려』등과 예술책 『디자인의 역사』 등이 있다.

지금은 번역 작가 외에도 디자인 평론가, 번역가, 디자인 및 디지털미디어 전문 필자 및 대학 강사, 그리고 전시 및 출판기획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구촌 시대의 지역문화에 공헌하는 행사 및 전시에도 관심이 있는 그는, 2002년 [유럽인의 새로운 선택]전을 기획했으며, 2003년에 [조나단 반브룩 공개강좌]를 주최했다. 파트너십으로 구성된 앰버 어소시에이츠(Amber Associates)를 통해 지구촌 디자인문화 사업을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다.
역자 : 국세라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 박사과정에 있다.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 공부하였으며, 마인츠대학에서 통?번역 집중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도서와 영상물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역자 : 이재필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과 모스크바국립대학교 대학원에서 러시아문학 박사학위를 수료하였다. 서라벌대학에서 관광노어통역과 전임강사로 재직하였으며, 현재 러시아 문화 및 비즈니스 관련 통번역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노름꾼》이 있다.

역자 : 정숙현

성균관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7대학에서 〈프랑스 혁명사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달력-영원한 시간의 파수꾼》, 《위대한 기사 윌리엄 마셜》, 《르네상스-라루스 서양미술사 2》, 《고전주의와 바로크-라루스 서양미술사 3》, 《미켈란젤로-인간의 열정으로 신을 빚다》 등이 있다.

목차

인생유전(오 헨리)
배냇점(숄로호프)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카프카)
내 어린것들에게*아리시마 다케오)
형제(루쉰)
꽃잎 진 벚나무 너머로 들려오는 이상한 휘파람(다자이 오사무)
할아버지 아르히프와 룐카(고리키)
쥘르 삼촌(모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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